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93화 (174/877)

식물이 가득한 수술실 밖 대기실에 알로에와 플루모서스 아스파라거스가 얽혀 있고, 스물 대여섯 된 레지던트가 간호사 뒤를 쫄쫄 따라 다녔다.

환자 가족들은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애써 진정하고 있었다.

서 여사는 텅 빈 눈으로 꼼짝도 안 하고 문 쪽을 바라보다가 작은 소리만 나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남편은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손에 들고 코앞에서 맡으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철컥.

문이 열리고 마스크를 낀 의사가 뛰어나와서 드라마처럼 다급하게 보호자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전했다.

남편은 지친 기색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4시간 기다리다 보니, 몸만 피곤한 게 아니라 마음이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마스크를 낀 의사의 모습이 다시 보이자 그가 훅하고 일어났다.

“곡 선생님.”

마치 구세주를 본 얼굴이었다.

“네, 동 선생님. 안녕하세요.”

상대를 확인한 곡 선생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에게는 씁쓸한 기분을 주는 환자였다. 그러나 곡 선생에게 크게 감사하는 마음뿐인 효우 아빠가 다급하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곡 선생님. 마침 만났네요. 우리 효우, 우리 효우 어떻게 된 건지, 아직 안 나오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곡 선생은 온화한 태도로 미소 지으며 물었다. 마침 수술이 끝나 한가할 때라 이야기 나눌 시간이 있었다. 효우 아빠는 침을 꿀꺽 삼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 딸 말입니다. 수술하러 들어가서 몇 시간이나 됐는데 아직이에요. 선생님,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몇 시간이나 걸렸는데요?”

“네 시간이요.”

서 여사도 달려와 그에게 매달렸다.

“아까 선생님 한 분이 나와서 능 선생님 수술 속도가 좀 느리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어떻게 걱정이 안 돼요. 능 선생님 수술 엄청 빠르신 분이잖아요. 저희도 다 알아요. 대체 무슨 일이죠? 뭐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같은 의사로서 곡 선생은 큰일 났다는 생각부터 들었고, 내심 탄식했다. 능연의 평균 아킬레스건 보건술 속도는 30분 정도였고, 방안 A라고 해도 3시간을 넘긴 적은 없었다. 대부분 2시간 반이면 끝났다.

그런데 4시간 이상이라니, 이는 능연의 수술 시간을 훨씬 초과한 시간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제가 들어가서 한번 볼게요. 아셨죠?”

곡 선생은 수술실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참관실로 향했다. 정말 수술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보다 참관실로 들어가 상황을 살피는 게 나았다.

곡 선생은 속으로 십중팔구 능연의 수술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매번 완벽할 수 있을까, 외과 의사란 수술대에서 메스를 달고 사람 몸을 베는 사람들인 만큼 사고가 날 확률도 높았다. 젊은 능연이 집도의가 되었고, 병원 안팎의 관심을 받다 보니 수술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시간문제였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창때인 소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선생, 황 선생.”

가는 길에 의사 둘을 본 곡 선생은 설명도 없이 그들을 참관실로 끌고 들어갔다. 나중에 증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레지던트와 연수의 몇 명이 참관실에서 기천록의 고관절 치환술을 지켜 보고 있었다.

“기 주임, 참관 수업인가?”

“아니요, 그냥 보는 겁니다.”

“2번 수술실로 돌리게. 능 선생 아킬레스건 수술.”

레지던트가 고개를 흔들자 곡 선생은 바로 지시를 내렸다.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주치의 명령이 설명이니까. 레지던트 하나가 순순히 채널을 돌렸다.

“능연 수술은 왜?”

끌려들어 온 이 선생이 의아한 듯 물었다.

“환자 가족이 찾아왔더라고. 무슨 상황인지 좀 봐달라고.”

곡 선생은 슬쩍 중점을 피해서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으니까.

이 선생과 황 선생 모두 주치의였다. 그 나이대 의사는 산에 사는 요정과 비교한다면, 꼬마 요정 수준이 아니라서 누가 삼장법사를 죽여 고기를 먹는다고 치면 옆에서 국 정도는 얻어먹을 수준이었다.

곡 선생의 말을 들은 두 의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수술실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다. 외부에서 온 연수의를 참관실에서 쫓아낼까 말까 고민하는 참에 능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금물.”

“거즈 추가.”

“오케이, 포셉.”

능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고, 몇 사람이 기대하던 긴장감이나 혼란스러움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원의 목소리도 느긋하고, 명확했다.

“끝단 잘 맞췄어. 이 상태로 봉합하고 조기 재활만 잘 진행하면 재발생률도 낮을 거야.”

“네.”

“탕 법으로도 봉합하겠다는 거지?”

“네.”

“부하가 좀 클 텐데. 이 여자아이한테 이런 고강도 봉합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이삼 년 내에는 전국 규모 대회에 나갈 일도 없는 거 같던데? 이 정도 부하까지는 필요 없을 거 같아.”

“네.”

능연은 수술실에서 긴말하는 걸 싫어하는데 하필이면 여원은 옆에서 평가하거나 질문하는 걸 좋아했다. 처음엔 조금 상대해주던 능연도 요즘엔 그냥 ‘네’로 일관했다.

이 선생과 황 선생은 의아한 눈으로 곡 선생을 바라봤다.

“수술 순조로운데?”

“딱 능 선생 스타일이네.”

능연의 수술을 여러 번 지켜봐 온 두 의사는 그의 스타일에도 매우 익숙했다. 곡 선생도 마찬가지로 멍해졌다.

“아니, 보호자가 벌써 수술 4시간째라고 해서.”

“아킬레스건 수술을?”

“응.”

두 사람도 그제야 진지해져서 젊은 레지던트를 불렀다.

“앞에 영상 좀 틀어봐. 이 수술 앞부분.”

세 사람은 그렇게 참관실에 자리 잡고 앉아서 배속으로 영상을 지켜봤다.

“응, 이렇게 하면 혈액 순환 보장할 수 있겠네.”

“신경 손상이 제일 골치 아픈 합병증이지? 바로 꿰맬 거야?”

“혈관부터 꿰매려고? 음, 그게 좋겠다.”

리플레이 영상에 여원의 목소리도 빨라졌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대부분 여원의 목소리였다. 여원이 말하는 내용과 능연의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그 자리에 있는 의사들은 대충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속도를 이렇게 늦출 수도 있네.”

“차라리 빨리하는 게 쉽지, 빠르게 하다가 느리게 하는 게 더 어렵지.”

“황, 저렇게 할 수 있냐?”

“됐거든? 아킬레스건 수술은 능연과 비교하지 말자. 안 그러냐?”

방에 있던 의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일을 질질 끄는 거라면 못할 인간이 어디 있을까만, 긴 수술 시간을 주고 A++ 결과를 내라고 하면 대다수 의사는 통과하지 못한다.

보통 수준의 외과의는 순서대로 착착 수술을 끝낼 뿐, 빠르냐 느리냐는 의미 없었다. 빨리하는 건 순조로운 게 맞지만, 느리게 한다고 수술이 순조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속도를 줄이고 퀄리티를 높이라고 하면 못 한다는 의사가 더 많다. 퀄리티가 어디 그렇게 높이기 쉬운 것이냔 말이다.

자동차 레이싱과 마찬가지로, 기름 소모량을 따지지 않는 속도전이라면 대부분 레이서는 어느 정도 속도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기름을 아껴야 하는 장거리전이라면 레이서마다 방법을 아는 것이 아니다.

무한한 시간을 주고 오로지 기름만 아끼라고 하는 건 레이서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요구도 아니고 말이다. 외과 의사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사 본 적 있냐고 물으면 곡 선생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대답하리라. 물론 지금 봤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혈액량이 충분하겠네. 능 선생, 지금 정한 위치 축-양이라고 부르지 그래? 이 절개구 위치 정말 좋다. 운동선수들 아킬레스건 기능을 대대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거야.”

“근육 형태를 기본적으로 유지했는데? 능 선생, 수고했어. 앞으로 치마를 입었을 때 적어도 종아리만 보고는 수술했는지 모르겠다. 흉터는 나중에 컨실러 같은 거로 가리면 되겠어.”

여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영상에서 흘러나왔다. 정말 끊임없이······.

곡 선생은 계속해서 들리는 ‘능 선생’ 소리에 짜증이 났지만, 자기 딸과 비슷한 나이의 동효우를 생각하면 정말로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황 선생과 이 선생은 의아한 듯 그런 곡 선생을 바라봤다.

“뭔 생각하냐?”

“그 표정 뭐야.”

두 의사가 이구동성으로 묻자, 곡 선생은 체면이 말이 아니란 생각에 헛기침 몇 번 하고는 꽥 고함쳤다.

“운화 병원에서 온 저 여의사, 아주 아부꾼이다, 아부꾼!”

“맞습니다! 좀 심하긴 하네요!”

“프로 아부꾼입니다!”

“나중에 나도 저런 학생 구해야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병실 구역.

동효우가 묵는 병실은 이제 3인실이 되었고, 그중 한 명은 골관절 치환술 환자, 다른 한 명은 관절경 반월판 성형술 환자였다.

관절경 환자 가곡교는 얼마 전에 상해로 진학한 동효우보다 2살 많은 대학생인데 또래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져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특히 능연 선생에 대해······ 쉴새 없이 재잘댔다.

“능 선생님 실력 대단해!”

“능 선생님 잘생김력 무엇!”

“능 선생님 성격 진짜 좋아.”

같은 말을 얼마나 반복하는지, 다른 화제였다면 진작에 질렸겠지만, 두 사람의 화제는 도무지 끝날 줄을 몰랐다. 두 사람은 심지어 사진을 공유하기 위한 메시지방도 따로 만들었고, 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단체 메시지방에도 끊임없이 사진을 공유했다. 그 탓에 재활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핸드폰을 붙잡고 살았다.

덜컥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간 여원이 신체 진찰을 하면서 두 사람에게 몸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능 선생님은요?”

동효우가 입을 삐쭉이며 풀 죽은 티를 내자 아버지가 헛기침하며 끼어들었다.

“너 이 녀석, 집도하신 선생님이 어떻게 매일매일 회진을 오겠니. 선생님은 바쁘시단다.”

“나는 환자 아냐?”

“환자라고 어떻게 일일이 다 챙기시겠어.”

“여보, 애랑 또 말싸움해요? 가서 선생님 주스나 한 잔 드려요.”

동효우는 아버지 말을 고분고분 듣는 착한 아이가 아니었고, 그에 아버지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자 어머니가 나서서 말렸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발은 아직 부어 있니?”

“이상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팅팅 부었더니, 지금은 괜찮아요.”

“잘 낫고 있다는 증거야.”

여원이 아이처럼 웃으면서 동효우의 상처를 이리저리 살폈다.

“저기, 능 선생님은요? 오늘 안 오세요?”

“응. 안 오셔.”

여원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동효우와 가곡교 모두 실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미친 듯이 메시지를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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