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부원 체육관이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본인의 안식처인 테라스 의자에 길게 누워 흡족한 듯 핸드폰을 꺼냈다. 요즘에 환자가 점점 더 몰려드는 바람에 일하는 시간이 늘어 쉴 시간이 줄어들었다.
위챗을 열어보니 새로운 메시지로 빨간 숫자가 가득했고, 능연은 되는 대로 답장했지만 바로 답장이 와도 더는 답을 주지 않았다. 엄격한 그의 규칙이었다. 웬만하면 용건 없는 대화는 하루에 답장 한 번이면 충분했다.
체력과 시간은 한계가 있는데,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고서야 위챗으로 연락 오는 모든 사람에게 사근사근하게 굴 수는 없었다. 하루 종일 일도 안 하고 밤새 답장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환자들과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환자 중에 유위신이 가장 적극적이었고.
‘착한 어른이’를 클릭했더니 유위신이 몇 시간마다 한 번씩 보낸 메시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 착한 어른이: 발이 왜 이렇게 간지럽죠?
- 착한 어른이: 아, 벌레한테 물린 거였나 봐요.
- 착한 어른이: 엄청 뻘건데? 모기는 아닌가 봐요.
- 착한 어른이: 오늘은 40분 동안 몸풀기를 했습니다. 뛸 때는 괜찮은데, 시간 낭비인 것도 같고?
- 착한 어른이: 능 선생님, 엄마가 감기 걸린 거 같다는데, 아스피린이 안 듣는대요.
30분 전에 보낸 메시지임을 확인한 능연은 ‘드시지 마세요’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 착한 어른이: 의사 소개 좀 해주세요.
유위신의 칼답장에 능연은 입을 삐죽이며 오늘 유위신의 회진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멍멍.
금색 래브라도가 갑자기 뒤쪽에서 허리를 숙이고 뛰쳐나와서 속도를 올려 능연에게 달려들었다. 네 발로 착지한 래브라도는 매끄러운 바닥에 미끄러지듯이 스윽 멋지게 움직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 채 순조롭게 능연의 품에 안착했다.
멀리서 숨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경 진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이스!
“밤톨이?”
래브라도의 이름을 부른 능연이 바로 녀석을 끌어안았고, 녀석은 멍멍 짖으며 쉴 새 없이 능연의 냄새를 맡았다.
“능 선생님, 죄송해요. 풀어주자마자 이쪽으로 달려왔네요, 녀석이.”
몸에 딱 붙는 제복을 입어 몸매를 드러낸 진민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밤톨이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며 조금 전 지령을 다시 분석했다.
“선생님, 뭐 하고 계셨어요?”
“메시지에 답장 좀 하고 있었습니다.”
“답장이요?”
예민한 경찰의 촉이 바로 발동하는 진민의 모습에 영리한 래브라도가 명령이라도 들은 듯 능연의 핸드폰을 물어 진민에게 건넸다. 진민이 ‘착한 어른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삐용삐용 사이렌이 돌아갔다.
‘착한 어른이’가 맨 위에 있다는 건 능 선생이 조금 전 대화했다는 뜻이었다. 핸드폰이 뜨겁다는 건 한참 동안 대화가 이어졌다는 뜻이고. 아까 능 선생의 뒷모습이 사뭇 진지했다는 건 이 대화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겠냐?
진민은 온몸으로 ‘논리적 발상’이라는 기운을 뿜어냈다.
대체 누구야? 어느 X이 이런 이름으로 해놓은 거야?
성격이 착하다는 걸 티 내고 싶은 거니? 부드러운 노선이라 이거야?
아니면, 조숙한 철부지 아이?
설마, 어떤 면에서 아주 순종적이라는 걸 암시하는 건 아니겠지? 너무 하잖아! 이 X 머릿속에 뭐가 있는 거야!
설마, 능 선생님 보라고 이런 이름으로 해놓은 건 아니겠지?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지만 진민은 겉으로는 생긋 웃으며 핸드폰을 능연에게 돌려주었다.
“죄송해요. 얘가 요즘 상태가 안 좋은지, 자꾸 흥분하네요.”
밤톨이는 다시 한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민을 바라봤다. 능연이 팔을 뻗길 기다렸던 진민은 앞으로 손을 더 내밀면서 전광석화와 같은 사이에 두 사람의 은밀한 접촉 기회를 창조해냈다.
오랜 시간 트레이닝한 결과.
막강한 눈과 손의 콜라보레이션.
무수한 탐색 임무를 수행하면서 키워낸 담력.
세상에 쓸모없는 훈련, 능력과 직업은 없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타닥타닥.
안정적이고 힘 있는, 땅 밟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수에 두 번 넘어갈 진민이 아니었다. 그는 민첩하게 몸을 돌리며 손을 놓았고, 순식간에 자신과 능연 사이를 파고든 실루엣을 보았다.
그건······. 뭐야, 이 커다랗고 조악한 얼굴.
“곽 주임님?”
능연이 화들짝 놀라 고함쳤다. 정말로 놀랐다. 곽종군이 상해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었으니까.
곽종군은 우선 진민의 경찰복을 확인한 후, 허리춤에 대고 있던 팔을 내렸다. 그는 동물원에서 할 일 없이 먹고 자고, 자고 먹는 늙은 호랑이처럼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회의 때문에 왔다가, 자네 얼굴 보려고 들렀네.”
“아.”
능연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들이 타지에 나타날 가장 타당성 있는 이유가 바로 출장 수술 아니면 회의 참석이었다. 종종 같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의 위치가 되면 갑자기 부탁받고 급하게 움직이는 일도 흔하다. 거절할 수 없는 회의라든가.
“무슨 회의요?”
지나가는 말로 묻는 능연의 말에 곽종군은 멈칫하더니 작은 메모용 노트를 꺼냈다.
“골반강 해부학과 산부인과 도전 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