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96화 (177/877)

“능연, 잠시만!”

수술 구역 작은 식당에서 능연을 본 기천록이 다급하게 그를 잡고 초조하게 바라봤다.

“너 괜찮냐? 밤 꼬박 새웠다며?”

“좋아요. 네.”

능연은 기천록의 질문에 모두 대답하고는 바로 숫자를 외쳤다.

“1, 1, 2, 3, 5, 8, 13, 21, 3, 4, 55······.”

“피, 피보나치 수열?”

“네.”

능연은 대답하면서 양팔을 벌려 직선을 걸어 보였다. 멍하니 그런 능연을 바라보던 기천록은, 처음에 볼 때까지만 해도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능연의 얼굴까지 같이 보니, 엄청나게 귀여웠다.

“계속 수술할 거냐?”

기천록은 실랑이를 멈추고 맞은편에 주저앉았다. 피보나치 수열도 읊는 사람한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여기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이고, 연구 센터인 만큼 의사도 환자도 적어서 그렇지, 다른 병원이었으면 주임 의사는 의사 골수까지 쪽쪽 빨아 먹고 다음 의사를 부릴 것이다. 중국에서는 고속버스 기사는 피곤하면 교대할지 말지 선택이라도 있지, 외과의는 그런 선택도 없었다.

“밤까지 해보고 그때 생각하려고요. 밤엔 환자가 없을 거 같아서.”

능연은 요우타오를 조금 먹고서 대답했다.

“어? 네가 못 움직일까 봐 문제지, 환자가 없을 리 없다니까.”

능연은 못 믿겠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환자가 요우타오도 아니고, 없으면 없는 거지, 어디서 만들어 온단 말인가. 그러나 기천록은 자부심에 넘쳐 턱을 치켜들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막 국제회의를 진행한 다음이어서 주소록에 전화번호가 수백 개는 늘었다. 하나하나 걸다 보면 환자 모으는 게 무슨 대수일까.

임상 의학 연구 센터 일원인 기천록은 해외에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같은 케이스를 3천 번 수집한 적도 있었다. 중국 의사가 인구 많은 장점도 발휘 못 해서야, 무슨 임상 연구를 한다고 나서겠느냔 말이다.

그런 우여곡절은 모르지만, 능연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만 충분하면 그만이지, 그밖에 잡다한 일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너 학교 다닐 때 수학 좋아했구나.”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죠.”

“그게 무슨 소리야?”

“12살에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나가서 운화 시 2등 했어요. 1등은 창서성 2등이고요. 그래서 포기했죠.”

앞부분을 듣고 입을 쩍 벌리던 기천록은 뒷부분은 더욱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왜? 왜 포기해? 그렇게 대단한데.”

“안 대단하니까 포기했죠. 하아, 2등이 수학을 좋아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아까워라. 내 아들이 올림피아드 2등 했다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밀어줬을 텐데.”

“그것도 소용없어요.”

능연이 기천록의 환상을 깨부쉈다.

“아니, 12살이었다며? 12살이면 아직 발전 가능성이······.”

“테렌스 타오는 12살에 국제 올림피아드 금메달이었고, 11살에 은메달, 10살에 동메달······.”

능연이 손가락으로 꼽으며 말을 이었다.

“수학은 1등이 아니면 계속할 의미가 없어요.”

“아니, 왜 테렌스 타오랑 비교를······ 해.”

“의사로 살 거면 비교 안 해도 되지만, 수학을 할 거면 비교해야죠.”

요우타오를 깔끔히 먹어치운 능연은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

“10,000등 의사라도 사람을 구할 수 있지만, 2등짜리 수학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요.”

“그, 그래. 일리가 있는 것도 같다.”

듣다 듣다 멍해진 기천록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능연은 웃으면서 남은 발효 두부도 먹어치웠다. 능연이 일어나려고 하자 기천록도 다급하게 따라 일어났다.

“잠시만!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아직이요?”

“아까는 밑밥이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 너 수학 잘하니까 네가 직접 계산해 봐. 정말 침대 다 쓸 수 있겠냐? 어차피 못하는 거, 그냥 우리 센터에 남아서······.”

“왜 다 못 써요?”

“너 요즘 하루에 수술 10건 하지? 밤에 추가로 한대도 평균 15, 16······.”

거기까지 계산한 기천록은 혀를 내둘렀다. 관절경과 일반 아킬레스건 수술 위주라고 해도 하루에 15건이라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의사 하나가 관절경 수술을 대여섯 건 하는 게 정상적인데, 능연은 곱절을 넘기고 그것도 모자라 며칠이나 연달아 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같은 임상 연구 병원뿐만 아니라 속도를 추구하는 삼갑 병원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이얼 안과 같은 환자도 있고 실력도 있는 사립 병원이나 그 정도 비슷하게 할까.

기천록은 세차게 머리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하루에 16건 평균적으로 한다고 해도 환자가 2주 후에 퇴원하지? 그럼 계산해 봐. 16 곱하기 14, 내가 침대 225개만 준비하면 로테이션 돌릴 수 있지? 우리 내기는 내가 이겼어.”

기천록은 결국 마지막 말을 하려고 지금까지 떠들어댄 것이었다. 그는 내기를 빨리 끝내고 싶었고, 그 김에 자랑도 좀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굴리는 것이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의학 센터는 의사에게 수술비를 25%만 지급해서 운화 병원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수술하면서 높은 수익을 내는데 막상 본인이 가져가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병원 규정이긴 해도, 기천록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능연은 담담하게 기천록을 바라봤다.

“제가 16건만 하겠어요?”

“날 믿어, 그게 한계야.”

“매일 22시간 하고 평균 30분 만에 수술하면 44건 할 수 있죠.”

능연이 간단하게 계산해내자 기천록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응, 그래 이론상은 그렇지. 근데, 안 자냐?”

“서너 건 하면 10분씩 쉽니다.”

“그게 말이 돼?!”

“흠, 제 상황이, 아무튼 조금 특수합니다.”

능연의 대답에 기천록은 하, 하, 하 웃어 보였다.

“네 말대로라면 내가 어렵게, 고생, 고생, 말도 안 되게 100개 추가해도 닷새밖에 안 된다는 거네?”

“100장 추가하셨어요??”

능연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고, 대화는 거기서 종료됐다.

아침 식사를 마친 능연은 수술실로 돌아가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기천록은 묘하게 언짢기도 하고, 능연을 따라 수술실에 들어가기도 좀 그래서 참관실에서 보기로 했다.

잠시 후, 깔끔하게 수술복을 챙겨 입은 능연이 수술실에 나타났다.

“슬관절경? 전신? 반신?”

수술실 상황을 보던 기천록이 묻자 참관실에 있던 레지던트가 나지막이 반신이라고 대답했다.

“하하하, 반신 좋아! 반신 환자들한테 시달려 보라지.”

기천록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 의사 양반 되게 젊네.”

수술대에 누운 아주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정식 채용 의사야?”

“아닙니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돌발 질문을 던졌고, 능연은 대답했다.

“집은?”

“없습니다.”

“차는?”

“없습니다.”

“돈도 집도 차도 없어?”

아주머니는 수술도 잊은 듯 능연을 위아래로 살펴보다가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집 없고 차 없으면 어때. 사람이 제일 중요하지. 능 선생님, 어떤 사람이 좋아?”

능연은 지혈대를 우선 환자의 대퇴부에 처리한 다음에야 질문에 대답했다.

“지금은, 다리 부러진 사람이요?”

반신 마취된 아주머니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능연은 정규적인 방법으로 관절경 진입로를 찾아 관절경을 슬관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관절경은 겉으로 보기에 조금 얇은 긴 철 막대 같이 생겼다. 얇은 철 막대 끝에 렌즈가 달렸고, 골관절 내부 영상을 전송해서 수술대 위 모니터로 송출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FBI들이 긴 금속을 안에 밀어 넣고 밖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방 안의 상황을 확인하는 장면처럼 관절경도 그런 이론이었다. 단지 FBI는 큰 방을 살피고, 의사들은 작은 방을 살핀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능연은 FBI처럼 모니터를 바라보며 반월판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 과정을 ‘탐사’라고 한다.

“MRI 판독 거의 끝났습니다. 이제 시작할까요?”

치료가 아닌 검사가 목적이라면 의사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며, 이것도 수술 한 번으로 친다. 그러나 이번은 반월판 성형술이므로 능연은 수술 시작을 선언했다.

능연은 곧 능숙하게 2.0mm 유도 침을 찔러넣은 후 4.0mm 드릴을 꺼냈다.

수술대 위의 아주머니는 문득 두려워졌다. 아까 능연이 ‘다리 부러진’ 어쩌고 했을 때보다 훨씬.

“능 선생님, 형제자매는 없어?”

“없습니다.”

“아이고, 그건 플러스네. 뭐,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내가 아는 아가씨 중에도 외동딸 있는데 집 문제는······ 에이 뭐, 그래도 선생님 정도면 집 문제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겠어. 그렇지? 호호호. 의사잖아, 게다가 유위신 수술도 했다면서? 그럼 금방 집 사겠지.”

“모르겠습니다.”

능연은 여전히 모니터를 주시했다.

“아직 어려서 제대로 된 집은 못 사겠지, 뭐. 집에서 사줄 형편도 안 돼?”

“모르겠습니다.”

“상해가 고향 아니지? 아, 맞다. 처음에 의사가 그랬지. 운화 사람이라고. 운화에서 여기로 취직한 거야? 사실 그렇지 뭐, 이 아줌마 믿어, 여기서 잘만 하면 집 있는 아가씨도 충분히 만날 수 있어. 내가 아는 아가씨들 다 조건이 괜찮아. 예쁘고. 맞네, 여자 친구 있어?”

능연은 이러다 수술을 제대로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관절경은 개방성 수술과 비교하면 정교함이 필요한 수술인데 이런 식으로 수다를 떨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슬쩍 마취의에게 눈치를 줬고, 마취의는 바로 알아차리고 진정제를 투여했다.

아주머니는 마취제의 영향으로 몽롱하게 눈을 끔뻑이면서도 말을 이었다.

“우리 친척 아이도 있는데, 정말 예뻐. 나이가 좀 많아서 그렇지. 94년생이거든. 근데 은행 다닌다? 집에서 천만 위안짜리 적금도 들어놔서 사실 일도 안 해도 돼. 그만두고 살림만 해도 되거든······.”

“약 추가해줘요.”

마취의가 진정제를 추가했다. 아주머니는 눈빛은 가물가물하면서도, 입 근육은 기억 형상이라도 한 듯 여전히 뻐끔거렸다.

“그리고 내 동생도 있어. 조카가 둘인데, 큰 조카는 외국으로 시집갔고, 작은 조카는 영국에서 학교를 나왔어. 그래서 죽기 살기로 불러들여서, 지금 대학교수야. 어찌나 예쁜지. 그리고 벌써 방 세 개짜리 큰 집도 샀잖아. 그리고 작은 아파트도 한 채 있고.”

능연이 다시 한번 마취의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나 마취의는 이번엔 능연의 지시를 듣지 않고 아주머니 귓가에 속삭였다.

“어르신, 핸드폰 번호 알려 주실 수 있으세요? 아니면 다른 연락 방법이라도······.”

“왜요?”

아주머니는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쓰며 몽롱한 듯 물었다.

“저도 아직 결혼 안 했거든요.”

마취의가 겸연쩍은 듯 웃어 보였다.

“저는 상해 사람입니다. 직장도 있고요. 저는 집도 있고요, 이번에 가게 자리도 하나 샀습니다. 차도 있고······.”

“안 돼요, 선생님은.”

“왜요? 어르신, 제가 허구한 날 병원에 붙어 있어서 그렇지, 하루 8시간, 주 5일 일했으면 10년 전에 결혼했을 거라고요!”

“아······.”

짧은 대꾸와 함께 아주머니의 목이 휙 꺾이더니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마취의는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불퉁하게 입을 열었다.

“어르신, 진짜 잘 견디시네요. 온몸에 파이프를 꽂고 자는 척이라니. 마취의를 뭐로 보시는 겁니까. 진정제는 코를 안 골아요.”

그러자 코 고는 소리가 뚝 멈췄다. 다시 모니터를 확인한 마취의가 한숨을 내쉬면서 능연을 바라봤다.

“진짜 잠들었어.”

현장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제야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참 어렵다, 어려워. 마취의가 약뿐 아니라 소통도 해야 하냐.”

수술실뿐만 아니라 참관실에도 웃는 소리가 가득했고, 레지던트와 젊은 주치의는 웃다가 눈물을 다 흘릴 지경이었다.

“2호 봉합사.”

능연은 그제야 두 눈을 반짝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제일 좋았다. 수업할 땐 수업에 집중해야지, 누가 쪽지를 보내온다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예의라고 생각해서 답장한 적도 있지만, 그랬더니 쪽지가 한도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선생님도 그를 좋아해서 이해해 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혼났을지 모른다!

같은 이치로 체육 시간에 달리기할 땐 집중해서 열심히 달리고, 공을 찰 땐 집중해서 공을 차야지, 여학생이 고백한다고 멈추면 안 된다. 시험 칠 때도, 밥 먹을 때도, 집중은 기본이었다.

의대에 들어가고 병원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능연은 지금 오로지 수술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왔고.

“수처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수직 매트리스 봉합을 시작했다. 수직 매트리스 봉합(전문가급)은 꽤 오래전에 획득했지만, 쓸 기회가 별로 없었다. 느슨해진 피부에 적합한 이 봉합법을 써 보기 위해 응급실에서 일주일 대기한 적도 있지만 한 건을 마주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기술의 묘미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발휘할 날이 온다는 것에 있다. 아주 적은 기회일지 몰라도, 어쨌든 기회는 온다.

관절경 봉합 시, 수직 매트리스 봉합은 일반 단속 봉합보다 효과가 좋다.

20분 후, 능연은 어시의 도움도 없이 관절경 수술을 마무리했다.

“환자 내보내고, 다음 수술 준비하죠.”

능연은 문제없는지 다시 검사하고 기구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잡일을 안 해도 된다는 것, 인정받는 느낌, 그게 집도의로서의 재미였다.

참관실에서 수술을 보는 동안 할 말이 가득 쌓였던 기천록도 재빨리 참관실에서 나왔다.

“관절경 언제 그렇게 능숙해졌냐?”

직접 본 게 아니라면 못 믿을 정도였다.

능연은 조금 머쓱한 듯 입을 열었다.

“요즘 시간을 다 아킬레스건 보건술에 썼거든요.”

기천록은 능연을 잠시 바라보다가 휙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는 지금 확실히 깨달았다. 능연 같은 젊고 능력 있는 천재 의사에게 말은 필요 없으며, 오로지 사실, 예를 들면 침대 2, 300개 같은 확실한 사실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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