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02화 (183/877)

“4지 절단이래.”

“손가락이 네 개나 끊어지다니.”

“게다가 사선이라잖아. 교과서에 나올 만한 케이스네.”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호기심이 넘치는 표정으로 환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다지 절단 환자를 만날 확률은 지극히 낮아서 조개를 줍다가 진주를 찾을 확률만큼 어렵다. 이런저런 케이스를 많이 접해 온 대형 종합 병원 의사라고 해도 4지 절단 환자는 직접 수술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능연은 이전에 몇 번 했었고, 8지 절단 소녀의 수술에도 참여한 적 있었다.

“손가락 네 개짜리를 만나다니. 운이 좋네. 주임님이 통화하는 걸 들은 게 아니라면 칼부림이라도 난 줄 알았을 거야.”

팔짱을 낀 조낙의가 수술실을 어슬렁거리며 환자와 능연을 번갈아 봤다. 능연의 명성은 의사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환자 사이에 더 널리 퍼져 있었다. 스타 선수 수술했다는 홍보의 힘으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환자들까지 운화로 달려왔고, 친척 친구에게 청탁하는 사람들도 널려 있었다.

조낙의가 분위기를 풀려고 수술실 농담을 던졌다.

“이야, 기계라서 이 각도가 가능하지. 이건 논문에 나올 만한 각도야. 다들 보라고.”

조낙의는 몸까지 비틀어가며 시범을 보였다.

“케이스 개요는 한 편 쓸 수 있을 거예요. 사진도 찍어 뒀습니다.”

여원은 전보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알아서 앞으로 나왔다. 능연의 어시가 된 후, 논문을 세 편이나 썼다. 일반 수준의 논문이었지만, 병원에 있는 부주임 혹은 주임 의사라고 그것보다 훨씬 잘 쓰는 수준은 아니라서 대단한 축에 든다고 할 만한 내용이었다.

다른 의사들은 오랜 시간 경험을 녹여내야 가능한 일인데, 여원은 능연을 따라다니면서 폭발하는 수많은 병례를 다듬어서 쓴 것이니 괜찮은 논문을 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일반 의사들은 기관경, 기관 절개 혹은 절제술 같은 작은 수술을 제외하고 일 년에 같은 수술을 몇 번 못 한다. 진료과의 전폭적인 지지 혹은 넘치는 환자 없이는 일반 의사는 같은 수술은 100번이 거의 최대치였다. 그러다 보니 논문 쓸 만큼 케이스를 모으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능연은 한 달에 두 편 논문 쓸 소재를 모을 수 있으니까, 마음이 가벼웠다. 쓸 시간이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현재 임상 의학 시스템은 수술하는 의사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실제로 논문 쓴 사람이 저자로 들어가기만 해도 상하 관계가 원만하다고 볼 수 있었다.

조낙의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여원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당나귀를 끄는 농부가 다른 집 황소를 보는, 뜨겁지만 과하지 않고, 탐욕스럽지만 지나치지 않은 눈빛이었다.

주치의인 조낙의는 평소에 실습‘견’을 부려 약 처방을 내리고, 차트를 쓰고, 도시락 심부름을 보내지만, 논문은 시키고 싶어도 당사자가 쓸 능력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다.

다른 팀 주치의로서는 여원을 가끔 불러다 잡심부름이나 좀 시킬 수 있을까, 논문처럼 어려운 일을 시킬 수는 없었다. 농사일에 옆집 대부호의 토실토실한 짐승을 가끔 빌려다 쓸 수 있어도 허구한 날 부려 먹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직접 기르기엔, 조낙의 같은 주치의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든 알아서 대충 넘어갈 만한 수준의 논문을 쓰고 적당한 수준의 수술을 하다가 나중에 부주임이 되어야 레지던트에게 논문 쓰는 일을 시킬 수 있게 된다.

눈앞에 4지 단지 케이스는 모든 주치의에게 유혹적인 논문 소재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주치의들은 겸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다투지도, 뺏으려 들지도 않았다. 단지 이식 수술을 할 줄 몰랐으니, 4지 단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능연은 환자를 두 바퀴 맴돌면서 MRI, X-ray를 판독했다.

“수부 외과 선생님 좀 모셔 와야겠어요. 왕해양 주임님 계신지 보고, 계시면 같이 수술하자고 요청하세요.”

마연린이 재빨리 대답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다지 절단 수술은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야 하므로 여러 사람이 봉합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렇다고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다른 진료과 사람을 불러오는 것도 참 체면 생각 안 해주는 행동이었다.

능연은 시간 낭비하지 않고 X-ray 사진을 꺼내면서 연문빈을 불렀다.

“오른손 3, 5 포인트에 골절 있습니다. 절단면도 울퉁불퉁하고요. 이따 처리할 때 주의해서 고정하세요.”

그새 더 튼실해진 연문빈은 수술복 밖으로 드러난 근육을 뽐내며 싱글벙글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이 없던 동안 연문빈의 작업량은 점점 줄어들어 일상적인 근무가 끝나면 족발을 조리거나 운동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헬스에 도움을 주기 위해 새로운 쇠고기와 닭가슴살 저염 조림 방식도 개발했다. 저염 조림 방식이란 소금과 간장을 줄여서 묵은 재탕 국물 없이 조리지만, 다른 조미료를 첨가하기에 일반 삶은 계란보다는 칼로리가 높아도 건강에 해로운 수준은 아니었다.

연문빈 본인도 헬스를 열심히 하기도 해서, 새로 개발한 음식도 나름 잘 팔렸다. 아무튼 중요한 건, 연문빈은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해서 능연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능연이 돌아왔다.

“응, 문제없어. 위치가 좀 그렇지만, 응, 문제없어. 암, 문제없지. 없고말고.”

흥분한 연문빈은 말까지 많아졌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X-ray를 들여다보며 설명을 몇 마디 더 덧붙였다. 막 터득한 그랜드마스터급 판독 능력을 그렇게 쓰다니, 재능 낭비라는 감도 없잖아 있었다. 연문빈 같은 급 의사는 전문가급 수준으로도 녹다운시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다른 주치의들도 전문가급에서 중급에 불과했다. 응급 의학과 의사라서 해가 갈수록 판독량이 늘긴 했지만, 어려운 판독이 필요한 건 아니라 디테일한 파악은 여전히 부족했다.

능연도 설명할 의지가 강한 건 아니었고 눈앞 환자의 상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싶을 뿐이었다. 자주 하는 두 손가락, 세 손가락에 비해 네 손가락의 부담은 훨씬 크니 말이다.

잠시 후, 왕해양이 수술실로 들어왔다.

“4지?”

“게다가 사선입니다.”

왕해양은 마스크를 쓰기 전에 입술을 핥으며 물었고, 능연은 대답하면서 사진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

“어떻게 나눌까?”

판독 능력이 있는 편인 왕해양은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제가 검지, 선생님이 약지 해주십시오.”

“새끼손가락은 자네가 할 셈이군!”

왕해양은 새끼손가락을 힐끔 보더니 하라고 해도 안 할 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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