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식당에서 스무 살 자메이카 단거리 선수 네스타가 멍하니 눈앞의 중국 의사 둘, 그리고 담당의 비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능연, 주 선생과 비니는 마라 소꼬치, 매운 소고기를 우걱우걱 씹고 있었다. 불에 구워진 후 메일라드 반응(maillard reaction: 갈변현상)을 일으킨 향기가 네스타의 코를 찔렀다.
네스타 앞엔 3년 내내 먹은 영양식이 놓여 있었다
“내일 수술하는데 다른 것 좀 먹으면 안 돼요?”
네스타는 침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비니가 다정하게 웃으면서 그를 바라봤다.
“매니저가 안 된대. 이상한 거 먹이지 말라더라.”
“소고기가 왜요? 어디가 이상한데? 킹스턴(자메이카 수도)에서도 소고기 자주 먹는데요. 그냥 몇 조각이면 돼요. 밥에 섞어도 되고.”
“소고기는 이상할 거 없지. 그런데 여긴 향신료가 많이 들어갔잖니. 이거 봐, 고추에 정향, 후추, 계피도 있어.”
“저 계피 진짜 좋아해요!”
“응, 나도.”
네스타는 침이 고인 표정으로 간절하게 말했지만 비니는 동의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노련하게 마라 소고기를 집어 들고 향신료 소스에 찍어 소고기 풍미와 식감을 즐겼다. 그러곤 이번엔 맥주잔을 들어 능연과 건배한 다음 단숨에 반 이상 비우고서 기분 좋은 듯 입맛을 다셨다.
주 선생은 잔을 내밀어 허공에 부딪히고는 슬그머니 거둔 후 혼혈 미녀 비니를 바라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오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왜? 내가 구운 고기가 맛없어서? 아니면 우리 집 맥주가 별로야?”
직접 접시를 들고 온 소 사장이 툭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주문하신 힘줄 구이 나왔습니다!”
“오, 아킬레스건이구나!”
혼혈 미녀 비니 선생이 곁에 있는 젊은 선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네스타, 이것 보렴. 이게 소 아킬레스건이야. 섬유 조직이 네 것보다 더 건실하지? 그래도 끊어질 수 있어. 그러니까, 네 아킬레스건이 파열된 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닥터 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제 긴장이 풀리진 않아요.”
“긴장 풀라고 한 소리 아닌데? 내 말은 아킬레스건 좀 먹으란 말이야. 난 못 본 거로 할게. 중국 의학 이론을 따르면,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가 아킬레스건을 먹으면 좋다던데. 맞죠?”
비니가 능연을 향해 눈을 찡긋했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무시했다. 네스타는 끽소리 않고 힘줄 구이 꼬치를 한 입 베어 물더니 바로 얼어붙었다.
맑은 눈물이 눈가를 따라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이고, 영양식만 먹느라고 맛있는 걸 너무 못 먹었구나.”
“매워요.”
“그럼 먹지 마.”
주 선생이 웃으며 하는 말에 네스타가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먹을 수 있어요. 근데 이거 어떻게 만든 거죠? 아킬레스건은 딱딱하잖아요.”
“먼저 삶은 다음 구우면 돼.”
주 선생이 힘줄 구이를 집어 들고 전문적인 모습으로 설명했다.
“소 힘줄을 반쯤 익히면 안은 아직 피가 보이거든? 그때 꺼내서 약불에 겉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구우면 알맞게 익는단다. 소가 식당 특징이야.”
네스타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맛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꼬치 2개를 먹고 알아서 자제하며 멈췄다.
“안 먹어?”
“됐어요. 이제 영양 식단으로 배 채우면 돼요.”
뻔히 알면서 묻는 비니의 말에 네스타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 나중에 수술 끝나고 또 먹으면 되지.”
비니는 스무 살짜리 운동선수가 대단해 보였다. 전도유망한 단거리 선수인 네스타는 자메이카에서 꽤 풍족하게 생활했다. 물론 음식은 제외하고. 단거리 왕국인 자메이카는 빈터만 있으면 누군가 달리기 연습을 한다고 할 정도라, 그런 나라에서 성적을 내려면 당연히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필요했다. 그리고 운도.
네스타는 노력도 하고 재능도 있는데 운이 안 좋은 청년이었다. 이제 막 돈을 좀 벌기 시작했는데, 연습하다가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다. 단거리 선수에게 아킬레스건 파열은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미국 의사도 수술 성공을 확실하게 장담하지 못했다.
게다가 비싸고.
여기저기 자문을 구한 끝에 네스타는 중국에서 수술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유위신도 있고, 의사도 추천했지만, 그래도 환자 본인은 큰 기대 없이 선택한 여정이었다. 그렇지만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 하지는 않았다.
“힘줄구이, 기억해 둘게요. 은퇴하면 먹으러 올 겁니다.”
말을 마친 네스타는 스스로 휠체어를 굴려 식탁에서 멀어졌다. 비니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스타가 멀어진 다음 능연에게 말을 걸었다.
“능 선생님, 네스타를 최대한 고쳐주세요.”
“그럴 겁니다.”
“자신 있는 거죠? 그렇죠?”
묵묵히 고기를 씹으며 대답하는 능연의 모습에 비니가 다시 한번 물었다. 이제 수술이 눈앞에 닥치니, 중국까지 네스타를 데리고 온 비니는 새삼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능연은 별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예전에 눈물 많은 남아공 선수가 있었는데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네스타랑 상태가 비슷했어요. 그러니 잘될 겁니다.”
“눈물 많은 게 수술이랑 무슨 상관있다고?”
주 선생이 궁금한 듯 묻자,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수술실 분위기가 촉촉하니까요?”
네스타는 식당 안을 한 바퀴 돌더니 별로 할 게 없자 다시 돌아왔다.
그사이 사람들은 매운 소고기를 다 먹고 매운 닭 날개, 매운 오징어구이를 거쳐 매운 토마토 구이, 매운 두부까지 먹어 치웠다.
온갖 매콤한 요리에 미친 듯이 침이 나왔지만, 네스타는 억지로 참았다.
능연은 네스타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유심히 바라봤다. 지난번 남아공 선수는 눈물이 많을 뿐 아니라 보물 상자를 우수수 쏟아냈다.
네스타는 남아공 선수처럼 눈물이 많진 않지만, 사전에 보물 상자 한 개 정도는 뱉을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능연은 깊은 생각에 빠진 눈빛으로 네스타를 봤고, 네스타는 어리둥절해서 능연을 봤다.
팍.
응? 딩이 아니고?
능연이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목에 단렌즈 카메라를 건 남자 하나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카메라 렌즈를 보호하기 위해 팔꿈치로 착지하면서 위치가 잘못된 걸 발견하고 바로 다른 손으로 렌즈를 감쌌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이쿠, 제타 하나 날아갔네.”
주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능연은 손 씻으러 주방으로 들어갔고 소 사장은 느긋하게 약상자를 들고 나오면서 직원에게 지시했다.
“저쪽 자리 좀 치우고, 들것 좀 가지고 와. 창고에 있는 거 말이야. 저기 둘이 가서 등 좀 가지고 와. 여기에 등 설치하면 무영등 효과 날 거야. 아, 막을 것도 좀 가지고 와서 여기 둘러서 막아 버려.”
손을 씻고 나온 능연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수준의 수술실을 발견했다. 수술대가 조금 허름하고, 무영등이 조금 허름하고, 수술실이 조금 허름하고, 약품과 의료 기기가 조금 허름하고, 위생 환경이 부족한 거 외에, 정말로 그럴싸한 간이 수술실이 되었다.
능연과 주 선생이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병원만 설비 업그레이드하냐? 우리 식당도 할 수 있다고.”
소 사장이 뿌듯한 듯 하는 말에 주 선생은 눈을 흘겼다.
“다른 식당은 바비큐 장비나 주방 설비를 업그레이드할걸요?”
“그런가? 우리 주방 설비는 충분해.”
“그래서 의료 설비 업그레이드하신 거예요?”
주 선생은 소 사장의 사고 논리를 의심하며 고개를 저었다.
“중국은 식당이랑 병원이랑 같이 영업해요?”
중국어를 모르는 네스타는 비니에게 슬쩍 물었다.
“그, 글쎄? 풍습인가? 잠깐만, 검색해 볼게. 인터넷이 잘 안 되네. 중국 인터넷 빠르다며······. 잠깐만.”
“저기, 저 어깨가 안 움직입니다.”
간이 수술대 위에서 사진가 고함쳤다.
“네네. 갑니다.”
주 선생이 소 사장의 약상자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는 사진사의 몸을 돌렸다.
“여기엔 왜 온 겁니까?”
“그······ 능연 씨 사진 찍으러······.”
“능연 사진? 왜요?”
“독자가 원하니까요. 신문, 잡지 판매량만 늘면 됐지, 왜가 어디 쓰읍······. 살살해요, 살살”
사진사가 이를 악물었다.
“왜인지 모르겠어요?”
주 선생은 고개를 들어 능연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 눈부셔.
“그러니까, 파파라치네요?”
“파파······, 그냥 사진 찍으러 온 거예요. 망할, 번 돈 다 카메라에 써야겠네.”
“어때? 수술해야 해? 소독할 거도 다 준비했는데.”
소 사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하긴 하는데, 여기서 안 해도 돼요. 구급차 불러서 병원으로 가죠. 뼈 하나 부러진 거뿐이에요.”
“뿐?”
주 선생이 응급실 주치의로서 내린 판단에 사진사는 꽥 고함쳤다.
“진통제 놓아요?”
주 선생은 입을 삐쭉이다가 소 사장의 약통을 힐끔 보고서 말했다. 그러자 사진사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멀쩡하게 걷다가 쿵 하고 쓰러졌는데도 별일 없네. 운이 좋았어.”
“별일 없다니요!”
아쉬워 보이는 소 사장의 말에 사진사가 울컥했다. 그러자 소 사장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피식 웃고는 옷을 올려 온몸에 가득한 수술 자국을 보여줬다. 그러고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단축 번호를 눌렀다.
“소가 식당입니다. 구급차 보내주세요. 남자 환자, 40대. 넘어져서 다쳤어요. 혼자 못 걷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