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하고 산뜻한 새벽 햇살은 처음엔 따듯해도 계속 쬐고 있으면 어느새 추워진다.
좌자전은 다리를 떨면서 햇살이 가장 잘 들어오는 의자에 늙은 거북이처럼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어때요? 능연이랑 수술하는 거 재미있죠?”
어슬렁어슬렁 들어온 주 선생이 족발을 하나 사면 주는 우유까지 챙겨서 좌자전 앞에 앉았다.
“그럭저럭요. 이제 수술합니까?”
“저요? 아니요, 좀 쉬러 왔죠.”
지기 싫어서 그렇게 대답한 좌자전은 싱긋 웃는 주 선생의 모습에 얼굴이 굳었다.
수술실에 쉬러 왔다고? 또 수술광이야?
“능연은요?”
“아직 수술 중입니다.”
좌자전은 묘하게 창피했다. 윗사람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윗사람이 일하는 사이 쉬다니 말이다. 그러나 주 선생은 당연하게 여겼다.
“끝까지 못 했죠? 그래서 몇 개 했습니까?”
“세 개요. 오늘 아침에 네 개라던데요.”
“그래서요?”
“능 선생이, 내 체력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좌자전이 한숨을 내쉬었다. 체력이 떨어진 건 맞는데, 맞지만! 그런 방법으로 수술실에서 나오는 건 아무래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흐흐흐, 능연이가 스태미너가 장난이 아니에요. 툭하면 이삼십 시간 연속 수술합니다. 따라 할 생각하지 마세요. 걔도 젊어서 그렇지. 에이.”
좌자전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수술도 제대로 못 해놓고 싫은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저기, 주 선생. 점심은 보통 어떻게 먹어요?”
좌자전은 주 선생이 말이 통한다, 싶어서 내친김에 물었다.
“배달시키거나, 수술실 식당에서 족발 먹거나, 아니면 병원 식당 가죠. 왜요? 밥 사시게요?”
성격은 느슨해도 눈치는 빠른 주 선생이 바로 덧붙였다.
“헛고생 마세요. 뭐, 말리진 않지만요.”
“그······ 밥 사면 안 되나요?”
“안 되고 말고가 아니라, 능연은 뭐 먹고 싶으면 배달시켜요. 평소엔 먹을 것 주는 사람도 많고. 밖에 나가서 먹을 틈이 없어요.”
“병원에서 먹는다고요? 그럼, 술도 안 마시고요?”
“네.”
“흠.”
좌자전은 특기를 발휘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병원 시절 말술이 장점이었는데 말이다. 10분 만에 몽땅 뱉어내긴 했어도, 어쨌든 마시긴 하니까. 아무튼 술 잘 먹는 능력으로 버텼는데······. 난처했다.
주 선생은 껄껄 웃으며 족발을 뜯었다.
상해에 다녀온 후, 연문빈은 족발 만드는 능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은 입에 넣으면 살살 녹으면서도 씹는 맛이 있었다. 조림 국물도 남쪽 요리 방식을 추가해서 단맛을 추가했다. 단맛이 들어가도 족발이 너무 달지는 않고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대단한 방법이었다.
신나게 먹는 주 선생을 바라보며 좌자전은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었다.
“배달이든 병원에서 먹든, 밖에서 먹는 거보다 못할 거 아닙니까.”
주 선생은 웃기만 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좌자전은 역시 자기 방법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병원을 나가 호텔로 가서 바로 매니저를 만나 카드를 내밀었다.
마을 위생 병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이혼할 때 전처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는 것도 감수했다. 마흔 넘어 새 출발 하려는 남자는 공평함이고 뭐고 따질 여유도 없었고, 현실만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신용카드 한도가 그의 마지막 재산이 되었다.
좌자전은 오랜 접대 능력을 발휘해 싸고 맛있고 보기에도 좋은 음식을 골라 정갈한 도시락에 담아 택시를 타고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갔다.
수술실 휴게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곧 능연이 수술 구역 통로에 나타났다. 좌자전은 바로 일어나 쪼르륵 다가갔다.
“고생했어요, 능 선생.”
“네. 오늘은 좀 길어졌네요.”
능연이 배를 문지르자 좌자전은 속으로 ‘나이스’라고 외쳤다.
“능 선생, 수술 끝났으면 밖에 가서 밥 먹을까?”
접대받고 싫어할 사람은 없다고, 좌자전은 능연이 고개만 끄덕이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리라 생각했다.
수술복을 걸친 능연은 어떻게 보면 가장 볼품없는 티셔츠를 걸친 상태였는데, 목에서 빛이 날 정도로 변함없이 멋졌다. 능연은 그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간호사를 향해 웃어주고는 바로 ‘아니요’ 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배달시켜 먹을까?”
좌자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시 물었다.
“제가 시킬게요.”
능연은 좌자전이 뭐라고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구석으로 가 자리 잡고 앉아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직 그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 좌자전은 일단 지켜보자 싶었다.
좀 기다리지 뭐, 이럴 줄 알고 식어도 되는 음식으로 준비했지. 배달 음식이야 뻔할 텐데. 음식 오면 내 도시락을 주면 돼.
20분 후, 캥거루 그림이 그려진 노랗게 도색 된 벤츠 스프린터가 병원으로 들어왔다.
“2등 코스 세트에 당첨됐다네요. 휴게실에 가서 먹죠.”
전화를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능연이 그렇게 말하자, 주 선생, 연문빈과 여원이 머뭇거리지도 않고 따라갔다. 좌자전은 의아해하다가 고분고분 뒤를 따랐다.
“주 선생, 2등 코스 세트라는 게 뭐예요?”
주 선생은 문득 여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일부러 신비로운 척 뜸을 들였다.
“좌 선생님, 그거 알아요? 집 앞에 홍시 나무가 있어요. 선생님 집 앞 나무엔 만날 홍시가 가득 떨어져 있는 거예요. 그럼 어떨 거 같아요? 세상이 원래 그렇구나, 그럴 거 같지 않아요? 남다른 인생관,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 거 같지 않냐고요.”
“응? 갑자기 웬 홍시?”
상상력이 없어진 지 오래된 중년 남자는 도무지 주 선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 선생은 하하 웃다가 ‘됐습니다.’ 하고는 걸음을 서둘러 능연에게 바짝 달라붙어 휴게실로 들어갔다.
“능 선생님!”
노란 셔츠를 입은 배달 기사 사이에 전칠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가슴 쪽에 커다란 캥거루가 쭈그리고 앉은 딱 달라붙는 노란 셔츠를 입고 검은 가죽 반 장갑 사이로 드러난 손가락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 중이에요! 실습인 셈이죠!”
능연이 살짝 미소 짓는 모습에 전칠은 반달 눈이 되어 웃었다. 그러다 뒤에 있던 기사가 툭툭 치자 그제야 제 머리통을 톡톡 쳤다.
“잠시만요! 오늘 2등 코스 세트 준비할게요!”
다른 배달 기사 두 명이 노련하게 노란 모자를 벗고 하얀 요리 모자로 갈아 쓰고는 도마를 꺼냈다. 그 뒤 손바닥만 한 전복을 꺼내고는 그 자리에서 칼집을 내서 삶기 시작했다. 다른 쪽에서는 5kg은 되어 보이는 소 등뼈를 손질하더니 토끼 네 마리가 한 번에 들어갈 만한 큰 웍을 꺼내 기름을 붓고 촤르륵 볶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좌자전은 갑자기 주 선생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관, 가치관이 뒤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우리 호텔만의 특색이 있는 이 치킨 스톡은 씨암탉을 장시간 고아서······.”
긴 모자를 쓴 셰프가 특별히 소개하면서 요리를 진행했다. 소복이 담긴 밥에 치킨 수프를 붓고 요리된 전복을 통째로 올리고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여 전복밥을 완성했다. 옆에 있던 다른 셰프는 등갈비 요리를 접시에 담아 사람들이 먹기 편하게 중간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전칠도 능연 맞은편으로 쪼르르 달려가 앉았다. 여섯 명이 전복밥 6개, 등갈비 큰 접시 하나, 소박한 한 끼라고 할 만했다.
전칠은 젓가락을 들고 조금씩 음식을 맛보며 별 박은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주 선생은 부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전칠을 바라봤다.
“아르바이트로 얼마 못 벌죠? 용돈도 안 될 거 아니에요.”
“경험 쌓는 거죠. 용돈이요? 생활비 따로 있는데.”
“그렇겠죠. 뭐, 생활비, 있겠죠.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있겠죠.”
“떨어지기도 하던데요? 얼마 전에 교육 자금으로 회사 하나를 샀는데, 구조 조정한 다음에 주가가 빠르게 오르더라고요. CFO가 그러는데, 연말에 제가 받을 배당금이면 교육 자금 돌려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 신탁 기금으로 큰돈을 넣을 수 있대요.”
“가족 신탁?”
“네. 거기다 돈을 넣어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거든요. 아니면 집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해요. 재미없는 회사에 출근해서 대표를 맡거나 아니면 뭐 어디든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가야 해요. 우리 큰 사촌 오빠는 서른여섯 됐을 때 겨우 그 돈 채워 넣고 은행장 그만뒀거든요. 제가 산 회사 주식, 지금 다 팔아 버리면 저는 지금이라도 금액 다 채울 수 있어요.”
“예, 제가 쓸데없는 걸 물었군요.”
주 선생은 더 듣고 있다가 뇌졸중이 올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전혀 상황 파악 못 하고 곁에 있던 좌자전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회사 주식은 팔았어요?”
“아니요.”
“팔고 그 신탁인가 뭔가 돈을 갚는 게 낫지 않나요?”
“그럴 필요 없죠. 전 아직 학교도 다녀야 하고, 바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요. 아, 그리고 갚는 거 아니에요. 신탁 기금으로 매달 돈도 따로 나와요. 그리고 일정 금액 다 넣고 나면 돈도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돼요.”
“아. 예. 저는 돈 빌리면 바로 갚아야 하는 사람이라서요.”
좌자전이 멍청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리고 회사 주식을 지금 팔기엔 너무 아깝고요. 투자 회사에서도 앞으로 2, 3년 동안 계속 성장 추세일 거로 예측하거든요. 그래서 수익으로 다시 같은 업계 회사 몇 개 더 사들일까 생각 중이에요. 다들 위치가 안 좋아서 그렇지, 가능성 있는 곳이라 제가 도움을 좀 주면 크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칠은 연예인 스캔들 이야기하는 가벼운 말투로 말했고, 좌자전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마을 위생 병원 출신 의사로서 인생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바로 11살짜리 아들(친자 확인 안 함)이었다.
주 선생은 그런 좌자전을 보며 싱긋 웃었고, 연문빈은 보는 사람 없는 틈에 전복을 한입에 욱여넣고 씹히는 전복 사이로 배어 나오는 즙을 즐기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능연은 원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성격이 아니니, 식탁은 한순간 조용해졌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여원은 자기가 대화거리를 찾아야 할 책임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그래서 전복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부자라면요, 일단 땅을 살 거예요. 다음에 창고를 커다랗게 지은 다음······.”
“야, 전복 진짜 맛있네.”
주 선생이 전복 맛이 떨어질 상황이 닥치기 전에 여원의 말을 먼저 잘라버렸다.
“맞아요, 맞아. 진짜 맛있네요. 밥도요. 찰기가 아주 그냥!”
연문빈도 다급하게 끼어들었고,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대화의 화제를 주도했다.
능연은 아무 말 없이 받을 먹었고, 전칠은 한입 먹고 능연 한 번 보고, 능연 한 번 보고 한입 먹었다.
능연이 전복밥을 다 비우고 입을 닦으려고 티슈를 잡으려 하자, 전칠이 손수건을 건넸다.
“아, 고마워요. 나중에 빨아서 돌려드릴게요.”
“네네.”
잠시 망설이던 능연이 받아서 쓰고는 주머니에 넣자 전칠은 흥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빨 때 조심해라. 괜히 찢어지지 않게.”
온통 말 그림이 그려진 손수건을 본 주 선생의 눈가가 실룩댔다.
“네. 저기요, 전복밥 1인분 더 주세요.”
순순히 대답한 능연이 접시를 셰프에게 내밀자 셰프는 공손히 접시를 받아들였다. 좌자전은 셰프의 노란 셔츠 위에 캥거루를 바라보며 의아하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했다.
대도시라 서비스 정신이 확실히 다르군.
좌자전은 도시락을 내놔야겠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후에도 능연은 계속해서 아킬레스건 수술을 했다.
창서성도 큰 체육 도시라 프로 선수부터 동호회 사람까지 아킬레스건 파열 케이스가 제법 많았다. 그 밖에 발목 힘줄이 끊어진 사람들도 점차 운화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사실 일반인은 축-능 보건술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현대인은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높이뛰기를 할 필요 없는 일반인이 좋은 농구화, 런닝화를 사는 것처럼 말이다.
발목 힘줄이 끊어진 환자도 같은 기대로 운화 병원을 찾았다. 흉터 걱정하는 환자라면 몰라도, 대부분 환자는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니다가 결국 운화 병원을 선택했다.
좌자전은 능연을 따라 연달아 수술 2건을 끝내고서야 쉴 틈을 찾았다. 그는 밤에 잠들었다가 다음 날 새벽 다시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말, 드디어 반나절 휴가를 받은 좌자전은 연문빈이 새로 산 BMW535를 빌려 옛 동료를 마중하러 터미널로 향했다.
기차역 맡은 편에 조심스럽게 차를 세운 좌자전은 차에서 내려 우선 안경을 깨끗이 닦고 자세를 취하고 옛 동료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42.8세 좌자전은 좌측에 VIVO, 우측에 BMW가 세워진 곳에서 가죽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번쩍이는 샤오미 팔찌를 끼고 있었다.
“몰라보겠구만.”
마을 위생 병원 선임 계장 손태녕이 좌자전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다가 BMW를 바라봤다.
“차 바꿨어?”
“동료 차야.”
좌자전이 싱긋 웃었다.
“부자 동료구만. 운화 병원이라 다르네. 이야, 진짜로 여기까지 올 돈이 있었다니, 대단하네.”
“병원부터 갈까? 아니면 호텔로?”
“병원으로 가지.”
좌자전은 말을 아끼려는 듯 말을 돌렸고, 손태녕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참 운이 안 좋아. 연초엔 장모님이 그러더니, 연말엔 아들 다리가 끊어지다니 말이야. 열 몇이나 되어서 그렇게 덤벙대다니. 속상해 죽겠어.”
“아킬레스건 보건술은 작은 수술인데, 뭐. 우리 병원에서 엄청 많이 해. 외국 사람도 온다니까.”
좌자전이 위로 반 자랑 반으로 하는 말에 손태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었어. 그러니까 왔지.”
그도 의사지만 마을 병원 의사라서 평소에 성내에 유명한 의사엔 별 관심이 없었다. 워낙 다른 세상이었고, 접촉할 일도 없었다. 좌자전이 개천에서 용 난 것처럼 운화 병원으로 들어가게 된 다음에야 마을 병원 의사들도 관심을 두게 됐다.
물론 아들 일이 아니었다면 손태녕도 그럴 일이 없었을 텐데, 의사를 구하려고 알아보던 중에 그런 전문가가 운화 병원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들은 집에?”
“현 병원에서 링거 맞고 있어. 일단 내가 먼저 와서 좀 보려고. 흠, 자네는 잘 지내? 술은 잘 마시고?”
손태녕이 묻자 좌자전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 싱긋 웃었다.
“말도 마. 오자마자 2주 내내 수술만 했다고.”
“수술?”
“어시.”
“몇 건이나?”
“아킬레스건은 벌써 백 건 가까이 돼. 그리고 단지 이식, 수지 굴근건 봉합. 아, 관절경 수술도 있고.”
놀라서 묻는 손태녕의 말에 좌자전은 쓴웃음을 지었다. 손태녕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보름 만에 백 건? 농담이지?”
“농담 아닙니다요. 새벽에 일어나서 수술하고, 낮잠 자다 일어나서 수술하고 밤에 잠깐 자다가 또 새벽에 수술하고.”
정색하고 말하던 좌자전이 새삼 놀라서 멍해졌다.
나 진짜 이러고 살았네? 뭐에 홀린 거 아냐?
“허허, 그럼 술도 못 먹겠구만.”
“원래 술 안 좋아해.”
손태녕이 위아래 훑어보며 하는 말에 좌자전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지금 모시는 능 선생이 술을 안 마시니, 나도 안 마시고 좋아.”
“윗사람이 술을 안 마시면 안 좋은 거 아냐?”
좌자전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말도 마. 운화 병원으로 온 지 보름이 다 되어가는데, 응급 의학과 처치실이 어떻게 생긴지도 잘 모르겠어. 눈 뜨면 수술, 눈 감자마자 알람이 울리는 기분이야. 밤낮없이 수술만 해. 응급 의학과 수술실, 의국, 병실은 눈감고도 찾아간다 내가.”
좌자전은 손발을 휘두르며 설명하고는 옛 동료를 차에 태워 순조롭게 도로로 들어갔다.
인구 천만인 운화는 사람도 차도 많았다. 이는 좌자전이 경험해 본 적 없는 생활이었다. 그는 가볍게 액셀을 눌러 속도를 올렸다. 손태녕은 궁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한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아니, 내가 아는 좌자전이라면 사흘 만에 의국을 평정하고 일주일이면 마음 맞는 윗사람 여럿을 술로 끝장내고, 보름이면 병원 원장이랑 호형호제해야 하는 거 아냐?”
“하하하, 제 윗사람은 심심하면 처치실에 데브리망 하러 가는 사람인데요.”
“정말 아킬레스건 수술을 백 건이나 했다고?”
손태녕이 화제를 제일 궁금한 쪽으로 끌고 갔다.
“거의. 응.”
“이야, 우리 병원이었으면 바로 승진했겠네.”
마을 위생 병원에서 일 년 동안 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의사도 백몇 건 할 뿐이다. 그리고 그중엔 티눈 제거, 데브리망, 드레싱도 포함된다.
좌자전은 자기도 모르게 회상에 빠졌다.
젊을 때는 실력으로 승진해 보려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술로 승진했다. 밤에 술 시중을 들면 다음 날 아침에 수술 한 건 얻고, 그러지 못한 날엔 환자가 없어서 멍하니 있어야 했다.
“능 선생 만나러 갑시다.”
좌자전은 도로에 차가 줄어들자 액셀을 꾹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