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16화 (197/877)

제타를 조심스럽게 주창에 세운 능연은 근처를 맴돌며 생각하다가 구석에 있던 차 덮개를 꺼내 씌웠다.

귀찮기는 했지만 고치는 데 큰돈이 들지는 않았다. 매일 택시로 출근할 수도 없으니, 능연은 차를 잘 챙긴 다음 차고 문을 단단히 채우고 나왔다. 그에게는 11년 탄 자전거가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비싼 제타는 더욱 오래 탈 수 있길 바랐다.

8시가 조금 넘은 진료소는 오늘도 떠들썩했다.

진찰받으러 온 사람, 약 사러 온 사람, 마사지 받으러 온 사람, 수다 떨러 온 사람이 정원에 한데 모여 즐기고 있었다.

하구 진료소의 큰 정원은 하구 골목과 근처 오래된 골목들의 주민센터 같은 곳이었다.

막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능결죽은 껄껄 웃으며 정원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노인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담요를 건넸다. 그는 골목 장사를 하면서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제일 좋았고, 사람이 많은 게 제일 좋았다. 지금 같은 모습은 그가 꿈꾸던 것이었다.

도평은 2층 티 테이블에 앉아 나이 비슷한 언니 동생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여러 나라에서 대리 구매한 물품을 건네고 있었다.

하구 지역에서 도평은 패션 리더였으며 유행 선도자였다.

20년 전에 도평이 봄에 바람막이를 입으면 골목에 바람막이 붐이 불었고, 티셔츠를 꺼내 입기 시작하면 야시장에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와 나이 비슷한 여자들뿐만 아니라, 도평의 모임이 아닌 아가씨와 중년 부인들도 그의 옷차림, 화장품, 취미 등에 관심 가졌다.

이번에 도평이 대리 구매한 물건으로만 신용카드 한도가 다 찼고, 신용카드 누적 포인트로 프랑스 왕복 비즈니스 항공권이 나왔다.

“아들, 왔냐?”

차고에 차 들어오는 소리를 들은 능결죽이 따듯한 물을 건넸다. 능연은 따듯한 물을 마시자 온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오랜 세월 밥을 해왔지만, 물이 제일 맛있었다.

“능 선생님, 왔어요?”

주방에서 요리하던 노금령이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드는 팔뚝만 한 쏘가리를 든 채 냉큼 뛰어나왔다. 노금령이 칼 든 오른손으로 내려치자 커다란 쏘가리의 숨이 그대로 끊어졌다.

“산 거예요? 이렇게 큰 쏘가리가 있어요?”

입이 뾰족한 쏘가리를 보며 능연이 놀란 듯 물었다.

“루어로 낚은 거예요. 2kg 입 큰 쏘가리.”

“2kg요?”

“이게 입 큰 쏘가리라 가능하고, 일반 쏘가리는 이렇게 큰 게 없어요. 물이 따듯한 특정 지역에만 자라는 놈인데, 양자호에서 낚았죠. 그래서 항공 택배로 보냈어요.”

능연이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엔 쏘가리가 모두 7종류가 있는데, 특히 야생에서 자라서 몸집이 큰 이런 종류는 뭘 해 먹어도 맛있죠. 이렇게 큰 건 훠궈가 딱이에요. 능연 씨, 훠궈 좋아하죠?”

능연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노금령이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고는 물고기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수산 시장에서 자라서 회 뜨는 실력 하나는 일품이었다.

“흠흠, 9시 반에 닫아야 하니까, 9시에 끝내겠습니다.”

“아이고, 훠궈 혼자만 먹게? 우리는?”

“밤에 훠궈 먹으면 안 좋아.”

“저렇게 큰 걸 어떻게 다 먹으려고.”

이웃들이 나른하게 그를 바라보면서 몇 마디씩 늘어놓으며 놀려도 능결죽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이웃들도 말은 그렇게 해도 이내 집으로 돌아갔다.

진료소 문을 닫은 능결죽은 바로 창고로 가 훠궈 테이블을 꺼내 의자를 놓고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불을 지폈다.

노금령은 썰어온 생선을 테이블에 놓고 훠궈 국물을 만들었다.

“얇게 썰었으니까, 샤부샤부처럼 흔들어서 먹으면 돼요.”

“금령 씨 칼 솜씨가 참 좋아.”

도평이 제일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빛을 반짝이며 테이블에 앉았다.

“자주 하니까요.”

노금령이 능연 옆에 앉으며 겸손하게 말했다.

요즘 진료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약값을 버는 동한생도 황토색 승복을 입고 테이블에 앉아 오이를 직접 썰어 놓고는 무를 들고 아작아작 씹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능연은 노금령의 지도하에 얇은 생선포를 들고 노금령의 응원 소리와 함께 국물에 7번 담갔다가 꺼내고는······ 멈칫했다.

“꺼내! 좀 더 높이! 그러면 바로 칠상팔하(七上八下)! 샤부샤부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이야.”

아들을 잘 아는 도평이 한마디로 알려주자 능연이 깨달은 듯 따라 하고는 생선을 입에 넣었다.

“옛날부터 쏘가리 하면 바로 이 입 큰 쏘가리예요. 그림도 있더라고요.”

능연이 신선한 생선포를 입에 넣고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꿀꺽 삼키자 노금령은 머리카락을 묶어 올리고는 해설자라도 된 말투로 설명했다.

“요즘 먹을 수 있는 큰 쏘가리는 다 입 큰 쏘가리 아니면 눈 큰 쏘가리예요. 비슷하게 생겼죠. 그리고 무늬 쏘가리도 있긴 해요. 그런데 입 큰 쏘가리만큼은 아니지만요.”

“쏘가리에 대해 잘 아는구나.”

감탄한 것 같은 도평의 말에 노금령의 얼굴이 환해졌다.

“제가 좋아하거든요. 능 선생님, 쏘가리 좋아하세요?”

“네, 맛있네요.”

능연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아버지가 하는 밥도 별 투정 없이 잘 먹었지만, 도평 여사의 요리를 자주 먹는 사람으로서 능연도 미각이 꽤 발달한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생선을 먹고 자란 노금령은 당연히 생선엔 예민했고, 지금 가지고 온 생선엔 자신이 넘쳤다. 노금령은 생선을 집어서 적극적으로 능연의 그릇에 올려놓았다.

“그럼 많이 드세요. 아직 많아요.”

아삭아삭.

동자승 동한생이 무를 아작아작 씹으면서 부러운 듯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 진료소의 대문을 살짝 두드리자 능결죽이 뛰어올랐다. 진료소는 급한 환자가 와도 반기기 마련이었다.

“환자인가요?”

문밖에서 바로 대답이 들리지 않자 능결죽이 입을 삐죽였다.

“제약 회사 사람이면 내일 오세요.”

“그, 저는 능 선생 동료 좌자전이라고 합니다.”

좌자전은 선물을 들고 다소 긴장한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선물하는 데 익숙한 좌자전은 작은 선물이긴 해도 선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라 믿었다.

능연은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직접 문을 열러 나갔다.

“급한 환자가 생겼나요?”

“아니, 고향에서 특산품을 좀 가지고 와서, 맛 좀 보라고 가지고 왔어.”

좌자전은 선물할 때 짓는 겸손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선물 받는 데 익숙한 능연은 우선 감사 인사부터 했다.

“아, 연이 동료시군요. 들어와서 훠궈 좀 드시지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좌자전을 본 능결죽은 확신이 서지 않는 모습으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내밀었다.

“아이고, 실례가 많습니다.”

“쏘가리 훠궈입니다.”

말수가 적은 능연도 할 수 있는 한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고, 이거 내가 방해가 되겠구만.”

“새벽에 매일 수술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능연은 공용 젓가락으로 잘 익은 쏘가리를 집어 좌자전에게 내밀었다. 병원에서 지시만 듣던 좌자전은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황급히 생선을 집어 들고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곤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촉촉하게 젖은 눈가를 훔쳤다.

“아이고, 옛날에 비하면 하나도 안 힘들지.”

좌자전은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얼굴엔 변함없이 습관성 겸손한 미소를 지었는데 눈빛만은 희망으로 빛났다.

6시 24분 48초, 운화 시 일출 시각에 정확히 해가 떴다.

가로수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다시 나타난 해를 반겼다.

좌자전은 고기만두, 찐빵, 절임 채소가 각각 담긴 작은 봉투를 들고 익숙한 듯 하구 진료소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구 진료소에 처음 인사 간 이래 좌자전은 이삼일에 한 번씩 먹을 걸 들고 찾았다. 능가 사람들이 돈을 낸다고 할까 봐 일부러 큰돈 안 드는 작은 먹거리들로 골랐다.

물론 그럴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능연은 다시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병상을 가득 채웠다. 매일 퇴원 환자가 서너 명씩 있었지만, 전혀 티도 안 났고 간호사들의 업무량도 고려해야 해서 매일 할 수 있는 수술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병상 회전율은 일종의 종합 지표로서, 회전율을 올리지 못하면 병원에서는 환자를 강제 퇴원시키거나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능연은 그런 지표를 따르지 않았고, 환자와 보호자 하나는 시험을 통과해야 퇴원을 허락했다. 시험 문제는 모두 간단한 OX 문제였다. 그런 수준의 문제도 통과 못 한다면 환자가 퇴원 후,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 일을 구분 못 할 게 뻔해서 예후가 안 좋아질 테니 차라리 병원에 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협화에서도 그런 시험 제도를 채택한 후 효과가 매우 좋았는데, 대다수 병원은 환자의 퇴원이 늦어질까 봐 채택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능연이 그렇게 하는 건 병원 제도를 위반한 것이지만 곽종군의 묵인이 있으니 다른 누가 트집을 잡을 수도 없었다.

법은 법이고, 집행 문제로 지켜지지 않는 것들은 다른 직종에도 빈번했으니까. 경찰이 부당 이익을 취득하는 것, 교사가 학생을 차별 대우하는 것, 의사가 노동법을 위반하는 장시간 근무하는 것, 모두 그랬다.

좌자전에게 병원 혹은 위생 건강 위원회의 규정 같은 건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오늘의 양고기 만두에 몹시 흡족할 뿐이었다. 직접 양고기를 골랐고 늑골을 제거해 고기를 도려냈더니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닭 다리를 잘게 다져 양파와 조미료를 섞어 만두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만두를 작게 빚어 딱 아침 한 끼 분량만큼 만들었다. 재룟값보다 인건비가 더 든 셈이고, 달리 말하면 마음이 더 소중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좌자전은 주방에서 익숙하게 불을 켜고 물을 끓여 만두를 쪄내고 죽도 한 솥 끓였다. 양고기 만두는 따듯할 때 먹어야 해서 다시 한번 쪄야 했다. 처음 쪘을 때보다 맛이야 떨어지겠지만, 조건이 허락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맛이 크게 차이 나지는 않으리라.

양고기 만두가 익는 냄새와 죽 냄새가 솔솔 퍼지자, 하구 진료소 사람들도 하나둘 눈을 떴다.

“좌 선생님.”

동한생은 제일 먼저 일어나서 옷을 갖춰 입고 인사했다. 그는 물부터 받아 정원에 뿌리고 다시 들어왔다.

“냄새가 좋네요. 오늘은 뭔가요?”

“양고기 만두란다. 네 것도 준비했어. 남산 무란다.”

왠지 미안해진 좌자전이 동한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와, 좋네요.”

동한생은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요우타오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겠네.”

문 앞에서 벽에 기댄 황무사가 손에 음식 봉투를 들고 좌자전과 동한생을 바라봤다. 슬쩍 좌자전을 본 동한생이 황무사를 향해 웃어 보이면서 그의 손에 든 음식을 건네받았다.

황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능 선생한테 서비스하러 온 건데, 동자승이 기뻐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황무사는 무심결에 동한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좌 선생님, 평소에 일하기도 힘드시잖아요. 이런 일은 제가 하면 됩니다.”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닌 황무사가 불만을 표시했다. 제약 회사 영업사원인 그가 의사 집에 아침을 배달하거나 KTV로 의사를 초대하거나, 이상한 곳에 같이 가거나 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능연은 노래도 안 하고 이상한 곳엔 더욱 안 갈 캐릭터이니, 할 수 있는 건 아침 서비스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금 늦게 일어났다고 해서 다른 의사와 경쟁해야 할 상황이 됐을 줄은 정말 몰랐다.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슬쩍 황무사를 본 좌자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럼 이게 작은 일입니까? 난 고작 요우타오 사 왔는데, 직접 만든 양고기 만두를 가지고 와놓고요?”

“능 선생이 고기를 좋아해서 신경 써서 가지고 온 것뿐입니다. 내가 만두를 잘 빚거든. 병원 의사들도 아침에 내가 만든 만두로 해장하는 걸 좋아하고.”

“하하하. 점심때 제성에 수술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침에 뭐 하러 이런 짓 하세요. 안 힘드세요?”

“아니. 어젯밤에 준비 다 해뒀거든. 이따 비행기에서 한숨 자면 돼. 아이고, 오히려 그쪽이 만날 능 선생을 쫓아 다니는구만.”

“능 선생 혼자 보름이면 다른 의사 일 년 치 수술을 하자잖아요. 에휴. 제가 차 준비했습니다. 이따 공항에 모셔드릴게요.”

“그거 좋군!”

갑자기 황무사가 마음에 든 좌자전이 한마디 칭찬하려고 하는데 능연이 나타났다.

“능 선생! 내가 만두 좀 만들어 왔어. 양고기. 맛있을 거야.”

“저는 요우타오 사 왔습니다. 골목에서 파는 거요! 이것도 맛있습니다.”

“능 선생, 뭐 먹을래?”

좌자전과 황무사는 경쟁하듯 제가 준비해 온 음식을 내밀었고 능연은 뭘 먹겠냐는 좌자전의 질문에 의아한 듯 그를 슬쩍 봤다.

“요우타오 하나랑 만두 두어 개요.”

순간 멍해졌던 두 사람이 동시에 ‘OK’ 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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