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녹색 시트에 환자가 바르게 누워 있었다.
하늘색 무균 시트가 환자를 덮고 무릎 부분만 드러냈다.
환자는 깨어 있는 상태로 무균 시트 아래서 무료한 듯 수술실에 흐르는 음악을 들었다.
“전신마취하죠.”
능연이 환자와 이야기 나누는 걸 싫어하는 걸 아는 좌자전이 나서서 그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62세 노인인 환자는 무균 시트 아래서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전신마취 싫습니다. 아는 사람이 전신마취한 다음에 깨어나지 못하고 죽었어요.”
“마취 때문에 죽었다고요? 흔한 일이 아닙니다.”
“병원에서는 심장병 때문이라면서 배상도 안 했어요. 하지만 유가는 우리가 잘 압니다. 혈압이 좀 높고 심장병이 있긴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노인은 자신 없는 말투로 어쨌든 전신마취는 몸에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좌자전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역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능연을 힐끔 봤다.
“지혈대 체크 해주세요.”
능연은 무릎에 선을 그리면서 여원에게 지시했다.
관절경 하 반월판 성형술은 원래 조수 하나면 충분하다. 그러나 제성시 병원 의사들이 그렇게 할 리 없고, 원래 집도 예정이었던 장붕의가 퍼스트 어시에 서고 여원이 세컨드에 섰다. 좌자전은 원래 배우러 온 것이니 한편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앞무릎 슬개골 인대 양측으로 진입합니다.”
능연은 조수들에게 설명하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내고는 위치를 살핀 다음 손을 내밀었다.
“메스.”
탁.
엄청나게 긴장한 스크럽 간호사가 곧바로 메스를 능연의 손에 넣어주고 더욱 긴장했다.
능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보고는 싱긋 미소 지은 다음 고개를 돌려 표시해 둔 위치에 0.5cm 절개구를 냈다. 스크럽 간호사는 온몸이 긴장된 상태로 머릿속에 무한한 상상을 시작했다.
“트로카(Trocar: 투관침)”
탁.
스크럽 간호사는 그동안 배운 모든 것을 동원해서 가장 적당한 속도, 가장 정확한 각도, 가장 적합한 힘으로 투관침을 능연의 손에 올려놓았다. 거의 손바닥에 닿을 때쯤에 간호사는 아주 미묘하게 손이 닿은 느낌을 받았다.
외과 의사로서 최고의 파트너였다.
능연은 다시 싱긋 웃어 보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투관침으로 정확하게 슬관절을 찔렀다. 그러곤 관절경을 집어넣고 식염수를 주입하라고 지시했다.
혹시라도 능연의 동작에 실수가 있을까 봐 바짝 긴장하던 장붕의는 한숨 돌린 후 서둘러 식염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온 전문가를 칭찬하는 건 하는 거고, 다른 분야를 잘 이해하고 있을지 의사로서 조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세계에서 유명한 심장 전문의라고 해서 슬관절을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일왕에게 관상동맥 우회술을 실시한 아마노 아츠시는 관상동맥 우회술을 6천 건 집도했고 지도 수술까지 합하면 만 건이라고 전해진다. 그럼 평균 매해 수술 5백 건을 했다는 의미인데, 이는 일본 의사의 10배, 중국 의사의 5배 되는 수치이다. 그러나 그는 관상동맥 우회술 외에 다른 수술을 하지는 않았다. 슬관절경을 배울 필요도 없다. 기본적인 해부 구조는 알 수도 있지만, 그것뿐이다.
장붕의는 능연이 관절경 경험이 있는 것 같고, 비싼 돈으로 초빙해 온 전문가라서 순순히 집도의 자리를 내줬지만, 수술 리스트에 올라가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능연의 노련한 모습에 장붕의도 이제 불안하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고작 투관침 하나 넣는 동작이지만, 많은 연습과 조작자의 실력이 없으면 어려운 동작이었다. 투관침은 초대형 주삿바늘과 마찬가지로 무릎에 들어가는 깊이, 힘 모두 조절하여 한 번에 끝내야 한다.
간호사의 실력을 보려면 바늘을 찌르는 수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의사가 관절경 수술을 잘하는지 보려면 투관침이 쓸 만한 판단 기준이 된다.
능연의 실력이 괜찮다고 확신한 장붕의는 안심하고 서포트하기 시작했다.
슬관절에 들어간 관절경으로 수술대 위 42인치 모니터에 영상이 송출됐고, 그 영상은 X-ray나 MRI보다 훨씬 또렷했다.
이론적으로 관절경하 진단, 특히 반월판 손상 진단은 99% 정확도를 달성한다. 의료 진단에 99%란 굉장히 높은 수치이다. 특히 서양 의학의 진단은 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만 하면 되는 동양 의학과 달리 질병 분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진 확률도 여전히 존재한다. 100% 확신이란 오만일 뿐, 자신감이라고 할 수 없다.
능연은 몇 분 동안 반월판 손상을 꼼꼼히 체크했다.
“7cm 정도 반월판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모니터를 보고 있던 장붕의는 능연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경험으로는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그러나 능연은 벌써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월판 성형술의 핵심은 환자의 손상된 반월판을 정상 상태 혹은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튀어나온 부분은 바스켓 포셉으로 잘라야 하고 테두리는 가지런하게 정리해야 하고 마손된 부분은 깎아내야 하는데, 능연이 만난 환자는 치료를 미뤄온 바람에 반월판이 심각하게 닳은 환자였다.
“반월판이 이렇게 울퉁불퉁한데?”
드디어 정신 차린 장붕의가 모니터 속의 반월판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 좋은 건가요?”
“안 좋습니다. 치료를 미뤄온 결과 반월판이 계속해서 닳은 바람에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환자가 놀라서 묻는 말에 장붕의는 안타까워하며 대답했다.
“의사가 급하지 않다고 했는데요?”
“정기적으로 검진 안 받으셨죠?”
“뻔히 상황 아는데 뭐하러 정기 검진을 받아.”
환자는 침대에 누워 함부로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우겨댔다. 그 모습에 장붕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능연은 단숨에 관절경 수술을 끝냈고, 마지막에 시간을 보니 겨우 15분이 걸렸음을 확인했다.
“다음 수술할까요?”
“어떤가?”
“나보다 잘하네요.”
능연이 장갑을 벗고 바로 수술실에서 나가자 주임을 비롯한 의사들이 우르르 환자에게 몰려들었다. 장붕의는 감출 것도 없다는 듯 솔직히 대답했다.
“자네보다 잘한다고?”
주임이 다시 물어도 장붕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성시 병원 의사들도 이제 막 관절경 수술을 시작해서 전보다 전문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다. 관절경 수술은 효과도 좋고 상처도 작아서 환자가 늘고 있는데, 제성시 병원엔 관절경을 할 만한 의사가 충분하지 않았다.
융풍요는 좌자전과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잡아 그를 붙잡았다.
“능 선생 관절경 수술 비용은 얼마입니까?”
좌자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용풍요가 능연의 출장 수술비를 묻는다는 건 다음에도 초빙할 뜻이 있다는 것이다. 뛰는 돼지는 먹어 본 적 없어도 돼지고기는 많이 먹었으니, 그는 의료계에서 출장 수술에 대한 관점과 인식을 잘 알고 있었다.
능연은 수술 비용을 신경 쓰지 않지만, 부하인 좌자전은 자기가 능연의 출장 수술비를 이렇게 마음대로 결정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의사들이 정말 그 돈을 받을 수 있는지보다 출장 수술 가격 자체를 더 연연해한다는 것도 말이다. 물론 대부분 그 돈을 정말로 받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하지만 어찌 됐든 좌자전은 지금 용풍요에게 가격을 제시할 수 없었다. 마을 위생 병원 생활 20년 동안 그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부지런하든 게으르든 상관없지만, 눈치는 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사 출장 수술비를 하한가로 제시한다는 건 분명 눈치 없는 일이리라.
그렇다면 상한가를 제시하면?
수술비를 너무 올려서 성사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 다른 멍청한 놈이었다면 지금쯤 사고를 쳤을지도 모른다.
“능 선생 관절경 출장 수술도 요청하시려고요?”
그러나 좌우 양난의 상황이 일상이었던 좌자전은 일단 되물어 보기로 했다. 그러자 융풍요는 난처한 듯 웃어 보였다.
“언젠가 그럴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 좀 한가할 텐데 말입니다. 운화 병원에 병상이 없거든요. 형님, 잘 들으세요, 이번에 다른 병원에서도 출장 요청이 왔는데 능 선생이 거절했습니다. 왜인지 아세요? 여기가 수술이 더 많아서입니다. 딱 봐도 아시겠죠? 우리 능 선생이 지금 한창때라 실력을 쌓을 때예요. 그래서 수술 건수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답니다.”
“건수라······.”
“능 선생은 앞날이 밝은 의사랍니다. 오늘 수술하는 거 보셨죠? 우리 병원 침대가 다 찼으니 이렇게 밖에 나와서 수술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중요한 건 수술 건수랍니다. 관절경 수술은 빨리할 수 있으니까 좀 많이 준비하셔야 해요. 제 말이 맞죠?”
“그렇군, 일리 있군.”
융풍요는 진지한 좌자전의 말투에 거의 설득 당했다.
수술 건수라는 개념은 쓰레기 의사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80% 성공률 곱하기 수술 건수, 자기 숨통을 조이는 꼴이었다. 일반 의사들도 수술 건수는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들이 하는 수술도 평균 수준 혹은 평균 이하 수준이라 건수 자체에 의미가 없다. 수술 건수가 많다면, 일반 의사일 리도 없지만.
그러나 일반 의사가 아닌 수준이 되면 수술 건수는 꽤 쓸 만한 홍보 지표가 된다. 어떤 수술을 5백 건 한 의사는 어쩌면 아직은 국제회의 같은 곳에서 초짜일지 모르고, 천 건 정도면 두각을 드러낸 정도, 2천 건, 3천 건이 되면 대단한 정도라 그것을 발판으로 날아오르기 충분하다.
“그래도 우리 병원은 환자가 많은 편입니다. 능 선생만 가능하면 하루에 네다섯 건도 문제가 아닙니다.”
“관절경 수술만 할 필요는 없죠, 형님. 이번처럼 아킬레스건 수술도 같이 넣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슬쩍 눈치 보면서 한 말에 좌자전이 그렇게 대답하자, 용풍요는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장 수술에 그런 요구는 흔한 일이었다. 시간이 짧은 수술이면 건수를 늘려 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한 번에 십몇 분 걸리는 자궁경 수술을 실력 좋은 의사에게 출장 수술을 요청하려면 적어도 여덟 건은 되어야 했다.
“그럼 제가 가서 능 선생한테 물어보겠습니다. 수술이 확정되면 저한테 연락 주셔도 되고요.”
드디어 대화를 일단락 지은 좌자전은 지쳐서 숨이 다 거칠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힘든 건 힘들어도 기분은 매우 좋았다.
위생 병원에서 만날 먹고 마시고, 마시고 먹고 했지만, 그렇게 먹고 마시는 것도 목적은 있었다. 윗사람 비위를 맞춰서 기분 좋게 하는 것 외에도 위생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부분 돈과 관련된 일이니 말이다.
경비에, 보너스에, 리모델링 비에, 연구비에 여기저기 병원 운영에 돈이 안 드는 곳이 없었다. 그러니 매일매일 그런 생활을 하면서 심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능연을 따라 수술실을 이리저리 전전하면서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의사가 수술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능연 같은 의사는 출장 수술비뿐만 아니라 상대 병원의 열정적인 접대와 예우를 받을 수 있다. 을에서 갑이 되는 느낌이랄까.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
얼마 후, 마지막 관절경 수술을 끝낸 후 좌자전은 서둘러서 깨끗한 가운을 능연에게 건넸다.
“능 선생, 춥겠다. 어서 이거 걸쳐.”
“수술실은 항온입니다.”
곁에 있던 장붕의가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사람마다 온도가 다르잖습니까.”
좌자전은 냉큼 뜨거운 물까지 건넸다.
“능 선생. 따듯한 물도 좀 마셔. 수술 연달아서 하면서 물이라도 좀 마셔줘야지. 아니면 몸에 안 좋아. 새 주전자고 소독도 몇 번 했어.”
안 그래도 목이 마르던 능연은 잔을 받아들여 냄새를 맡고는 천천히 물을 마셨다. 수술이 순조로우니 기분도 좋아서 걸음까지 조금 빨라졌다.
정형외과 주임 용풍요는 짧고 두꺼운 다리로 몇 발짝 따르다가 멈춰서서 멀어지는 능연을 바라보다가 원래 집도의였던 장붕의를 바라봤다.
“어때?”
“이전에 초빙 교수보다 훨씬 낫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장붕의가 바로 대답했다. 주치의인 장붕의는 이제 겨우 전문가급 수준에 이를까 말까 한 정도였다. 아직 기술 트리에 본격적으로 오른 단계가 아니라 가장 과감한 때면서 시간도 투자하려고 하는 시기였다.
다른 병원에 직접 가서 배울 상황이 안 될 때 다른 병원의 실력 있는 의사를 모셔오는 것도 장붕의가 기술을 늘리기 좋은 수단이었다. 용풍요는 나이도 많고, 새로 뭔가를 배울 원동력도 부족했다.
“음, 밑에 있는 사람만 봐도 능연은 꽤 능력이 있는 것 같군.”
용풍요가 좌자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장붕의는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손바닥 비비는 건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러게 말일세. 젊은 나이에 저런 아랫사람을 두다니 대단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