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23화 (204/877)

류호(柳湖).

왕 주임이 호숫가 의자에서 낚싯대를 들고 툭 하며 흔들어 댔다. 곁에 있던 경호원은 정신을 집중하고 지켜봤다.

어린 손녀가 그의 곁에서 뛰어난 솜씨로 아름답게 차를 우리고 있었다.

“주임님, 염 선생 왔습니다. 제성시 병원 정형외과 용 선생도요.”

비서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하는 보고에 왕 주임은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는 호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잠시 후 오른손을 휙 끌어 올렸지만, 빈 낚싯대만 올라왔다.

경호원이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하하하. 요즘 고기들은 참 똑똑하군.”

“먹이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왕 주임이 껄껄 웃으며 하는 말에 비서가 낮게 속삭였다. 그는 속으로 낚시 잘하는 사람을 찾아서 새로운 사료를 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 주임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낚시는 꼭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

“어르신 말씀이 옳습니다.”

“이따 사람 시켜서 망이나 던져 봐. 혹시 큰 물고기가 잡히면 우리 원원이 생선 훠궈나 먹이게. 원원, 저녁에 훠궈 먹을래?”

“네.”

왕 주임이 찻잔을 들어 한입 홀짝이며 묻자 이제 막 17살이 된 귀여운 손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 선생은 또 수술하자고 온 겐가?”

“예, 좋은 의사를 찾았답니다.”

“아이고, 의사가 문젠가. 늙은 몸뚱이를 고친다고 고칠 수 있느냔 말이지.”

껄껄 웃던 왕 주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할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냥 하는 말인데 뭐가 어때서? 말 잘한다고 불로장생할 것도 아니고 나쁜 말 한다고 꽥 죽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허허, 그래. 염 선생, 들어오라고 하게.”

잠시 후, 왕 주임의 주치의 45세 염휘화가 60이 다 되어가는 용풍요와 함께 호숫가로 왔다.

“왕 주임님, 몸은 좀 어떠신가요?”

“늘 그렇지, 무얼.”

익숙하게 묻는 염휘화의 말에 왕 주임은 힘겹게 일어나 몸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무릎이 부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심해졌음을 용풍요가 바로 알아차렸다.

“반월판 손상을 수술하지 않고 관리하는 건 아무래도 힘듭니다. 왕 주임님, 저번에 외국 의사는 싫다고 하셔서 줄곧 국내 우수한 의사를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마침 적당한 의사가 있어서 이렇게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수술 없이 관리하는 걸 자네들은 보수적인 치료라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나한텐 안전한 치료 방법이야. 그냥 넘어진 것뿐이라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나같이 위험하다, 위험하다 으름장이나 놓고, 시끄럽기는!”

목소리를 높여서, 으름장이란 소리까지 하는 걸 보면 왕 주임은 정말 수술이 싫은 듯했다.

비서가 어떡하면 좋으냐는 표정으로 염휘화를 바라봤다.

“왕 주임님, 이건 주임님 몸입니다. 노인이 넘어지는 건 심각한 일입니다. 반월판 손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계속 이렇게 가다간 점점 심해질 겁니다.”

염휘화의 단호한 말투에 왕 주임은 언짢은 듯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염휘화는 다급히 준비해 온 자료를 펼쳐 보였다.

“이번에 총 3명을 골랐습니다. 적수담 황 교수는 저번에 무릎 진찰 한 번 받으셨지요?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수종(水腫. hydrops)을 뽑느니 마느니, 아파 죽을 뻔했잖은가. 개뿔! 소용도 없었으면서.”

왕 주임은 그나마 남아 있던 좋은 기분이 완전히 사라져서 테이블 위에 찻잔을 집어 들고 깨끗이 비웠다.

“황 교수는 국내에서 그래도 실력 있는 의사 축에 드는 의사입니다. 흠흠, 다음은 제2 군병원 변 교수입니다. 나이는 좀 젊습니다. 올해 쉰 살인데 관절경 수술에 탁월합니다. 국내에서 관절경 치료를 제일 먼저 시작했던 의사 중 하나이고······.”

“대단한 의사를 찾았다면서? 괜히 숫자 끼워 맞추려고 어중이떠중이 거론할 필요 없네.”

염휘화의 성격을 잘 아는 왕 주임이 대번 말을 자르고 용풍요를 바라봤다. 바짝 긴장한 채로 있던 용풍요는 순간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염휘화는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고 허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 소개할 의사가 나이가 참 어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서 밑밥을 좀 깔았지요.”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나도 15살부터 일을 시작했네. 어서 말해 보게.”

“예. 최근에 스포츠 경기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의사가 얼마 전 유위신 선수 수술을 했습니다.”

“단거리 유위신?”

왕 주임도 뉴스를 챙겨보는지라, 유위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예, 단거리 유위신 맞습니다. 아킬레스건 파열 후 많은 병원을 전전하면서 외과 의사들을 제법 만난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공정원 축동익 원사를 찾아갔답니다. 그래서 축 원사가 알맞은 치료 방안을 설계했는데, 수술이 너무 어려워서 집도할 의사를 찾지 못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이 어린 의사를 만났답니다. 능연이라고 합니다.”

염휘화는 중요한 정보 하나를 빼놓고 이야기를 전했다. 축동익이 설계한 치료 방안이 어려운 것은 맞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려고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그런 정보를 빼놓았다고 해서 집도할 의사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왕 주임은 역시나 솔깃한지, 결과를 뻔히 알면서 굳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유위신 수술은 성공했고?”

“예. 아킬레스건 수술을 매우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드디어 기회를 잡은 용풍요가 대답하자 왕 주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능연이라는 의사가 참 신통방통하답니다.”

“응?”

“올해 겨우 23살입니다. 아직 실습생이고요. 원래는 집도할 수도 없는데, 이 젊은이가 너무 재능이 있고 노력도 엄청나게 한답니다. 매일매일 수술만 한다고 합니다.”

염휘화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능연이 한 수술 케이스를 제가 다 살펴봤고요, 또 그가 한 관절경 수술 환자까지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알고 보니 능연이라는 의사가 슬관절경 반월판 성형술 하나만 한다네요? 반월판 절개술도 안 한답니다.”

왕 주임은 다리를 다친 이래, 줄곧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고집하고 있지만, 반월판 수술에 관해서는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비수술 치료 방식은 이제 더는 큰 효과가 없다는 걸 사실 잘 아는 왕 주임의 태도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러니까, 나를 실습생 손에 걸어 보겠다는 겐가?”

왕 주임은 염휘화의 말에 반 농담조로 그렇게 물었다.

“왕 주임님을 걸다니요. 저를 팔면 팔았지, 그런 짓은 감히 못 합니다.”

“반월판 전문이라고?”

“반월판 성형술 전문입니다. 관절경도 딱 이것만 하고요. 유위신 수술은 아킬레스건 보건술이고, 그 밖에 단지 이식도 한답니다.”

왕 주임은 된다, 안 된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오래 담당해 온 염휘화는 그의 마음이 조금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

“능 선생은 운화 병원 의사입니다. 능 선생이 한 관절경 수술 자료도 읽어 보고 환자들도 만나 봤습니다. 안 믿으실 텐데요, 능 선생 관절경 수술 성공률은 거의 100%였습니다. 백몇 건이 다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후가 안 좋은 사람은 고작 둘인데, 그것도 다 환자 본인 문제라서요. 염증이 해소되기 어려운 체질이더라고요. 이 정도면 관절경 수술에서 상당한 성공률입니다.”

“음······.”

염휘화는 CT를 포함한 자료를 왕 주임 앞에 내밀었다. 왕 주임은 CT를 볼 줄 모르니 곁에 붙어 설명하면서 왕 주임의 마음이 변하길 기다렸다. 그는 용풍요에게 눈짓해서 출장 수술 환자의 자료도 꺼내게 했다.

용풍요는 준비한 대로 차분하게 차근차근 설명했고, 드디어 왕 주임의 마음이 조금 돌아섰다.

“그럼 일단 불러와 보게.”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왕 주임이 드디어 그렇게 말하자 염휘화는 마음이 홀가분해져 얼굴 가득 미소를 드러냈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편안한 표정이었다. 다들 왕 주임이 건강 무탈하길 바라는 사람들인데, 왕 주임이 수술을 받으려 하지 않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얼마나 빠졌는지 모른다.

“잠시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찻잔을 들어 올리던 왕 주임이 갑자기 불러 세우자 사람들의 마음이 철렁했다.

“탕 국장 운화에 있지? 잘됐구만. 그럼 우리가 운화로 가세. 익숙한 자기 병원에서 수술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왕 주임이 염휘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순간 염휘화는 왕 주임이 이미 결정을 내렸음을 깨달았다. 계속 수술을 거부했지만, 결정을 내린 만큼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왕 주임 스타일이었다.

“능연의 수술하는 모습도 두 번 봤는데, 침착하고 안정적이더군요. 그래도 젊은 사람이니 주임님께서 운화로 가신다면야, 분명 더 도움이 되겠지요.”

“그럼 그렇게 하세. 운화 병원으로 가자고.”

왕 주임이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할아버지, 다리도 안 좋은데, 비행기 타시려고요.”

“비행기 타는 게 무슨 대수라고. 정 안 되면 기차 타마.”

손녀의 걱정스러운 말에 왕 주임은 손을 흔들고는 다정하게 웃었다.

“너도 잘 기억해 두려무나. 다른 사람 손에 목숨이 달렸을 때는 자기 기분대로 하면 안 된단다. 목숨 줄을 쥔 사람 기분에 맞춰야 해.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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