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26화 (207/877)

병실 안.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던 왕 주임의 비서와 주치의가 응접실에서 능연을 붙잡고 몇 마디 물어본 다음 왕 주임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왕 주임이 먼저 능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능 선생, 듣던 대로 정말 젊군요.”

왕 주임은 허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일어설 수는 있는데, 무릎이 좀 아파요. 비행기를 타고 와서 더 불편해서 그런가, 그러니 앉아서 맞이하겠소.”

“우선 신체 검진부터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네.”

왕 주임이 숨을 후 내쉬며 사람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갑자기 어릴 때 읽었던 책이 생각납니다. 그때 책에 늙은 장군이 ‘소신 갑옷을 입고 있어서 예를 다 갖추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이런 대사가 있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 알겠군요. 허허허.”

왕 주임의 손녀는 원래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능연을 뚫어져라 보다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얘야, 왜 그러니?”

“전에 본 만담이 생각나서요.”

“그런 만담이 있어?”

“응, 할아버지 다리 나으면 같이 가서 봐요.”

“그래, 그래 그러자꾸나. 능 선생, 다 자네한테 달렸다네.”

왕 주임이 흐뭇한 듯 손녀를 보다가 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신체 검진을 계속했다. 환자의 혈압 등을 체크한 능연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MRI와 CT, X-ray를 판독하기 시작했다.

뇌 주임의 곽 주임이 눈치 준 대로, 능연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사진을 읽었다.

사실 능연이 지금 터득한 기술로는 X-ray만 읽어도 수술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2, 30년 전에 의사들도 X-ray만 읽고도 관절 수술을 무탈하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MRI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훨씬 많았다. 태블릿을 통해 전송된 데이터로 능연은 환자 무릎 안의 모든 뼈의 강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X-ray만으로 수술하는 것이 화가가 원을 그리는 것처럼 쉽다면, MRI까지 더 해지면 화가가 컴퍼스로 원을 그리는 것처럼 쉬워진다.

왕 주임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능연을 지켜보면서 그의 침착한 태도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왕 주임은 수많은 의사를 만났고 대범한 의사도 소심한 의사도 있었는데, 능연처럼 10분 동안 다른 사람 상대도 하지 않는 의사는 참, 그야말로 대가의 느낌이 났다.

병원 고위층들은 조마조마해서 안달이 났다. 능연의 성격을 직접 겪은 사람도, 소문으로만 들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능연이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할까 걱정되었고, 증상에 대해 확답을 내릴까 봐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끼어들 수도 없었다. 그런 무력감에 숨이 막혀서 옆에 있는 사람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능연은 태연하기만 했다. 공부할 때부터, 잠시 조용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주변에 사람들로 둘러싸였지만, 여전히 조용하게 공부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성적이 3등 아래로 굴러떨어져 어디까지 처박혔을지 모를 일이었다. 능연은 3학년 때 이미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미래에 대해 초 긍정적 사고를 하게 됐다. 그러지 못했다면 아마 자퇴했으리라.

자퇴는 하고 싶지 않은 능연은 3학년 이후, 옆에서 방해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병원 고위층은······ 방해 축에도 들지 못했다.

“어떤가?”

조바심이 난 왕 주임이 먼저 물었다.

“노년성 반월판 손상입니다. 테두리에 부유하는 뼈 찌꺼기와 조각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층 파열이 매우 의심됩니다.”

능연은 간단하게 설명했고, 왕 주임은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평소에 그와 대화하는 의사는 모두 부드럽고 완곡하게 표현했는데, 이렇게 강경하게 대답하는 하드코어 의사는 처음이었다.

“심각한가?”

“손상 정도가 조금 심합니다.”

능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일부러 배워뒀던 환자가 좋아하는 대화 방식으로 말을 이었다.

“반월판 성형술을 채택한다면, 보다 치료 효과가 좋을 겁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병이 생기면 마주 하고 싶지 않은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 왕 주임도 무심결에 주치의를 바라봤다.

“능 선생이 수술한 환자들을 리스흘름(Lysholm Knee Scale: 무릎 관절 기능 점수)으로 평가했을 때 대부분 90점 이상이었고 80점 이하도 겨우 두 명이었습니다. 성과가 아주 좋습니다.”

왕 주임은 그 말에도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럼 바로 수술할까요?”

“지금?”

시계를 본 능연이 이만하면 시간을 꽤 끌었다고 생각하고 말하자, 왕 주임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네, 수술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수술하러 온 건 맞네만······.”

왕 주임은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지, 입원하고 수액 맞고 뭐 어쩌고 그런 거 있지 않나.”

왕 주임의 말에 뇌 주임이 ‘내 말이 맞지?’하는 표정으로 능연을 봤다. 능연은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휘둘러보며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며칠 있다가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더 손상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 말에 오히려 왕 주임이 결단을 내렸다.

“그럴 것 뭐 있나, 그럼 오늘 바로 하세.”

“네, 그럼 바로 준비하시죠.”

능연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하자, 탕 국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 선생, 왕 주임님 수술, 잘 부탁하네. 신경 써야 해.”

이제 어느 정도 그런 당부에 익숙해진 능연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탕 국장은 병원 고위층과도 하나하나 악수를 했다. 그리고 병원 고위층들도 당연히 능연을 붙잡고 진지하게 당부했고, 능연은 서서 들으면서 그 특별 의식을 거행한 후 밖으로 나갔다.

왕 주임의 손녀가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포니테일을 휘날리며 밖으로 따라 나갔다.

17세 소녀는 건강한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특별 병동의 환하고 넓은 복도를 달려 순식간에 복도 끝까지 도착했다. 소녀는 멈춰서서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로맨틱한 설렘을 달래며 사방을 둘러봤다.

할아버지의 무릎을 꼭 낫게 해달라고, 능연에게 말할 준비를 이미 해두었다. 능연 선생이 약속대로 할아버지의 무릎을 고치면, 그 역시 약속대로 능연 선생님에게······.

복도 끝까지 다시 달려간 소녀의 눈에 여전히 능연이 보이지 않았다.

17세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청춘의 발걸음을 멈추고, 곁에 있던 간호사를 잡아끌었다.

“안녕하세요, 능연 선생님 못 보셨나요?”

“내려가셨습니다.”

“응? 엘리베이터로 가셨나요?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죠?‘

간호사는 소녀의 등 뒤를 가리켰다.

”능 선생님, 반대쪽으로 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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