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선생은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왕 주임을 밀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염 선생도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혹시라도 필요하면 본인이 수술을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암암리에 슬관절경 수술 과정을 익혀 두었다.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일반 외과 출신이라 복강경은 한 적 있지만, 슬관절경 수술을 이어받아서 한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가 어떻게 수술을 진행할 것인지, 의사가 어떤 동작을 왜 하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했다.
“수술실은 참 춥구먼.”
왕 주임이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는 자신의 사람 앞에서만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 그것도 낮은 목소리였고, 기분도 평온한 상태였다. 윗사람이 편안한 상태이니, 염 선생도 편안했다.
“수술실은 항온입니다. 이따 간호사가 마취약을 놓을 겁니다. 처음엔 조금 따끔하다가 점점 괜찮아지실 거예요.”
“음.”
“그······ 아드님이 오는 중이라던데, 내일 오후에야 도착한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될까요?”
“효심에서 오는 건데, 시간에 못 맞추면 그만이지 뭐 기다릴 거까지 있겠나. 원원이도 있고 괜찮다네.”
왕 주임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할 때도 조심해서 하게. 괜히 사람들 곤란하게 하지 말고. 알겠나?”
“예.”
“고작 슬관절경 수술인데 어려울 것도 없지 않나. 너무 소란 떨 거 없네. 알겠지? 그리고 의사들도 너무 당황하지 말고 할 거 하라고 하게.”
“예.”
왕 주임이 입을 다물자, 염 선생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자네 생각엔 어떤가? 어려운 수술인가?”
수술대에 앉아 잠시 입을 다물었던 왕 주임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유일한 ‘자기 사람’을 향해 불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어려운 수술은 아닙니다. 그래도 아주 잘하려면 기술은 필요하지요.”
말을 끝낸 염 선생이 바로 덧붙였다.
“요 몇 달간, 국내 유명한 슬관절경 전문가를 조사했습니다. 능연은 젊긴 하나, 반월판 성형술은 그중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노년 환자도 많고, 큰 수술 경험도 있고요. 나이 말고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 나이야 오히려 좋을 때 아닌가.”
“예.”
왕 주임은 자신의 마음도 달랠 겸 그렇게 말했다. 치료는 의료진이 고민하면 될 일이고, 그가 할 일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치익.
수술실 문이 열리고 능연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마취의와 간호사들도 함께 들어왔다. 그들로서는 이 수술이 다른 수술보다 더 응급 사고 같았다. 모든 인원이 다른 수술 중에 불려 나왔고, 구체적인 상황도 모르고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였다.
일반 환자 수술할 때도 그렇지만 말이다. 생산 라인처럼 수술을 해대는 시스템에선 그랬다. 특히 주임급 의사는 수술대 위에서야 겨우 환자의 차트와 환자의 상태를 보는 경우도 있다.
“마취하시죠.”
능연은 긴말할 생각 없이 왕 주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시를 내렸다. 마취의도 익숙한 소가복이 맡았다.
소가복은 긴장한 듯 의자에 앉아 있다가 절뚝절뚝 환자 곁에 다가갔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카메라 위치를 살폈다.
고해상도 영상과 참관실은 없는 수술실이었지만, 수술 장면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능연의 수술이 아니었다면, 소가복은 5년 심지어 10년 후에나 이런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높은 분의 마취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일종의 시험 같아서, 이번에 좋은 성적을 내면 앞으로 비슷한 수술에 소가복의 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소가복은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했다.
“자세 좀 잡겠습니다.”
왕 주임은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랐고, 능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염 선생은 무거운 분위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러나 집도의가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참관하는 의사가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은 의사로서 염 선생은 수술실이 얼마나 욕먹기 좋은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의사라도 수술실에 오면 자아를 놓게 된다. 아니, 대단한 의사일수록 수술실에서 자아를 놓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술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욕은 기분을 푸는 데 아주 좋은 수단이 된다.
수술을 잘한다는 건 손으로 하는 작업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탄력 있는 파이프에서 골프공을 꺼내는 난도를 상상해보면 된다. 순조로우면 몰라도, 이물질을 꺼내는 수술을 서너 시간, 대여섯 시간 하다 보면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염 선생은 욕받이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탁.
탁탁.
탁탁탁.
염 선생의 귓가에 쉴 새 없이 기구를 전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크게.
능연이 수술을 시작한 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고, 관절경 수술도 몇 달이 되었다. 스크럽 간호사도 능연의 순서를 모두 기억해서, 그가 말하기도 전에 필요한 도구를 척척 내놓았다. 물론 수술 순서를 바꿔야 할 땐 능연이 먼저 코치를 준다.
그러나 이날은 불필요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왕 주임은 고위 행정직 관원이고, 온 운화병원이 특별히 대하는 특수한 환자지만, 특별한 질환은 아니었다. 그의 슬관절 반월판도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증상이었다.
보통 노인의 반월판처럼 왕 주임의 반월판도 똑같았다.
15분 후, 능연은 허리를 펴고 끝났다고 선언했다.
“끝?”
무슨 말로 수술실 분위기를 풀어볼까, 내내 고민 중이던 왕 주임이 멍해져서 의아한 듯 물었다.
“네. 성공적이었습니다. 내일부터 바로 다리 드는 연습 하셔도 됩니다.”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돌리고는 수술실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자 염 선생이 황급하게 그를 불렀다.
“절개구 봉합이랑 드레싱도 능 선생이 좀 해주지.”
염 선생은 능연에게 미친 듯이 눈치를 주었다. 장난해? 어떤 분 수술인데, 주치의가 이대로 나가려고?
능연이 머뭇거리자 소가복도 바로 달려 나와 의자를 내밀었다.
“능연아, 여기 앉아서 왕 주임님 봉합이랑 드레싱까지 해드려.”
살짝 미간을 찌푸리던 능연은 결국 말없이 다시 앉아 봉합을 시작했다. 전에도 자주 마무리 봉합까지 하곤 했다. 특히 밖으로 드러난 피부 부위는 조수에게 넘기기보다 직접 한 경우가 더 많았다.
0.5cm밖에 되지 않는 슬관절경 절개구는 니들홀더를 받고 두어 번 만에 마무리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능연은 다시 머뭇거렸다.
“능 선생, 드레싱도.”
소가복이 하는 말에 능연이 드레싱도 계속했다.
그리고 드레싱이 6분 동안 이어졌다.
뭔가 잘못됐다고 염 선생이 느꼈을 때, 이미 거대한 붕대가 볼록 솟아있었다.
“드레싱을 별로 안 해 봐서요.”
본인도 드레싱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지, 능연이 특별히 한마디 덧붙였다. 염 선생은 화도 낼 수 없어서 웃음을 참으며 멍하니 있었다. 세상에 만상에, 왕 주임님이 연습 상대가 된 거냐?
“허허, 능 선생은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수술에 쓴 모양일세.”
왕 주임이 갑자기 감탄하며 한마디 했다. 환자인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능연의 실력이 최고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밖에 복도에서 갑자기 왕 주임 손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염 선생이 황급하게 수술실 문을 열고 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가씨, 여깁니다.”
“아!”
손녀가 한숨을 내쉬며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길을 못 찾아서요. 수술 아직 시작 안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