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병원.
원장 집무실의 돈나무가 창밖에 줄 지어선 고급 세단을 바라보며 잎을 흔들었다.
공기 청정기가 빵빵하게 돌아가도 방 안의 연기를 날리지 못했다. 곽종군은 연기 사이로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관찰했다.
정형외과 주임, 흡연 중.
의교과 주임, 미칠 듯이 흡연 중.
부인과 주임, 흡연 중.
산과 주임, 흡연 중에도 부인과 주임을 계속해서 노려봄.
수부외과 주임, 담배 못 피움. 불쌍함.
곽종군이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깊이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청정기 방향이 수부외과 금서 주임을 향했을 때 후우하고 내뱉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금서 주임이 코를 찡그리더니 맹렬하게 기침을 해댔다.
“아이고, 금서 주임 담배 안 피우는 걸 내가 깜빡했네.”
옆에 앉아 있던 골초인 호흡기 외과 주임이 하하 웃으며 앞에 있던 재떨이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겼다.
“좀 멀리 두겠네. 건강에 안 좋으니까.”
“홍 주임, 폐암 수술하는 사람이 그렇게 피우면 안 힘듭니까?”
“금 주임이 간접 흡연할까 봐 내가 이렇게 피우는 거 아닙니까.”
금서 주임이 허허 웃으면서 하는 말에 홍 주임이 대답하고는 담배를 빨아들여서 폐에서 한 바퀴 굴린 다음 새하얀 연기로 뿜어냈다.
“내 연기랑 다른 사람 연기랑 다르지? 다들 충분히 빨지 않아서 저렇게 연기가 많이 나오는 거라고.”
수부외과 주임 금서는 홍 주임을 손가락 8개 잘린 환자 보듯 바라봤다. 그때 원장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자, 이제 다른 의견 없으면······.”
“잠시만요.”
“안 됩니다!”
“원장님!”
사람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냈다.
금서 주임도 허리를 곧추세우며 말을 꺼냈다.
“지금 경비가 빠듯하지 않습니까. 우리 과는 지금 재활실도 뺏겨서······.”
“금서 주임, 나도 수부 재활실을 뺏고 싶어서 뺏은 게 아니에요. 하지만 어쩝니까? 능연이 하루 종일 수술을 해대는데. 재활실 없이 됩니까?”
곽종군이 자기도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자 금서 주임이 얼굴을 찌푸렸다.
“능연을 핑계 삼지 마시고요.”
“핑계가 아닙니다. 보세요, 능연이 요즘 특별 병동에 있느라 수술 안 했죠? 지금 재활실 비었죠? 에휴, 내가 응급센터를 억지로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 필요해서 하는 거예요.”
“왕 주임님을 방패막이로 삼지 마세요. 고작 슬관절경 수술 아닙니까? 아무 과에 가서 골라 보세요, 그 수술 못 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운이 좋아서 그렇지······.”
정형외과 주임이 언짢은 듯이 하는 말에 곽종군이 가슴을 내밀며 말을 끊었다.
“운이 아니지요. 그쪽에서 찾아온 겁니다. 우리 능연을 콕 찍어서요. 제가 거짓말하는 겁니까? 아니지요? 그럼 정형외과에서도 왕 주임님 같은 사람 불러오세요.”
정형외과 주임의 눈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단지 이식은 수부 외과의 일부분이지만, 슬관절경은 완전히 정형외과 지분을 건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반월판 이식 수술은 보형물이 필요 없어서 정형외과에서 등한시하긴 해도 왕 주임 같은 환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급센터는 필요합니다.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요.”
“원장님!”
정형외과 주임이 비통한 목소리를 냈다.
“찬성, 반대. 다 잘 들었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회의니까 사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이 기회에 응급센터 만들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게 어디 우리끼리 사적으로 하는 말입니까? 이게 공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요?
정형외과 주임이 속으로 울부짖었다.
뿌듯한 듯 웃던 곽종군이 순간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왕 주임의 도움으로 그의 대형 응급센터 계획이 단번에 이뤄진 셈이다. 이제 몇몇 주임의 이견은 반대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불만이나 터트리는 것에 불과했다.
원장도 그런 불만 해소 차원에서 회의를 마련한 것이고, 불만을 털어놓고 나면 각자 할 일을 하리라 믿었다.
“맞다, 며칠 내로 능연 파일 가지고 오게.”
“정원 났습니까?”
원장이 갑자기 하는 말에 곽종군이 대뜸 물었다.
“없어도 만들어야지. 아무튼, 능연을 잘 지켜야 하네.”
“당연하죠. 그럼 면허는요? 일찍 받을 수 있답니까?”
“응. 특별한 사람은 특별 대우를 해야 하지 않겠나.”
원장은 곽종군을 부드러운 태도로 대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곽종군은 최선을 다해서 아부했다. ‘진작에 안 하고 뭐 했냐’ 같은 말은 꿀꺽 삼키면서.
회의실을 나선 곽종군은 바로 특별 병동으로 날아갔다. 꼭대기 층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예의를 갖추고 살짝 문을 두드렸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왕 주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곽종군은 왕 주임이 직접 문을 열고 나온 모습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왕 주임님?”
곽종군이 위아래로 살피자 왕 주임이 말도 안 되게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이제 혼자 문도 연다네. 어떤가?”
“대단하십니다.”
잠시 멈칫하던 곽종군이 눈치 빠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엄지도 들었다.
“무릎도 안 아프다네.”
왕 주임은 진심에서 우러나서 웃는 얼굴로 문을 닫고 손잡이도 돌려 눌렀다. 간병인과 경호원은 혹시라도 그가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그의 곁을 바짝 따르면서 조심스럽게 그의 행동을 살폈다.
곽종군은 실눈을 뜨고 입을 삐쭉 내밀고 ‘애냐?’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능연을 찾으러 안으로 들어갔다.
능연은 여전히 논문 쓰느라 열심이었다. 능연의 뒷모습을 본 곽종군은 저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순수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순수한 의사 생활하는 걸 다들 얼마나 바라는지 몰라.
곽종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능연 곁으로 가서 앉았다.
“능연, 바쁜가? 내가 할······.”
“바쁩니다.”
능연이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곽종군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바로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응급센터가 완성되면 자넨 어쩔 셈인가?”
상대가 질문을 던진 이상, 능연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응급센터 곧 완성됩니까?”
“아직은 말하기 좀 그렇네만. 그럴 확률이 높지.”
슬쩍 왕 주임을 본 곽종군은 그가 문 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습에 살짝 실망했다.
“아, 그럼 침대는 몇 개가 됩니까?”
“200이 기본이지. 많으면 220? 230?”
사실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병상 수 규정은 의료진 수에 비례하는 것인데 현재 운화병원 병상만으로도 응급센터에 간호사를 백 명 이상 늘려야 한다. 그 중엔 계약직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문제가 많다. 일단 의료진 수가 확정되어야 병상을 늘릴 가능성도 생긴다.
병상 수에 흡족한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열심히 하겠습니다.”
“누가 그런 걸 물었나. 내 말은, 앞으로 치료팀 하나를 정식으로 맡으라고 하면 어쩔 셈인가.”
능연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심사숙고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모든 팀원에게 알콜겔 두 병을 나눠주고, 하나는 늘 휴대하고 하나는 비품으로 가지고 있게 하면서 의료 과정 풀 무균 상태를 책임지겠습니다.”
능연의 심사숙고한 표정을 바라보던 곽종군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막 생각한 게 아닌 것 같구만.”
“병원에 왔을 때부터 생각한 겁니다. 이런 생각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 좋은 생각일세. 하하하.”
곽종군은 큰 깨달음을 얻고 껄껄 웃었다.
이 세상에 순수한 사람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