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문빈은 크고 깊은 국솥을 메고 성큼성큼 걸었다.
최근 한 달 동안 응급의학과는 응급센터로 승급하기 위한 준비로 전 인원 조정에 들어갔고, 능연조차도 주요 업무가 수술에서 논문 쓰기로 옮겨갔다.
응급의학과 수술량은 대폭 줄었고, 연문빈은 헬스장에 있는 시간이 주방에 있는 시간을 곧 따라잡을 것 같았다. 그것은 눈에 띄는 효과로 나타났고, 스쿼트 자세로 족발을 가볍게 졸여냈고, 국솥도 장난감처럼 메고 다니게 됐다.
응급의학과 병동 뒤의 창고 쪽에 도착한 연문빈은 경계하며 주위를 살피고 보는 사람이 없자 건축 현장을 가로질러 빠른 길로 맨 앞에 있는 창고로 갔다.
이제 응급센터 병실 구역으로 개조될 창고는 현재 메인 구조 시공이 거의 끝나가는 상태로 인테리어 작업이 한창이었다.
연문빈은 창고 2층 동쪽 구역 식당으로 곧장 달려가 시공이 어서 완성되길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어서 조리 도구를 옮겨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새로 지은 주방은 비좁은 응급의학과 휴게실과 달리 면적이 넓어서 수백 근 족발을 아무렇게나 놓고 마음대로 삶기에 충분했다.
커다란 솥을 내려놓은 연문빈은 창문을 열고 양쪽에 공기 청정기도 틀어놓고는 베란다로 나가 방 안의 냄새가 빠지길 기다렸다.
응급센터 인테리어는 단순하고 냄새도 그다지 진하지 않아서 연문빈은 곧 그곳 분위기에 적응했다. 적응 안 하려야 안 할 수도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병원은 우선 건물을 짓고 나중에 인테리어를 하는 같은 방식으로 확장해왔다. 응급센터로 승격하지 않았어도, 응급의학과를 새로 리모델링할 필요는 있었다.
연문빈은 자신의 족발을 손에 들고 냄새를 맡으면서 조심스럽게 체크하고는 이상한 냄새가 배지 않은 것을 확인한 다음 다시 조림 국물 안에 넣었다.
그는 시장 근처에 방을 하나 빌렸고 족발 사서 씻을 사람도 고용했다. 매일 아침 연문빈은 족발을 고르기만 하고 나머지는 아랫사람에게 맡겼다가 졸이는 단계가 되면 다시 맡아서 관리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술할 시간이 없었다.
연문빈은 족발을 솥에 잘 넣고는 준비해둔 재탕 국물을 조심스럽게 솥 안에 부었다. 짙은 국물이 새하얀 족발에 튀는 걸 보는 연문빈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에게는 족발을 졸이는 시간이 가장 빨리 흘러가고 가장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연문빈은 고용한 직원을 불러다 놓고 빠른 걸음으로 응급의학과 병실 구역으로 돌아갔다.
“멈춰! 손 씻었어?”
왕가가 응급의학과 병실 구역 좌측 통로에 서서 고함쳤다. 중간 정원을 둘러싼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관찰 병동은 좌우로 나누어져 있는데, 능연의 치료팀이 생긴 후 좌측 구역은 모두 능연의 담당이 되었다.
곽종군을 비롯한 사람들은 능연이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는 공간을 분리하는 유리문을 통해 좌측 병실 구역 앞쪽에 나타나서 감시했고 간호사들이 팀을 나눠 그 역할을 분담했다.
오늘이 마침 왕가 차례였다.
연문빈은 이제 집도 사고, BMW도 사고, 탕 봉합법을 배우고 있었지만, 여전히 레지던트 신분이었다. 레지던트 연문빈은 어이없다는 듯 간호사를 바라봤다.
“잠깐 나갔다 온 거고, 아무것도 안 만졌어.”
“안 돼! 능 선생님이 출입하는 의사 모두 손을 씻어야 한다고 했어! 주임님도 예외가 아니라고!”
“나는······.”
단호한 왕가의 모습에 연문빈은 고개를 늘어뜨리고 순순히 문 쪽에 알콜겔을 짜서 손을 닦았다.
“골고루 발라! 손가락에서 손목까지 다 발라야 해!”
왕가는 엄한 목소리로 명령하며 족발 보듯 연문빈의 손을 바라봤다. 연문빈은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 그 말대로 알콜겔을 골고루 바르고 병실 구역으로 들어갔다.
병실 구역 안에 순회 간호사 네 명이 손에 알콜겔을 들고 눈을 희번덕이며 복도를 오가는 의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문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통과했다.
병원엔 새로운 진료과, ‘원감과’가 탄생했다.
원감과의 전체 명칭은 병원 감염 관리과였고, 의료 활동 때문에 의료원성 감염이 환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관리하는 부서였다. 병원에서 환자가 감염된 케이스가 많아서 원감과 같은 부서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탁상행정으로만 끝났고, 대다수 병원의 원감과의 효율은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원인을 따지면 모두 의료진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병원 자체도 딱히 지지하지 않았고, 힘 있는 리더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감과는 전형적인 힘만 들고 보람 없는 부서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의료진은 원감과 업무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능연이 능연 팀 팀장이 된 이래 그의 요구는 간호사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었다.
병원 생활에서, 수술실이 집도의의 천하라면 수술실을 제외한 병실 구역은 간호사들의 것이다. 어느 병실을 불문하고, 의사와 환자는 과객일 뿐이고 오직 간호사만이 영원한 존재였다.
“손 씻으셨어요?”
“씻었습니다. 껍질이 다 벗겨지겠네요.”
간호사 한 명이 연문빈을 지나치며 인상을 쓰며 물었다. 연문빈은 바로 손을 내밀어 보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알콜겔 소량 바르는 거로 피부가 상하지 않는다고 능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아무리 그래도 계속 치덕치덕 바르면 안 좋지 않겠어요?”
간호사가 진지하게 바로 잡아 주자 연문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피부 상하셨어요?”
“아직······.”
“그럼 안 상한 거죠. 나중에 피부 상하면 다시 말씀하세요. 능 선생님이 틀릴 리 없으니까.”
“능 선생이 틀릴 리 없다는 건 어떻게 알아요.”
“잘생겼으니까요!”
연문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는 말에 간호사가 가슴을 쭉 펴고 힘차게 고함쳤다. 연문빈은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어 눈만 끔뻑였다.
“환자 좀 보고 올게요.”
연문빈은 간호사의 설교를 피해 제일 가까운 병실로 도망쳤다.
병실 벽에 알콜겔이 걸려 있었다. 병상마다 곁에 알콜겔이 걸려 있었다. 창틀, 문 뒤 어디든 알콜겔이 걸려 있었다.
“환자하고 접촉하기 전에 손 소독은 필수입니다! 새로운 환자를 볼 때도요!”
다른 간호사가 복도에서 나와 머리를 내밀고 고함치면서 ‘산욕열의 교훈을 잊지 말자.’고 덧붙였다.
산욕열은 19세기에 흔하던 병이었다. 의사가 시간 절약하느라 손 소독 과정을 생략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아이 낳은 산모가 밖에서 낳은 산모보다 훨씬 많이 감염된 케이스였다.
의사라면 누구나 그런 흑역사를 잊고 싶어 하고 연문빈도 예외가 아니었다.
“책임감 있는 간호사와 강박증 의사, 지긋지긋하군!”
“손 소독 거부하시는 겁니까?”
간호사가 언제든 불겠다는 기세로 목에 건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연문빈은 하하하 세 번 웃어주고는 조금 전에 발랐다는 말도 하지 않고 알콜겔을 짜 손에 문질렀다. 그러고 한참 후에 환자를 만지는데도 말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즐거운 얼굴로 그런 광경을 지켜봤고, 연문빈의 마음도 차차 진정됐다.
손 씻는 일은 대수로운 일도 아니고, 능연이 그렇게까지 고집하니 연문빈도 일부러 거역할 생각은 없었다.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능 팀은 며칠 만에 그렇게 알콜겔을 끼고 사는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