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33화 (214/877)

“잠시만요! 들어가기 전에 손 소독해야 합니다. 담배 피우면 안 돼요!”

왕가는 암사자처럼 응급의학과 좌측 통로를 누비며 사냥감을 찾아 헤맸다. 시력도 좋고, 간도 큰 그녀는 호흡기 외과 주임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호흡기 외과 주임은 동행한 의사들과 얼굴을 마주 보다가 껄껄 웃었다.

“자네, 나 모르나?”

“알아요. 호흡기 외과 홍 주임님이시잖아요.”

“그런데도 붙잡아?”

“전 주임님을 알지만, 세균은 모르잖아요!”

간호사 교육을 착실히 받은 왕가는 그런 때 대답할 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홍 주임은 얼떨떨한 듯 멈칫했다가 다시 하하 웃었다.

“어린 아가씨가 참 재미있군.”

“말도 참 잘하네요.”

같이 있던 의사들도 따라 웃으며 호응했다.

“칭찬하셔도 소독은 해야 합니다.”

왕가는 두려울 게 없었다. 홍 주임이 아무리 호흡기 외과 대빵이라고 해도 어차피 호흡과 소속이고 간호사들은 관리부 소속이었다.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는 왕가가 수술실 밖에서 존중할 의사는 곽종군 하나뿐이었다.

물론 능 선생은 다들 마음에서 우러나 존중하는 것이며, 레벨이 다른 문제였다.

어린 간호사와 옥신각신하기도 민망한 홍 주임은 그저 싱긋 웃고는 문 쪽 알콜겔을 짜서 대충 손을 문질렀다.

“골고루 바르셔야 해요.”

왕가가 진지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알콜겔을 꺼내 홍 주임 손바닥에 쭉 짰다. 홍 주임도 이번엔 정말로 언짢아졌지만, 티는 내지 않고 크게 헛기침하며 손을 문지르고 병실로 들어갔다.

알콜겔은 바로 증발하는 소독제라서 비누 같은 다른 소독 방법보다 훨씬 편리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수술실 밖에서 소독하는 걸 좋아하는 종족이 아니고, 홍 주임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가는 경쾌한 걸음으로 뛰어갔고 잠시 후 응급의학과 수간호사가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비슷한 수간호사 앞에서 홍 주임은 조금 더 점잖게 굴었다. 초짜 시절이 있었던 사람은 수간호사를 보면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든 사자가 커다란 승냥이나 이리를 보면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리는 것처럼 말이다.

“응급센터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한 번 보러 왔습니다. 허허.”

홍 주임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며 온 이유를 설명했다.

“편하게 보시죠.”

수간호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를 졸졸 따랐다.

“곽은?”

“처치실에 계십니다.”

뜨끔해서 묻던 홍 주임은 그 말에 살짝 마음을 놓았다.

“바쁘구만.”

“환자가 시간 가려서 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음. 자네들 응급센터 책임이 무겁겠구만. 병원에서 이렇게 신경 써주다니 말이야. 우리 호흡기 외과는 원래······.”

“자네 호흡기 외과가 우리 응급센터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병실을 휙 돌아보고 별 재미 없다는 듯 다시 돌아 나오는데 곽종군의 목소리가 계단 쪽에서 들렸다.

“계단으로 온 겐가?”

“운동도 할 겸.”

의외라는 듯 계단 쪽을 흘끔 보고는 묻는 홍 주임의 말에 곽 주임은 냉랭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한 대 하겠나?”

대빵 홍 주임이 담배를 꺼내더니 ‘흡연 금지’ 팻말 바로 밑에서 불을 붙였다. 곽종군은 아무런 말 없이 홍 주임의 팔을 붙들고 비상 통로 안의 쓰레기통 옆으로 끌고 갔다.

“홍 주임, 자네가 이렇게 어슬렁거리고 다닐 성격도 아니고, 뭔가? 할 말 있으면 하라고.”

“왕 주임은 돌아갔나? 회복이 꽤 잘 됐다면서?”

“음. 평점 92. 스스로 벽 짚고 돌아갔네.”

곽종군은 뿌듯한 표정을 슬며시 드러냈다. 홍 주임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머지 담배를 다 피우고는 새로 꺼내 불을 붙였다.

“작은이모가 무릎이 계속 안 좋아. 진찰도 해 봤는데, 반월판 성형술도 고려하고 있다네.”

거기까지 말한 홍 주임은 더는 말을 잇기 민망한 표정이었고, 마음을 헤아린 곽종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능연에게 한 번 물어보도록 하지.”

홍 주임은 ‘갑옷을 입어 예를 갖출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피웠다. 그와 함께 온 의사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최대한 투명인간처럼 굴었다.

의사가 의사의 실력을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사회에서 의사의 명성과 유명세를 같은 의사가 인정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이다.

홍 주임은 곽종군이 중간에 없었다면 마음이 조금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환자는 언제 오나?”

능연과 통화를 끝내고 곽종군이 묻자, 담배 두 개비째 피우던 홍 주임이 아까운 듯이 한 모금 더 빨고 꽁초를 내던졌다.

“환자부터 오라고 해? 필름부터 안 보고?”

“우리 병원에서 다시 찍지 뭐.”

“그래, 그럼 그러자고.”

홍 주임은 원본이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외과 의사는 원래 다른 사람은 안 믿는 종족이었다. 다른 병원에서 찍은 영상 자료를 받든, 다시 찍든 모두 집도의의 선택에 달렸다. 얼굴을 찌푸리고 찾아왔던 홍 주임은 만족해서 돌아갔다.

곽종군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내가 아니고 능 선생이 맡게 되는 것 말이다.

능연은 수술실에서 세 손가락 단지 환자 이식 수술을 아껴가며 하고 있었다.

응급의학과에서 능 팀을 만들었지만, 조금 정규화된 것 외에 능연이 수술하는 데는 별다른 영향은 없었다.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자 스스로 수술량을 줄인 바람에, 능연은 지금 모처럼의 세 손가락 이식 수술을 손이 근질근질한 상태로 하고 있었다.

“좌 선생님, 스킨 봉합하세요.”

능연은 주요 과정을 신속하게 마치고 피부 봉합 과정을 넘겼다. 좌자전은 조심스럽게 자리를 바꿔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능연이 혼자 수술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밖에서 기다리던 제약 회사 사원이 들고 있던 옷을 그에게 걸쳐주었다.

“능 선생님, 너무 고생하셨어요. 수술이란 게 원체 육체노동이죠.”

좌자전은 수술실 창문을 통해 그 장면을 훤히 바라보며 수술실 밖으로 뛰쳐나가서 직접 시중들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선생님,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사양 말고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해결할 수 있으면 바로 해결하고, 안 되는 건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빠른 속도로 걷던 능연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슬리퍼 있습니까?”

“슬리퍼요?”

“수술실에서 신을 슬리퍼요.”

능연은 수술실 밖 큰 상자를 가리켰다. 원래 슬리퍼를 담아두는 상자였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의사는 일단 슬리퍼부터 갈아 신어야 한다. 오래된 슬리퍼엔 세균이 득실득실하기 마련이니까.

제약 회사 사원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능연이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어 보인 후 계속 그의 병실 구역을 정돈하러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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