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37화 (218/877)

곽종군은 흥분한 감정을 억누르며 걸음을 서둘렀다.

응급센터 간판식엔 운화 시 고위층도 초대했다. 하지만 그건 병원 고위층들의 시간이지, 곽종군의 시간이 아니었다.

응급센터 건립이 결혼이라면, 혼인증서 받는 날인 간판식에 들러리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결혼식 날이니, 너무 크게 열 필요는 없지만 널리 알릴 필요는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무대 위에 새 출발 하는 사람이 반드시 곽종군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자니 광고 효과가 좀 떨어졌다.

곽종군 님은 의료계에 어느 정도 명성도 있고, 옛 친구들도 있지만, 대스타가 현장에서 SNS로 좀 띄워주면 더 효과가 좋으리라. 다른 건 몰라도 집에 가서 아내와 딸에게 자랑거리는 되니까 말이다.

“곽 주임님.”

능연이 먼저 문을 열고 그를 부르자, 곽종군은 바로 걸음을 늦춰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침착하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맹설 씨! 안녕하십니까! 저도 팬입니다. 자주 프로그램도 보고요.”

곽종군이 속사포처럼 칭찬을 늘어놓았다.

좌자전은 언제 왔는지 조용히 능연 뒤에 서서 곽 주임의 말을 조용히 들으면서 노트를 꺼내 새 메모를 적었다. 인생 경험 풍부.

곽종군은 궁금증을 누르고 열정적으로 대스타를 대접했다. 곽종군 나이쯤 되면, 호기심을 채우는 일은 인생 우선순위 223위 정도로 나열하고 모르는 척하는 게 진리라고 여긴다.

“능 선생님한테 추나 받으러 왔다가 응급센터 설립 소식을 들었네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아이고, 센터가 이제 막 생겨서 아직 어수선한데, 민망합니다. 하하하.”

생긋 웃는 맹설의 말에 곽종군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을 위해 청소만 일주일 넘게 했다. 그냥 청소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거창하게 소독약까지 뿌려댔으니 창고에 살던 세균도 싹 죽었을 것이다.

“사무실이 좁으니, 저쪽 회의실로 갑시다.”

“아니에요,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에요.”

맹설은 스카프를 두르고 선글라스도 꼈다.

“아······. 그럼 제가 배웅하도록 하죠.”

곽종군은 손을 비비며 싱긋 웃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어느새 달려온 간호사들을 멀리 쫓았다. 맹설은 웃는 얼굴로 그 뒤를 따랐고, 능연은 편안하게 그 뒤를 따라가면서 양쪽에 나란히 놓인 꽃바구니를 무심하게 바라봤다.

정부에서 보낸 작은 바구니, 제약 회사에서 보낸 커다란 호화 바구니, 성립 병원에서 병원 이름으로 보낸 것, 육군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이름으로 보낸 것, 모 환자, 예를 들어 소 사장 같은 사람이 개인 이름으로 보낸 것들이 가득했다.

능연은 소 사장의 꽃바구니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소 사장의 이름을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장면이 떠올랐다.

“정말 산우 오빠야?”

“맹설이 왔다고요?”

“곽 주임!! 얼굴 가리잖아, 고개 좀 숙여! 맹설 씨!”

젊은 의료진은 모두 몰려들었고, 그렇게 젊지 않은 사람도 흥미진진한 얼굴로 곽종군 뒤를 힐끔거렸다. 역시 응급 포럼 따위보다 스타의 위력이 확실했다.

로비에 있던 중년, 노년 의사들도 소리를 듣고 손자를 찾는 노인네처럼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곽종군은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뿌듯해져서 어금니까지 드러낼 지경이었다.

“안녕하세요!”

사람이 많아지자 맹설은 과감하게 선글라스를 벗고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의사들은 마취제라도 맞은 표정이었다. 구안와사, 심박 가속, 호흡 곤란에 얼빠진 놈, 넋 나간 놈 다양하게 있었다.

“맹설!”

“산우 오빠다!”

“정말 맹설이라고?”

“말도 안 돼!”

“맹설 이 한 번 뽑아 봤으면. 일주일 굶을 수 있을 거 같아.”

“저 몸매면 복강경도 아주 정확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눈앞의 광경이 너무 익숙한 맹설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서 있던 의사들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퍽.

거대한 소리에 주위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어디 소속인지 모를 의사가 너무 흥분했는지 화분을 밟고 올라서다가 기우뚱해서 머리를 꽃바구니에 박으면서 상쾌한 소리를 냈다.

맹설도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저 녀석이.”

“스트레처 카!”

“좀 비켜! 지나갈 자리 좀!”

“구급차 불러!”

“어디 아프냐? 여기가 응급센터이잖아.”

갑자기 정신 차린 의사들이 웅성웅성 대며 할 일을 나누기 시작했다.

능연이 방향을 틀어 그 김에 맹설을 붙들고 자기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괜찮겠죠?”

“안 괜찮아요.”

머리가 새하얘져서 묻는 맹설의 말에 능연이 그렇게 대답하다가 잠시 멈칫하고는 다시 이었다.

“당신이랑 상관없으니까, 사무실에서 나오지 말고 기다려요.”

“걱정 말아요, 방해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 사람······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기절한 거 같아요. 뇌수종이 있을 수도 있고, 골절, 출혈, 쇼크, 우발적 발작, 장기 혼수상태, 사망 가능성도 있죠.”

능연이 술술 대답하면서 맹설을 사무실에 밀어놓고 기관지 절개 키트를 찾아 어깨에 올리고 방 안에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정확한 손 씻기 방법으로 손을 씻은 능연이 맹설을 향해 입을 꿈틀댔다.

“미안하지만, 문 좀 열어요.”

“아.”

맹설이 멍하니 문을 열자, 능연은 키트를 메고 손을 세운 채 복도 중앙으로 걸어갔다. 소 사장의 꽃바구니 위치까지 가니 넘어진 의사가 바닥에 똑바로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곽종군을 비롯한 응급의학과 대빵 그리고 신경과 부주임 두 명도 그 곁에 있었다.

“호흡 있어. 절개할 필요는 없네.”

능연을 힐끔 본 곽 주임이 말했다.

“아.”

능연은 감정 기복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앞으로 몇 발짝 나가서 의사의 호흡이 정상인 걸 확인하고서야 손을 내렸다.

“능 선생, 내가 들어 줄게.”

뒤를 바짝 따르던 좌자전이 능연의 대답도 듣기 전에 그의 등에서 키트를 내려 자기 등 뒤로 옮겼다.

“일단 좀 기다려보자고.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네.”

능연은 그런 유비무환 정신에 찬성하는 편이었다.

“응급처치팀 돌아가도 좋네.”

의사가 서서히 눈을 뜨자 곽종군이 명령을 내렸다.

“넘어지면서 벽에 부딪혔는데, 지금 어때?”

신경과 의사가 핸드라이트를 들고 이리저리 흔들다가 집어넣었다.

“괜찮습니다. 조금 어지럽네요?”

넘어진 의사 본인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해서 의문문으로 대답했다.

“CT 찍자고.”

신경과 의사가 몸을 일으켜 스트레처 카를 향해 손짓했다. 능연과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 몇 발짝 물러나 공간을 비웠다.

“아이구, 다행이네. 다행이야.”

까치발을 하고 보던 소 사장도 한숨 놓은 표정이었다.

퍽!

등 뒤에서 또 한 번 큰 소리가 났다. 이번엔 쓰러진 의사를 구경하느라 화분을 밟고 올라섰던 간호인이 쓰러졌다. 그의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날아가 소 사장의 꽃바구니에 쏙 들어갔다.

순간 다시 고요해졌다.

멍하니 있던 곽종군이 한숨을 내쉬었다.

“응급처치팀 다시 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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