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줄 섭시다. 팀 나누는 중입니다. 이제 응급센터 팀 순서입니다.”
의교과 초 선생이 명단을 들고 웃는 얼굴로 삐약이 실습생을 맞이했다. 대다수 실습생은 병원에 온 지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익숙했던 진료과를 떠나자 다시 달달 떠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괴롭혀 주고 싶었다.
초 선생은 실습생이 착하게 7팀으로 나눠 줄 선 모습을 보며 곁에 있던 접난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미소지었다.
“우리 응급센터는 원래 치료팀이 5팀이었는데, 확장해서 7팀이 되었습니다. 자, 7번 줄에 선 학생들 곽종군 주임을 따라가고요, 6번째 줄은 두 주임을 따라갑니다.”
초 선생이 리스트 내용을 부르자, 7번째 줄 학생들은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은 것처럼 사색이 되었고 다른 줄 학생들은 살아남았다고 얼굴이 환해졌다.
대부분 운화병원에서 실습한 지 일 년 된 학생이라, 응급의학과 곽종군 주임의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응급의학과로 로테이션 된 다음엔 어느 팀으로 가게 될지, 어떤 팀이 어떤지 굉장히 관심을 가져왔었다.
“팀 바꿀 순 없나요? 제가 몸이 안 좋아요.”
누군가 달달 떨면서 물었다.
“안 됩니다!”
초 선생의 엄한 한마디로 모든 조짐을 싹 짓밟아 버렸다.
“곧 실습이 끝나서 각 병원으로 가야 할 상황입니다. 마지막 진료과에서 주저앉고 싶은 사람은 없겠죠? 팀이 좋든, 나쁘든 바꿀 수 없습니다. 팀장이 필요 없다고 하면 모를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실습 성적이 어떻게 될지, 말 안 해도 잘 알겠죠?”
실습생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자 초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계속 발표할 테니 본인 소속을 잘 기억해 두고요. 다른 치료팀 선생 상황도 익혀 둡시다.”
“다른 진료과 실습생은 팀 안 나누는데요.”
곽종군 팀으로 들어간 다른 실습생 하나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의교과 출신 간부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인공 양식장에서 펄떡대는 것 같은 실습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진료과마다 각각 운영 정책이 다릅니다. 응급의학과에서 실습하기 싫으면 집에 가세요.”
일 년 수고를 헛수고로 돌릴 실습생은 없었고 다들 고분고분해졌다. 그제야 초 선생이 흡족한 듯 웃었다.
“2번째 줄은 이 주임을 따라갑니다. 이 주임도 응급의학과 부주임 의사고, 젊고 에너지 넘치는 의사입니다. 그래서 까다롭습니다. 다음 1번째 줄, 능 선생을 따라가면 됩니다.”
잠시 말을 멈춘 초 선생은 실습생이 웅성거리는 걸 보고 길게 소개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능연은 눈앞의 실습생들과 동기도 있고 같은 반 친구도 있어서 소개하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았다.
초 선생은 개인적으로 그런 ‘요행 승진’을 매우 반대하는 처지였다.
파격적인 발탁은 말이 좋아서 인재 존중이지, 따지고 들면 규칙을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규칙’은 바로 인재를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막 서른이 된 초 선생 본인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사람이었고,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능연은 그런 과정을 건너뛰었다고 생각하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실습생이 팀을 꾸리다니, 그런 건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응급의학과 곽 주임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의교과 뇌 주임도 묵인하는 데다가 운화병원 원장까지 찬성하니 초 선생은 괜히 나서서 물을 흐릴 생각이 없었다.
“다들 일 년 가까이 실습 생활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만 강조하죠.”
초 선생은 의교과의 위엄을 뽐내며 짝짝 손뼉을 쳤다.
“팀에 있는 의사가 나이가 많든 적든, 상급 의사 명령은 들어야 합니다. 곽 주임이 나이가 많으니까 듣고, 이 주임은 젊으니까 무시하고 그런 현상이 생긴다면 병원에서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막내 중의 막내 실습생이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실습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땐 학교를 갓 졸업한 패기라도 있었지, 지금은 반항 정신 같은 건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명령에 복종하고 지휘를 따르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초 선생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는 사람들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겨우 연설을 마쳤다.
“이 주임님 이야기를 꺼낸 것도 다 능연 팀 예방 주사 맞히기 위해서지 뭐.”
운화 대학 의대에서 온 항학명이 진만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나랑 바꿀래?”
진만호가 흥흥대며 물었다. 진만호는 곽종군, 항학명은 능연 팀에 배정받았다. 잠시 망설이던 항학명이 고개를 저었다.
“됐다. 곽 주임님이 더 무섭다.”
“응.”
진만호는 실망감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의 복잡한 마음에 비해서, 룸메이트인 진만호는 그다지 체면 구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만호가 있는 곽종군 팀은 죽음의 조라서 바꿔주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누군가 바꿔주겠다고만 하면, 정말로 능연 팀에 들어갈 생각이 있는데 말이다.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만호는 저절로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공짜 아침, 공짜 점심, 공짜 저녁, 공짜 야식, 공짜 간식······. 그리고 슬리퍼, 양말, 신발, 셔츠를 비롯한 수많은 공짜.
서민 무리에 숨어 사는 금수저 2세인 진만호는 사실 돈이 궁하진 않지만, 공짜라면 땡큐였다.
“저기, 능연은 뭐 좋아해?”
항학명이 다시 진만호 곁으로 와 나지막이 물었다. 그냥 시간을 때우는 실습생들과 달리 항학명은 운화병원에 남으려는 목표가 있었다. 적어도 좋은 실습 성적을 받아 운화 시에라도 남거나. 물론, 시간을 때우려는 실습생들도 운화병원, 운화 시에 남고 싶어 했다. 항학명처럼 열심히 하지 않을 뿐.
“그렇지, 능연이 쟤, 확실히 남다르게 좋아하는 게 있지. 사람들이 모르는 거.”
진만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실습 생활을 시작한 이래, 자랑할 일이 줄어 들었는데 다시 학교 때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그 말에 항학명의 눈이 번쩍였다.
“뭐? 뭔데?”
“예를 들어, 능연은 사실 먹는 걸 되게 따져. 뭐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진만호는 문득 주변 공기가 다 뜨거워진 것 같단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간호사 몇 명이 왜인지 진만호 곁에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뭔데요?”
“빨리 말해요.”
“말하다 말고 뜸 들이기 없기!”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들이 악마처럼 무서운 소음을 내자 진만호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 이건 그냥 내 추측인데······.”
“빨리 말해!”
간호사 세 명이 삼각형으로 진만호를 가둬버렸다.
“구운 음식 좋아해.”
진만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내 추측이야’ 하고 덧붙였다.
“일리 있는데? 능 선생님 고기 먹을 때 속도가 빠르더라고.”
“진짜?”
“응, 세어 봤어.”
“야, 어이없다, 너. 그런데 일리는 있다. 능 선생님 고기 구울 때 크게 굽더라고. 난 고기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구운 고기가 포인트였구나.”
“그럼 채소랑 과일 구운 건? 생선은?”
“야야, 단톡방에 던져서 물어보자. 아는 사람 있지 않을까?”
간호사 세 명이 다시 뒤를 돌았을 때, 진만호는 줄행랑치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