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39화 (220/877)

항학명과 다른 실습생 두 명은 작은 사무실에서 주변 가득한 에피프레넘과 접난을 보면서 호기심, 흥분, 그리고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떨고 있었다.

세 사람 중에 단연코 항학명이 가장 마음이 복잡했다.

같은 실습생인 능연은 벌써 응급센터의 치료팀 팀장이 됐다. 벌써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인데, 아직도 불가사의했다.

항학명이 아는 능연의 이야기 중에 불가사의한 일은 더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놀라운 마음이 줄어들진 않았다.

능연은 대학 때도 저 멀리 높이 있는 존재였고 입학하기 전에도 사진이 돌아다니던 존잘 후배라서 입학한 날 바로 운화 시 대학 연맹의 풍운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교수들까지 능연을 수호하기 시작했다.

“항학명, 너 능연이랑 친하냐?”

같은 팀인 정군상은 성격이 활달한 편이고 로테이션 돌 때마다 걱정도 많았다.

“나는 알지, 근데 걘 나 모를걸.”

항학명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에? 그럴 리가 다 같은 임상 전공인데? 능 선생님이랑 얘기해 본 적 없어?”

팀 내 유일한 여자인 관비비가 기대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야 내가 능연······ 능 선생님이랑 이야기할 기회가 어디 있었겠냐.”

항학명은 신경 써서 호칭을 고쳤다. 사실 능연과 이야기해 본 적은 있었다. 몇 번 인사하고는 두 번 웃는 얼굴을 봤던가?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아직도 능연의 따듯한 미소가 기억나고 느낌도 꽤 좋았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항학명은 능연과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산에서 자란 아이였고, 일곱 살부터 일을 시작해서 15살이 되어서야 농사일에서 해방되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장 싼 기차의 딱딱한 좌석을 타고 운화로 올라왔다. 첫 일 년 동안은 돈을 빌려서 생활했고, 장학금을 신청해서 갚아 나갔다.

“아우, 아깝게.”

관비비는 디올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을 삐죽였고, 항학명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래도 좋겠다. 자주 능 선생 봤을 거 아냐. 나는 여기에 실습하러 오지 않았으면 세상에 그렇게 쿨한 남자가 있는 것도 모르고 살았겠지.”

관비비는 생긋 웃으며 기대하는 눈빛으로 문 쪽을 바라봤다. 항학명은 다시 껄껄 웃었다. 능연은 자주 못 봤어도, 관비비 같은 여자는 많이 봤었다.

“능 선생님이 그렇게 쿨해? 그냥 말수가 적은 거뿐이잖아.”

“그럼 너도 입 좀 다물어 보든지.”

정군상의 말에 관비비가 볼을 손가락으로 그으면서 웃어 보였다. 무시당한 정군상은 고개를 푹 숙였다.

관비비는 다시 관심을 항학명에게 돌렸다.

“야, 적극적으로 좀 해봐. 그리고 이따 능 선생님 오시면 우리 잘 소개해줘.”

“어.”

항학명이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실습 성적을 잘 받는 것이고, 그래서 좋은 병원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수술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일자리 찾는 데 더 유리하겠지.

병원마다 의사 뽑는 기준이 다르지만, 대다수 병원은 성적 좋고 수술에 많이 참여한 실습생을 반긴다. 성적이 좋든, 수술에 많이 참여했든 사실 큰 의미는 없지만, 실습생이 열심히 했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실습 기간도 잘 견디지 못한다면, 훈련의, 레지던트 생활이 문제가 된다.

힐끔 관비비를 본 항학명은 관비비가 신은 뉴발란스를 보면서 이런 여자는 급하게 취업할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운화에 남지 못하면······.

항학명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나쁜 생각은 할 필요가 없었다. 물러설 곳도 없는 인생인데, 나쁜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쾅.

능연이 양손 가득 자몽을 들고 발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능······ 선생님.”

세 명의 실습생이 각자 인사를 건네자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해졌다.

“응, 다들 자몽 꿰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인 거로 인사한 셈 쳤다. 실습생은 치료팀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거꾸로 실습생이 치료팀의 부담이 되면 안 된다.

정군상, 관비비, 항학명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일 인당 하나, 각자 자몽 들고 가서 꿰매. 제일 잘한 사람이 나랑 수술실 들어간다.”

능연은 질문 과정도 생략하고 바로 한마디 했다. 인간관계는 잘 알지도 못하고, 서툴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니 곽 주임이 그에게 준 실습생에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임무를 주는 것 말곤 없었다.

실습생 세 명 모두 멍해졌다. 일 년 가까이 실습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마음대로 꿰매면 됩니까?”

제일 먼저 정신 차린 항학명이 물었다. 그는 수술실에 들어간다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능연이 운화병원에서 도대체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도, 치료팀 팀장은 수술 권한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운화병원 같은 삼갑병원에 환자가 없을 리는 없고, 다만 의사가 기회를 줄지가 문제였다.

항학명은 바로 고개를 숙이고 자몽을 고르기 시작했다. 표면이 매끄럽고 수분이 많은 자몽이 봉합하기 좋겠지. 수분이 없으면 껍질이 퍼석해서 봉합사를 조금만 세게 당겨도 찢어질 수 있다. 너무 두꺼워도 안 된다. 특히 예쁘게 꿰매려면 두께를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껍질이 두꺼우면 장력이 커서 찢어질 수 있다.

항학명은 가장 탄력 있고 매끄러운 자몽을 골랐다. 작업하기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 봉합 난도도 높지 않을 적당한 크기의 자몽이었다. 정군상과 관비비는 고르지도 않고 남은 자몽 중에서 대충 집어 들었다.

항학명은 그들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바로 봉합사를 찾아 꿰매기 시작했다. 능연과 친하진 않지만, 능연이 말 많은 걸 싫어하고 일은 믿음직스럽게 한다는 것 하나는 알고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갈 기회를 주겠다고 했으니, 반드시 줄 것이다.

능연도 길게 설명할 생각 없이 책상 앞으로 가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논문은 거의 완성 단계였고, 이제 살짝 수정하고 편집만 남았다.

정군상과 관비비도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자리를 찾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사무실에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자몽 껍질을 찌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관비비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능연이 햇살 아래 허리를 곧게 펴고 앞쪽을 주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몸에 내리쬔 금빛 햇살이 사방으로 퍼졌다.

관비비는 행복해하며 그 햇살을 집어삼킬 듯이 숨을 들이쉬었다.

“다 했습니다.”

항학명이 누가 선수를 뺏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 자리에서 펄쩍 일어났다.

“응.”

능연은 짧게 대답하고 계속 작업에 몰두했고, 항학명은 조금 불안해하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몇 분 후, 장군상이 드디어 자몽 봉합을 마치고 살짝 손을 들어 끝났다고 보고했다. 능연은 이번에도 와서 검사할 뜻이 없는 듯 알았다고 대답하고 넘겼다.

관비비는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항학명, 정군상에 비해서 관비비는 봉합 쪽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내과 지망이라 외과 기술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차라리 다른 쪽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

“능 선생님, 다 했어요.”

두 사람을 합한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 관비비가 두 사람을 합한 것보다 더 흥분한 목소리로 고함쳤다.

“갑니다.”

능연은 논문에 결론을 지은 다음 세 사람의 자몽을 검사했다.

두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 군데 더 꿰맸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항학명의 자몽이 제일 너덜너덜했다. 그러나 완성도가 가장 떨어지는 건 오히려 장군상의 자몽이었다. 곽비비보다 먼저 끝냈지만, 바늘땀이 조악했다.

“항학명이 제일 잘했군. 수술복으로 갈아입어. 수술실에 들어가 봤어?”

능연이 빠르게 내린 결정에 항학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외피 봉합도 두 번 해 봤습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군상을 바라봤다.

“자몽 껍질 다 벗겨서 너스스테이션에 가져다줘. 그리고 관비비랑 같이 여원 선생님 찾아가. 주의사항 알려 주실 거야.”

말을 마친 능연은 바로 항학명을 데리고 수술실로 향했다.

관비비는 신나서 폴짝폴짝 뛰었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는 장군상에게 멍청하게 웃어 보였다.

“능 선생님이 내 이름 기억했어!”

“나도 기억하는데.”

“잊어 줄래?”

관비비는 머리카락을 휙 쓸어 넘기고는 등을 돌리고 핸드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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