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40화 (221/877)

수술대 앞에 선 항학명은 꿈같은 기분이었다.

녹색과 파란 시트 아래 숨을 몰아쉬는 환자가 누워있고, 진짜 마취의가 있고, 그리고 그 곁에 풀 세트 유지 장치에 숫자도 리얼이었다.

“리얼 수술이야.”

항학명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이거야. 포르말린 냄새가 하나도 없는 신선한 수술실 냄새.

“저기, 받침대 하나만 더 가져다줄래.”

조금 늦게 수술실에 들어왔더니, 능연이 수술대를 여원의 키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높이로 올려 버렸고 받침대 하나로는 부족했다. 다른 의사와 수술할 때도 어차피 받침대는 놓아야 하고, 하나를 더 놓아도 상관없단 생각에 여원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여원을 따라 들어와서 지금도 수술실을 둘러보던 정군상이 허리를 숙이고 발판을 찾으러 갔다.

“너도 같이해.”

여원은 관비비를 보며 시원스럽게 지시했고, 관비비는 조금 언짢은 듯 눈을 깜빡였다. 왜 능 선생님이 아니고, 여 선생님이 지시해?

“어서!”

여원은 관비비가 더 생각할 틈 없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여원은 이제 치프 레지던트가 되었고, 의사는 그 자리에 오르면 누구나 환골탈태 한 듯 변한다. 권력 때문은 아니고, 책임이 너무나 커지기 때문이다.

치프 레지던트가 매일 22시간 병원에 있으면서 7일 연속 근무하는 건 희한한 일도 아니다. 두 시간이 빠지는 건, 적어도 집에 가서 옷 갈아입을 시간을 준다는 거지만 사실 유명무실했다. 외과 치프 레지던트는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 수술실 샤워실이 얼마나 편한데. 옷도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 수술 구역에는 고온 소독된 수술복이 넘친다.

수술복 입으면 드래곤볼에 나오는 오공이 같지만, 아무리 옷을 더럽혀도 갈아입을 새 옷이 넘치고 넘친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정상적인 치프 레지던트는 집에 갈 필요가 없다. 즉, 24시간 병원 근무가 치프 레지던트의 숙명이었다.

달에 몇천 위안 나오는 월급이 아니라 끊임없이 신음하는 환자, 그리고 다친 사람을 살렸다는 자기만족으로 치프 레지던트 생활을 버틸 수밖에 없다.

이 수술실에서 저 수술실로, 진지(陣地)를 바꾸는 것처럼 승패를 개의치 않고 몰두하다 보면 하루가 사라진다.

그런 위치에 오래 있다 보면 명령에 기세가 들어가고 힘이 넘치게 되고, 147.5cm 여원일지라도 어린 원숭이를 다스리는 침팬지의 지배력을 가지게 된다.

관비비는 주눅 든 듯 정군상을 도와 여원이 올라갈 받침대를 들고 왔다.

“손 씻고 와.”

여원은 기세등등하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정군상은 바로 돌아서 손 씻으러 갔지만, 관비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능연을 한 번 훔쳐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수술실에서 나갔다.

능연은 시종일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조수들끼리 협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수술실 관리 같은 작은 일은 능연이 신경 쓰지 않아도 벌써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수술 시작합니다. 여 선생님 퍼스트, 항학명 세컨드.”

“알겠습니다.”

여원이 대답하자 항학명은 그대로 따라서 똑같이 대답하고는 소리가 너무 컸음을 깨닫고 다급히 입을 막았다.

“손 씻고 와.”

항학명의 동작에 여원은 그를 수술대에서 몰아낼 수밖에 없었다. 잠시 멈칫하던 항학명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수술실에서 나갔다. 꿈꿔온 수술 체험은 이런 게 아닌데.

사실 수술실에 들어온 건 처음이지만, 전부터 항학명은 많은 자료를 조사했고 이미 취업한 선배들에게 여러 가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수술실에서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심지어 몰래 시뮬레이션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게다가 가장 금기시하는 수술실 청결 문제를 말이다.

먼저 손을 씻으러 왔던 관비비와 정군상은 몇 마디 건네더니 서둘러 수술실로 돌아갔다. 그들은 항학명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서둘렀고, 항학명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그들의 뜻대로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힘이 빠졌다.

항학명은 할 수 없다는 듯 손을 씻으면서 속으로 자신을 나무랐다.

어렵게 들어온 수술이고, 그것도 일부밖에 참여하지 못하는데 이제 그나마도 못 할지도 몰라. 누구 탓을 하겠어. 누구 탓을 하겠냐고.

손을 깨끗이 씻은 항학명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격려했다.

못생겼으니 노력해야 해, 못생겼으니 노력해야 해.

자신의 외형 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항학명은 미소를 지으며 수술실로 돌아갔다.

“자, 이제 수술 시작합니다.”

팔짱을 끼고 있던 능연은 항학명이 들어오자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 바로 말했다. 항학명은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아직 시작 안 했어?”

“어서 와!”

여원이 엄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꾸짖었다. 수술 실력은 보통이지만, 그만큼 수술 과정의 디테일은 중시했다. 항학명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하게 세컨드 어시스던트 자리로 섰다. 수술을 참관하는 관비비와 정군상이 맞은편에 보이는 자리였다.

“아킬레스건 보건술.”

능연이 손을 뻗어 메스를 요구하자, 오늘 스크럽 간호사 왕가가 재빨리 메스를 적절한 힘으로 능연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알맞은 위치에, 완벽한 타이밍으로.

능연은 이번에도 15cm짜리 긴 절개구를 냈다.

작은 절개구가 아름답겠지만, 무덤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의학을 깊게 연구하기 시작한 능연은 점점 작은 절개구를 선호하지 않았다. 특히 아킬레스건 보건술 같은 수술은 이제 최소 절개기술을 장악했는데도, 최소 절개술 환자가 아니라 오히려 개방식 수술을 골랐다. 그리고 기껏해야 봉합할 때 피내봉합과 감장 봉합으로 큰 절개구 단점을 조금이나마 보완했다.

이런 모든 과정을 능연은 2백 건 이상 진행했고, 그중 백 건은 어시한 여원마저 이제 능연의 조작에 익숙할 대로 익숙했다. 다만, 직접 하지는 못했다.

능연은 노련하게 환자의 아킬레스건을 집어내 박리하고 또 봉합했다.

항학명은 눈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완전 새로운 게임을 보는 기분이었다. 뭘 보고 있는지 알 것도 같다가 다시 전혀 모르는 것 같다가. 그런데 경기하는 사람은 정상급 고수라 보는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항학명의 머릿속엔 오로지 하나의 목소리만 들렸다.

“당겨!”

그는 두 손으로 훅을 들고 쉴 새 없이 당기고 또 당겼다.

10분 후, 항학명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서 고개를 들고 능연, 자신의 동기를 바라봤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능연을 보는 게 몇 번째인지 모른다. 세 번째던가? 어쨌든 네 번은 안 넘어.

같은 전공에 같은 학년이었지만, 평소에 능연과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문득, 능연의 정보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고작 일 년 만에 능연이 병원에서 집도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더 중요한 건, 능연은 지금 자신만의 수술 방식까지 가지고 있었다.

의대생에게 너무 머나먼 일이었다.

“끝부분이 말꼬리 모양이네.”

고개를 숙이고 보던 여원이 상기시키는 말에 능연은 고개만 끄덕일 뿐 말도 없이 계속해서 손을 놀렸다. 여원은 그게 계획대로 수술을 진행한다는 뜻임을 알고 있었다. 간단한 부분이라 여원은 여러 번 훈련해온 대로 최대한 능연의 움직임에 맞췄다.

물론, 여원은 본인이 컨트롤 가능한 아주 일부분만 어시했다. 항학명은 점점 더 멍해졌다. 단순한 훅맨이지만, 훅맨은 사람의 정신을 시험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특히 능연이 과묵하기 때문에 더욱.

“음, 거의 다 됐군.”

능연의 목소리에 다들 생각을 멈췄고, 항학명은 더욱 정신을 퍼뜩 차렸다.

능연은 연달아 두 번 검사하고 직접 봉합하기 시작했다. 감장 봉합을 마치고 피내봉합을 한창 하던 능연이 항학명에게 물었다.

“수처 해볼래?”

“아? 네! 해보겠습니다.”

항학명이 흥분해서 대답했다.

“다섯 땀만 꿰매. 내피 봉합 말고, 일반 단속 봉합으로.”

능연이 자리를 내주며 하는 말에 항학명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회를 맞이한 진지한 얼굴로 능연의 위치로 섰다. 그리고 높이를 조절해서 내렸다. 아니면 봉합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두 땀을 꿰매는 것을 지켜보던 여원이 고개를 돌려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그제야 부담을 내려놓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에 능연은 정군상과 관비비에게 수술 전 시트 작업을 맡기고 수술 두 건을 더 했다.

자몽도 제대로 못 꿰매니 수술을 시킬 수는 없고, 수술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개념이 생겨야 훅이라도 당기라고 할 수 있었다.

주방에 처음 들어간 사람에게 바로 채소를 볶으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채소 볶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적어도 웍에 익숙해지고 기름 온도를 알아야 하니까.

실습생에게 수술 전 시트 작업은 물론 수술복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한번 해보면 머리가 필요한 작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운이 좋거나 적극적 태도를 보이면 몇 번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운이 없거나, 태도가 적극적이지 않거나, 혹은 임상의가 될 생각 없으면 실습이 끝날 때까지 직접 시트 작업을 해본 적도 없거나, 심지어 시트를 어떻게 까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수술량이 많은 능연 팀 레지던트들은 수술 경험을 구걸하는 저급 단계는 이미 지났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실습생에게 기회를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는 동안, 항학명 등은 피곤하기는커녕 흥분 상태로 눈까지 다 반짝였다.

“됐다. 오늘 수술 끝.”

시계를 보니 딱 저녁 7시, 병원 퇴근 시간이었다.

“이제 끝?”

항학명은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 바퀴 더 하면서 훅을 당길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항학명은 이제 ‘더 세게 당겨’ 같은 말은 듣지 않을 수 있도록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다. 여원이 재미있다는 듯 그런 항학명을 바라봤다.

“오늘 같은 일은 드물어. 모레면 알게 될 거다. 새벽 2시에 미리 와서 수술 준비해라.”

“새벽이요? 정말요?”

능연이 아침에 수술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 들었지만, 관비비는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응, 레알.”

“그치만······. 너무 일찍 일어나면 피부에 안 좋은데. 화장품 광고에서도 잠이 최고라잖아요.”

관비비가 얼굴을 쓰다듬으며 하는 말에 여원은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웃어넘겼다. 다른 남자였다면 귀여운 척이라도 해볼 텐데, 여원 한 번, 능연 한 번 쳐다본 관비비는 자신감을 잃었다.

“그럼 수술 많이 안 할 거면 몇 시에 오면 되나요?”

“두 시 반? 아님 세 시.”

여원은 대충 시간을 말했다. 능연은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수술을 많이 한다. 그러니 준비하려면 한 시간 반 일찍 오는 게 정상이었다. 레지던트는 집도의가 간호사와 소통하는 것보다 더 많이 소통해야 하고, 기계 확인, 수술실 사용 상황도 체크해야 한다. 보호자 동의서도 사인받고, 환자하고 수술 전 상황도 확인하고, 마취할 것인지 등등도 이야기 나눠야 한다.

누구에게나 고개를 숙여야 하는 레지던트가 이런 일을 잘 해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 동기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이런 일을 끝내는데, 실습생은 더 쉽지 않다. 그러나 병원 자체가 만만한 곳이 아니니, 치프 레지던트까지 된 여원은 이런 부분에 점점 깨달음이 생겼고, 실습생 관비비를 동정하거나 이해해줄 생각은 없었다.

여원이 말한 시간을 듣고 놀란 관비비는 작은 입술을 쭉 내밀더니 능연을 향해 애교를 부렸다.

“능 선생니임~ 세 시는 너무 일러요.”

“수술 있는 날에만 세 시에 와. 요즘 침대도 모자라서 수술 잡힌 날 몰아서 할 수밖에 없어.”

능연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막 설립된 응급센터의 병실 리모델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도 있고 의료진 고용과 재정비도 해야 했다. 그에 비해 능연의 수술 속도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요 몇 주 동안 능연은 다른 의사들처럼 수술 날을 정하는 식으로 하루, 이틀에 수술을 몰아서 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하거나 논문, 차트를 쓰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물론 수술 날이 아닌 날도 수술할 때도 있지만, 병상 수를 조절해야 하거나 세 손가락 이상 단지 이식 수술이나, 두 손가락 이상 굴근건 파열 같은 긴급 수술이 있을 때였다.

관비비는 능연의 목소리는 듣기 좋아도, 수술 있는 날에‘만’ 세시에 오면 된다는 말이 타협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더 항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을 조금 뒤로 미루면 되잖아요. 차라리 퇴근을 늦게 하는 게 낫지 않아요?”

그러나 능연은 그저 깊은 눈으로 관비비를 바라보는 바람에 관비비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능연은 결국 관비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뒤에 있던 좌자전을 바라봤다.

투명인간처럼 능연의 그림자 안에 서 있던 좌자전은 능연이 눈치를 주자 획 달려 나와 능연을 향해 살짝 허리를 굽히고는 실습생 앞에 섰다.

“관비비, 정군상, 항학명. 우리 응급센터 1팀, 능팀에 온 걸 환영한다. 능 선생과 다른 동료들을 대표해서 너희들을 환영하지.”

좌자전이 그렇게 말하면서 박수를 짝짝 치자, 방 안에 호응하는 박수 소리가 퍼졌다.

잠시 눈을 감고 즐기던 좌자전은 곧바로 눈을 뜨고 웃는 얼굴로 능연을 살피고는 그가 별 반응이 없자 말을 이었다.

“같이 밥이나 먹읍시다. 팀 회식 어때? 능 선생, 어디가 좋을까?”

“소가 식당이요.”

좌자전이 팀 회식을 하자고 넌지시 권한 말에 능연은 당연히 익숙한 곳을 골랐다. 실습생들은 거부할 권리조차 없었고, 관비비만 귀여운 척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꼬치집이야.”

좌자전의 말에 항학명은 내심 진만호의 말대로 능연은 구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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