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귀엽다. 털이 복슬복슬. 다리 짧은 것 좀 봐.”
성격 다른 세 여자 모두 토끼에게 매혹당했다.
소 사장은 아무런 말 없이 곁에 서 있었다. 식당 경영을 오래 하다 보니 재촉하면 안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여자 손님 세 명이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이걸 먹어? 너무 잔인한데.”
“평소에도 이렇게 딱딱한 거 먹어요?”
소 사장은 여전히 아무런 말 없이 그들이 토끼를 데리고 노는 걸 지켜봤고, 결국 가장 어린 관비비가 견디지 못하고 버럭 고함쳤다.
“사장님!! 어떻게 토끼를 구울 수 있죠? 보세요! 이 반항도 못 하는 어린 것들을요!”
날카로운 관비비의 질문이 소 사장의 마음을 찔렀다. 잠시 머뭇거리던 소 사장이 떠듬떠듬 말을 꺼냈다.
“이게, 구우면 참 맛있거든······.”
순간 관비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빈틈없는 저 대답을 어떻게 돌파한단 말인가.
“그럼, 제일 길고 제일 통통한 놈으로요.”
협화 졸업생인 의사 위만 씨가 토끼의 핵심 포인트 ‘통통’을 제대로 캐치 해내면서 가장 먼저 선택했다.
“OK! 자, 그럼 들어가자고.”
소 사장이 껄껄 웃으며 세 사람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돌아갔다. 순간, 임시 병상이 구석에 세워지고 능연과 연문빈이 장갑을 낀 채 병상 앞에서 바삐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소 사장은 응급의학과 주임처럼 평온하게 물었다.
“꼬치 먹다가 쇠 꼬치에 입이 찔려서 피가 많이 나서요.”
소가 식당에서 일한 지 벌써 반년 가까이 되는 직원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음, 가벼운 상처네.”
소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그래도 손님 곁으로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별거 아닙니다. 밥 먹기 전 운동한 셈 칠 정도?”
병상 앞에서 구급 키트를 열고 스크럽 간호사 역할을 하던 좌자전이 폼을 잡으며 대답했다. 능연이 웬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쇠 꼬치에 찔리는 거 진짜 흔하게 일어나지. 얼굴을 뚫고 나오는 것도 여러 번 봤어.”
소 사장은 쓴웃음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자, 이제 꼬치 제거합니다.”
능연은 환자에게 말해주고는 서서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이런 응급 상황을 자주 보기는 했어도 직접 나선 경우는 드물었다.
능연은 귀한 기회라는 얼굴로 쇠 꼬치를 환자 입에서 빼내면서 배고파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곱창, 구이, 그리고 맥주가 궤짝 채로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였다.
입을 찔린 남자는 같이 온 친구와 택시를 타고 떠났고 소 사장이 지혈 스프레이와 거즈 한 세트를 선물했다.
능연과 연문빈은 장갑과 옷을 벗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사실 별일이 아니기도 했다. 응급센터 의사가 하루에 처리하는 응급 환자만으로도 소가 식당을 가득 채울 수 있다. 쇠 꼬치로 입을 찔린 환자는 하찮은 데브리망 환자일 뿐이었다.
그래도 다친 부위가 조금 특수해서, 능연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도 조금 호기심을 느끼긴 했다.
의사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가장 큰 문제가 사실은 바로 이런 특수한 케이스다. 다른 업계라면 낯선 기술을 미리 예습하고 실습할 수 있지만, 의사는 수술할 때 닥쳐서 낯선 케이스를 만나게 되면 눈앞에서 바로 해결해나가면서 배울 수밖에 없다.
“능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환자와 함께 택시를 타지 않고 남은 환자 동료가 맥주 두 박스를 보내고는 감사 인사를 하자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연히 타이밍이 맞았습니다. 제가 별로 한 것도 없고요.”
“한 게 없다니요.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환자의 여자 동료는 돌아가기 싫은 듯, 눈에 훅이라도 달린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아까 병원 응급실로 갔어도 결과는 비슷했을 겁니다. 마침 여기 있던 바람에 기껏해야 출혈을 좀 줄여 준 것뿐입니다.”
“감염 확률도 줄였죠.”
능연이 슬쩍 웃으며 하는 말에 연문빈이 한마디 보태고는 환자 동료를 바라봤다.
“저희가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의사라 상처 처리를 좀 했을 뿐입니다. 소 사장님한테 감사하셔야죠. 여기 응급 용품, 수술 기구 같은 게 다 있는 덕분이거든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회식은 여기서 하겠습니다. 구이를 먹으려면 여기서 먹어야 마음이 놓이겠어요.”
“맞습니다, 맞아요. 저번에 대게 먹다가 집게에 찔린 멍청이도 소 사장님이 약을 주셔서 바로 나았잖아요.”
“아, 나도 저번에 본 적 있어. 그 사람은 롱샤 먹다가 다쳤던가? 얼마나 웃겼던지. 그 쪼꼬만 롱샤 먹다가 다치다니 말이야.”
“양 갈비 먹다가 제 손 자르는 재수 옴 붙은 사람도 봤는데?”
“에? 당신도 봤어요? 나도 봤어요. 하얗고 통통하고 키 작은 남자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시커먼 뚱보였어요. 멍청하게 식칼을 달래서 무슨 발골을 하겠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같더라고요.”
“저도 그런 사람 봤어요. 칼로 이도 쑤시는 거 있죠? 토 나올 거 같았어요. 그러다가 잇몸을 찔러서 흐르는 피가 칼자루를 따라 뚝뚝 떨어지는데, 그제야 반응하더라니까요?”
소가 식당 손님들은 자신의 인생 경험이 또 한 번 풍부해졌다고 생각하며 지난날 겪은 이야기를 공유했다.
“토끼 고기는 식으면 맛없어.”
“맞아, 맞아. 자자, 드십시다.”
잠시 가게가 조용해진 틈을 타 좌자전이 말을 꺼내자 연문빈이 큰 제자답게 새 젓가락을 꺼내 고기를 집어 능연에게 건넸다.
토끼고기를 구워놓으니 발이 유난히 작은 것 말고는 크기며, 외형이며 통돼지 바비큐와 비슷해 보였다. 다만 통돼지보다 토끼고기가 훨씬 야들야들하고 탱탱했다.
모두의 잔을 챙기면서 맥주를 가득 따른 사이, 다들 어느새 토끼고기를 한 점씩 또 먹는 걸 보고 좌자전은 새 직장 회식 분위기에 적응하기 참 힘들다고 생각했다.
능연도 두 점째 집어 들고는 망설임도 없이 입에 집어넣었다. 처음엔 조금이나마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는데, 맛이 끝내주니 생각도 다 바뀌어 버렸다. 달팽이가 유행하던 시절에 도평의 요리 솜씨가 그의 식단에 달팽이를 올려놓은 것과 비슷했다.
“능 선생, 맛이 어때?”
그들이 어느 정도 먹길 기다렸다가 다가온 소 사장이 잔을 부딪치며 물었다.
“맛있습니다.”
능연으로서는 최고의 찬사였고, 소 사장은 토끼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많이 먹어. 이게 우리 가게 장점이잖아. 유행에 민감한 거. 응? 근데 왜 술 안 마셔?”
“술 마시면 수술 못 하잖습니까.”
“퇴근한 거 아냐?”
“무슨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언제든 연락 올 가능성이 있는 게 응급의학과이잖아요.”
능연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능연을 잘 아는 소 사장은 그저 껄껄 웃으며 그러려니 넘겼다.
“능 선생님, 꼬리 좀 먹어봐요.”
관비비는 최대한 귀여운 표정을 지으면서 토끼 꼬리를 집어 능연에게 건넸다. 외모엔 자신이 없지만, 귀여운 쪽으로는 좀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토끼 꼬리가 맛있어. 콜라겐도 많거든. 좌 선생, 자자 한잔하자고.”
소 사장의 말에 드디어 대작할 사람이 생긴 좌자전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좌자전은 두 손으로 잔을 들고 소 사장과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그런 좌자전의 모습에 소 사장은 몸 둘 바를 몰라서 냉큼 두 손으로 잔을 쥐고 고개를 들고 잔을 비웠다.
나머지 사람들은 술 마시는 사람은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을 음료를 마셨다. 능연은 생수를 마셔서 입을 가시고는 곱창 꼬치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아까 먹은 토끼고기도 맛있었지만, 소가 식당 시그니처 메뉴인 곱창 꼬치는 변함없이 맛있었다.
“음, 마침 다들 있는 자리에서 발표할 게 있습니다.”
술을 마셔서 평소에 창백한 볼이 불그스름한 마연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살짝 휘청대며 일어나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손에 든 잔을 치켜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네 저 위만이랑 결혼합니다. 1월 20일. 춘절(*음력 1월 1일, 설날) 전날입니다.”
“여러분 모두 저의 결혼식에 와 주세요.”
위만도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와우!”
“축하합니다!”
“너무 잘 됐다!”
의사들도 저마다 잔을 치켜들었다. 능연도 자리에서 일어나 생수를 들고 마연린과 위만과 잔을 부딪쳤고 분위기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그리고 어느새 소 사장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소 사장님, 우리 연린이 결혼합니다.”
하하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낸 연문빈은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었다. 직업도, 차도, 집도 있는 헬스남이 이런 인생 중대사에서 마연린에게 밀려도 한참 밀릴 줄이야.
잠시 멍해졌던 소 사장이 축하 인사를 전하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능연을 불렀다.
“능 선생, 잠깐 괜찮을까?”
“무슨 일이세요?”
“큰일은 아니고, 토끼한테 물렸어.”
능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 사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피로 얼룩덜룩한 왼손을 내밀어 보였다.
“예? 물리셨다고요?”
“그러게 말이야. 마침 의사가 여기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묻는 능연의 말에 소 사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대답했고, 소 사장의 손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던 능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으로 가야겠어요. 가요, 마침 술도 안 먹어서 다행이네요.”
“님 말씀이 옳았네요.”
아까까지만 해도 능연의 말을 그러려니 하던 소 사장도 이번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