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44화 (225/877)

운화병원 응급센터 접수대에 있던 간호사는 능연이 돌아오는 걸 보고 의외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스트레처 카를 부르며 물었다.

“무슨 환자인가요?”

“소가 식당 소 사장님입니다. 왼손 식지를 토끼한테 물렸어요. 수술실 준비해 주세요.”

능연의 말에 간호사가 이상하단 표정을 짓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하러 갔다. 병원 절차를 잘 아는 소 사장이 웃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능 선생, 사람들 난처하게 할 것 없어. 작은 상처니까 데브리망이면 돼. 뭐 수술실까지. 응급센터 막 설립해서 병실도 없고, 수술실은 더 모자랄 거 아냐.”

“물린 위치가 안 좋아요.”

“응? 왜? 뭐가 안 좋은데?”

이번엔 소 사장이 이상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환자와 소통하는 데 서투른 능연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과학적인 면에서 보면, 환자-의사 교류는 환자의 비통한 심정을 달래는 데 필요한 과정이었다. 우수한 의사는 환자의 슬픔을 달랠 능력이 있어야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엔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아무리 달래도 환자의 비통한 마음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소 사장이 자주 병원을 오가는 건 알지만, 소 사장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능연은 알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던 능연은 신중하게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

“굴근건이 잘렸을지도 몰라요. 그럼 수술해야 합니다.”

“굴근건? 굴근건이라니, 그럼 평생 회복 안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얼굴색이 살짝 변해서 묻는 소 사장의 말에 능연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 선생 탕 봉합법은 국내에서 굴근건 봉합에 가장 우수한 기술이니까 소 사장, 너무 걱정 말아요.”

옆에서 좌자전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무리 잘 꿰매도 원래대로는 안 될 거 아니오. 아후, 내 몸은 여기저기 다 엉망인데. 거참.”

“아이고, 그런 거 아닙니다. 아직 아무 일도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좌자전은 아직 소 사장의 내력을 잘 몰라서 그저 농담인 줄로만 알았고 소 사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는지 갑자기 꽥 고함쳤다.

“제길 매번 버터 바른 토스트를 던져줬더니 이제 내 손을 토스트로 알고 지랄이야!”

웃음이 터질 것 같아진 좌자전은 열심히 머릿속에 마을 위생병원 회의 장면을 떠올리며 서서히 굳은 표정을 지었다.

수술실로 향하는 길엔 환자도 있고, 바삐 지나다니는 의사도 있고,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간호사도 있고, 퀭한 얼굴인 보호자도 있었다.

힘없는 눈빛으로 순백색 천장을 바라보던 소 사장이 다시 고함을 쳤다.

“이번에 산 토끼를 다 팔아치우고 또 토끼를 사면 내가······!”

“내가 뭐요?”

한참을 기다려도 소 사장이 말을 잇지 않자 좌자전이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후우, 토끼 팔면 돈이 꽤 되거든······.”

소 사장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오늘도 내가 잘못한 거지 뭐. 빤히 보는 앞에서 다른 토끼 꼬리를 잡았으니, 지들도 같이 산 정이 있는데 돕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안 그래요?”

“그렇긴 하네요.”

“맞다, 이따 마취하고 깨서 내가 까먹으면 잊지 말고 알려 주쇼. 뒷다리에 얼룩이 있는 놈이었다고.”

“네, 알겠습니다. 근데 왜요? 가서 구워버리려고요?”

좌자전이 잠시 생각하다가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니! 교배시키려고! 다음에 보는 앞에서 암컷을 다른 수컷한테 줘버려야지!”

소 사장이 으르렁거리며 내뱉는 말에 좌자전의 안색이 휙 변해서 고개까지 숙였다.

“후우, 그래야 속이 좀 풀릴 거 같아. 날 물었던 개, 고양이, 말, 낙타, 코끼리, 원숭이, 다 그렇게 처리했지.”

“코끼리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던 간호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태국에 갔었거든.”

다들 소 사장의 이야기에 빠져서 이야기를 끝까지 못 들을까 봐 스트레처 카를 미는 걸음마저 늦췄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러 간 능연은 개인 서랍에서 새로운 내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거울 앞에 서서 시스템을 불러냈다.

“시스템, 시스템. 내 탕 봉합법은 지금 몇 등이지?”

- 당신의 탕 봉합법은 현재 운화 시 1등, 창서성 1등, 전국 77등입니다. 앞으로 200~300회 정확한 탕 수술을 진행하면 하나 올라갑니다.

“전보다 하나 올랐네.”

시스템의 재빠른 대답에 능연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는 팔짱을 끼고 수술실로 돌아갔다.

반신 마취를 선택한 소 사장은 반듯이 누워 한 손을 조작대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데브리망 및 수술 전 검사 시작.”

능연은 긴말할 생각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바삐 손을 놀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었다.

“굴근건 파열 없음.”

소 사장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기뻐했다.

“껍질이 꿰맬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서 앞으로 흉터는 남습니다.”

“하하하, 흉터가 뭐 대수라고. 흉터는 남자한테 훈장이지. 얼마나 큰데?”

“입 크기 정도?”

능연은 데브리망을 하면서 대충 대답했다.

“토끼 입 크기 정도?”

“더요.”

“그럼 얼마나?”

소 사장이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 말에 능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곁에 있던 스크럽 간호사가 상처를 슬쩍 보더니 능연 대신 나섰다.

“임윤(린윈. 중국 영화배우) 입 정도일 거예요.”

“누구?”

“인어 공주 역할 한 배우요. 아, 아니다. 요신 입 0.8 정도?”

“요신은 알지.”

소 사장은 요신이라는 배우의 입이 얼마나 큰지 생각하느라 생각에 잠겼다.

“서기는 알죠? 0.7 서기예요.”

“아, 이런······. 그게 무슨 흉터야. 손이 잘린 거지.”

“안 잘렸어요.”

단호하게 대답한 능연은 소 사장이 뭐라고 하기 전에 니들홀더를 내려놓고 좌자전을 바라봤다.

“메인 부분은 다 꿰맸습니다. 나머지 꿰매세요.”

“내가, 꿰매도 될까?”

좌자전은 황송하면서도 자신감 없는 듯 물었다.

“물론이죠. 상처가 커서, 외피 봉합이 엉망이라도 상관없어요.”

환자인 소 사장은 능연의 진지하고 담담한 눈빛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옳다! 능연 말이 옳다!

20분 후, 소 사장이 봉합을 마치고 수술실을 나갔다. 같은 시각에 교통사고 환자도 수술실에서 나갔는데 오른발 절단 수술을 한 남자는 여전히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남자의 발을 힐끔 본 소 사장은 자기 손을 한번 보고는 다시 낙관적인 기분이 들었다.

“흉터 남으면 남는 거지 뭐. 저 사람 봐봐. 난 적어도 손은 지켰잖아.”

“그런 태도 좋네요.”

“사람은 내려놓고 살아야 해.”

좌자전의 말에 소 사장이 싱긋 웃었다.

“맞습니다.”

“아참, 전화 한 통 해도 됩니까?”

가벼운 데브리망에 불과한 상처라, 순회 간호사가 바로 그의 핸드폰을 넘겨주었고 스트레처 카 위에 바로 누운 소 사장이 번호를 눌렀다.

“토끼 다섯 마리 준비해줘. 암컷으로. 오늘 받을 수 있으면 좋고.”

능연은 연문빈, 여원, 좌자전, 마연린, 항학명, 정군상, 관비비를 이끌고 능팀 회진을 시작했다. 능연이 맨 앞에 서고, 뒤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일곱 명이 뒤따르니 그 기세가 제법이었다.

이런 의사들이 우르르 병실로 들어가니 까다로운 환자와 보호자도 조금 온순해졌다. 그리고 진심 어린 감사 보물상자가 나오는 비율도 올라간 느낌이었다. 능연은 걸으면서 상자를 거뒀고, 70여 병상을 도는 동안 8개나 모았다.

수술 전에 진심 어린 감사를 내놓은 환자도 있어서, 비율로 따지면 응급센터 설립 전보다 보물상자를 얻을 확률이 25%는 는 것 같았다.

물론 여러 번 회진을 돌아야 나오는 결과였고, 너무 바빠서 한 번 혹은 한 번도 회진을 못 할 때는 진심 어린 감사를 받을 확률이 대대적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대부분 환자의 마음은 그렇게 강렬하지 않아서 진심 어린 감사를 내놓은 환자는 언제든 별로 없었다.

병실을 돌다 보면 가벼운 증상, 심각한 증상에 따라 환자의 반응도 극명한 차이가 보였다.

소 사장 같은 환자가 가장 고분고분한 환자였고 의사만 보면 미소지으면서 아들을 불러 인사시켰다.

“아들, 선생님들한테 인사해야지.”

“능 선생님, 연 선생님, 여 선생님, 마 선생님. 아저씨 안녕하세요!”

부름을 받고 달려 나온 소거질은 변함없이 착실한 모습으로 모두에게 인사하고 좌자전에게는 특히 친숙하게 굴었다.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짓는 것으로 소 사장의 아들을 격려해주고는 소 사장의 손 상황을 살폈다.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 퇴원해도 되겠어요.”

“그럼 내일 퇴원할게.”

소 사장은 병에 대해서는 늘 예민했고 능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가 급하긴 해도, 환자가 병원에 오래 있는 건 찬성하는 편이었다. 병원에 오래 머물면 병원비가 비싸지는 단점이 있지만, 능연이 가장 관심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나 다 나으면 능 선생, 꼭 가게에 들러. 홍소(紅燒: 중국 요리 방식 중 하나) 토끼 해줄게.”

소 사장은 다른 의사들에게도 감사를 표했고 의사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그를 대했다.

“아이고, 소 사장님 뭘 그렇게까지.”

“홍소는 굽는 거랑 많이 다른가요?”

“소 사장님 자주 오셔야 해요.”

그럴 때마다 능연은 구석에서 조용히 있었다. 그는 그 틈을 타 그동안 모은 보물상자 129개를 한 번 살폈다.

응급센터로 승급하고 한동안 병상이 빠듯해서 능연의 수술량이 어쩔 수 없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129라는 누적수도 뭔가 부족했다.

128보다 하나 많고, 130보다 하나 적고, 3으로 나뉘어 떨어지는 숫자!

이런 숫자는 정말이지, 하찮은 숫자였다.

능연은 자신의 수학 상식을 동원해서 한참 고민하다가 그제야 인상을 풀었다.

129는 6진수에서는 333, 그럼 괜찮은 숫자야.

666만큼은 아니지만 333은 666의 절반이라는 걸 생각하자 나쁘지 않은 것도 같았다.

“시스템, 상자 모두 열어 줘.”

능연은 과감하게 마음속에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앞에 상자를 여느라 펼쳐진 빛이 가득했다. 처음으로 이렇게까지 많이 모아서 여는 것이었다.

요즘은 뭔가를 얻으려고 급급하게 상자를 열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그가 수술을 못 하는 이유는 실력이 아니라 병상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은색 단일 스킬북 8권을 보는 순간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능연은 푸르딩딩한 포션을 아예 무시하고 기대하는 모습으로 책 한 권을 우선 골랐다.

- 국부해부 경험: 하지(下肢) 해부 경험 10회 획득

순간 능연은 전에 얻었던 국부해부 경험을 떠올렸다. 모두 세 번이었고, 한 번은 중급 스킬북에서 나온 3000번 상지 해부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은 남아공 울보 수술로 얻은 초급 보물상자에서 나온 족부 해부 경험 100번. 이번엔 하지 해부 경험 10번이었다. 수량은 줄었지만, 해부 범위가 늘어난 것이다.

하지 해부 경험은 무릎도 포함된 것이어서 그렇다면 능연으로서는 슬관절경 반월판 성형술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기술을 얻은 셈이라 단순한 족부 해부 경험보다 적용 범위가 늘어났다.

다음 스킬북을 클릭하자 이번에도 하지 해부 경험을 10번 획득했다. 능연은 입을 삐죽이고는 세 번째 스킬북을 클릭했다.

이번엔 족부 해부 경험 100번이었다. 결국, 8권 스킬북에서 하지 해부 경험 다섯 개, 족부 해부 경험 세 개가 나왔고 상체는 하나도 없었다.

능연은 합리적인 결과라고 생각했다. 3000번 해부 경험에 10번, 20번 더 해 봐야 티도 안 나지만, 50번 이하인 하지 해부 경험에 300번 족부 해부 경험을 더하는 건 지금의 그에게는 큰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121개 스태미너 포션을 품에 담았다. 이제 403개나 모았지만, 아직 하나도 낭비하지 않았다. 스태미너 포션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좋은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당연했다.

“능 선생, 계속할까?”

좌자전이 조심스럽게 팀장의 의견을 묻자, 능연은 그제야 여러 가지 계산으로 정신없던 자신을 깨우고 소 사장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남은 두 병실, 여섯 침대를 다 돌아본 능연은 손을 휘저어 회진 종료를 선포했다. 연문빈을 비롯한 사람들은 어수룩하게 하라는 대로 각자 돌아갔지만, 좌자전만 남아서 눈에 띄게 맴돌면서 능연의 뒤를 따랐다.

“능 선생, 무슨 걱정 있어?”

“반월판 성형술을 좀 하고 싶은데, 침대가 없어서 못 해서요.”

능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응급센터로 승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병상이 늘어났지만, 아직 리모델링이 완성되지 않아 쓸 수가 없었다.

“좋은 생각 있는데.”

“무슨 생각이요?”

“왕 주임님 전화번호, 아직 가지고 있지?”

“네. 그런데 왕 주임님 무릎 관절은 다시 수술 안 해도 되는데요.”

능연의 말에 좌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분한테 하라는 게 아니라. 내 말은, 왕 주임님 사후 검진하라는 거지. 그다음에 슬쩍 환자 이야기를 흘려.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자고.”

“어떻게 나오셔야 하는데요?”

능연이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내 말은, 왕 주임 나이쯤 되잖아? 주변에 비슷한 사람이 많을 거야. 능 선생이 연락하면, 분명 다른 사람한테 연락해줄걸? 생각해 봐, 왕 주임하고 이렇게 저렇게 아는 사람이 병원에 온다는데, 병원에서 침대를 안 내놓고 배기겠어?”

좌자전은 말을 뱅뱅 돌리지 않고 핵심을 찔렀다.

“아! 특별 병실!”

“특별 병실뿐이야? 일반 병실이라고 해도 다른 진료과 침대를 빌려서라도 내놓을 거야. 내 말은, 사람을 잘 고르면 병상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줄 거라는 거지.”

좌자전은 주먹까지 꾹 쥐며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을 꺼내서 그렇지, 사실 그 아이디어를 내느라 며칠 동안 머리가 터지게 고민했었다. 능연은 알 듯 모를 듯했지만, 최근에 들어온 아이디어 중에 가장 그럴싸했다.

“그렇다면, 슬관절 수술한 사람은 모두 사후 검진을 해야겠네요! 아아, 논문 또 미뤄지겠네.”

“응? 아니······, 그렇게 진지할 필요 없어. 그냥 전화만 드려도 무슨 소린지 아실 텐데.”

좌자전이 멍해졌다가 하는 말에 능연이 모르겠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다 한 번씩 방문지도 해주면 좋은 거 아닙니까?”

말을 마친 능연은 벌써 핸드폰을 꺼내 왕 주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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