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45화 (226/877)

일요일, 특별 병동 1층에 원장을 비롯한 원무 위원회 구성원이 다시 한 줄로 주르륵 섰다.

곽종군은 주 부원장과 딱 붙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응급의학과가 응급센터가 되자 곽종군 씨의 지위도 따라서 뚜렷하게 올라갔고, 일반 진료과 과 주임은 이제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물론, 앞에 서든 뒤에 서든 곽종군의 자기만족일 뿐이고 대다수 주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장과 부원장들의 마음은 더욱 두둥실 떠 있었다. 원장은 실눈을 뜨고 왕 주임이 치료에 대해 만족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눈빛을 쏘았고, 부원장 A가 눈을 꿈틀거리며 분명 처음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반월판 수술은 재발 확률이 있으니까, 그래서 죄를 물으러 온 거라면 어서 책임질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찡긋찡긋.’

그리고 부원장 B가 힐끔 곽종군을 향해 곁눈질했다.

‘책임은 곽종군이 져야지요. 응급센터도 꾸려줬는데, 책임을 피할 수 있습니까? 평소에 벼락을 뿜어대잖습니까. 벼락 맞을 일 있으면 맞아야지요. 찡긋찡긋.’

항상 곽종군의 힘이 되어 주던 주 부원장도 지금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뒤숭숭했다.

운화병원으로서 왕 주임 같은 환자는 기회이기도, 도전이기도 했다. 수술 성공하면 기회가 될 것이고, 실패하면······.

그리고 수술 성공하는 순간 얻게 되는 기쁨과 달리 수술 실패는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잦다. 어떨 땐 성공한 수술도 이런저런 이유로 예후가 안 좋아진다. 심지어 수술 전후 기간엔 모든 게 완벽하다가 몇 년 후에 문제가 생겨서 환자가 찾아오는 일도 있다.

그리고 일반인이 사후에 의료사고를 논하러 오는 것과 고관들이 오는 건 완전 다른 일이었다. 원장 등 높으신 분들은 지금 성공적이었던 능연의 수술이 무슨 탈이라도 났을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게다가 왕 주임이 응급센터 설립 추진도 도왔는데 인제 와서 수술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까지 더 해서 화를 낼지도 모른다.

원장과 부원장들은 계속해서 눈썹을 찡긋댔지만, 별 뾰족한 수가 나오진 않았다.

특별 병동 앞 오동나무에서 나뭇잎이 스케일링 후 떨어지는 치석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정리 안 된 화단은 여드름 자국처럼 여기 울퉁, 저기 불퉁, 난리였다. 원장은 정돈 안 된 화원 여기저기 바라보며 자신이 곧 맞이할 실패한 광경이 저런 게 아닐까 불안해했다.

토요타 알파드 한 대가 멀리서 특별 병동을 향해 달려왔다.

원장을 비롯한 의사들이 흠칫 떨었고 아드레날린 수치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 왕 주임의 비서가 돌아서서 차 문을 닫더니 다가가서 물었다.

“능연 선생님 계신가요?”

“능······. 흠, 능연 어디 있나?”

원장은 삑사리 난 음성을 가다듬으며 뒤돌아 물었다.

“난 모르는데.”

“못 봤습니다.”

“누구 본 사람 없나?”

“안 보이는 거 보면 안 온 거야.”

원장의 얼굴에 난감함이 가득해졌다. 환자가 병원에 왔는데, 담당의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니, 환자가 뭐하러 왔냐는 말이다.

“곽 주임, 능 선생한테 연락 안 했어요?”

주 부원장이 난처함을 풀려는 듯 나서서 물었다.

“했지요. 여기 사람이 많으니 병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곽종군이 하하 웃으면서 사람을 쏘고 싶은 화살촉처럼 톡 튀어나온 입술을 오므렸다. 주 부원장은 당장 책임을 묻기 전에 일단 다급히 능연을 불러오라고 지시했고, 비서가 능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능연이 너무 바빠서요. 가만히 병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러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곽종군이 조용히 덧붙였다.

“능연이 벌써 응급센터로 돌아갔답니다.”

“제가 왕 주임님께 설명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비서가 난처한 듯 입을 떼자 곽종군이 알아서 책임을 짊어졌다. 그는 책임을 지기 딱 좋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위치에 있는 의사였다.

원무 위원회 위원들은 차 쪽으로 다가가는 곽종군을 묵묵히 바라봤다. 잠시 후, 곽종군은 온몸이 성하게 돌아와서는 사람들의 기대하는 눈빛에 화답하며 입을 열었다.

“왕 주임님이 응급센터로 가서 능연을 만나시겠답니다.”

“아이고, 그건 안 되지.”

“능연이 오면 되지 왜!”

“대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아무리 원장을 비롯한 일행이 난리 쳐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알파드는 벌써 시동을 걸어 출발했고, 의사들은 바지를 걷어붙이고 미친 듯이 응급센터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응급센터 1층, 능연은 처치실에서 제시간에 맞춰 찾아온 환자를 재진찰하고 있었다.

국내의 사후 검진은 모두 전화로 연락하고 내용도 보통 질문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으며, 정기 검진 혹은 내원 재검을 받는 환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그 정도 수준의 간단한 사후 검진도 제대로 하는 삼갑병원은 손에 꼽혔고, 협화 같은 소수 병원만 장기적으로 지속하고 있었다.

우수한 삼갑이냐 그저 그런 삼갑이냐 구분하는 것도 사후 검진을 어떻게 진행하냐에 달렸다. 우수한 협화 같은 병원은 모든 환자를 사후 진단했고, 그저 그런 삼갑병원은 다음 같은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XX 증상 환자가 있었는데, 내 말을 안 듣고 퇴원한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나중에 병이 더 심해져서······. 블라블라.’

운화병원은 그저 그렇지만 좀 나은 삼갑에 속했고 연구가 필요한 케이스나 행정상 필요할 때는 자주 사후 진단을 하는데, 제도화된 사후 진단은 그저 형식적으로 하고 말았다.

능연은 지금 행정상 필요하고 연구 성질이 가미된 사후 진단을 하는 셈이었고 그의 전화에 대다수 환자가 날을 잡고 찾아왔다. 시간 맞춰 찾아온 환자는 3/4에 불과했지만, 벌써 처치실이 가득 찰 정도였다.

왕 주임은 들어서자마자 구름같이 몰린 환자와 그 사이에 있는 능연을 발견했다.

“능 선생, 왕 주임 오셨어.”

의교과 간부가 재빨리 능연에게 다가가 눈치를 줬다.

“넵.”

능연은 눈앞의 환자 차트를 새로 쓴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를 살폈다. 지팡이를 짚은 왕 주임 곁에 손녀 왕원원이 착하게 그의 팔을 부축하고 서 있었다.

“능 선생! 재검 받으러 왔다네. 정말로 사후 진단을 하고 있었구만.”

왕 주임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 환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럼요?”

능연이 의아한 듯 왕 주임을 바라보자, 오히려 왕 주임이 멈칫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인생 경험으로 지금 능연에게 100가지라도 답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바라보는 능연의 눈빛에 왕 주임은 그의 세상을 탁하게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렇게 하는 의사가 별로 없으니까 말일세.”

왕 주임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는 사후 검진이 얼마나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 많은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의사들이 무시하면서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능연이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하는 모습에 왕 주임은 꽤 놀랐다.

능연도 별생각 없이 따라 웃었다. 그에게 수술은 재미있는 일이고, 필름을 보거나 진단을 내리는 일 같은 것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왕 주임은 자원해서 사람들과 섞여 사후 검진을 받았다. 손녀 왕원원은 많이 봐야 손해 안 본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능연을 바라봤다.

“반월판 회복, 매우 잘 되고 있습니다. 문제없네요.”

능연은 설명하면서 간단한 신체검사도 했다. 담당의도 이미 그렇게 진단했지만, 능연이 그렇게 말하니 왕 주임은 부담을 내려놓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친구도 하나 데리고 왔다네. 거기도 무릎이야.”

검사를 마친 왕 주임이 같이 온 환자를 소개했고, 좌자전이 곁에서 열심히 눈짓했다.

하나, 둘. 이렇게 계속 느는 거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능연은 전혀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왕 주임과 같이 온 환자가 왕 주임에게 허리를 구부리고 인사하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너무 오래 허리를 숙이고 있어서 무릎이 아파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얄짤없는 좋은 환자가 아닐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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