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46화 (227/877)

재검을 마친 왕 주임은 지팡이를 짚고 사라졌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부축이 필요 없다고 우기면서. 그는 지금 퇴직해서 생활을 즐기는 참이라 잠시라도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왕원원은 아쉬운 듯 능연을 몇 번 더 보고는 할아버지를 따라 돌아갔다.

왕 주임과 함께 온 환자 진개제는 남아서 병원 고위층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전쟁이라도 치른 듯 허리를 굽히고 앉아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저는 반월판 성형술밖에 못 합니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보며 다른 곳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능연이 말했다.

그랜드마스터급 반월판 성형술을 터득했으니 파손된 반월판이라도 제대로 된 모양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슬관절경만 따지면 겨우 전문가급이라 좀 잘난 주치의 정도 수준이라서 다른 의사에게 환자를 보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반월판이 고장 난 거라오. 병원에서 그랬거든.”

진개제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 좋습니다. 일단 사진 찍어야겠습니다.”

“전에 찍은 사진 보면 안 되겠나? 3개월 전에 찍은 건데.”

능연이 단호하게 하는 말에 진개제가 내키지 않는 듯 물었다. 비슷한 질문을 항상 들어온 능연은 그럴 때마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환자를 대했다.

“반월판 성형술 하실 겁니까?”

“그, 그야 그럴 생각이네만.”

“이왕 수술하실 거면, 3개월 전 사진으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능연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명확했다.

“그럼 수술이 결정되면 찍으면 되지 않겠나.”

환자의 태도가 딱딱해지자 곁에 있던 병원 고위층들이 혹시라도 입씨름이 일어날까 봐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진 처장님. 진정하세요. 능 선생은 다 처장님을 위해서 그런 거랍니다. 처장님, 사진을 왜 찍고 싶지 않으신지요?”

처장이라는 호칭에 기분이 더 언짢아진 진개제가 콧방귀를 뀌더니 방사능이 몸에 좋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럼 MRI 찍는 건 어떨까요?”

병원 고위층이 한숨을 내쉬면서 설득했다. 진개제 본인은 그다지 높은 자리가 아닌 데다가 이미 퇴직한 간부라 그다지 부릴 위세가 없지만, 왕 주임이 데리고 온 환자이니 그만큼 대접은 해야 했다.

“MRI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는가. 싫네.”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바로 찍을 수 있게 준비하지요.”

운화병원 아홉 부원장 중 한 명이 나서서 웃는 얼굴로 명함을 건넸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바로 전화 주십시오. 폰은 24시간 내내 켜둡니다.”

뒤쪽에 있던 부원장들은 무시하는 듯 그를 보면서 질서 정연하게 더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은퇴한 나이든 처장이라 나설 사람도 없었다.

“장연봉, 장 원장이구만. 내가 명함을 안 가지고 와서 그러네만, 위챗 등록 하세나.”

휠체어에 앉아 명함을 본 진개제는 하얗게 센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 55세인 장연봉 부원장은 잠시 멍해졌지만,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은퇴한 나이든 간부 전개제의 위챗을 추가했다.

“‘여전히 고매한 나’?”

장원장은 상대방의 닉네임을 보고 계속 멍하니 있었고, 진개제는 자랑스러운 듯 주름진 목을 치켜들었다.

“예, 그럼. 저기, 거기. 자네 진 처장님 모시고 MRI 좀 찍게. 계속 모시고 다녀야 하네.”

장연봉 부원장은 괜히 나섰다 싶었지만, 인제 와서 발뺌하지는 않았다.

외모가 평범해서 지금까지 아무도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는 연차 낮은 레지던트는 ‘저기, 거기’라는 호칭에 익숙한 듯 나와서 진개제를 향해 공립병원의 대표적 온순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휠체어를 밀고 MRI실로 직행했다.

한숨 돌린 병원 고위층들은 몇 마디 당부를 남기고 재빨리 흩어졌다.

곽종군은 입을 삐쭉이며 능연과 다른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좌자전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진 처장이라는 분, 까다로운 것 같으니 능연 곁에서 잘 도와주게. 무슨 일 안 생기게 말일세.”

“예, 그럼요.”

좌자전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과 주임, 아니 이제 센터 주임이 중책을 내려주다니, 좌자전은 자신의 책임이 한 단계 더 막중해진 느낌이었다.

능연과 이야기를 하려고 고개를 돌려 보니, 능연은 MRI 사진을 펼쳐 읽고 있었다.

잠시 후, MRI를 찍은 진개제가 무릎 통증이 심한 얼굴로 돌아왔다.

“무릎 내부에 물이 고여있고, 염증도 있네요. 반월판 성형술 적응 증후군은 맞습니다. 절개술로 해도 되고요.”

바로 판단을 내린 능연이 두 차이를 설명했다.

“내가 듣기로 자네는 반월판 성형술만 한다면서?”

“반월판 성형술을 잘합니다. 절개술을 원하신다면 다른 의사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상황으로 봐서는 성형술이 나을 것 같습니다.”

“내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자네가 성형술을 더 좋아해서 추천하는 거 아니고?”

학술회의를 몇 번 다녀본 능연은 이제 이런 추천을 할 만한 능력이 되었다. 잠시 능연을 바라보던 진개제는 반쯤 농담으로 물었고, 능연은 반박할 생각이 없어서 그저 웃기만 했다. 환자를 많이 만나온 만큼 이런저런 상황을 겪었다. 그러나 과거 20 몇 년의 사회 경험으로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상대가 멋대로 생각하도록 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서, 웃음은 걱정을 해소할 수 있달까? 그러나 전개제는 웃을 생각이 없는 듯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럼 자네 상사한테 물어보도록 하겠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있는 환자를 앞으로 오라고 불렀다.

“잠시만! 우선 내 입원 절차부터 밟아 주게. 정처(定處)에서 퇴직했으니, 마땅한 대우로 처리해주게.”

진작에 곁에서 기다리던 좌자전이 상황을 보더니 바로 앞으로 나섰다.

“진 처장님, 일단 관찰병실에 가시죠. 최대한 좋은 병실로 배정하겠습니다. 가실까요?”

“좋은 병실이 어떤 병실인데? 난 다 갖춰진 병실을 원하네. 적어도 1인실이어야지.”

진개제는 핸드폰을 다시 꺼내 들고 자식들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는 셀카를 한 장 찍고 나서 고개를 숙여 번호를 눌렀다.

좌자전은 생김새가 평범해서 이름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레지던트 대신 진재개의 휠체어를 밀었다.

“저희는 응급센터라 관찰병실밖에 없습니다. 특별 병실이나 1인실이 없고요.”

“농담하나? 1인실이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공장 직원들이랑 같이 묵으라고?”

진개제는 탁 소리를 내며 휠체어 손잡이를 내리쳤다.

“응급센터가 그렇습니다. 아니면 정형외과로 트랜스 해드릴까요? 거긴 적당한 병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안 되지. 난 능연 선생한테 수술받을 걸세.”

“응급센터엔 원하시는 병실이 정말 없습니다. 저희도 방법이 없어요.”

진개제가 고개를 흔들자 좌자전은 공손한 표정으로 미소 지어 보였다.

“알겠네. 내가 방법을 찾아보지!”

진개제는 짜증을 내며 연락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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