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48화 (229/877)

다음 날, 새벽 2시. 16번 병상 진개제가 깨우는 소리에 비몽사몽 일어났다. 간병 하던 아들도 같이 깼는데, 겨우 한 시간 자고 일어난 아들의 이마에 ‘건드리지 마’라고 쓰여있었다.

“일어나서 수술 준비하세요.”

당직 간호사는 긴말 없이 한마디 하고 바로 당부사항을 읊었다.

“새벽 2시야?”

억지로 눈을 뜬 진개제가 하는 말에 간호사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수술이 3시 반입니다. 그 전에 준비하셔야 해요. 어제 말씀드린 주의사항, 다 기억하시죠? 능 선생님 수술은 들어가면 시험부터 봐야 합니다. 합격 못 하면 수술은 미뤄지고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흥. 그나저나, 정말 3시 반이라고?”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말도 안 된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간호사를 보던 진개제는 말씨름할 기운도 없는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수술 전에 옥신각신하면 회복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그렇긴 해도 수술 전에 이것저것 준비해야 한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사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할 시간이리라고 생각해서 첫 수술을 고집한 것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수술이 되면 형식적으로 할 것 같아서.

진개제는 뺨을 두드려 정신 차린 후 혼자 휠체어에 알아서 올라갔다. 그리고 수술실까지 조용히 갔다.

그가 스트레처 카 위에 바로 눕자 바로 밖에서 큰 소리가 났다.

“내가 나를 위해 평생 일을 했는데, 늙어서 수술하는데 다른 사람 뒤에 줄을 서야 한다고? 그런 법은 없지, 암! 잘 들어! 내 수술이 먼저야!”

“밖에 무슨 일이야?”

진개제가 얼굴을 찌푸리자 아들이 무슨 일인지 보고 오겠다고 나갔고, 밖은 더 시끄러워졌다.

몇 분 후, 진개제의 아들이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해결했느냐?”

“재직 중인 부청(副廳)이더라고요.”

슬며시 눈을 뜨고 평온하게 묻는 진개제의 모습에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아는 아들이 핵심만 딱 말했다. 정처에서 은퇴한 진개제의 작디작은 심장이 달달 떨렸다.

“어디 소속인데?”

“성이요.”

‘성이면 범위가 더 넓어지는데.’

진개제의 얼굴이 더 찌푸려졌다.

“운화병원 사람들이 오후로 배정했어요. 의사한테 밉보여서 좋을 거 없다고 생각했는지,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아버지가 무슨 생각하는지 딱 봐도 뻔했다.

“오냐, 그럼 됐다, 됐어.”

진개제는 순간 홀가분해진 표정을 짓다가 너무 쉬워 보였나 싶어서 다시 인상을 썼다.

“나라를 위해 평생 일했다는 말에 양보할까 생각했던 거다.”

“그 환자도 특별 병동에 있는 것 같았어요.”

“됐다, 신경 쓰지 말자꾸나.”

아들의 말에 대답은 그렇게 해도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어렵게 수술 시간까지 버티던 진개제는 고분고분한 태도로 수술실로 들어가서 끽소리하지 않고 마취의가 마취제를 놓길 기다렸다. 어시스던트인 좌자전도 조용한 그의 모습에 조금 놀란 듯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건방진 사람도 수술할 때가 되니 고분고분해지는구만.’

“조금 아플 겁니다.”

능연은 새벽에도 조금도 피로감이 없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참겠네.”

“네. 들어갑니다.”

푹 자고 일어나서 찬바람 맞으며 차를 몰고 병원으로 온 능연은 머리가 맑아서 평소보다 말을 조금 많이 했다. 반신 마취를 고집한 진개제는 능연이 차가운 금속 기구를 들고 무릎을 찌르는 모습에 긴장해서 한마디도 못 했다.

수술대 위 모니터에 진개제의 무릎 상황이 나타났다. 하얀 뼈, 붉은 피와 살은 흑백 모니터 때문에 리얼감을 잃어서 게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났다.

능연은 우선 프로브(prove: 탐침)로 진개제의 반월판 주변을 찔러보면서 병변 부분 탄성 등을 체크하면서 반월판 성형술의 범위와 방향을 정했다.

그런 부분부터 그랜드마스터급 반월판 성형술의 장점이 드러났다. 새로 추가된 하지 해부 50번 경험도 대량의 정보를 제공했다.

사람마다 반월판 모양은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나 병변이 발생하면 모양이 천차만별로 변한다. 가장 간단한 반월판 성형술 방안은 반월판을 원형에 가깝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롤러 안에 롤러 볼이 모양이 변하면 좀 더 작게 깎아서 다시 둥글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예비용 반월판이 없으니, 제대로 모양을 잡는 게 환자에게 가장 좋다. 그랜드마스터급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모양을 잘 잡아 주는 데 의미가 있었다.

“바스켓 포셉.”

검사를 마친 능연은 거침없이 반월판 수정을 시작했다. 스크럽 간호사가 다급하게 능연에게 기구를 전했고, 어시는 멍청하게 서서 지시를 기다렸다.

슬관절경 수술은 어시의 도움이 거의 필요 없어서 좌자전이 할 일은 훅맨보다 없을 수도 있는데, 수술실 안의 분위기만은 진지했다. 그런 수술실 분위기에 주눅 든 건 진개제도 마찬가지였고, 능연이 소리를 낼 때마다 긴장되어 죽을 것 같았다. 그는 두 눈을 꾹 감고 있다가 금세······ 잠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진개제는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언제 은퇴하셨습니까?”

“얼마 안 됐습니다. 이제 일 년이요. 어차피 정청(正廳)에 못 오를 거, 그냥 자리를 내놓자 하고 사직했지요. 그쪽은요?”

“뭐, 이제 이선으로 물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더 있자 싶었는데, 아들도 작년에 현처(縣處)에 갔고 내 임무도 끝났지 싶어 그냥 내려오려고요.”

그들의 대화를 들은 진개제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눈도 뜨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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