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50화 (231/877)

다음 날, 아침 8시 능연은 전체 팀원을 이끌고 회진을 시작했다.

환자 관리 연문빈, 여원과 좌자전은 걸으면서 능연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고, 실습견 세 마리는 조마조마하면서도 들뜬 모습으로 질문하는 타이밍을 기다렸다.

대부분 오래된 환자에 대해서는 능연은 거의 입을 떼지 않고 여원에게 전부 맡겼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원의 회진 능력이 많이 늘었다.

사실 부주임이 되기 전 주치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회진 능력이었고, 모두 팀 회진 중에서 배우곤 한다. 여원은 연차가 높다는 이유로 그 특권을 누린 것이다. 다른 병원이나 다른 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병원에서 치료팀의 권력은 막강해서, 숫자로 환산했을 때 삼갑병원에 쓸 만한 치료팀은 일 년에 천만 이상 수입을 벌어들이고, 병원 순이익만 따져도 백만 이상이 된다.

그 정도 되는 치료팀은 인재 육성도 아무런 문제 없었고 스카우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다수 치료팀은 주임 혹은 부주임이 리드하고 주치의를 여러 명 배정한다. 자기 병원에서 쓸만한 주치의를 키우지 못하는 병원은 얼마든지 사람을 스카우트해서 자리를 채운다.

능 팀은 이제 막 치프 레지던트가 된 여원이 가장 연차 높은 의사였다. 게다가 치프 레지던트는 직위지 직함도 아니었다.

치프 레지던트라는 직위로 주치의나 할 수 있는 회진 직책을 맡는다는 건 여원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능연은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한가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특별 병동으로 전향한 후, 능연의 태도는 더욱 도도해졌다. 원래 환자와 접촉하는 걸 싫어했는데, 병실을 알아서 구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귀엽고 고분고분한 의사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졌다.

그에 비해 여원의 사교 능력은 점점 강해졌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작은 동물은 다정하게 대하는 법이니까.

능연은 여원이 환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을 묵묵히 들었다. 그는 잘못된 부분이 있을 때나 나서서 고쳐주면서 여원이 자기 리듬으로 회진을 진행하게 맡겼다.

특별 병동에서 한 바퀴 도는 동안 진심 어린 감사 보물상자를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능연은 덤덤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보물상자가 급하지도 않았고, 그보다는 수술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아침 9시, 능연은 드디어 사랑하는 수술실로 돌아갔다.

“오늘은 모두 8건이네요.”

능연의 말투엔 실망도 기대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힘들어 죽겠다고 앓을 수술량이었지만, 능연에게는 스태미너 포션을 마실지 말지도 그때 가서 정하면 될 정도의 가벼운 수준이었다.

“탕 하나, 아킬레스건 둘, 관절경 다섯······.”

“우리 팀 병상은 이미 바닥났어. 알아서 병상 구해온 환자는 넷, 나머지 네 명은 추가 병상을 써야 해.”

리스트를 살핀 연문빈이 풀 죽어 소식을 전하는데 여원이 나쁜 소식을 보탰다.

“아직 소식이 덜 전해져서 그럴 거야. 며칠 지나면 알아서 병상 구해오는 환자가 많아질 거다.”

좌자전이 켕기는 듯 말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병상도 모자라요.”

“추가 병상도 다 차가니까요.”

“장기 입원 환자가 많아서, 우리 병상 회전율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보아도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새 속옷을 입고 수술실로 들어오던 능연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환자 회복 기간을 줄이는 거군요.”

“장기 입원 말고?”

좌자전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장기 입원, 단기 입원은 모르겠고 어쨌든 병원 정책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바로 그 점을 먼저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능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장기 입원은 유지해야죠. 하지만 회복 기간을 줄이는 건 수술 중에 고민하면 됩니다.”

“수술 중에?”

“출혈량을 줄이고, 수술 시간을 줄이면서 간단하고 정확하게 수술하는 거죠.”

단숨에 세 가지 방법을 이야기한 능연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렇게 하루라도 입원 시간을 우리가 줄일 수 있으면 환자가 100명이 와도 감당할 수 있을 거예요.”

좌자전을 비롯한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능 선생도 참. 독창적인 방법이네. 하하.”

좌자전은 빵끗 웃는 얼굴로 속으로 ‘이게 방법이냐? 시건방 아니고?’라고 외쳤다.

서영창은 병원복 안에 꼼꼼히 보온 내의를 챙겨 입고 시린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모자를 쓰고 난 후 병상으로 돌아왔다.

책을 읽는 척, 사실은 새로 들어온 병실 동료를 관찰하던 같은 병실 환자가 그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으며 화제를 찾아 말을 꺼냈다.

“병원에 자주 오시나 봐요?”

“우리 나이가 되면 다들 병원 들락날락하잖습니까.”

서영창은 양손을 배 위에 올리고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채 ‘난 잘란다’라는 티를 팍팍 내며 눈을 감았다.

“이제 쉰 정도 되신 거 같은데, 병원에 들락날락하기엔 멀었죠.”

같은 병실 환자는 서영창을 유심히 보다가 일부러 나이를 낮춰 말했다.

“올해 47입니다. 어릴 때부터 잔병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네요.”

서영창이 담담하게 하는 말에 같은 병실 환자는 일부러 나이를 줄여서 말했는데도 실제보다 많게 말했다는 사실에 머쓱해서 말을 더는 잇지 못하고 입술만 핥았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조용했던 병실에 간호사 하나가 노트를 들고 서영창의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42번 환자분, 성함 확인할게요.”

“서영창입니다. 무슨 검사 하려고요?”

서영창은 입이 마르는지 곁에 있던 보온컵을 들어 올려 조금 마시고는 되물었다.

“정맥혈이랑 동맥혈 좀 뽑아서 일반적인 검사할 겁니다. 그리고 이따 화장실 가실 때 안에 대변 좀 받아 주세요. 그리고 여기엔 내일 아침에 중간 소변 받아 주시고요.”

간호사는 호두알만 한 플라스틱 상자를 서영창에게 건네고는 다른 물건들을 침대 앞 서랍에 넣었다.

“중간 소변이 뭔지 아세요?”

“압니다. 소변 중간에 받는 거요.”

“맞아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첫 소변 보실 때 중간에 받아 주세요.”

환자가 안다는 데도 간호사는 설명을 한 번 하고는 서류를 내밀었다.

“능 선생님 환자라, 능 선생님 규칙대로 수술 전 시험을 보셔야 해요. 시험 후에도 보셔야 하고요.”

“시험이요?”

“수술 전 시험에서 패스하지 못하면 수술이 미뤄지고, 수술 후 시험은 퇴원이 미뤄집니다. 내용은 간단해요. 다 아셔야 하는 내용입니다. 수술 전후 주의사항이요. 환자분 치료와 회복에 도움 되는 내용이라서요.”

“준비된 수술을 미룬다고요?”

“네. 간단해요. 환자분은 배우신 분이니 조금만 신경 쓰면 패스하실 거예요.”

“그럼 글을 모르는 사람이나, 기억을 도저히 못 하는 사람은요?”

“보호자가 대신 봅니다.”

간호사의 말에 서영창이 미간을 좁혔다.

“보호자도 떨어지면요?”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네요.”

간호사도 마찬가지로 미간을 좁혔다.

“일단 문제 보세요. 진지하게 준비하기만 하면 패스 못 할 리가 없어요. 다 환자나 보호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의사항이니까요.”

서영창이 머뭇거리며 서류를 받아 아무렇게나 한 페이지를 넘겼더니 커다란 글씨체로 한 줄 있었다.

-환자가 병실을 비울 때 간호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안 받아도 된다).

그리고 밑에 작은 글자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의사 치료 과정은 모두 예정된 스케줄로 진행되며, 환자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면 치료 방안이 꼬여서 증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것도 시험을 봐야 한단 말입니까?”

“환자분이 통과하면 그만이죠.”

간호사는 대답하면서 익숙한 듯 장갑을 끼고 채혈 도구를 꺼냈다.

“이제 채혈도 장갑을 낍니까?”

서영창이 감탄한 듯 묻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센터 능 팀은 높은 위생 안전 수준을 요구합니다.”

“아하.”

그 모습에 서영창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는데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채혈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되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입원하면 피를 뽑는 게 규정이라서요.”

“몸이 정말 불편해서 그럽니다.”

“피를 안 뽑으면 수술을 배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병을 볼 수도 없고요.”

간호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하는 말에 서영창이 헛기침을 했다.

“난 피 뽑으면 몸이 차가워집니다. 안 그래도 몸이 안 좋다니까요.”

“그럼 내일 아침에 뽑는 거로 체크해 둘게요. 일찍 뽑으실 거니까, 공복 유지하세요.”

잠시 망설이며 생각하던 간호사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자 서영창은 옷자락을 꾹 쥔 채 긴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쪽은 누구 줄로 들어온 거요?”

“줄이요? 병원에 오는 것도 줄이 필요합니까?”

옆 침대 환자가 다시 호기심이 생겨 물었고, 서영창은 눈을 뜨고 그를 힐끔 봤다. 그의 대답에 상대가 줄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옆 침대 환자의 말투가 갑자기 느긋해진 말투로 책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줄이 있는 게 낫지요. 요즘은 그렇잖습니까? 줄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결국 줄이 최고니까요.”

“줄이 있으면 뭐가 좋은데요.”

“줄 서는 번거로움이 줄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은 잘 묻지 못하는 질문도 의사한테 할 수 있고. 또 하나, 검사한 다음에도 기다리고 또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결과를 받을 수 있지요.”

서영창은 껄껄 웃더니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옆 침대 환자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입을 삐쭉이며 또 루저가 들어왔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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