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창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슈?”
한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옆 침대 환자가 서영창이 한 시간 전과 똑같은 모습인 걸 보고 궁금한 듯 물었다.
“쉬는 겁니다.”
그는 입이 좀 말랐지만, 물을 마실 생각은 없었다. 수술 전엔 아무것도 먹고 마실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능 팀 시험 문제에도 똑똑히 나와 있었다. 물을 마셨다가는 수술이 미뤄질 것이다.
“책을 보던가 핸드폰을 보시지. 그건 싫어요?”
옆 침대 환자가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차라리 자는 게 낫죠.”
“잠이 안 옵니다.”
“그것도 그래요. 하루 종일 잤으니 말이요.”
옆 침대 환자는 껄껄 웃으며 대화를 종료하고는 입을 또 삐쭉댔다. 서영창은 헛기침하고는 자세를 가다듬고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천장을 바라봤다.
“서영창 씨, 보호자 오셨나요?”
“오고 있습니다.”
차트를 들고 들어온 간호사가 묻는 말에 서영창이 누워서 꼼짝도 안 한 채 대답했다. 피곤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데 몸을 일으키면 그런 피로감이 보일까 봐서였다.
“가족이 동의서를 써야 하니까요. 그리고 보호자도 시험 봐야 합니다.”
“보호자도요?”
“당연하죠. 환자분이 잠드셨을 때 보호자가 실수하면 어떡해요. 보호자 오시면 너스 스테이션으로 오라고 전해 주세요.”
“그러지요.”
서영창이 바로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마흔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병실로 들어왔다.
“형님.”
그를 부른 서영창은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을 게다. 가서 수속 좀 밟고 오마.”
서영창의 형님은 다급하고 빠른 말투로 몇 마디 하고는 바로 뛰어나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간호사도 함께였다.
“서영창 씨, 수술 준비합니다.”
오늘 근무 중인 간호사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우 간호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마지막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서영창은 우 간호사가 장갑을 끼는 모습을 보면서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긴장도 되고.
“보호자님도, 따라오세요.”
“아, 예.”
우 간호사의 말에 서영창의 큰형이 고개를 숙인 채 뒤를 따랐다.
앞장선 우 간호사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옆에 있는 면담실로 들어갔고, 서영창의 안색이 확 변했다.
“수술하는 거 아닌가요?”
“수술 전에 이야기 나눌 것이 있습니다.”
우 간호사는 긴말하기 귀찮은 듯 바로 스트레처 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영창의 큰형도 별도리 없이 따라 들어갔다.
좌자전과 능연이 면담실에서 하얀 가운을 걸치고 진지한 모습으로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서영창 씨 맞으시죠?”
서영창은 안색이 변해서 물었고, 좌자전의 얼굴에도 미소가 보이지 않았다.
“맞습니다.”
“서영창 씨, 아침에 했던 피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HIV 양성입니다.”
좌자전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HIV가 뭔지 아시죠?”
“압니다. 에이즈.”
서영창의 표정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과 담담함이 있었다. 좌자전은 욕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에이즈 병력을 숨긴다는 건 외과 의사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었다.
수술대에서 메스를 들고 있는 외과의에게 손을 베일 수 있는 상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봉합 중에 바늘 끝이 의사의 손을 찌르는 일이 가장 흔하고. 옛날에 바느질로 먹고살던 여자들도 바늘에 찔리는 일이 있는 것처럼 기술이 좋다고 반드시 다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말이다.
일반 환자 수술 중에 바늘에 찔리든 말든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에이즈 환자 수술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상처는 둘째치고 환자의 체액이 날아가 의사의 눈에라도 들어가면 각막에 환자 체내 바이러스가 옮을 것이다.
체액이 왜 튀느냐 묻는다면, 얼굴에 여드름만 짜도 사방으로 튈 수 있는데, 외과 수술에서 액체가 튀는 일이 뭐가 이상할까.
상황이 생기면 비눗물, 소독액, AZT(Zidovudine: 지도부딘)과 3TC(Lamivudine: 라미부딘) 같은 항 HIV제 약물을 쓸 수 있다지만 리스크는 여전히 리스크로 존재했다. 상황을 알았다면 다방면으로 방호해 본다지만, 환자가 속이게 되면 전혀 불필요한 리스크를 겪는 것이 된다.
좌자전은 20년 동안 굴욕을 견뎌온 경험으로 겨우 화를 누르고 있었다. 능연은 담담한 얼굴로 서영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서영창 씨, HIV면 환자분 수술 리스크도 올라갑니다. 알고 계십니까?”
서영창은 이미 여러 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 했었다. 욕설을 퍼붓거나, 구구절절 설교를 늘어놓거나, 온 세상을 벌하겠다고 나서거나······.
유일하게 생각도 하지 않은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담담한 능연의 모습 말이다.
“압니다.”
서영창은 눈을 껌뻑거리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다른 환자보다 HIV 양성 환자의 회복능력은 많이 약합니다. 그러니 관절경 수술 후 신경 회복도 매우 느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 회복이 안 될 수도 있고요. 알고 계십니까?”
“압니다.”“심폐, 간, 신장 같은 장기들이 수술 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심뇌혈관 돌발 증상 확률도 일반인보다 높고요. 그리고 심정지와 호흡 정지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압니다.”
능연은 그 후로도 잔뜩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가 뭐라고 하든 서영창은 안다고 대답했다. 능연은 깊은 눈으로 서영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도 수술을 원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수술해 주실 겁니까?”
“풀 세트 방호 수술복을 입고 수술을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전염과 의사도 합동 진단을 할 것이고요. 그러니 일반 비용보다 더 듭니다.”
능연은 가벼운 말투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영창은 아직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은 좌자전은 내키지 않는 듯 목을 가다듬었다.
“보호자님도 이쪽으로 오시죠. 주의사항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서영창 씨 시험 문제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말씀드릴 테니 기억해주시죠. 우선 첫 번째. 서영창 씨 수술이 오늘 마지막 수술이 될 겁니다. 수술이 끝난 후 수술실 전면 소독 예정이고요.”
서영창 형제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이라도 모두 HIV 환자를 수술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HIV 환자는 자주 병이 나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한다. 전에는 질병 센터가 지정하는 병원에서만 치료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범위가 넓어졌다고 해도 거절당한 경우가 많았다.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건의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보수적인 치료 방식을 권장했다. 서영창의 무릎도 손상된 지 한참 되었고 염증이 반복적으로 발생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병원에선 항상 수술이 아닌 보수적인 치료 방식을 권했다.
그래서 서영창도 어쩔 수 없이 병력을 속이고 운화병원으로 온 것이다.
“그게······ 사실 수술 준비할 때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서영창이 작은 목소리로 해명했지만, 좌자전의 표정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다.
“환자분은 환자분의 어려움이 있을 거고, 저는 저 나름의 직업윤리가 있습니다.”
이어서 좌자전은 평온한 말투로 수술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