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54화 (235/877)

“능 선생님, 방호복 가지고 왔습니다.”

간호사 하나가 상자를 들고 잰걸음으로 들어오자 능연이 바로 뚜껑을 열라고 지시했다.

혹시 앞으로도 쓸 일이 있을지 몰라서 많이 구매했다. 하나에 수십 위안하는 일회용 방호복은 제약회사 영업직원에게 연락만 하면 바로 받을 수 있는 저렴하고 자주 쓰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정군상이 냉큼 앞으로 나가 상자를 열었더니 익숙한 브랜드인 듀폰의 이름이 보였다.

“곽 주임님이 이것까지 비용 정산 해주시진 않겠지?”

듀폰 Tyvek 이라는 글씨를 본 연문빈은 일단 비싸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방호복이라고 해도 기술 차이는 있어서, 가격 차이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드러내 준다. 재빨리 상자를 뒤져 XXXS 사이즈 방호복을 찾아낸 여원이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비용 처리 안 해주시면 내 돈 쓰면 되지 뭐. 기껏해야 1, 2백 위안인데.”

“그건 그래.”

“맞는 말이네요.”

수술실의 의료진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문빈도 자기 사이즈를 고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창서제약이네. 방호복도 듀폰 사 걸 쓰다니. Tyvek 브랜드는 구하기 어렵다던데 말이야.”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게 터져야 모자라지. 요즘은 그런 거 없잖아.”

“꼭 그렇지만도 않아. 어느 성에서는 단체 구매해 버리면 가격 변동이 생기니까. 가격 변동이 생겨야 좋아하겠지. 가격이 통일되면 국산품보다 서너 배는 비싼데 팔리겠어?”

“품질이 다른 거 아닌가요?”

실습생인 정군상이 저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그건 기본이지. 뭐 어쨌든 구매 담당이 직접 리스크를 겪는 것도 아니니까, 제일 좋은 방호호복을 사는 병원이 얼마나 되겠냐?”

“그래도 기준은 있겠죠······.”

정군상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흐물흐물거리는 배설물을 보는 표정으로 여원이 그를 힐끔 봤다.

“의료진 사망에도 기준 있냐?”

그의 말투에 초초짜 실습생은 항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수술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황무사가 간호사 하나를 따라 방호복 상자를 끌어안고 머리를 내밀며 들어왔다.

“능 선생님. 방호복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바로 왔습니다. 일단 창고에 있는 건 다 가지고 왔어요.”

황무사는 자신이 고생했음을 티 내려고 일부러 숨을 조금 거칠게 쉬었다. 능연의 시선이 황무사가 안고 있는 상자에 멎었다가 아까 받은 듀폰 방호복 상자로 옮겨갔다.

황무사도 다른 방호복 상자를 발견했다. 순간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제약회사 영업직원이 무엇 때문에 의사들의 입안에 혀처럼 굴겠나. 먹을 거 마실 거 제공하고 용돈 털어 의사가 배우고 싶은 거 배우게 해주고, 술 좋아하는 의사를 만나면 위가 뚫릴 때까지 대작해주고, 노래 좋아하는 의사를 만나면 편도가 부을 때까지 노래하면서 의사 시중을 드는 게 무엇 때문이냐는 말이다.

다른 제약회사 영업직원과 쿵짝이 맞으라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않겠나?

황무사는 처량한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그러나 능연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정군상에게 저 박스도 열라고 지시를 내렸다.

정군상이 황무사 손에 든 상자를 받아들고 단번에 뚜껑을 열자 세레두라는 브랜드가 보였다. 다른 박스가 듀폰 것이라는 걸 이미 확인한 황무사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듀폰 하청 회사였던 곳입니다. 이제 자가 브랜드를 만든 거고요.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물건은 좋아요.”

황무사가 세레두 방호복을 꺼내 의사들에게 내밀었지만,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못 본척했다.

띠리리.

능연의 핸드폰이 미치듯이 울리자 능연이 전화를 받으면서 황무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황무사는 눈치 빠르게 아쉬움을 남긴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환자 곧 온답니다. 다들 방호복 입으세요.”

전화를 끊은 능연이 상황을 설명했다.

“능 선생님,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갑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 주세요.”

황무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에이즈가 공기로 전염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굳이 모함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이렇게 잘생긴 얼굴로 모험하는 건 사회에 무책임한 일이야.’

황무사가 제 얼굴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여 선생님, 실습생 방호복 입는 거 지도해주세요. 황무사가 가지고 온 거로 연습하면 되겠네요.”

여원에게 지시를 내리던 능연이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실습생들은 꼭 수술대 옆에서 참관 안 해도 됩니다. 본인이 선택하도록 하죠.”

“들었지? 어떡할래? 연습할래? 아니면 밖에서 기다릴래?”

남자 둘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와 세레두 상자에서 우선 방호복을 고르고 듀폰 상자에서도 하나 골랐다.

“아, 나 온몸에 소름 돋았어.”

“그럼 나가서 기다려.”

관비비의 창백한 얼굴에 여원이 가차 없이 대답했다. 연문빈도 도와줄 생각 없는 듯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관비비를 바라봤다.

병원의 실습생은 방앗간의 노새 같아서 예쁘게 생기면 일 좀 덜하고 먹이를 많이 먹지만, 일을 못 하면······ 차라리 귀여운 고양이보다 못했다.

“나, 나 좀 무섭단 말이야.”

관비비는 불쌍한 척 주변을 바라보다가 동기인 정상군과 항학명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온몸이 불편해진 항학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수술하는 것도 아니고 참관만 하는 건데 뭐가 무서워.”

“만일이라는 게 있잖아.”

“콘돔 끼고 해도 만일이 있긴 하지.”

귀여운 척 입을 쭉 내미는 관비비의 모습에 항학명이 저도 모르게 틱 내뱉었다.

“야! 뭐라는 거야!”

얼굴이 새빨개진 관비비가 한참을 항학명을 노려보다가 저급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항학명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끽소리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던 관비비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방호복을 휙 잡아채 뜯으려고 했다.

“멈춰!”

체구는 작아도 목청은 큰 여원이 고함치자 관비비는 아까 생긴 소름이 사라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손 씻었어? 방호복 입고 뭐 하려고? 내려놔!”

여원의 목소리가 수술실 안에 쩌렁쩌렁 맴돌았다. 관비비는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손을 덜덜 떨면서 방호복을 상자 안에 돌려놓았다.

“수술실에서 어디서 성질을 부려! 하기 싫으면 꺼져! 똑바로 안 서?! 네 남친 앞에서나 성깔 부려! 여기가 네 놀이터야?!”

여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관비비의 눈에 눈물이 바로 고였다.

“눈물 안 닦아? 울긴 왜 울어? 어디서 수술실 환경 오염시키려고. 바로 학교로 돌려보낸다? 의사하기 싫으면 꺼져? 왜 의사 되려고 하냐? 한 달에 몇천 위안 버는 거로 립스틱 하나도 못 살 텐데. 오늘은 에이즈, 내일은 조류인플루엔자 환자가 나타날 수 있는 게 병원이야. 응급의학과에 바이러스 검사 못 하고 수술실로 들어오는 환자가 널렸어! 어쩔 건데?!”

관비비가 훌쩍임을 멈추자 여원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지금은 고를 방호복이라도 있지. 방호복이 어떻게 발전해온지 알아? 의료진의 피눈물로 여기까지 온 거야.”

관비비는 눈빛이 멍해져서 입을 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너희 셋, 다 따라 나와. 방호복 입는 법 알려 줄 테니까.”

여원은 실습생들이 방호복을 골라댈 기회도 더는 주지 않았다.

능연은 묵묵히 문을 나서서 빠른 걸음으로 손 소독 구역에 도착한 다음 걸음을 늦추고 수술 구역 복도를 지나 클린 구역을 빠져나온 다음 준비 구역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사물함을 열어 옷을 꺼내서 샤워실로 들어가 옷을 다 벗고 뜨거운 물로 맹렬하게 씻기 시작했다.

에이즈 환자에게 수술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고, 걱정이 아예 없을 수가 없었다. 확률 어쩌고 해도, 자기가 겪게 되면 전혀 생각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누군가 2위안을 들여 복권을 산 다음에 펼치는 환상의 세계는 확률을 무시한 초현실 낭만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500만 번 비행할 때 치명적인 사고 확률이 한 번 일어나는 비행기를 탈 때 자신의 생명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이 에이즈 수술에 참여하게 된다면 엄청난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선택이 별로 없었다. 지금 의학 환경으로는 삼갑병원 의사는 조만간 비슷한 수술을 하게 될 것이다. 능연은 치료팀을 꾸리면서 그런 문제들을 벌써 고민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걱정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능연은 처음으로 단독 비행에 도전한 파일럿이 된 기분이었다. 준비가 다 된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뜨거운 물의 위로가 필요했다.

그렇게 15분이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능연은 겨우 꼭지를 잠그고 몸을 닦고 옷을 입고는 탈의실로 가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능연의 몸매에 딱 맞는 수술복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준비 구역 간호사들이 열심히 분류하고 구해놓은 덕분에 능연은 쉽게 수술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의식처럼 모든 과정을 마친 능연은 다시 손 소독 구역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손을 씻었다.

10분 후, 능연이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을 때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봤지만, 이렇게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능연이 조금 전에 한바탕 마음의 준비를 했음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능연이 천천히 보호 안경을 쓰고 방호복을 입고 이중 장갑을 끼느라 시간이 다시 10분 정도 흘렀다. 그때 연문빈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왜? 오늘 족발 다 팔렸냐?”

“BMW 353 사러 갔을 때 생각나서요.”

“차종까지 자세히 말할 필요 있냐?”

이상한 듯 묻던 마취의 소가복이 껄껄 웃었다. 마취의는 의사 중에 고 수입자에 속하지만, 소가복은 아직 비싼 차를 사지 않았다. 24시간 병원에서 먹고사는 인간은 비싼 차가 필요 없다.

“재미있는 얘기 해드릴까요? 정비하러 갔을 때, 소모품값만 받는 게 아니라 시간당 돈을 받더라고요. 5분에 38위안. 그러니까 한 시간이면 작업비가 450위안이죠. 우리 의사가 시간당 받는 돈이 450위안인데 말이죠. 너무 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인간이 BMW보다 복잡하지 않겠어요? 우린 지금 에이즈 환자 수술하고 있잖아요!”

“한 시간에 450위안? 헐, 그럼 난 포르쉐 사야겠다.”

“욕먹으려고요? 의사들은 BMW 353이 한계 아닌가요?”

“그러니까, 다른 의사들은 너보다 비싼 차를 사면 안 된다는 거네?”

“알아들으셨네요.”

연문빈은 손을 뻗어 겹 장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걸로 정말 손가락 안 찔릴까?”

“안 되죠.”

능연도 똑같이 손을 뻗었다. 이중 장갑 안쪽은 두꺼운 진한 색이고 바깥쪽은 얇은 흐린 색 장갑이었다. 밖에 장갑에 구멍이 뚫리면 안에 진한 색이 드러나서 장갑에 구멍이 뚫렸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실제 조작 중에 안쪽 장갑이 찢어질 확률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은 슬관절경 수술이라 장갑이 찢어질 일은 없을 거예요. 가서 환자 오라고 하시죠.”

연문빈은 속는 셈 치고 웃었다.

잠시 후, 좌자전은 준비를 마친 서영창과 함께 수술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여원도 실습생 세 명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연 선생님, 어시하세요. 여 선생님은 대기하시고. 좌 선생님은 나가세요.”

능연은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세 조수 중에 연문빈의 수술 실력이 제일 나았고 여원과 좌자전의 실력은 모두 형편없었다. 그러나 여원은 실습생을 관리해야 했다. 한편으로 능연과 세 실습생은 아직 에이즈 환자 수술을 못 해 봤는데, 삼갑병원에서는 필수 항목이었다.

운화병원은 지역 정상급 병원이었고, ‘상급 병원’의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상급 병원이 져야 하는 책임도 져야 했다. 하급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고, 고칠 엄두를 못 내는 환자, 심지어 다 죽어가는 환자를 보내더라도 받는 거 말고 다른 선택은 없었다.

“능 선생님, 감사합니다.”

서영창이 가볍게 기침을 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실습생들은 무심결에 입과 코를 가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밨다. 여원과 능연마저도 표정이 부자연스러웠다.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능연은 얼굴 마스크를 쓴 채 대답했다. 얼굴 마스크 안에 마스크도 끼고 전신 무장을 하고 있었다.

서영창은 능연의 방호복을 보며 좋은 듯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감사 인사드려야죠.”

“전 당신이 싫은데요.”

능연이 서영창의 말을 끊었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증상에 따라 부분 마취에 동의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도 방법이 없어서······.”

힘겹게 입을 뻐끔대던 서영창이 억울한 듯 말했지만, 능연은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연문빈에게 낮은 목소리로 시트 소독하라고 지시 내렸다. 엄숙한 능연의 표정에, 서영창은 입을 우물거리다가 현명하게 입을 닫았다.

연문빈과 여원은 내심 통쾌해했고, 조금 전까지 호되게 혼나던 관비비조차도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병력을 감추는 환자란 의사에게 병원에 던져진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디서 그 폭탄이 터져서 어느 의료진의 생활, 미래, 그리고 노력을 파괴할지 모른다.

이어 연문빈과 간호사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허벅지 고정대 쓰세요.”

능연이 생각난 듯 코치했다. 슬관절경 수술은 환자 다리를 소독하는 과정에서 조수가 환자의 허벅지를 들어 올리고 진행한다. 가장 편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고정대를 쓰면 허벅지 주변을 스펀지 매트로 고정하고 이리저리 조작하느라 더 귀찮아져서 건실한 어깨로 받치는 게 훨씬 편하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 수술에서 허벅지를 어깨에 걸치길 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헬스남인 연문빈도 지금은 헬스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심지어 앞으로 함부로 헬스력을 자랑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도록 제대로 고정하세요.”

능연은 물품을 일일이 체크하고 난 후에 수술을 시작했다.

“메스.”

능연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차디찬 스테인리스 메스가 그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능연은 새삼스럽게 메스가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던 능연은 그어놓은 선을 따라 가볍게 서영창의 무릎 피부를 절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