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에어타이트 도어가 열렸지만, 수술대 앞의 의사와 간호사는 아무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에이즈 환자 수술이라고 해서 능연의 수술 속도가 줄어들지는 않았고 일반 환자 수술을 할 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된 속도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은 의료진들이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라, 의료진들은 하나같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막 수술실에 들어서서, 스크럽 간호사 앞에 놓인 도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을 본 곽종군은 절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환자라면 집도의가 수술을 빨리하든 느리게 하든, 진료과 주임이지 교과주임도 아닌 곽종군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 수술을 그것도 이렇게 빨리하는 모습에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연, 너무 급하게 하지 말게.”
곽종군은 잠시 지켜보다가 겨우 틈이 나자 바로 충고했다. 그제야 그가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린 연문빈이 당황해서 목소리까지 잠긴 상태로 입을 열었다.
“곽 주임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연문빈의 어딘가 서러운 말투에 곽종군은 마음이 약해졌다가 곧바로 강하게 대답했다.
“내 수술실에서 감염 수술을 하는데 어떻게 안 오겠나? 오늘은 퍼스트 어시뿐인가?”
“곽 주임님, 저도 있습니다.”
여원이 마음이 지친 듯 긴말하기 싫은 것 같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곽종군은 시선을 한참이나 훅 낮춰서 여원을 찾아냈다.
여원의 눈빛, 그리고 실습생 세 명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가부장 스타일인 곽종군도 어쩐지 당황해서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자넨 실습생 담당 아닌가. 그럼 어시는 아니지.”
“아.”
“평소와 같은 템포를 유지하는 게 오히려 실수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능연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곽종군의 말에 대답했고, 곽종군은 걱정이 살짝 가신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방법이지. 음, 노출 시간을 줄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네.”
능연은 가볍게 대답하고 바로 주의를 환자에게 돌렸다. 환자가 부분 마취 상태라서, 혹시나 오해 같은 게 생길까 봐 곽종군도 말을 아꼈다.
곁에 있던 항학명은 곽종군이 나타나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능연의 동기이니 실습생 신분인 능연이 운화병원에 남을 수 있던 것은 모두 곽종군의 힘임을 알고 있었다. 물론, 능연의 실력이 좋은 덕이지만,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伯樂: 주나라 명마 감정 달인, 천리마를 알아본 사람)이 어디든지 있는 건 아니라고 교수들이 자주 하는 말처럼 명의는 많은 법이니까 말이다.
항학명은 능연이 천리마라면 곽종군은 백락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의 잠재 능력도 알아차리지 않을까?’
“곽 주임님, 방호복 드릴까요?”
“필요 없네.”
유심히 곽종군을 지켜보다가 묻는 항학명의 말에 마스크와 보호 안경만 쓴 곽종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곽종군은 능 팀 의사들과 달리 전염병을 많이 겪어본 노련한 의사였다. 그는 응급의학과의 주인 아닌가. 과거 몇십 년 동안 그가 겪은 케이스는 너무나 많았다.
입원 환자는 왜 모두 감염 4항목 검사를 하는가? 응급실에서 나갈 때 왜 재검사를 하는가? 그런 총결을 낸 것이 모두 곽종군의 동년배들이었다.
옛날엔 에이즈뿐만 아니라 C형 간염처럼 해결 방법이 없는 전염병도 있었다. 그리고 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난치성 전염병도 있다.
그런 환경을 지나온 곽종군은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지, 또 어느 정도로 보호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수술도 그저 참관할 때는 마스크 하나, 보호 안경 하나, 거기에 장갑 하나면 완벽하다. 에볼라도 아니고, 완벽히 격리할 필요는 없었다.
HIV는 공기로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체액이 튀더라도, 능연이 대뜸 심장을 찌르지 않는 이상 참관 의사들한테까지 튈 일이 없다. 물론, 가장 안전한 방식은 참관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지만.
“왜 실습생까지 불렀나.”
곽종군이 문득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어차피 실습 온 거, 경험하면 좋을 거 같아서입니다.”
능연의 대답은 꽤 간단했다. 곽종군은 고개를 돌려 실습생 세 명을 보다가 아까 말을 걸었던 항학명을 향해 말을 꺼냈다.
“운이 좋은 줄 알게들. 능 선생이 이런 기회를 주다니 말이야. 수술실에서 참관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는가?”
관비비와 정군상 모두 고개를 살며시 저었고 항학명은 머리를 쥐어짰다.
“말조심, 행동 조심?”
“그래도 뭘 좀 아는군.”
곽종군이 칭찬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항학명이 순간 환하게 웃음 짓자 곽종군이 바로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걸 아는 놈이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쓸데없는 말을 해?”
항학명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눈을 끔뻑였다.
“능 선생이 수술 참관을 허용할 건 감사히 여기고 다들 입 꾹 다물고 기회를 아껴 수술을 지켜보라고. 알겠나? 기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야! 다들 잘 봐두라고!”
후배 사랑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는 곽종군의 모습에 실습생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수술대 위 환자까지 움츠러들었다.
“말조심, 행동 조심이 무슨 뜻인 줄 아나? 잔머리 굴리지 말라는 뜻이야. 나한테 감히 이래라저래라 코치하려고 해? 실습생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곽종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위협이 넘치자 능연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곽 주임님,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아, 미안하네.”
퍼뜩 정신 차린 곽종군이 바로 목소리를 낮추고 손을 내저으며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말을 마친 곽종군은 실습생 등 뒤로 가서 그들 너머로 수술을 지켜봤다. 수술 중에 수술실에 들어온 이상 특별한 일 없으면 다시 나가지 않는 게 좋았다.
실습생들은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콕 찍혀서 욕을 얻어먹은 항학명은 눈이 다 튀어나올 것 같았다. 벌써 스물넷이고, 띠도 두 바퀴나 돌았다. 병원이 아니라 아무개 회사에서 일했다면, 잘리는 한이 있어도 콧대를 치켜들고 같이 싸웠을지도 모른다. 특히 태도가 적극적인 직원을 곽종군처럼 대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병원의 상하급 의사 사이는 영원히 위협과 공격이 따른다. 상급 의사의 기분이 안 좋으면 욕하고 또 하고, 하급 의사는 참아야 한다. 처음엔 왜 참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항학명도 막상 직접 겪고 보니 참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잘못해서 곽종군을 거슬렸다가 무슨 결과가 있을 줄 알고 덤빈단 말인가.
항학명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맴돌았다.
‘곽 주임 같은 사람은 어쩌면 백락을 가장한 마부일지도 몰라. 천리마를 알아보기는 개뿔. 그냥 성격 더러운 마부야, 마부.’
“음, 여기 깔끔하게 처리됐군.”
곽종군이 갑자기 모니터를 가리키며 칭찬하자 다들 무심결에 시선을 옮겼다.
“다들 여기 보라고. 이 테두리, 깔끔하게 정돈됐지? 나중에 논문을 보게 되면 알겠지만, 매우 뛰어나게 처리된 케이스라고. 알겠나?”
“게다가 모두 새롭게 살린 테두리죠.”
여원이 곽종군의 말을 호응하며 모니터를 가리켰다.
“손상이 오래되면 남겨진 반월판 골질 테두리는 튼튼하지 않아서, 정리해 주지 않고 바로 봉합하면 잘 맞물렸다고 해도 나중에 파열할 가능성이 커. 게다가 파열하게 되면 유리성(流離性) 뼛조각이 되어서 몹시 아프게 돼. 그러니까 테두리를 꼭 정리해야 하는 거지.”
“환자의 건강한 뼈 부분의 면적도 많이 남겨야 하고.”
“맞습니다. 반월판을 크게 잘라버리는 의사도 있는데, 그건 정말 너무 책임감 없는 행동이야. 능 선생처럼 손상된 테두리를 새롭게 살리면서 건강한 조직을 많이 손상하지 않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야. 너네, 슬관절경 수술에 쓰는 도구가 왜 그렇게 다양한지 알아?”
여원은 좋은 스승이 되고 싶은 기세로 물었고, 항학명을 비롯한 실습생들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여원은 고개를 치켜들고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슬관절경 하에선 잘 움직이기 어려우니까 이런저런 다양한 기구를 놓은 거지!”
실습생들은 큰 부담을 내려놓은 듯한 얼굴로 점수 따려는 듯 생긋 웃어 보였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능숙하게 반월판을 수정하는 것! 그게 바로 실력이다.”
곽종군이 감탄해 마지 못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손가락으로 쿡쿡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봉합 보라고. 손상된 부위를 완전히 수직으로 꿰뚫고 들어갔어. 이렇게까지 고정하다니. 대단해, 진짜 대단해.”
항학명은 아까까지만 해도 엄하게 채찍을 휘두르던 곽종군이 지금은 열심히 손바닥을 비빈다고 생각했다.
다른 실습생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곽종군을 바라봤지만, 항학명에게는 이미 유사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순간 항학명은 다시 의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때 능연이 지나가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찬사가 이어졌고, 능연이 하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칭찬받았다. 그런 날도 졸업하고 실습생이 되면 끝이리라 생각했던 항학명은 지금······ 정말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