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56화 (237/877)

“끝났습니다.”

능연은 수술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냈다. 항학명이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보니 수술 시작한 지 25분밖에 지나지 않았고, 예정된 시간의 반도 안 됐다.

온몸을 바짝 긴장하고 있던 연문빈은 허탈해져서 무의식적으로 땀을 닦으려고 했다.

“멈춰!”

여원이 다시 꽥 고함치자 연문빈이 부르르 떨면서 바로 손을 내렸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실습생보다 몇 년 더 경험이 있긴 해도 그뿐이었다.

능연도 고개를 숙이고는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실에 있는 모든 인원은 우선 방호복 벗는 방법부터 한 번 머릿속으로 확인하고 난 다음 수술복과 옷을 벗고 소독하세요. 그리고 깨끗한 신발로 갈아 신고······.”

연문빈을 비롯한 의사와 간호사, 실습생 모두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긴장한 상태로 입은 방호복은 벗을 때라고 안심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서서히 움직이면서 시간을 들인 다음에야 수술실에서 나갔다.

이제 수술 도구, 특히 내시경 설비는 특별히 더 꼼꼼하게 소독해야 한다. 그밖에도 벽, 바닥도 소독제를 뿌리고 닦아야 하며, 피, 사용한 생리식염수 등 수술 중에 발생한 오염 물질은 따로 배출해야 한다.

제대로 씻고 휴게실로 돌아갔을 때, 능연조차 지칠 대로 지친 느낌이 들었다.

“시간 낭비 제대로 했군.”

능연은 휴게실에 붙은 리스트를 보며 생각이 많은 듯 내뱉었다. 매일 이런 식으로 수술해야 하면 병상 모자랄까 봐 걱정할 일이 없겠군.

“충분히 빠르셨거든요? 그것보다 더 빠르면 내가 못 따라간다고.”

“습관 되면 더 빨라질 겁니다. 후우, 오늘은 리듬을 잘 못 잡았어.”

연문빈이 놀라서 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흔들며 반성하기 시작했다.

“됐거든! 진짜 됐다고!”

연문빈은 아직 찜찜한 심정으로 두 번 강조했다.

그때 곽종군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모두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느낌이 어때?”

곽종군의 말투에 엄숙함이 조금 빠지고 가장의 다정함이 조금 늘었다. 연문빈은 고개를 들어 곽종군을 봤지만, 대답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여원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를 못 찾을 수도 있다.

“우리 수술실에서 감염 수술을 하니까 효율이 너무 안 좋습니다.”

“맞는 말일세. 마지막 수술로 배정해도 회전율이 낮아지지. 하하, 게다가 자네는 새벽부터 수술하는 사람인데 말일세.”

“문제네요······.”

“감염 수술할 새로운 수술실 달란 소린 말게.”

“흥미 없습니다. 어차피 감염 수술실이 있어도 회전율은 마찬가지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 어쨌든 감염 수술을 하다니. 정말 예상 밖이었네.”

곽종군은 저도 모르게 팔을 뻗어 능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휴게실이 순간 고요해졌고, 여원은 무심결에 제 머리통을 만지작거렸다. 항학명은 완전히 흥분한 표정이었다. 주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니! 이보다 흥분된 일이 또 있을까?

“오늘은 가서 푹 쉽시다. 내일 아침에도 수술 없습니다.”

능연은 곽종군의 마수에서 빠져나오고는 환자가 1인실로 갔는지 물었다.

“응, 1인실 배정해줬어. 저기, 다른 환자한테 알리지 않아도 될까?”

“안 되네.”

여원이 몇 번 망설이다가 결국 묻는 말에 곽종군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원. 지금 자네 생각, 아주 위험한 생각일세. 앞으로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게.”

“······예.”

여원은 반항할 생각도 없이 대답했다. 의사는 이리저리 꺾이기 마련이고, 부러질 줄 모르는 강경파는 주치의가 될 때까지 살아남지 못 한다.

“저녁엔 정상 근무하도록 하죠. 다들 돌아가서 쉬어요.”

능연은 물 몇 모금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실습생들도 바로 따라 일어났지만, 연문빈과 여원은 태산처럼 자리를 지켰다.

“난 오늘 당직.”

연문빈이 익숙한 듯 대답했다. 여원을 보던 능연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 치프죠.”

“그렇단다. 이제 치프란다.”

여원은 다 포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일 봬요.”

능연은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집으로 돌아갔다.

의사 생활은 어쩔 수 없었다. 당직 서는 날 꼭 바쁘리란 법은 없지만, 땡땡이는 절대 용납되지 않았다. 능연이 연문빈과 여원을 대신할 사람을 구할 수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딱히 바꿔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 두 사람 모두 지치긴 했지만, 그건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늘 환자를 구하면서 한 사람의 가정과 생활을 지켰지만, 그것 역시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 그런 날이 이어진다.

능연이 거의 주차장에 다가갔을 때 어둠 속에서 슥슥 소리가 들렸다.

“능 선생님!”

황무사가 커다란 기둥 뒤에서 튀어 나왔다.

“왜 여기에······?”

주위를 둘러보던 능연이 황무사를 바라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능 선생님! 에이즈 환자 수술하셨다고요?”

황무사가 허리를 굽히고 보온병 하나를 건넸다.

“새 겁니다. 소독도 여러 번 했고요.”

능연은 받아들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 상황을 누설할 수 없습니다.”

“그럼 에이즈 맞다는 거네요!”

황무사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제 그도 철부지 신입이 아니었다. 지금 국내에서 노출할 수 없는 케이스는 에이즈 같은 극소수 질병뿐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청결 제품 소개하려고 왔습니다. 능 선생님, 소독 용품이 수술실에서 빠질 수 없잖습니까? 우리 회사에 여러 메이커 제품이 있습니다.”

황무사는 능연를 따라가면서 단숨에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창서제약 같은 회사로서 치료팀 하나의 소독 제품 사용량은 그저 작은 항목에 불과했다. 하지만 황무사에게는 능연의 오더를 따내는 건 의미가 큰일이었다. 특히 입찰 과정이 없다면 더 수월한 일이고.

“그쪽이 가지고 온 방호복, 너무 엉망이더군요.”

능연은 더 들을 생각 없이 바로 말을 잘라 버렸다.

“에? 안 좋다고요? 그럼 바로 메이커에 피드백하겠습니다. 일단 그쪽에서 설명할 기회를 한 번 주세요.”

“설명 필요 없습니다.”

“없다고요?”

“창서제약 세정 용품도 필요 없고요.”

황무사가 다급해졌다.

“그러지 마시고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세정 용품이랑 방호복은 아예 다릅니다.”

“설명 필요 없습니다.”

자신의 제타에 올라탄 능연이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