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57화 (238/877)

대형 버스 하나가 병원 주차장 출구 쪽에 서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버건디 색이었지만, 커다란 차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벤츠 엠블럼과 ATRSUN이라고 영어가 쓰여 있어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제타를 몰고 나가던 능연은 앞쪽에서 손을 흔드는 검은 색 전통 복장을 한 노인을 발견했다. 능연은 가볍게 브레이크를 밟고 차창을 내렸다.

“능연 선생님.”

전통 복장을 한 노인이 느릿느릿 걸어와 인사를 하고는 말을 이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능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칠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나왔다. 카키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전칠이 뛰어오자 옷자락이 펄럭거렸고 새하얀 피부가 돋보였다.

능연은 핸드브레이크를 잡아당겼다.

“괜찮으신 거죠?”

차 앞까지 뛰어온 전칠이 속도를 줄이고는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죠?”

“괜찮으면 됐어요. 맞다. 수술은 순조로웠나요?”

잠시 생각하다가 되묻는 능연의 말에 전칠이 웃어 보였다.

“네.”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수술을 여러 건 했는데, 이상한 일이나 이상한 해부구조의 환자는 없었다. 감염 수술은 처음이었지만, 운 좋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어떤 기준으로 봐도 모두 순조로웠으니 말이다.

“잘됐다. 제가 지금 막 운화로 돌아왔거든요. 배고픈데 같이 밥 먹을래요?”

“그래요. 어디로 갈까요?”

환하게 웃으며 묻는 전칠의 모습에 바로 집에 가고 싶지 않던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가 식당 갈래요?”

전칠은 능연의 단골집을 골랐고 잠시 고민하던 능연이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됐어요. 수술이나 응급 처치를 할 컨디션이 아니네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눈을 깜빡이던 전칠은 이내 자기가 그 말뜻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차 타고 가요. 당신 차는 제 버스 안에 넣으면 돼요.”

전칠은 바로 핸드폰을 들고 지시를 내렸고, 버스 바퀴 사이가 열리더니 강철 재질의 두꺼운 판이 바닥으로 내려와서 소형 자동차가 들어가기 충분한 공간을 만들었다.

제타를 안에 세운 능연이 차에서 내려오자 두꺼운 판이 천천히 버스 아래 공간으로 들어갔다.

“첨단 기술이네요.”

능연이 감탄한 듯 칭찬했다.

“어서 타요.”

전칠은 능연이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자 한숨 돌린 듯 말했다.

버건디색 대형 버스 안은 순백색으로 꾸며진 넓은 공간에 정교한 가구들이 설치되어서 고급 호텔룸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려하고 기능이 완전한 인테리어에 딱 필요한 물건만 들어가 있었다.

대형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자 전칠은 조명을 조금 조절했다.

“뭐 먹고 싶어요? 아, 아니면 차에서 먹을래요?”

능연은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고, 전칠은 흥분해서 몇 바퀴 맴돌다가 버튼을 눌렀다.

“경치 좋은 곳으로 가요. 압령산이 좋겠네.”

“네.”

버스 기사가 칸막이로 가려진 운전석에서 대답했다.

전칠은 서랍장에서 온갖 조리 도구를 꺼내고,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더니 냉동 서랍에서 얼려둔 만두를 꺼냈다.

“만두 어때요? 돼지고기 셀러리 만두.”

“좋아요. 소스는 있어요?”

전칠은 자신의 정상급 만두 찌는 솜씨를 선보일 생각에 들떠 있었고, 능연은 편하게 소파에 앉아 부드러운 가죽 시트를 만지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실내 장식, 그리고 허둥지둥 대는 전칠을 구경했다.

“식초, 고춧가루, 마늘, 간장 있어요. 이거면 돼요?”

“식초랑 고춧가루만 있으면 돼요.”

“OK!”

전칠의 자신감이 순간 상승했다.

대형 버스가 서서히 압령산 산자락에 멈췄다 운화 시와 가까운 산이고 낮엔 관광객과 자동차가 가득한 곳이다. 지금은 밤이라 떠들썩한 기운은 물러가고 산간의 적막함이 감돌았다.

버스가 완전히 멈춘 후, 차에 달려있던 컨테이너 세 개가 천천히 양쪽 그리고 뒤쪽으로 밀려 나가면서 공간을 크게 넓혔다. 그러는 사이 전칠이 물을 세 번이나 추가한 물만두도 다 익었다.

그녀는 버스의 루프창을 열고 실내조명을 더 낮추면서 별빛을 차 안으로 끌어들였다. 능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알아서 소스와 그릇을 테이블에 놓고는 전칠이 만두를 담아 오길 기다렸다. 막 익은 만두가 통통한 배를 내밀고 모락모락 김을 내뿜었다.

“먹어봐요.”

전칠은 긴장한 듯 능연을 바라봤다. 만두는 집에 요리 해주시는 류 여사가 싼 거지만, 요리는 직접 한 것이니 말이다.

전에도 음식 조공은 많이 했지만, 이번 조공엔 확실히 기념할 만한 의미가 있었다.

능연도 사양하지 않고 만두 하나를 집어서 식초와 고춧가루를 조금 묻히고 후후 불어서 통째로 입안으로 넣었다. 얇은 만두피가 바로 터지자 농후한 육즙이 스며 나왔다.

능연은 뜨겁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한 느낌에 ‘후우’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잘라서 먹지 그랬어요.”

“그럼 육즙이 아깝잖아요.”

전칠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능연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응? 육즙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잘라서 먹으려면 만두를 세워야 하는데 그럼 앞부분엔 육즙이 안 들어가잖아요. 그리고 나머지 반을 먹을 땐 육즙이 너무 많고요.”

능연은 경험을 말하면서 다시 만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능연의 말에 전칠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재빨리 만두 하나를 집어 들어 손으로 가리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능연은 아무 말 없이 만두를 세 개째 집어 들었고, 이번엔 만두를 유심히 살펴본 후에 입에 넣었다.

배가 고프긴 했다. 하루 종일 수술하느라 힘들었고, 마지막엔 에이즈 합병증 슬관절경 수술이어서 더욱 체력과 에너지를 소모했다.

물 잔을 집어 든 능연이 단숨에 물을 비웠다.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요?”

“못 고치는 환자가 있네요.”

“그래서······ 속상해요?”

떠보듯 묻는 전칠의 모습에 능연은 한숨을 내쉬기만 하고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수술은 모두 외상 수술이었다. 탕 봉합법이든 단지 이식이든 아니면 아킬레스건 파열, 반월판 성형술이든 모두 제대로만 하면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에이즈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현대 의학 발전으로 에이즈 환자의 수명은 늘어났지만, HIV가 유발한 면역 결함 자체는 언제까지나 시한폭탄이었다.

외과 의사는 그 폭탄에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서영창이 한 짓도 능연의 생각이 많아지게 했다. ‘왜?’라는 심각한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생각해 봐도 속 시원한 대답도 얻을 수 없는 문제였다.

“어릴 때, 사슴 기르고 싶어 했어요. 꽃사슴 밤비 있잖아요. 그런데 아빠가 사슴은 너무 위험하다고, 나중에 말 한 마리를 선물 해주셨어요. 그래서 이름을 밤비라고 붙였고. 아라비아 말이었는데, 엄청 컸거든요. 털이 새하얘서 예뻤어요. 그치만 저는 계속 작은 말이라고 불렀어요.”

전칠은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옛날이야기를 꺼냈고 능연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16살 때, 밤비한테 사고가 생겼어요. 아빠가 우리 가족 목장에 밤비를 묻었죠. 너무 슬프고, 너무 아팠어요. 그런데 어느 날 놀러 가서 혼자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밤비를 묻은 곳 근처에 갔는데, 작은 사슴이 밤비 무덤 앞에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순간,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 있죠.”

능연도 전칠을 마주 봤다.

“내 말은, 생명은 다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거 같아요. 혼자 책임지려고 하지 말아요. 아무리 우수한 수의사도, 동물 박사도 밤비를 살리지 못했어요. 우리 아빠 말대로,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게 있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전칠의 눈이 촉촉해졌다. 능연은 그런 전칠을 보며 오늘 곽종군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 이상하지만 싫진 않던 느낌을 떠올렸다. 능연은 어색하게 손을 뻗어 전칠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애기 사슴을 만났다면서요.”

머리를 부드럽게 톡톡 치는 긴 손가락, 따듯한 숨결이 갑자기 가까워지자 전칠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 같아 어쩔 줄을 몰랐다.

“응, 홍토끼는 이제 어른 사슴이 되었지만요. 그리고 가족들도 생겼고요. 아빠가 주변 목장을 다 사 버려서 안에 아무도 못 들어가니까, 사슴들이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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