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조금씩 복부 조직을 박리하면서 첫 복강경 수술을 만끽했다.
일반인의 인식과 달리 복부 수술은 날카로운 메스로 단숨에 절개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층층이 차례차례 복강을 절개한다.
층층이 절개하면 수술 과정이 보기에 좋지 않을지 몰라도 배를 덮을 땐 복막은 복막끼리, 복직근은 복직근끼리, 지방층은 지방층끼리 층층이 꿰매야 해서 수술 후 봉합할 때 유리하다. 그래서 한 번에 절개해 버리면 수술 후 봉합 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러니 차라리 절개할 때 일부러 조직을 박리하여 식염수로 보습하면서 거즈로 층 사이에 끼워 넣어 두면 덮을 때 층층이 봉합하기 쉬워지고 실수할 일도 줄어든다.
능연은 그렇게 느긋하게 복강 수술을 진행했다.
복강 수술에 익숙한 주 선생 눈에 능연의 앞부분 스텝은 속도 면으로 그렇게 우세한 점이 없어 보였지만, 일관된 능연의 동작에 템포가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 걸리지 않아 의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맹장 찾기 게임에 돌입했고, 주 선생은 싱긋 웃으면서 능연을 지켜봤다.
요즘 충수염 수술의 유일한 어려움이 바로 맹장 찾는 부분이었다.
주 선생 정도 그리고 그 이상 급인 의사에게 맹장을 분리하고 봉합하는 과정은 간단한 임무에 불과했다. 곰과 토끼가 숨바꼭질하는 것 같달까? 일단 토끼를 찾아내기만 하면 잡아먹는 건 곰에게 일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맹장은 교활한 토끼처럼 복강 안에서 도망치면서 일정한 위치가 없다는 게 유일한 골칫거리였다. 운이 안 좋거나 경험이 부족한 의사는 30분 이상 맹장을 찾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초짜 의사는 처음에 세 시간이나 걸리는 때도 있다.
“능연아, 맹장 찾는 데 얼마나 걸릴 거 같니?”
주 선생은 능연의 동작을 보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수술은 숙련도가 중요한 작업이고, 아무리 잘난 의사도 한동안 충수염 수술을 안 하다 보면 손에 안 익어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능연은 머뭇거리다가 바로 주 선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복강 안을 뒤지다가 피범벅이 된 작은창자를 잡아냈다.
“거즈.”
먼저 명령을 내린 능연이 그제야 주 선생에게 대답했다.
“바로요.”
“와, 능 선생님 정말 잘하시네요.”
스크럽 간호사가 거즈를 건네며 감탄하는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능연은 매너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즈로 맹장 주변의 고름을 닦아내고 포셉을 건네받아 맹장을 높게 치켜들었다. 주 선생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맹장을 보고는 펄쩍 뛰어올랐다.
“차, 찾았······?”
“네.”
“몰래 연습했지?”
“아니요.”
“히야, 쟤 뭐지. 운빨 봐라.”
주 선생은 운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손가락만 넣어도 맹장을 찾아내는 일반외과 의사가 있다는 것을 종종 듣긴 했다. 하지만 그런 의사들이 자른 맹장을 모으면 수술실 데코를 할 수 있을 정도인데, 능연은 고작 맹장 절개술 연습이나 했을 텐데 말이다.
능연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주 선생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잘난 척하는 꼴 좀 보소. 야, 맹장 하나로 뭐 그렇게 잘난 척······.”
“아니, 당기시라고요.”
할 수 없다는 듯 말로 지시하는 능연의 모습에 주 선생은 멍해졌다가 다급히 훅을 당겼다. 충수염 수술 어시가 할 일도 딱 그거 하나였다.
능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혈관과 맹장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훅을 너무 오래 안 잡아서 좀 어색하네. 우리 협조 좀 자주 해야겠다.”
“괜찮습니다.”
주 선생이 겸연쩍은 듯이 하는 말에 능연은 주 선생의 얇은 팔다리 그리고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을 보며 내키지 않는 듯 대답했다. 훅맨 같은 잡일은 힘 있고 어리거나, 힘 있고 기운찬 조수가 훨씬 나았다. 주 선생 같은 주치의는 조수로 쓰기에 너무 부족했다.
“봉합합니다.”
능연은 다시 한마디 덧붙이면서 주 선생의 말문을 막았다. 그는 순조롭게 맹장을 제거하고 휘리릭 파우치 봉합을 시작했다. 파우치 봉합의 정식 명칭은 ‘연속 수평 매트리스 전층 내번 봉합법’이었고 능연이 앞서 터득한 다른 내번 봉합법인 수직 매트리스 식, 단속 매트리스와는 다른 방법으로 맹장 절개술에 속하는 봉합법이었다.
지금 능연은 어느 봉합법이라도 손쉽게 쓸 수 있었다.
플레이트 위의 작은 맹장은 새빨간 것이 광동식 베이컨 소시지 같았다.
“다음엔 뷔페라고 해도 너무 많이 먹지 말아요.”
“어떻게 됐나요?”
주 선생은 마음을 놓고 말했지만, 수술대 상황을 알 수 없는 환자는 겁먹은 듯 물었다.
“맹장 절개했습니다. 봐요, 팅팅 부었죠?”
“아······. 감사합니다.”
“아이고, 예의도 바르시네. 다음에 또 맹장 자르러 오면 할인해 줘야겠네.”
주 선생의 의사 식 농담에 환자는 입을 다물었다.
“닫으실래요?”
검사를 마친 능연이 기구를 내려놓고 주 선생에게 물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능 선생님.”
“천만에요.”
능연은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지고 순회 간호사에게 남자 환자를 물었다.
“2번 수술실인가요?”
“네, 2번이요. 제가 가서 확인할게요.”
아까도 확인했었지만, 순회 간호사는 다시 한번 확인하러 갔다가 바로 돌아왔다.
“환자 이미 대기 중입니다.”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환자 매교청이 고함을 질렀다.
“선생님! 선생님! 절개구 같아야 해요!”
능연이 걸음을 멈췄다.
“최대한 그렇게 하죠. 하지만 맹장은 돌아다니는 거라서요.”
맹장이 오른쪽 배 아래 부분에 있을 확률이 크긴 해도 보장은 할 수 없었다.
“내 남친이고 이렇게 같이 수술 받는 거니까, 맹장이 돌아다닌다고 해도 분명 같은 위치일 거예요.”
“그래요, 두고 봅시다.”
능연은 진지하게 환자의 말을 듣다가 밖으로 나갔는데 환자 매교청이 난리가 났다.
“맹장이 같은 위치가 아니면 어쩌죠? 그럼 우리 헤어져야 하나요? 앞으로 울 자기 얼굴을 어떻게 보죠?”
환자의 말에 당황한 주 선생이 바로 낮은 목소리로 간호사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메스 다 치워.”
능연이 2번 수술실로 새로 손을 씻고 들어갔을 때 충수염 환자는 가지런히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순회 간호사는 수술 전 검사를 하고 있었고 마취의는 능연을 보자마자 마취하냐고 안달 내며 물었다. 원래 마취의에게 수술은 과정이 달라도 본인의 작업은 다 같은 작업이긴 했지만, 어느 의사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맹장 수술은 마취의라도 어서 끝내고 싶은 기분뿐이었다.
“제 여자 친구 수술 순조로웠나요? 절개 위치는 정확했고요?”
오로지 환자 본인만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수술은 순조로운 편이었습니다.”
“선생님, 제 절개구도 여자 친구랑 똑같은 위치로 할 수 있죠?”
“확인해 보겠습니다.”
환자가 본인에게는 심각한 질문을 던졌고 이미 그 질문에 면역이 생긴 능연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반드시 똑같게 해주셔야 해요. 아니면 앞으로 평생 맹장염 앓는 거보다 힘들게 살아야 할 겁니다.”
환자가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고 그렇게 말하고는 양손을 합장하고 양쪽을 둘러보며 인사했다.
“여자 친구 구하는 게 쉽지 않아요. 다들 잘 부탁드려요.”
“아이고, 연애 참 힘들게 하네요.”
마취의가 신나서 하는 말에 환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요. 커플티에 커플 신발이면 몰라도, 게임을 해도 캐릭터까지 다 커플 아이템 해야 한다니까요. 못 믿겠죠? 저번에 보스를 이기고 옷을 바꿨더니 벼락같이 화를 내더니 사흘을 말을 안 하더라고요. 나중에 가방 사줬더니 겨우 기분을 풀었어요.”
“여자 친구가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로맨틱하기도 하고요. 제가 여자 친구가 있다면······.”
“요즘 우리가 차 이야기를 시작했거든요?”
마취의의 말에 수술대 위 환자가 뭘 모른다는 듯 힐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커플 자동차도 로맨틱해요?”
마취의가 눈을 껌뻑거렸다. 병원에서 고 수입자에 속한다지만, 그런 마취의도 약을 빼돌리면 모를까, 차 두 대 살 능력이 된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집은 하나면 되니까 다행이네요.”
“집이 문제가 아니라 인테리어가 문제죠.”
“왜요?”
“우리 집은 4LDK고 여친 집은 5LDK인데 우리 집 방 하나 칸막이를 쳐서라도 방 다섯 개를 만들래요. 그리고 집 인테리어도 똑같이 하고.”
마취의는 다시 멍해져서 한참 눈만 깜빡이다가 능연을 향해 물었다.
“전신 마취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