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65화 (246/877)

연문빈은 조용히 손을 씻으며 손바닥으로 손바닥을 문지르고 손바닥으로 손등을 문지르고 손가락도 문질렀다.

세척실은 지나다가 누군가 만나면 깜짝 놀랄 야밤의 운동장처럼 조용했다.

연문빈은 머릿속에 필사적으로 능연의 수술 과정을 회상했다.

능연이 하는 탕 봉합법은 이미 익숙할 대로 봐 왔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혼자 탕 봉합을 한다는 감격과 흥분이 가신 후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연 선생님, 오늘 제가 어시합니다.”

마연린이 세척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손을 씻기 시작했다.

연문빈은 허리를 세우고 입구 쪽에 있는 스팀 타올을 꺼내 손과 팔꿈치 어깨를 닦았다.

“부탁 좀 해. 정형외과 일에 영향을 준 건 아니지?”

“정형외과에서 하는 일도 별로 없어요. 정형외과보다 차라리 수부가 나은데.”

마연린이 투덜거리며 입을 내밀었다. 훈련의는 원래 최고로 비참한 존재인 데다가 정형외과 주임이 능연을 싫어하는 게 마연린에게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날짜는 잡았어?”

“거의요. 요즘은 호텔 상황에 따라 날짜 잡아야 하더라고요. 날짜부터 골라도 호텔이 비어야 하니까요.”

화제를 찾아 말을 건넨 연문빈의 모습에 마연린의 푸르죽죽한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찼다.

“너무 달리지 마라. 결혼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한 번에 나떨어지지 말고.”

“힘들 것도 없어요. 다 와이프가 알아서 하는데요 뭘.”

마연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입이 찢어져라 하품했다. 연문빈은 껄껄 웃으면서 한마디 더 하려다가 고개를 돌려 수술실 큰 문을 보자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얼마 안 남은 아이큐를 사람 설득하는 데 쓰는 건 낭비였다.

“먼저 들어간다.”

연문빈은 팔짱을 끼고 한 걸음 한 걸음 수술실로 향했다.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몇 년 전 처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가던 광경을 떠올렸다. 당시 지도교수는 일반외과 주치의였고 연문빈이 맡은 주요 임무는 석션이었는데 하마터면 집도의 손을 석션할 뻔했다. 제일 호되게 혼난 때였고, 얼마나 혼이 났는지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의학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에게 회의를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회상해보면 남아있는 건 오로지 행복한 느낌뿐이었다. 심지어 연문빈은 지금 오늘 실습생이 같은 실수를 한다면 뭐라고 혼내줄까 고민까지 했다.

15분으론 부족하겠지? 수술 내내 혼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당시 지도교수는 자제력이 있는 편 같았다.

수술실로 들어서는 찰나, 연문빈의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와 추억을 회상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얼~ 연문빈. 자신감 넘치는데?”

소가복은 사랑하는 둥근 의자에 앉아 입시 600점 받은 논리력으로 연문빈의 표정과 동작을 분석했다.

미소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고, 보스가 없는데도 저렇게 자신 넘치는 걸 보면 두려움이 없는 모양이지.

연문빈이 탕 봉합을 거의 300건 했다는 걸 떠올린 소가복은 금세 그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어시는 퍼스트 어시 수십 번만 해도 한 번쯤 직접 메스를 잡고, 백 번이 넘으면 슬슬 집도 자리에 서기도 한다. 물론, 집도한다고 해서 다시 어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지만, 항상 어시만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시간으로 계산해보면 연문빈이 탕 봉합 300번 달성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짧긴 했다.

수부외과 주치의 철북도 번 주임 밑에서 탕 봉합법을 삼 년 넘게 배웠는데 아직 단독으로 집도할 기회가 없다. 수술량이 너무 없기 때문이었다.

운화병원이든 다른 어느 병원이든 능연같은 속도로 수술량을 누적하는 케이스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환자 상태는?”

연문빈은 소가복의 놀림을 상대하지 않았다. 말을 이었다가는 둘이 수술 내내 수다를 떨어도 부족할 것이다.

전에 어시할 때는 그런 대화 방식이 좋았다. 하지만 집도의로서, 그것도 처음으로 탕 봉합법을 단독 집도하는 날이다 보니 조금도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족발 네 개에 닭껍질 탕 한 그릇도 다 먹어 치울 수 있을 정도로 긴장했다.

“폭발상으로 손을 다친 환자야. 2구역 굴근건 손상으로 초기 진단 내렸고.”

환자를 데리고 온 외모가 평범한 레지던트의 말에 연문빈은 상대를 한참 응시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폭발상이라니?”

그렇게 말하면서 환자의 손을 살폈더니 과연 엉망진창이었다.

“불꽃일걸? 아니면 폭죽이거나. 뭐라고 했더라······. 결혼식에서 폭죽 터트리다가 아차 하는 새 다쳤나 봐.”

“심하게도 다쳤네. 얼마나 터트렸길래.”

“다친 다음에 넘어졌대. X-ray 찍어 봤는데, 손가락 관절 위치 이탈한 거 같아.”

“2차 손상?”

연문빈은 머리가 다 어질거렸다. 보통을 넘는 복잡한 상황이었다.

‘이건 능 선생이 와도······. 식은죽 먹기로 하겠지······.’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능력자 의사 밑에서 수술하다 보면 자신감에 타격받는 일이 많아진다. 특히 대능력자 수퍼 울트라 천재 의사 밑에서 일하면 무너진 자신감을 다시 세우기가 참 힘들어진다.

미친 듯이 능연이 수술할 때 대처 방법을 떠올리던 연문빈은 넋이 빠지는 것 같았다.

“연 선생님? 연문빈 선생님!!”

마연린이 몇 번이나 부른 다음에야 연문빈이 정신을 차렸다.

“나도 결혼할 때 폭죽 터트릴 건데.”

“왜? 손이 너무 완벽해서 싫으냐? 너도 터트리려고?”

마연린이 냉큼 하는 말에 소가복이 껄껄대며 끼어들었다.

“멋지잖아요. 시끌벅적하고. 축하하려고 결혼식 하는 거 아닌가요?”

“결혼식이 축하라고 누가 그래? 결혼식은 주권을 선언하는 자리고, 신부의 놀이터야. 알아?”

“폭죽으로 주권을 선언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왜요.”

“데브리망 합시다.”

드디어 정신 차린 연문빈이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 듯 지시했다.

“예썰! 데브리망 키트 준비.”

마연린은 조수로서도 노련한 모습이었고, 연문빈보다 훨씬 능숙해 보였다.

그러나 데브리망이 끝나고 굴근건 봉합 단계로 들어가자 연문빈이 드디어 손이 풀린 듯 움직였다. 집도 자리에 자주 설 기회가 없으니, 오히려 집도의가 됐을 때를 많이 상상하곤 했다.

막상 정말로 수술대 앞에 서보니 그제야 그 위치의 두려운 점을 깨달았다.

모든 결정을 자신이 내려야 하고, 모든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 결정을 내린 후엔 직접 조작해야 했다. 심지어 매우 정밀한 조작을. 그리고 환자의 근육이 고분고분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라서 모든 결정은 재빨리 내려야 했고 심사숙고할 시간도 없었다.

120분짜리 시험을 20분에 봐야 하는 데다가 한 문제만 틀려도 낙제 확정인 그런 느낌이었다.

연문빈은 계속해서 자기 암시를 하면서 겨우 버텼다.

‘이건 족발이야, 족발이야. 이건 족발이야.’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똑똑히 들리지 않아도 마연린은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그저 마음 편안하게 있었다. 연문빈이 아무리 중얼중얼해도 마연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외과 의사의 괴벽은 다양해서, 평소에 드러나지 않던 특성들이 집도의가 되면 나타난대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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