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선생, 기능 고사······는 말이죠. 지금은 3 포인트식입니다. 병력 채집, 신체 진찰, 또 하나가 다매체, 그러니까 판독 말이죠······.”
공향명은 서서 이야기하기 좀 그래서 의자를 빼서 능연 앞에 앉았다. 다른 감독관 두 명도 책상 뒤에 앉아 있기 그래서 덩달아 의자를 들고나와 공향명보다 조금 뒤쪽에 앉았다.
덕분에 시험장 분위기가 남달라졌다.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닌 공향명은 서류철에 있는 시험 문제를 능연에게 건네주었다.
“신체 진찰이나 판독은 능 선생한테는 일도 아닐 거고, 병력 채집 이건 뭐 그냥 간단한 필기시험이니까 쓰기만 하면 되고요, 우리가 쓰면 필체가 달라서 안 되니까 직접 쓰셔야 합니다.”
두 감독관이 할 말을 잃은 듯 공향명을 바라봤다.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그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능연은 그런 특별 대우에 익숙했다. 전부터 도평은 어디를 가든 능연을 데리고 다니려고 했고, 호텔 체크인할 때도 어린 능연을 앞세웠다. 일반적으로 그럴 때마다 방이 업그레이드되었고 대부분 그날 남은 방 중에 가장 좋은 방을 배정받았다.
“그냥 정규 방법으로 하셔도 됩니다.”
능연은 우선 살짝 웃어 보이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도 좋지요. 나중에 말 나오면 안 되니까.”
능연의 생각을 알 수 없는 공향명은 그의 말대로 따랐다. 능연이 의사 면허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능연이 파격적으로 운화병원과 계약하고 이번에 시험 보게 됐다는 이야기도 벌써 들었었다.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공향명이 이래라저래라 자기주장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우선 병력 채집부터 하겠습니다.”
공향명은 서류철을 뒤지다가 그중에 한 장을 골라 능연에게 건넸다.
“이 문제 어떨까요? 여성, 54세. 오른쪽 무릎 관절 통증. 반복 발병.”
사실 그 문제는 능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감독관이 임의로 문제를 바꾸는 건 흔한 일이었다. 종합 필기시험과 비교하면 기능 고사는 다소 자유로웠다.
공향명은 능연이 희한한 문제에 발목 잡힐까 봐 제일 두려웠다. 능연의 대답이 정확하지 않으면 능연뿐만 아니라 그까지 어색해진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능연이 어색해질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익원현 정형 2 외과 과 주임으로 공향명이 운화, 그리고 창서성에서 먹고 살려면 일단 최우선으로 성립과 운화병원에 밉보일 일은 하지 말아야 했고, 직속 의료 위상 기관은 그다음이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언제나 같은 의사에게 평가받는 직업이었다. 논문도, 직업 평가도 모두 같은 의사가 평가하고 경비가 필요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학술회의에 참석할 때도 같은 의사의 호응이 필요했다.
상급 병원의 능력자 의사들은 권력을 쓸 필요도 없이 하급 병원이 일하는 것만 체크해도 하급 병원을 탈탈 털 수 있다.
공향명은 이런 작은 일로 능연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혹은 곽벼락 등에게 찍히는 더 끔찍한 일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는 능연이 식은 죽 먹기로 풀 수 있도록 무릎 부분 문제를 가진 환자를 선택했다. 능연은 공향명처럼 생각이 많지 않아서, 문제를 받자마자 바로 펜을 꺼내 순서대로 풀기 시작했다.
진료 요점:
1. 관절 기능 제한 유무.
1. 관절 경직 유무, 국부 부종, 활동할 때 관절에서 나는 소리 혹은 마찰감.
능연은 진료 경과와 관련 병력도 써서 백몇 자로 문제의 요점을 모두 정리해냈다.
“문제없습니다. 완벽해요!”
위에서부터 한 번 훑어본 공향명이 미소지으며 하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 채집은 의사가 매일 하는 일상적인 작업이었다.
침대 관리하는 초짜 의사들도 입원한 환자들이 이런저런 증상을 이야기하면 신속하게 피드백하고 물어봐야 할 것을 묻고는 정보를 충분히 모아서 스스로 진단 내리거나 아니면 상급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러 간다.
다른 게 있다면 진료과의 레지던트들은 해당 진료과에서만 근무하지만, 기능 고사의 문제 범위는 조금 넓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그럼 다음 항목은······.”
공향명은 능연의 표정을 살피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기술 조작이랑 신체 진찰입니다. 기술 조작은 뭐로 할까요?”
아까 공향명이 말했던 것처럼 두 항목 모두 능연이 능숙한 것이라 능연이 원하지 않으면 그대로 패스하면 그만이었다. 능연이 하겠다면 적당한 문제를 고르면 되고.
공향명은 능연을 응시하면서 그동안 들었던 이런저런 소식들을 떠올렸다.
“기관지 절개는 어떨까요?”
능연은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사실 공향명이 희한한 항목을 제안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국가고시 대상은 어찌 됐든 실습생과 신인 레지던트라서 이론상 실습생이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능연은 당연히 할 줄 알았다. 게다가 매우 능숙하게.
공향명은 기관지 절개술 연습용 더미를 꺼내왔다. 머리와 목까지밖에 없는 더미라 얼핏 보면 조금 무섭게 보였다.
더미 옆에 선명한 컬러펜으로 ‘윤상 갑상 인대 천자와 절개 훈련용 모형은 윤상 갑상 인대 천자 수술 연습용으로만 제공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능 선생, 한번 해 보실래요?”
“네.”
공향명은 능연이 실수할까 봐 여전히 두려워했지만, 능연은 대답하는 동시에 바로 기관지 절개술을 시작했다. 그랜드마스터급 기관지 절개술은 단순한 기관지 절개술을 훌쩍 뛰어넘는 기술이었다.
모형이긴 해도 능연은 여러 번 모형을 조작해 본 사람처럼 능숙한 손놀림으로 정확히 움직였다. 그는 안정적으로 양손을 놀리며 재빠른 속도로 수술을 진행했다.
모형이라도 수술할 수 있어서 능연은 심지어 신이 나기까지 했다. 공향명 뒤쪽에 있는 두 감독관은 의아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들도 식견이 있는 의사였고 수많은 잘난 의사들이 모형을 가지고 노는 걸 봐 왔지만, 정말로 이렇게 순조롭게 쥐락펴락하는 의사는 드물었다.
“끝입니다.”
능연은 정말 수술하는 것처럼 검사까지 마치고서야 손을 뗐다.
공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제가 잘 아는 능연이 맞다고 내심 감탄했다. 그리고 순서대로 신체 진찰 부분을 마친 후, 네 가지 필름 중의 하나를 골라 판독하도록 했다.
그건 다른 수험생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어지는 권리였다. 대다수 외과 의사가 네 가지 필름을 모두 판독하지는 못하니 말이다.
능연은 망설임도 없이 X-ray를 선택했다. 그랜드마스터급 X-ray 판독 기술로 의사 고시에 출제되는 필름을 읽는 건 당연히 식은 죽 먹기였다.
오히려 공향명을 비롯한 세 사람이 능연이 판독하는 내용을 들으며 몰래 식은땀을 훔쳤다. 능연이 읽는 걸 듣기만 하면 되니까 다행이지, 쌍방향 판독이었다면 오늘 세 사람은 큰 망신을 당할 뻔했다.
공향명은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했다. 영상 판독은 겉핥기는 쉬워도 파고들기 어려운 학문이었다. X-ray를 읽을 줄 안다는 건 체스 규칙을 아는 체스 애호가, 혹은 공을 들고 세 걸음 이상 못 간다는 걸 아는 농구 애호가가 때때로 그럴싸하게 지식을 늘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진정으로 X-ray 판독에 정통하려면 영상의학과 의사가 평생을 바쳐야 한다. 체스 애호가나 농구 애호가가 프로 선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에 능연은 세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시험장에서 나왔다.
“능 선생님, 끝나셨어요? 잘 보셨나요?”
복도에서 사나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게 일이던 간호사가 능연을 보자 냉큼 달려갔다.
“잘 봤을걸요?”
“다행이네요. 음, 그럼 시험 통과하시길 바라요.”
간호사는 능연을 복도 밖으로 배웅하고는 연락처를 주고받지 못한 것에 분해하면서 능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야이. 멍청아, 멍청아. 만날 큰소리치면서 막상 꽃미남 앞에서는 입도 뻥끗 못 하고. 진짜 나 바보 아니야?”
시험장을 나온 능연은 기사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꺼냈고,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눈빛을 빛내며 다급하게 다가갔다.
“이봐, 젊은이. 시험 보러 온 거지? 잘 봤어?”
뭔가 수상해 보이는 상대의 모습에 능연은 이야기하기 싫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나 상대는 더욱 눈빛을 반짝였다.
“시험 못 보면 어때, 저기 내가 방법이 있어. 한 번 해볼래?”
“무슨 방법이요?”
“오늘 기능 시험뿐만 아니라 내일 필기시험까지 패스. 어때? 합리적인 가격이야, 사기 아니라고.”
“아, 필요 없습니다.”
능연은 그제야 상대의 뜻을 알아차렸다. 상대는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안 믿겨? 그럼 내 이야기 들어 봐봐. 아까 시험장에서 감독관 세 명 있었지? 현장에서 감독관이 점수 먹이고. 그럼 그쪽 생각엔 점수를 언제 입력할 거 같아?”
“그래서요?”
“거래만 하면 감독관이 누구였든지 내가 찾아내서 성적 올려 줄 수 있어. 어때?”
“필요 없습니다.”
“못 믿겠어? 의심도 많네. 내 인맥이 모자랄까 봐?”
남자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멀리 의사 무리가 보이자 큰 소리로 부르고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의사들이 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시선을 던졌다.
“봤지? 나 아는 사람 정말 많거든.”
의사들이 삼삼오오 잰걸음으로 다가오자 남자는 흠칫 놀랐다가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저 봐봐, 운화 시에 있는 병원 의사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능 선생!”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능 선생, 오셨군요.”
몰려든 의사는 대부분 선임 주치의와 부주임이었고, 그들은 능연을 초빙한 적이 있거나, 능연의 출장 수술을 본 적 있었고, 아무리 못해도 국제회의 때 시연 수술을 본 적 있는 의사들이라 다들 열정적으로 아는 척했다.
남자는 의사들 한 번, 능연 한 번 쳐다보다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능연은 오후에 집으로 바로 갔다.
창서성 의사 면허 시험은 기능 시험이 끝나면 바로 종합 필기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600점 만점에 병리학, 미생물학, 면역학 등 기초 의학이 포함되고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같은 임상 의학 내용에 의학 인문과 예방 의학 등 내용이 포함된다. 시험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범위가 꽤 넓었다.
그래서 능연이라도 복습할 시간은 필요했다.
돌아가 보니 진료소는 한산한 편이었다.
동한생은 없었고 묘 선생의 에스테틱 시술과 응급 처치 환자는 있다가 없다가 해서 대부분 한가하게 보내고 있었다. 묘 선생은 능연을 보자 정신을 차리고는 다가가서 내피 봉합과 감장 봉합에 관한 질문을 몇 가지 했다.
웅 선생과 연자는 변함없이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수액 놓기 바빴다.
만 명 인구인 동네에 매일 10명 넘는 사람이 수액을 맞았고, 환절기엔 더 늘었다. 능연은 들어서자마자 콜록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습관적으로 썬베드에 가서 누웠다.
“능연! 와서 돈 좀 받아라.”
“제가요?”
웅 선생이 부르는 소리에 능연이 코끝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희 집 장사인데, 그럼 누가 받으란 말이냐? 그리고 네 아버지가 지켜보는 것도 질렸다.”
웅 선생이 천장에서 반짝이는 CCTV 렌즈 네 개를 가리켰다. 능연이 할 말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소리도 들리는 건가요?”
“네 아버지가 설치한 건데, 네 생각에는?”
“네.”
능연은 수납 위치에 앉아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어디 계십니까?”
잠시 후, 그의 머리 위 카메라에서 능결죽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파페에테란다. 타히티 근처 작은 도시, 폴리네시아 수도! 꽤 북적대는구나. 그리고 덥고. 오늘은 오전 근무만 했냐?”
“아, 오늘 시험이라.”
“잉? 오늘이었냐? 그럼 며칠 있다 출발할 걸 그랬군. 잘 봤냐?”
“네.”
“그럼 됐다. 아이고, 그럼 안심하고 놀아도 되겠네.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기분이 별로면 못 즐기잖냐.”
“나 내일 필기시험······.”
“응? 뭐라고? 아이고, 외국은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
능결죽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데 갑자기 도평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진료실에 울렸다.
“잠수함 출발한대요! 저녁에 랍스타 코스 예약은 했어요? 나는 치즈 랍스타 먹을 거예······.”
그리고는 CCTV에서 나던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아르바이트 구할까요?”
능연이 웅 선생을 향해 물었다.
“기간이 너무 짧아서 구하기 어려울 게다. 환자가 별로 없을 땐 나랑 연자가 둘이 하면 됐지만,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바쁠 땐 수액 바꾸기도 버거워.”
연자가 그때 타박타박 나무 장판을 밟으면서 능연에게 다가갔다.
“연아, 너 이제 치료팀 있다며? 실습생 부르지 그러니?”
“실습생을 불러다 써도 돼요?”
“지금은 안 되니?”
능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연자가 더욱 놀라 되물었고, 웅 선생도 궁금한 듯 입을 열었다.
“지금 실습생은 밖에서 쓰면 안 돼? 그럼 걔들을 어따 쓰는데?”
그 말에 능연이 잠시 생각해 봐도 정말이지 실습생에게 맡길 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치료팀 리더는 실습생을 마음대로 부렸는데 말이야. 집에 심부름도 다들 앞다퉈서 했어. 그때는 나도 겨우 70킬로였거든.”
능연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실습생을 집안일에 불러다 쓰다니, 아무래도 안 될 일이었다.
“한 열흘만 불러다 쓰면 돼. 그때면 네 아버지 돌아올 테니.”
한마디 더 하면서 설득하던 웅 선생은 능연이 꿈쩍도 하지 않자 턱을 문지르며 다시 말했다.
“아니면, 제약회사 사람 부를까? 적당한 사람 있니?”
“아, 그건 있네요.”
이번엔 능연도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제약회사 직원은 의사마다 다르게 이용했는데 지식을 이용하는 사람, 리베이트를 이용하는 사람, 그리고 몸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능연은 주로 잡다한 일에 이용했다.
“황무사한테 전화하시면 돼요.”
능연은 속 후련하다는 듯 다시 썬베드로 돌아가 편안하게 몸을 눕혔다.
이번엔 핸드폰이 아니라 책을 꺼내 들었다. 600점 만점의 시험에서 588 받지 못하면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588점이란? 정확도 98%란 소리였다.
24시간 이내 에이즈 예방 약물 복용 차단율이 98%인데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 낮다고 생각한다. 에이즈 합병증 감염 수술할 때 손가락에 상처 날 확률은 1/300, 그러니까 감염당하지 않을 확률이 99.67%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낮다고 생각한다. 600점 만점에 598점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588점은 600점 만점에서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노선에 닿으려면 긴 시간 공부하고 복습해야 한다.
책만 휘리릭 넘겨도 바로 기억해서 외우고 내용을 이해하는 동기들을 생각하자 능연의 마음속에 전의가 불타올랐다.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다! 제군들, 노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