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자전은 운화병원 응급센터에서 실습생을 시켜서 꽃다발과 케이크를 회의실 정중앙에 놓고 시트로 덮어 놓았다. 그리고 연문빈은 다른 진료과 훈련의와 외부에서 온 의사들을 지휘하며 샴페인 탑과 족발탑을 만들어 역시 시트로 덮어 놓았다.
“초콜릿 퐁듀 왔는데 어디에 둘까요?”
“들키지 않게 저 뒤에 숨겨 놔.”
사역하가 제약회사 직원 두 명을 이끌고 들어와 묻는 말에 곽종군이 흥분한 모습으로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폭발하는 화산 같은 모양의 초콜릿 퐁듀가 회의실에 나타났다.
“곽 주임님, 준비됐습니다.”
사역하는 자기가 노력했음을 티 내려고 웃는 얼굴로 이마를 닦아 보였다.
“음. 자, 다들 다시 한번 체크합시다. 이따 능연이 왔을 때 실수하지 말고.”
“그······ 곽 주임님, 능연이 서프라이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낙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직접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능연 하나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의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하하하, 다 이런 형식적인 맛에 사는 거야. 그리고 이제 능연이 면허 따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어떻게 되는데요?”
“앞으로 능연을 얼마든지 홍보할 수 있어. 능연 스스로 브랜드로 홍보해도 되고 말이지. 능연을 찾아오는 유럽이나 미국 환자가 왜 얼마 없는지 아나?”
곽종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앞날을 상상했다.
“더 좋은 의사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주임님 생각은 다른가요?”
“장난하나? 유럽, 미국에 당연히 능연보다 잘난 의사가 많지. 그렇다고 누구나 좋은 의사를 고를 수 있나?”
“그건 그러네요. 가격 문제도 있을 테고.”
“국내 병원은 언젠가 글로벌화 되어야 하네. 능연이 이제 면허를 땄으니 외국 의사들, 특히 선진국 의사와 보험회사도 마음 편하게 환자를 보낼 수 있을 거야. 안 그런가?”
조낙의는 그렇게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곽종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엔 놀랐다.
국가 차원에서 의료 국제화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조낙의는 곽종군이 그런 생각을 아직도 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서 일 보게. 이따 와서 같이 즐기고.”
곽종군은 조낙의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쫓아냈다.
8시 30분, 능연은 출근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왔다. 혹시라도 그가 바로 처치실이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서프라이즈 파티가 지연될까 봐, 좌자전이 벌써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바로 그를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문이 열리고 능연은 좌자전이 말한 대로 회의실 중간으로 가서 섰다.
펑!
샴페인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색색의 종잇조각이 허공에서 팔랑팔랑 떨어졌다. 그리고 회의실 중간에 있던 시트도 확 젖혀졌다.
“서프라이즈!”
모든 이의 고함 속에 샴페인 탑, 커다란 케이크, 초콜릿 퐁듀와 족발 산이 능연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능연은 민첩하게 몸을 뒤로 빼서 종잇조각이 닿지 않는 범위로 도망쳤다.
곽종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치챘나?”
“그럴 것 같아서요.”
어릴 때부터 이런 서프라이즈는 질리게 당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거 좋아하지 않는가. 하하하.”
“예, 멋지네요.”
곽종군이 우쭐한 듯이 하는 말에 능연은 모두의 기대에 부합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많은 서프라이즈를 겪으며 도출해낸 결론이었다.
“축! 능연 국가고시 패스!”
곽종군이 크게 소리치며 샴페인을 치켜들었다.
“다들 한 잔씩만 하라고. 당직 의사는 마시지 말고. 건배!”
“건배!”
능연도 호응하며 술을 조금 마셨다.
“줄 게 더 있네.”
곽종군은 능연의 표정을 살피며 싱글벙글 서류철 하나를 건넸다.
“케이스인가요?”
“다른 병원 정형외과 주임이랑 상의를 좀 했지. 구나 현엔 관절경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얼마 없어서 운화병원으로 가라고 권하고 있는데, 환자들이 귀찮아서 그냥 관둔다더군. 그래서 환자를 바로 트랜스 해달라고 했지. 이번 주에 들어올 환자 명단일세.”
능연은 활짝 핀 얼굴로 샴페인을 치켜들었다.
“건배!”
“건배!”
곽종군이 크게 웃으며 잔에 든 샴페인을 비우고 쓰읍 숨을 들이마셨다.
“또 하나, 자네 조수였던 마연린이 곧 결혼하지 않나. 우리 응급의학과끼리 모여서 결혼식에 참석할까 하네.”
“좋습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 아닌가. 참석할 수 있으면 해야지. 그리고 마연린은 정형외과지만, 우리 쪽으로 와도 되고 말일세. 응급센터는 사람이 항상 모자라니까 말이야. 흠, 물론 우리 병원 젊은 의사 둘의 경사를 축하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만 말이지. 좋은 일이야, 좋은 일!”
능연의 사무실에 드디어 ‘의사 능연’이라는 팻말이 붙었다.
가장 싫어하는 줄서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능연은 제일 먼저 예약제를 시행했다.
순조로운 예약을 위해 시간 조절을 해야 하고 전화도 끊임없이 받아야 해서 예약제도를 시행하려면 병원의 인력을 따로 써야 했다.
그러나 국내 병원이 예약제도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주도권 문제 때문이다. 환자가 의사를 골라 예약하면, 의사가 병원이나 진료과를 이동해도 의사를 따라가게 되기 마련이다. 순서대로 대기하는 외래 진료는 의사가 아니라 병원이나 진료과를 보고 선택하는 것이라 의사 한두 명이 바뀌어도 환자의 선택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병원의 모든 정책은 일반 환자나 일반 의사에게나 해당하는 것으로 돈 많고 세력 있는 환자는 병원 정책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의사도 딱딱한 병원 정책을 따르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었다.
중국 간담췌외과의 아버지 오맹초는 일반외과에서 국내에서 가장 먼저 독립하여 간담췌외과를 만든 의사였다. 그리고 19년 후인 1993년에 오맹초의 간담췌외과는 장해 병원 안의 간담췌병원 형식으로 독립하였다.
앞으로 19년이 더 흐른다고 해도 오맹초의 방식대로 할 수 있는 의사는 아마도 손에 꼽힐 것이다.
운화병원으로서는 국내 전체에 영향을 주고 어쩌고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전국적 영향력도 없고 말이다.
곽종군의 응급센터 설립 후, 그의 발언권이 크게 올라가서 능연이 예약제도를 하겠다고 하니 중간에 어려움 없이 바로 예약제도를 시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환자로서도 예약제는 편한 점이 많았다. 적어도 아픈 몸을 이끌고 시들시들 대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능연은 하루에 하급 병원에서 반월판 손상으로 진단 내린 환자 10명씩 예약을 받았다. 이미 수술을 결정한 환자들이라서 병원에 와서 간단하게 검사한 후 바로 수술하면 되는 환자들이었다.
연문빈, 여원과 좌자전도 수술실, 진단의학과, 병실 같은 곳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능연은 수술 두세 건을 마치고는 사무실로 돌아가 다음 예약 환자 검사를 했다. 비는 시간은 환자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마연린도 최대한 시간을 비워서 응급센터로 와서 도왔다. 훈련 과정으로 다시 정형외과로 돌아갔으니 당연히 그가 맡을 수술은 없었다. 능연 밑에서 아킬레스건 보건술을 배우면서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았지만, 그의 아킬레스건 보건술 실력을 논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만 해도 완전히 터득하지 못해서,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맡겨도 본인이 나서지 못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차라리 퇴근 후 응급센터에서 일하는 게 성장하기에 더 좋았다.
마연린이 그렇게까지 하려는 것도 연문빈이 탕 봉합법을 집도하기 시작함으로써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탕 봉합 같은 수술은 외과 수술 체계에서 보면 여전히 대단한 수술이 아니었다. 대단한 수술로 꼽히는 관상동맥 우회술이나 그보다 더 대단한 장기 이식, 두개골 수술에 비하면 탕 법은 실효성도 문제도 있고 정밀한 조작이 필요해서 힘들기도 했다. 게다가 사람 목숨을 결정하는 수술도 아니라서 정상에 오른다고 해도 용 꼬리 중에서 정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안정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주력 수술이기도 했다. 능연도 바로 탕 봉합법으로 운화에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수부외과 번 주임은 지금까지도 탕 봉합을 연구하고 있고.
연문빈의 수술량은 앞으로 늘 것이고 지위도 안정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2년쯤 지나면 조수가 생기고 나중엔 안정적으로 주치의로 승진하고 부주임이 되고······. 마연린은 그런 연문빈의 모습이 쉽게 상상됐다.
운, 기회가 다 맞아떨어진 상태로 동기보다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면서 더 많이 지원받아 빠르게 성장하는 것, 대다수 젊은 부주임들도 다 그렇게 시작했다.
마연린은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건 운화병원을 통틀어 응급센터의 능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이라면, 설사 엘리트과인 수부외과라도 해도 금서 주임의 전력 지지 없이는 그가 얻을 수 있는 수술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금서 주임은 당연히 마연린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마연린은 가능한 한 응급센터로 돌아와 저렴한 노동력을 선사하며 수술을 벌었다.
능연이 며칠 동안 관절경 수술을 할 때, 그는 전혀 따지지 않고 따라서 관절경 수술을 했다. 그렇게 며칠 만에 곽종군이 준비한 첫 환자들을 거의 다 처리했다.
금요일, 마연린은 결혼식 이틀 전에 정식으로 청첩장을 돌렸다.
“우리 응급센터는 다 참석할 거야. 곽 주임님이 직접 말씀하셨거든. 우리 응급센터 출신 의사인데 가서 분위기를 띄워야 하지 않겠냐고.”
연문빈은 마연린이 조금 부러웠다. 마연린은 이제 결혼하는데 연문빈은 밤낮없이 바빠 봐야, 운화 시 중심에 집을 사고 BMW 5 시리즈를 사고, 밑에 직원을 몇 명 고용하는 거 말고 뭘 남겼단 말인가.
결혼을 앞두고 행복감보다 긴장감을 더 느끼는 마연린이 다른 의사에게 양손으로 청첩장을 건넸다.
“아이고, 안 그래도 하객이 많아야 할 상황이긴 해요. 신부 쪽에 손님이 많아서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신부 쪽 하객이 많아?”
“가족이 다 의사거든요. 장인어른이 전에 2 병원 산부인과 주임이셨습니다.”
“위 씨야? 2 병원 산부인과 위 주임이라······. 전에 만난 적 있는 거 같은데.”
누군가 기억을 떠올리며 하는 소리에 마연린이 웃는 얼굴로 바라봤다.
“친척도 많더라고요. 대가족이에요. 테이블을 많이 놓아야 할 거 같아요.”
“몇 테이블 정도인데?”
“80이요.”
마연린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그려 보였다.
“헐, 80? 800명이나 모인다고?”
“응급센터만 해도 20 테이블인데요.”
겸연쩍은 듯 말하는 마연린은 사실 속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결혼할 때는 겉치레일지라도 그런 게 필요했다.
곽 주임이 말을 꺼냈으니 200명 가까운 응급센터 직원들은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약속했고 응급센터에서 그렇게 참석한다고 하니 마연린도 감동하였다. 집이 멀어서 친척이 많이 오지 못하니 머릿수 채워줄 수 있는 건 주변 사람밖에 없는데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한 훈련의가 발이 넓어 봐야 얼마나 넓을까.
심지어 진정한 그의 소속 진료과인 수부외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 은근히 실망하고 있었다.
“그럼 와이프 쪽에서 50 테이블 넘게 부른단 말이야? 500명? 아이고, 대규모 피로연이네.”
“장인어른이 이미 은퇴해서 직책이 없어서 그나마 준 모양이에요. 어이쿠, 늦었다. 저는 수술실에 가봐야겠습니다. 이따 택배 오면 여기 청첩장 좀 보내주세요.”
“응, 그래. 어디로 보내는 건데?”
“동창들이요. 주소는 다 써놨어요. 소 사장님 것도 있고.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마연린이 응급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소 사장하고도 제법 친해졌다. 사람들은 택배 보내는 것쯤이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