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끝낸 능연은 바로 처치실이나 응급 처치실로 돌아가지 않고 먼저 사무실로 돌아갔다.
복도에서 문을 사이에 두고도 사무실에서 나는 ‘헉헉.’ ‘후후’, ‘하하하.’ ‘힘내.’ ‘더 세게.’ 같은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연문빈이 건실한 근육으로 더미를 미친 듯이 위아래로 누르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근육이 큰 효과를 내고 있었다.
수천수만 명에게 깔리고 눌렸던 심폐소생용 더미도 못 버티겠다는 듯 ‘훅훅훅’ 소리를 냈다.
“하나, 둘, 셋······. 한 세트 더. 하나, 둘, 셋······.”
“잘 되어 갑니까?”
능연의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 들리자 연문빈은 화들짝 놀라서 더미에서 튀어 올랐다.
“느, 능 선생. 수술 끝났어?”
수술복까지 흠뻑 젖은 연문빈은 고강도 운동을 마친 것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잘 잘랐습니다.”
“아······. 그니까 그 말은······.”
“연 선생, 능 선생이 환자의 심하게 다친 부위를 잘 잘라냈어.”
연문빈이 버벅버벅하자 좌자전이 사타구니 부분에 손짓하면서 설명하다가 부르르 떨었다. 땀에 젖은 연문빈도 서늘함을 느꼈다.
“능 선생, 우리 연습한 것 좀 볼래?”
별 느낌 없는 여원은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현장 돌발 사고가 없었어도 지금은 정상 근무 시간이었다.
능연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여원이 바로 튀어 올랐다.
“준비하자, 준비.”
연문빈은 머뭇거리다가 바닥에서 기어 일어나 좌자전과 순서대로 여원 뒤에 섰다. 처음엔 둘이 연습했지만, 수술이 시작된 후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한 좌자전도 심폐소생 연습에 합류했다.
42세 늙다리 레지던트 좌자전 씨는 남다름을 제일 싫어했다.
“쓰러진 환자 발견!”
여원은 훈련 과정 그대로 심폐소생 현장을 모방하면서 더미의 어깨까지 쳤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선생님! 제 말 들리세요?”
이어 여원은 경부와 흉부 외곽 검사도 하고 더미의 옷을 풀고 한쪽에 주저앉아서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정면에 앉은 연문빈은 여원이 숫자를 30까지 세면 인공호흡을 두 번 했다.
여원이 5세트하고 기관지 절개를 시도한 다음 다시 2세트 하고 연문빈에게 넘겼다. 연문빈은 5세트하고 좌자전에게 넘겼고 능연은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아무 말 없이 지켜봤다.
세 사람 모두 레지던트고, 여원은 치프 레지던트였다. 초짜 의사 중에 높은 의사인 그들은 능연이 조금만 코치해도 충분히 요령을 터득했다. 물론,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그건 시간을 들여 훈련해야 하는 문제였다.
“압박하는 높이가 일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대는 빠를수록 좋아요.”
한 세트 시범이 끝난 후에야 능연이 평가내렸고,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내려가죠.”
능연이 시계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환자가 몰려온 지 한참 됐으니 언제 또 환자가 들이닥칠지 모를 시간이었다.
좌자전이 흥분해서는 냉큼 달려가 문을 열었다. 의사 생활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구명 의학은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CPR할 환자 있으면 우리가 해도 돼?”
“곽 주임님은 그런 말씀 없으셨습니다. 흠, 그래도 우리 팀이 한다고 하면 반대하지는 않으시겠죠.”
좌자전이 뒤를 따르며 나직이 묻는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능연이 대답했다. 심폐소생은 무슨 대단한 기술이 아니고 어차피 몸 쓰는 힘든 일이라, 세 사람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안 그래도 힘들고 고된 병원에서 일을 늘리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능 팀 젊은 의사들은 어떤 일이라도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치프가 되어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여원조차도 마음이 동했다.
“우리 병원에 이제 응급 구조 팀도 있지만, 전문 CPR 팀은 없잖아. 그쪽으로 논문을 써봐도 될 것 같네. 국제 CPR 가이드에도 전문 CPR 팀이 있으면 좋다고 쓰여있더라고. 그러면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CPR 전문팀은 여러 명이 CPR 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죠. 나중에 시간 내서 연······ 음, 언제가 한가하지.”
“오후! 오후에 하자!”
능연이 동의하면서 하는 말에 여원이 냉큼 대답했고 연문빈과 좌자전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좋네. 오후, 좋아.”
“그래요, 그럼 일단 오후로 정하죠.”
“그리고 당분간은 그런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겠어.”
여원이 하는 말에 말뜻을 알아챈 좌자전도 금세 동의했다.
“맞는 말이야. 우리한테 CPR 팀 같은 타이틀이 생기면 다른 건 둘째치고 저가 소모품을 많이 써야 할 거야. 그리고 상응하는 약품도. 대리점들도 난리가 날 거고.”
역시 좌자전은 젊은 의사 셋이 생각 못 한 부분을 지적했다. 능연도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 심정지 환자만 오면 되는 건가.”
좌자전이 안도한 듯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여원이 가볍게 헛기침했다. 그러자 좌자전이 흠칫했다가 바로 말을 바꿨다.
“아, 우린 준비 되었으니까, 혹시라도 심정지 환자가 오면 대응할 수 있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좌자전은 능연이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연문빈, 여원과 좌자전이 고개를 치켜들고 늑대 뒤에 개, 여우, 승냥이처럼 능연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