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85화 (266/877)

“선생님! 선생님!”

멋들어지는 입장 의식은 잠깐 새에 혼란스러운 현장 분위기에 끝나 버렸다.

환자복을 입은 중년 남자 하나가 미처 피하지 못한 연문빈을 콕 찍어 가리켰다.

“저기, 의사 선생! 검사 안 합니까?”

연문빈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고 능연은 못 본 것처럼 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재미있는, 미친, 성공한, 실패한, 로맨틱한, 슬픈, 감동적인, 드라마틱한 사건을 겪어 왔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여자, 남자가 소떼처럼 많아서 하나하나, 둘둘 들어줬다간 초등학교도 졸업 못 했을지도 모른다.

도평은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재미있는 일이 수없이 많다고 가르쳤고, 능연도 깊이 공감했다. 이제 막 성립한 CPR팀, 뭐 아직은 아니지만,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연문빈의 마음은 복잡했다.

“아까 검사하셨잖아요.”

연문빈이 환자 침대로 향했다. 이번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은 건물 붕괴 범위 안에 있기만 해도 속속 병원으로 실려 왔다. 다친 데도 없고 아픈 곳도 없는 환자는 각 병원 관찰병실에서 잠들었고, 눈앞의 환자처럼 작은 외상과 작은 통증이 있으면 운화병원으로 실려 와 간단한 처리를 하고 처치실에 잘 수 있게 해줬다.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만 말이다.

눈앞에 얼굴이 퉁퉁한 환자 역시 눈을 빛내며 핸드폰 들고 놀기 바빴다.

“결과가 아직 안 나왔잖아. 결과도 안 나온 검사가 무슨 소용이야.”

“제가 재촉해 볼게요.”

연문빈이 바로 돌아서려 했지만 퉁퉁남이 바로 그를 붙잡았다.

“이러고 가서 안 오려고.”

“영안실 가는 것도 아니고 왜 안 옵니까.”

“이 밤에 그런 농담 하지 마쇼!”

“농담······ 인 것 같습니까?”

깜짝 놀라는 환자의 반응에 연문빈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목소리를 낮게 깔았고, 마침 지나던 여원이 슬쩍 협조했다.

“농담 아니다.”

“누, 누구야?!”

퉁퉁남이 하얗게 질렸다. 분명 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병원이야? 귀신 집 아니고?

여원은 아무런 말 없이 사라졌다. 치프 레지던트인 그는 원한다면 밤새 할 수 있을 만큼 일이 널렸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몰래 눈도 붙여야 했다.

치프 레지던트는 항상 연속 근무 40시간을 자랑하지만, 사실 진짜로 일하는 시간이 40시간은 불가능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병원에 40시간 있을 뿐, 먹고 자고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30시간 좀 넘게 일할 뿐이었다.

여원도 지금은 틈만 나면 농땡이를 피웠다. 특히 체구가 작아서 간호사들이 자주 놓치는 바람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이 쉴 수 있었다.

고분고분해진 중년 남자의 모습에 연문빈은 한숨 돌린 듯 몰래 웃고는 핸드폰을 꺼내 진단의학과에 전화했다.

“검사 결과, 몇 개는 나왔답니다. 몇 개는 아직이고요. 다 끝나면 제가 가지고 올게요.”

“꼴랑 검사 몇 개인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 거야. 내 시간은 돈 아니야?”

정신을 차린 퉁퉁남이 또 투덜거리기 시작하자 그냥 가버릴까 하던 연문빈은 혹시 고소라도 당하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인내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부 다 검사해서 그래요. MRI도 하셨잖습니까. 오후나 되어야 나옵니다. 응급실 안을 좀 보세요.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거 안 보입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여기 응급실이잖아. 바쁜 건 당연하지. 왜 나는 기다리라는 건데?”

“자자, 제가 봐 드리겠습니다. 화 푸세요.”

싱긋 웃으며 다가간 좌자전이 고개를 돌려 연문빈을 바라보며 먼저 가라고 하자 연문빈은 안도하며 줄행랑을 쳤다.

좌자전은 핸드폰을 꺼내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팔찌 좀 꺼내 보세요.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예, 예.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냥 검사 몇 개잖아요. 그냥 대충해서 보여주면 되잖습니까?”

퉁퉁남은 주름이 가득하고 다크써클이 내려온 머리숱이 드문 좌자전을 보고 드디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음, 네. 중성 지방이 많으시네. 살 좀 빼셔야겠는데요.”

“아.”

“아이고, B형 간염도 있으시네. 신경 쓰셔야 합니다. 아무리 요즘······.”

“아닙니다! 결과를 잘못 가지고 오셨나 봐요. 저는 B형 간염이 없어요.”

“아, 그래요? 어디 한 번 봅시다.”

환자를 힐끔 본 좌자전이 진지한 얼굴로 검사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환자분 거 맞아요. B형 간염 생긴 지 오래됐는데, 모르셨습니까?”

“나는······ 아닙니다! 채혈하다가 옮은 거 아닙니까?!”

“허허, 오래된 병인데, 전에도 우리 병원 오셨나요?”

“그게······.”

“그럼 우리 잘못은 아니네요.”

좌자전이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상황이 비교적 특별한데, 거짓말하시면 큰일 납니다.”

그냥 신체 검진이나 좀 받을까 싶었지, 병원을 속일 생각은 없던 퉁퉁남은 좌자전의 말에 말문이 막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럼 저는 이제 어쩌면 됩니까?”

“자세한 검사를 해야지요. 구체적인 건 전문의한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럼 현장에서 사고 나는 바람에 감염된 거라고 해주시면 안 됩니까?”

좌자전은 고개를 흔들고는 그 화제를 피했다.

“일단 검사 몇 개 더 할 겁니다. 간 상황 좀 보고, 혈액 분석도 조금 세밀하게 해야 해서요. 거기까지는 사고 검사에 포함 시킬 수 있지만, 그다음은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럼 영양제나 좀 더 주세요.”

“영양제는 다 자비로 처리됩니다만.”

“어쨌든 처방해 주세요.”

“약은 안 됩니다. 검사는 어쩌시겠어요?”

“합시다, 해요. 조금이라도 돈 덜 들 때 해야지. 휴우, 이럴 줄 알았으면 병원에 안 오는 건데. 멀쩡하던 사람도 병원 오면 환자가 된다니까!”

좌자전은 아무런 말 없이 검사 오더를 내리고 환자를 보내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 힘들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했다. 어쨌든 조마조마하면서 윗사람 시중드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일어나세요. 비장 파열 환자 왔습니다.”

능연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면서 나타났고, 등 뒤에 진지한 표정으로 빛을 바라보는 연문빈과 여원이 서 있었다.

“비장 자르러 가요!”

연문빈과 여원이 이구동성으로 좌자전을 불렀다. 지쳐있던 좌자전은 갑자기 너무 감동했다. 음모, 투쟁, 의국 정치가 없고 좋은 일 생기면 바로 챙기는 동료가 있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그래, 같이 비장 자르러 가자.”

좌자전이 젊은 날로 돌아간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같이 비장을 잘라요, 같이 자자자자자잘, 집도의 앞에서 애교 떨면서 아이고고고고고고.”

연문빈이 38cm 팔뚝을 흔들면서 이상한 노래에 맞춰 엉덩이도 흔들었다.

“내 심장이 콩닥콩닥, 너의 비장을 자자자자자잘라.”

여원도 무대에라도 선 듯 받침대에 올라서서 몸을 흔들면서 음에 맞춰 따라 불렀다.

수술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곁에서 참관해야 하는 좌자전이 부러운 듯 두 젊은이의 노래를 들으며 절로 완벽한 하루를 상상했다.

새벽 4시에 아들과 함께 계란 전병을 만들고 4시 반에 요리사와 도우미에게 주방을 넘겨주고 따듯한 200평짜리 작은 빌라를 떠나 5분을 걸어 병원에 도착한다. 그리고 직접 수술을 집도해서 아들에게 비장, 간 절개를 시범 보이고 심장 혈관을 잇는다. 밤엔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아들을 태워 보내고, 다음 날 출장 수술을 위해 자신과 젊은 제약회사 직원을 태우러 다시 돌아올 기사를 기다린다.

“트레이.”

능연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를 닦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다급하게 스테인리스 트레이를 들고 능연에게 다가갔다. 잡일이라도 하면 수술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비장을 올려놓은 능연이 목을 들고 몇 번 비틀면서 근육을 풀었다.

“자, 마무리 시작하죠. 아, 다들 밥 먹었어요?”

“아니.”

여원과 좌자전 모두 고개를 저었다.

“조금······?”

연문빈은 단독행동, 그것도 리더와 다른 단독행동을 한 것이 켕기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 뭐 먹었어? 우리는 안 주고 혼자 먹냐?”

여원이 바로 받침대로 올라가 불만스러운 눈빛을 발사했다.

“어제 남은 고기 조각 조금. 그걸 어떻게 가지고 와.”

“무슨 고기?”

연문빈이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배가 고파 꾸르륵대던 좌자전이 물었다. 다들 새벽부터 나왔으니, 어제저녁 이후로 지금까지 밥을 먹지 못했다.

그 시간에 잠을 잤으면 모를까, 고강도 작업을 이어온 지금 다들 배가 등에 붙을 지경이었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들도 배고파서 눈이 노래질 지경이었다. 너스 스테이션에 있는 우유, 과일은 진작에 동이 났고, 개인적으로 숨겨 뒀던 초콜릿이나 사탕도 이런 때엔 살아남기 힘들었다. 거기에다 ‘고기’라는 소리에 다들 눈에 불을 켰다.

사람들의 불만스러운 눈빛에 연문빈은 자기가 나이든 돼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찌꺼기 고기야. 고기 삶을 때 떨어진 그런 거. 전에는 건져내서 식당에 팔던 건데, 오늘은 너무 배가 고파서 좀 주워 먹었다.”

“그러니까, 족발에서 떨어진 거네?”

“그래, 그냥 찌꺼기.”

“허벅지 살도 있을 거 아냐. 껍질도 붙어 있고.”

“졸임 고기에서 떨어진 건 작아도 맛있겠다.”

수술실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원망스러운 듯 연문빈을 바라봤다.

“배달 음식 시켜드릴게요. 좌 선생님, 선생님이 주문하세요. 이따 돈 드릴게요.”

연문빈은 큰돈을 벌면서도 조수 자리를 넘기기 싫어했다.

“뭐 시킬까?”

“능 선생, 뭐 먹을래?”

“생각 좀 해볼게요.”

좌자전이 핸드폰을 꺼내서 묻자 연문빈이 바로 능연에게 물었고, 능연은 배는 고프지만 입맛이 없어서 그렇게 대답했다.

“여원, 너는?”

좌자전이 공손하게 수술실에서 직위가 가장 높은 치프 레지더트 여원양을 바라봤다.

“마오쇠이왕이요. 마오쇠이왕 어때요?”

“마오쇠이왕, 그래. 다른 거 먹고 싶은 사람 있어? 사람이 많아서 두 군데 시켜도 되겠다.”

*마오쇠이왕(毛血旺: 오리피로 만든 중국 선지 요리)

좌자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연문빈 돈을 아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능연에게 포셉을 건넨 스크럽 간호사도 입을 열었다.

“전 치킨이요. 마라치킨이든 뭐든, 매운 거면 돼요.”

“그럼 저는 곱창탕이요.”

순회 간호사도 먹고 싶은 걸 말했고, 사람들 주문을 받은 좌자전이 능연을 다시 바라봤다.

“능 선생. 뭐 시킬래?”

“아직 모르겠어요. 연 선생님, 닫으세요.”

능연은 마무리 봉합을 연문빈에게 넘기고 장갑을 벗다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저는 홍소 소고기, 비계 있는 부분으로요. 그리고 밥도.”

“오케이. 그럼 주문한다.”

좌자전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42세 노인으로서는 꽤 도전적인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실눈을 뜨고 웃으며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사고회로를 굴리며 제안했다.

“능 선생. 간식도 좀 시켰어. 이따 일선 애들한테 나눠주자.”

“아, 네.”

왜 자기한테 말하는 건지 몰라도, 능연은 좌자전의 생각에 찬성했다. 자기들도 그렇게 배가 고픈데 일선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응급의학과 의료진들도 똑같이 배고플 게 분명했다.

“능 선생, 이따 무슨 수술할 거야? 아님 좀 쉴 거야?”

“간 절제 수술 있으면 하려고요. 아직 없더라고요.”

좌자전이 묻는 말에 능연은 장갑을 버리고 마스크를 빼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심폐소생을 하느라고 체력을 많이 쓰기는 했다.

“심폐소생 환자가 있어도 좋겠네요. 다 같이 하면 되니까.”

“간 절제랑 심폐소생. 오케이. 내가 어떻게든 찾아볼게.”

“응? 그게 찾는다고 나와요?”

지금은 모든 치료팀이 로테이션으로 환자를 받고 있어서 걱정이었다. 로테이션이란 건, 치료팀이 순서대로 환자를 받는 거라서 치료팀이 받고 싶은 환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선임 의사라도 해도 모든 수술 방식과 테크닉을 갖출 수가 없고, 부주임 아래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케이스가 능연보다 딱히 많지는 않았다.

지금 능연도 익숙하지 않은 증상 환자를 받게 되면 다른 사람처럼 바이탈 사인을 유지해놓고 다른 진료과 의사를 불러 협진해야 한다. 응급의학과 의사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었다.

병원은 응급의학과에서 모든 환자를 처리하길 기대하지 않았고, 환자가 통증을 느낄 수 있도록 살려 놓는 것이 응급의학과가 할 일이었다.

그러니 간 손상 환자를 다른 팀이 받으면 신속하게 간담췌외과로 넘겨서 거기서 수술하게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능 선생님이 원하는 환자는 내가 어떻게든 대령해야지.”

좌자전은 현장에 있는 마취의나 간호사가 듣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밀스럽게 웃어 보였다. 의사가 환자 가로채는 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잠시 후, 배달 음식이 도착하자 좌자전은 수술실 인원이 시킨 음식을 제외한 나머지 간식들을 들고 응급 로비를 어슬렁거렸다.

머지않아 다시 돌아온 좌자전이 능연을 향해 OK 사인을 보냈다.

“됐어. 간 손상 환자가 없으면 모를까, 나타나면 다 능 선생 꺼야.”

고개를 끄덕이던 능연이 시스템의 ‘딩’ 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 퀘스트: 간 절제 수술 실시

- 퀘스트 내용: 복잡한 간 수술은 대표적인 외과 수술이다. 첫 간 절제 수술을 할 것.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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