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부 압상, GS(일반외과) 있어?”
“여기, 내과 좀 와봐. 빨리 좀 와!”
“폐부 감염입니다. 호흡기 내과로 보내죠?”
태양을 따라 떠오른 건 햇살뿐 아니라 더 많은 응급 환자와 반복되는 증상도 있었다.
응급실은 아침이라고 수월해지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더 바빠졌다.
응급처치 받은 환자는 수술한 환자보다 예후가 좋지 않은 법이었고, 수술 환자도 가끔 재수술하는데 응급 환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밤새 바빴던 곽종군과 각 치료팀 리더는 회진하면서 우선 이상을 보이는 환자부터 골라냈다. 오줌 안 나오는 사람, 오줌이 맑지 않은 사람, 방귀 못 뀌는 사람, 호흡이 잘 안 되는 사람 등은 다른 진료과로 돌리거나 약을 재처방하거나 재수술하거나 했다.
경상 환자만 백 명이 넘으니 서른 명밖에 안 되는 운화병원 응급의학과로서는 압박이 심했다.
특히 꼬박 밤새운 의사들은 아침이 되어도 쉬지 못하니 죽을 맛이었다.
42세 좌자전은 더욱 심각했다. 다른 마흔두 살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밤새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으리라 좌자전은 확신했다.
병원에서만 봐도, 마흔둘 정도 되면 아무리 못해도 선임 주치의 혹은 부주임이라서 이선 혹은 삼선에 있고, 응급의학과가 아닌 이선은 당직해도 병원에서 잠만 자고, 응급의학과라고 해도 매일 바쁜 건 아니다.
42세 레지던트는 참으로 비참했다. 좌자전은 지난 한 달 동안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고 오늘은 아예 날밤을 새웠으니 소변볼 때 색이 얼마나 노랄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밖에 없었다.
한가하게 보낼 생각이었다면 진단의학과로 갈 수도 있었다. 진단의학과는 적어도 정시 출퇴근할 수 있고 환자나 보호자를 직접 대할 필요도 없는 꽤 편한 부서였다.
그러나 좌자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난 이제 겨우 마흔둘인 걸!
마흔둘은 아직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나이였다.
좌자전은 애써 눈을 치켜뜨면서 오토바이 타다가 넘어진 환자 데브리망을 끝내고 진하게 우린 차를 마시면서 기운 차리고 어드바이스를 내렸다.
“상처 부위에 물 안 묻게 조심하시고요. 내일 약 바르러 다시 오세요.”
공사 현장 붕괴로 실려 온 환자들에 비해 이틀에 한 번씩 나타나는 이런 환자들은 그야말로 일반적인 환자였다.
“집 근처 진료소에서 하면 안 되나요?”
“그래도 됩니다.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1층 약국 가서 받으시고요, 진료소에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머리에 붕대를 두른 환자가 묻자 좌자전이 대답하면서 컴퓨터를 조작했다.
“처방전 주시면 제가 알아서 사면 안 됩니까?”
환자의 말에 좌자전은 정신이 확 들었다. 평범한 환자가 아닌 것 같으니 마음을 놓으면 안 되겠다 싶어졌다.
“병원 규정이라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서 파는 약은 비싸니까, 일부러 그런 규정 만든 거겠죠.”
“병원 규정이라 저도 어쩔 수 없잖습니다. 의약 규정 개혁된 다음부터 가격은 사실 어디든 다 비슷합니다.”
“말이야 그렇지만, 하루 일당이 약값으로 들어가잖아요. 됐습니다, 그럼. 서민들 힘들게 돈 버는데 병원도 참 나쁜 놈들이지.”
환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좌자전은 고개를 숙인 채 절대로 흥분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달랬다.
술 취했을 때와 상태가 비슷해져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계속 자신을 상기시키며 다스렸다.
좌자전은 이제 스스로 잘났다고 흥분하는 이삼십대 의사가 아니었다. 병원에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리고 환자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여기서 시끄럽게 굴면 그 같은 연차 낮은 레지던트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웃는 얼굴로 환자를 보낸 좌자전은 세면실로 들어가 세수부터 하고 피로와 껄끄러움을 깨끗하게 지워 버리고 나와서 다시 구급차 출입문으로 가서 다른 젊은 의사들과 함께 기회를 기다렸다.
20여 년 전, 막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더 늙고, 더 못생겨지고, 기운이 줄었다는 것이다. 좋은 점은, 충분히 뻔뻔해져서 주변엔 젊은 레지던트밖에 없다고 쪽팔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젊은이들의 충만한 에너지가 부러울 뿐이었다.
그곳에 있는 건 모두 각 진료과에서 수술을 얻지 못하는 레지던트와 신임 주치의였다. 응급의학과가 바빠지면, 선임 의사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케이스를 먼저 해야 해서 평소라면 남에게 넘기지 않을 작은 케이스라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의사에게 넘겨야 한다.
기회라는 건 한 번 생기면 다음에도 또 생기기 마련이라, 첫 번째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이런 때가 젊은 의사들에게는 틀림없는 골든타임이었다.
“구급차가 15분 뒤에 온답니다!”
접수대에서 간호사가 큰소리를 지르자 몽롱하던 좌자전이 바로 정신 차렸다.
무너진 공사 현장엔 아직도 발굴 작업을 하면서 구조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지금 실려 온 환자들 상태는 당연히 더 복잡했다.
“환자들 상태 어떻대?”
좌자전이 바로 접수 쪽으로 달려가 물었다.
“이번엔 경상 환자가 없어요. 환자가 셋인데 다 1급 위중 상태에요. 다 땅에 묻힌 걸 파낸 거고, 전부 쇼크 상태래요.”
말인즉슨 좌자전이 실력 발휘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능 선생님 대신 알아본 거야.”
“음······. 근데 간 손상 환자는 없는데요?”
능연이라는 말에 눈이 커지던 간호사가 곧 난처한 듯 말했다.
“기록 줘 봐.”
“안으로 와서 보셔야 해요.”
좌자전이 작은 소리로 하는 말에 간호사가 눈짓했다. 좌자전은 냉큼 뒤로 돌아가 고개를 숙이고 간호사가 적어 놓은 메모를 바라봤다. 통화하면서 기록한 내용이고, 원래는 아무나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좌자전도 능연을 팔고 볼 수 있었다.
“복부 위쪽 통증, 복내 출혈······. 이거다! 이 환자 어떻게든 우리 팀에 줄 수 있어?”
“그게······. 곽 주임님이 모든 중증 환자는 부주임 이상 의사한테 배정하라고 하셔서요. 1급 위중 상태인 환자는 진짜 위험하잖아요.”
“음······. 그럼 능 선생을 그 팀에 넣을 수는 없을까? 능 선생이 이쪽 수술하고 싶대.”
“팀은 곽 주임님이 나누시겠죠. 환자 도착하면 능 선생님한테 알려드릴 수는 있어요.”
“그거 좋지.”
간호사가 눈을 깜빡이며 하는 말에 좌자전은 정 안 되면 능연을 바로 수술실로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퍼스트 어시스던트 정도라면 지금 능연 수준으로 못 얻을 리가 없었다.
구급차가 다시 응급센터로 몰려오자 능연이 시간 맞춰 구급차 출입구에 나타났다.
능연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곽종군이 벌써 손을 흔들었다.
“능 선생, 마침 잘 왔군. 환자 금방 도착할 건데 사람이 부족해.”
이론상 능연은 지금 팀 리더라 곽종군이 그에게 맡겨도 문제없었고, 능연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환자를 잡으러 나온 것이니 말이다.
주치의 좌량재가 부러운 듯 능연을 바라봤다. 주 선생과 동년배인 그는 표준적인 노력형 의사였다. 십 년을 하루 같이 응급의학과 일선에서 노력해 왔는데 지금 같은 심각한 부상 환자는 모두 부주임과 주임들이 먼저 처리했고, 그는 아직도 곽종군 뒤에서 어시스던트 역할을 했다.
좌량재는 능연에게 환자 상태 소개까지 해야 했다.
“환자는 땅에 묻혀 있다가 구조됐어. 산소 부족, 출혈성 쇼크, 골절과 압상이 있고.”
“머리는요?”
“머리는 눈에 띄는 외상은 없어.”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외상이 많은 환자가 심각한 두부 부상까지 있다면 정말로 살려내기 어렵다.
곽종군은 칭찬하는 눈빛으로 능연을 힐끔 바라보고는 지시 내렸다.
“우선 쇼크부터 처리하고 압상, 골절 처리하도록. 능연, 자네는 나를 따르고.”
“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구급차가 도착해서 스트레처 카를 끌어내자 두 팀이 아무런 말도 없이 자연스럽게 달려갔다. 다들 온종일 지쳐서 구급요원의 데이터 보고를 듣는 것으로도 심히 피로를 느꼈다.
“기운 내라고, 곧 우리 차례야.”
곽종군은 언제든 환자를 맞을 준비하는 것처럼 손뼉을 치더니 폴짝폴짝 뛰었다. 사실 추워서 저러는 거라는 걸 손을 떠는 곽종군을 보고 아는 능연은 아무런 반응 없이 지켜봤다.
“겉옷 입으시죠.”
“안 돼. 기자가 온다더군. 겉옷 입으면 아무래도 프로 의식이 없어 보이잖나. 알겠나?”
능연의 말에 걱정해주는 것이 기분 좋은 듯 곽종군이 나직이 대답했다.
“그래서······ 추운 걸 견디시는 겁니까?”
“사진엔 날씨가 안 보이지 않나. 휴우, 자네도 앞으로 주의하게. 본인이 느끼는 온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 사진으로 보이는 상황이 다야. 그래야 사람들이 자네를 인정하고 희생했다고 생각한다네.”
“옷깃에 얼음을 넣거나 얼굴에 물을 뿌리고 차가운 바람으로 날리는 것도 괜찮겠네요.”
“······좋은 생각인데? 다음에 한 번 시도 해보세나.”
능연이 전에 언젠가 봤었던 촬영 현장을 떠올리고 별생각 없이 뱉은 말에 곽종군은 멈칫했다가 기뻐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던 좌량재도 끼어들었다.
“안에 히트텍이라도 입으시는 건 어떨까요?”
“자넨 그런 쓸데없는 생각 좀 그만하고 어떻게 사람 목숨 잘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하게.”
“아, 네······.”
곽종군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바라보며 하는 말에 좌량재는 기가 죽어 조용히 물러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랬다.
그때 구급차 한 대가 출입구 앞으로 나타났고, 뒷문이 열리자 스트레처 카에 꿇어앉아 환자의 흉부를 압박하는 구급요원이 보였다.
“쇼크입니다. 돌발성 심정지. 150줄로 충격 한 번 주고, 흉부 압박 3분 했습니다.”
구급요원이 압박하면서 빠른 속도로 설명했다.
“연 선생님하고 여 선생님 불러오세요.”
재빨리 좌자전에게 지시를 내린 능연이 앞으로 달려가 제가 하겠다고 나섰다. 구급요원은 숫자를 채우고 동료가 간이 인공호흡 구낭으로 인공호흡을 하는 틈을 타 자리를 비켜 주었다.
능연은 바로 스트레처 카 위로 올라가 심폐소생을 시작했다.
“수술실로.”
곽종군이 침착하게 지시 내렸다. 이제 원내 심폐소생이나 마찬가지였고, 병원 안에서는 심정지라도 적시에 대처할 수 있어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해도 도움도 안 되고 말이다.
여원과 연문빈이 재빨리 달려와서 전에 훈련한 대로 능연의 작업을 이어받았다. 능연은 손발을 살짝 풀어준 다음 수술실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능 팀이 협력하는 모습을 본 곽종군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심폐소생은 응급의학과에서 흔하디흔한 기술이라 대다수 의사가 노련한 수준으로 컨트롤하지만, 팀으로 훌륭하게 해내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다시 한번 전기 충격을 주자 환자의 심박이 회복되었다.
연문빈과 여원은 미련이 남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아직 레지던트이고, 처음으로 이렇게 순조롭게 심폐소생을 진행했다. 특히 팀 심폐소생은 처음이었다.
“팀을 잘 이끌고 있군.”
곽종군은 더욱 능연이 흡족해졌다.
“혈액 팩 더 가지고 오고, 어깨 사진 찍게.”
곽종군은 지시를 내린 후 의사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모든 준비가 끝나자 수술대 앞에 섰다.
“복부 열어서 살펴보고, 일단 지혈부터. 메스.”
곽종군의 손에 메스가 전해졌다.
“출혈이 어디에서 발생한 것 같나?”
곽종군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능연과 달리 수술실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곽종군은 사자왕 같은 존재였다. 다른 사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지휘할 뿐만 아니라, 단체로 사냥할 때도 홀로 사냥할 때도 있고, 구역도 지키면서 어린 사자를 가끔 놀리기도 한다.
어린 사자도 기꺼이 사자왕의 놀이 상대가 되었다.
“비장 파열 아닐까요?”
좌량재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비장은 내장 중에 가장 다치기 쉬운 부위라서 무턱대고 추측해도 맞을 확률이 높았다.
“간이요!”
다른 의사도 토론에 참여했다.
“능연은?”
“간인 것 같습니다.”
곽종군이 묻자 능연도 같은 대답을 했다.
“좋아 좋아. 능연이 잘 맞췄군. 비장 파열이었다면 환자가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야. 그럼 이제 배를 열어서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세.”
그의 말에 모든 의사가 집중했다. 물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몰라서 그렇지, 초짜 의사들은 두근두근해서 침착할 수가 없었다.
“간 외상 수술 방법, 능연.”
곽종군이 다시 능연을 지명했다. 수술 중에 상급 의사가 하급 의사에게 질문을 던지는 건 일종의 교육이며 오락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통, 이제 막 주치의가 된 의사나 레지던트, 그리고 훈련의와 실습생은 이름이 불릴까 봐 불안에 떤다.
의사들이 공부를 더 하게 될 계기도 되기도 한다. 대답을 못 하거나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상급 의사의 고함은 분노 후 발생하는 물질을 대량 분비하기도 한다.
이름을 불리는 것에 익숙한 능연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간 손상 수술 방법은 간 외상 데브리망 지혈을 포함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복부 오른쪽 위를 절개하거나 복부 정중앙을 절개해서······.”
배를 열어서 관찰하는 것도 선후가 있고, 그럴 때 절개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곽종군은 몹시 흡족해져서 수술하면서 어드바이스를 했다.
“다들 능연을 잘 배우라고. 수술을 잘해서 수술 기교를 키울 뿐만 아니라 이론 학습도 잘하고 있지 않나.”
“저희한테 물어봐도 대답할 수 있는 건데요.”
구석에 있던 초짜 의사들이 저도 모르게 꿍얼거리자 그 말을 들은 곽종군이 바로 눈을 치켜떴다.
“그래? 그럼 하나 물어보지. 거기 누구야, 자네가 대답해 보게. 정말로 간 손상이라면, 손상 부위가 간 어느 부분에 있고, 상처는 얼마나 길고 깊겠나?”
초짜 의사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속으로 차라리 환자의 간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묻지 그러냐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대답할 리는 없고, 우물우물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중간쯤에······.”
“헛소리! 지금 정보만으로 뭘 안다고 헛소린가! 내가 뭐라고 묻든 아는 건 아는 거고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
곽종군은 자동 불벼락 시스템을 가동했고, 순식간에 사람들의 정신을 번뜩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