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88화 (269/877)

“석션, 빨리!”

능연의 명령은 또렷하고 정확했다.

간 우엽 절제는 어느 병원에서라도 분명히 큰 수술이었고 수술실 안에 있는 모두 흥분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 상태였다.

아직 문밖에서 손을 씻고 있는 곽종군 씨는 긴장은 했지만, 흥분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

“프링글(Pringle) 방법으로 혈류를 막습니다.”

손을 완전히 씻지 않아서 들어갈 수 없는 곽종군은 밖에서 큰 소리로 물을 수밖에 없었고 능연은 이번에도 큰 소리로 대답했다.

프링글 법이란 외과 수술 중 가장 흔하게 쓰는 간 부위 혈류 차단법이다. 절단 포인트가 간문과 간 꼭지에 있어서 절단면의 출혈까지는 완전히 제어할 수 없었다.

간의 열결손 손상을 고려하면 프링글 법으로 혈류를 한 시간 막는 것이 한계였다. 현병원 의사들은 환자들이 끊임없이 피를 흘린다고 해도 감히 이 방법을 쓰지 못한다. 다음에 어떻게 할 건지, 방안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프링글 법을 쓰면 더 큰 손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곽종군도 마찬가지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본인은 문밖에 있는데 걱정만 능연에게 전해지게 할 수는 없었다.

응급 수술에서는 어떨 때는 최악의 결정일지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곽종군은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걱정을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출혈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간 상태가 아주 안 좋습니다. 일반적인 간 절제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안 좋은데?”

“헤모글로빈 16, 혈압 45, 계속해서 떨어집니다.”

덜컥해서 묻는 말에 능연은 모니터 기기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동시에 재빨리 대답했다.

몇 초라는 시간은 문제 풀기에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인데, 수술대에서는 특히 응급 수술 중의 몇 초는 온갖 의문을 들게 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연문빈, 여원 그리고 좌자전은 약속이라도 한 듯 능연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해?’

그들에게 집도의는 기둥이었다. 다들 봉합할 줄 알고 절개할 줄 알고 기구를 쓸 줄 알지만, 어디를 꿰매야 할지, 어디를 잘라야 할지, 기구는 어디에 써야 할지는 모두 집도의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능연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면서 방안을 하나하나 생각했다.

일반적인 간 절제는 안 된다. 정상적인 간 규칙 절제술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환자 상태로는 15분도 못 버틴다.

그럼 간단하게 보수하고 다시 절제한다면?

능연은 수술 시야를 바라보았지만, 몇 분 안에 끝낼 수 있는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하원정은?”

허둥지둥 달려온 간담췌외과 주치의가 묻자 곽종군이 간담췌외과 주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하찮은 주치의가 다급하게 손을 씻으며 대답했다.

“돌발성 담도 출혈 환자가 재입원해서 하 주임은 그쪽으로 가셨습니다. 다른 주임도 수술 중이고요.”

간 수술 예후는 언제나 난제라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처리해야만 했다. 곽종군은 이름도 잘 모르는 주치의를 보면서 차라리 우리 집 능연이 직접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내밀었다.

“헤모글로빈 14, 12야!”

소가복이 큰 소리로 상기시켰다. 그 말에 능연의 표정 변화가 있기도 전에 문밖의 곽종군이 먼저 발을 동동 굴렀다.

“왜 그렇게 빨리 떨어지나?”

“간장 손상이 심각합니다. 거즈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그럼 왜 거즈를 그렇게 급하게 꺼냈어?”

문밖의 하찮은 주치의도 안색이 변했다. 수치가 그렇게 낮으면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지혈 거즈로 아무런 효과를 못 보는데 거즈를 빼내지 않으면? 지금은 초를 다투는 전쟁이야. 출혈량이 11,000cc 라고. 자신 있나?”

“10,000이요?”

“11,000.”

놀라서 손 씻는 것도 멈춰 버린 주치의의 말을 곽종군이 정정해주었다.

“이제 12,000이 됐겠지. 자신 있나?”

“곽 주임님, 온몸의 피를 두 번이나 다 쏟은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는······.”

하찮은 주치의가 어디 감히 자신을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오른쪽 간을 박리합니다!”

능연이 큰 소리로 고함쳤다. 보고가 아니라 통지였다. 지금 그는 수술실의 집도의였고, 가장 큰 임상 권력을 쥐고 있었다. 밖에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눈앞의 환자는 점점 심해져서 생존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곽종군은 아직 수술복도 걸치지 못한 상태였고, 간담췌외과에서 온 주치의가 겁먹은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그런 자신 없는 의사가 제일 싫었다.

그는 조금 전에 능연과 함께했던 간 수술을 떠올리며 밖에서 고함쳤다.

“우선 간 정맥 손상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그리고 간 원형 인대(round ligament)와 겸상 인대(falciform ligament)을 박리하게.”

능연은 곽종군이 밖에서 설명하는 걸 개의치 않았다. 다른 초보 의사였다면 매우 감사하고 있었으리라. 물론, 다른 초보였다면 지금 원형 인대와 겸상 인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찾지 못했겠지만.

후배 의사를 많이 가르쳐본 곽종군은 능연이 한순간 긴장해서 초보가 자주 하는 실수를 할까 봐 이어서 코치했다.

“우선 간 겸상 인대를 찾고 정맥을 따라서······.”

간담췌외과 주치의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계속 씻었다. 맞다, 그는 겁을 잔뜩 먹었다. 그래서 곽종군이 능연에게 집도의를 맡길 생각으로 수술 내용을 코치하는 걸 알아도 가만히 있었다.

자기 손에서 환자가 하나 더 죽는 것도 싫었다. 그때 가서 사망 토론하는 것만 생각해도 골치가 지끈 아팠다.

하지만 능연이 곱게 보이지도 않았다. 운화병원에 능연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당연히 그도 능연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11,000cc 출혈량은 장난이 아니었다. 운화병원 현재 최고 수혈량은 양수 색전증이었던 임산부로 18,000cc였다. 그러나 그때는 산부인과 주임이 진료과 전체의 힘으로 응급처치를 했으며 개인적인 관계까지 동원해서 혈액을 공급받고 천운까지 내려서 해결했지, 그다음에 나타난 양수 색전증 임산부에게는 그런 행운이 없었다.

간담췌외과 주치의는 이 환자가 현병원에서 보내진 것도 현지 혈액센터에 혈액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원형 인대와 겸상 인대 박리했습니다.”

능연의 목소리가 문 안에서 전해졌다.

“벌써?”

주치의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가 미처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능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관상 인대 박리했습니다.”

“상하 정맥은 박리하지 않겠습니다.”

“작용하지 않는 간 조직 박리했습니다.”

안에서 안정적인 말투로 한 마디씩 들렸다.

드디어 손 씻기를 마친 곽종군이 에어 타이트 도어를 밟아 열고 들어갔더니 수술대 앞에서 능연이 환자의 파열된 간장을 들고 손가락과 메스로 잡고 테두리를 따라 불량 조직을 한 조각, 한 조각 절단하고 있었다.

문외한이 봤다면 거칠다고 할 동작이었지만, 곽종군과 간담췌외과 주치의는 넋을 놓고 바라봤다.

“요즘 대학에서, 저런 것도 가르칩니까?”

하찮은 주치의가 간이 쪼그라든 것 같은 모습으로 혼잣말하듯 물었다.

간담췌외과의 핵심 포인트는 바로 간 출혈과 지혈에 있다. 그래서 절제와 지혈은 매일 갈고 닦고 연구하는 간담췌외과의 간판 기술이다.

간 절제법만 따지면 지납법, 메스법, 마이크로법, 레이저법, 물총법 등이 있다.

외과 의사는 흡입기, 모스키토 포셉, 메스 등 각종 수술실 도구로 간 절제를 시도한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도구로 간을 찢어놓으려고 시도한다.

그러니 처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외과 의사들은 마음속으로 얼마나 ‘시발’스러웠을까.

의사 생활 시작한 지 십여 년인 간담췌외과 주치의는 그동안 주임과 부주임들이 메스로 환자의 간을 휘두르는 것도, 손가락으로 간을 쪼개는 것도 다 봤었지만, 정작 본인은 메스로 간을 건드려 본 적도 없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하찮은 주치의는 능연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그가 호탕하게 환자의 간을 자르고, 자르고, 또 자르는 걸 지켜봤다.

젊은 의사 능연이 간을 슥슥 썰어내는 모습과 그 뒤로 보이는 파랗고 초록빛이 감도는 수술실 배경에 주치의는 갑자기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영화 찍는 것만 같았다.

“4호 봉합사, 이중 결찰.”

능연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자 모든 이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간 절제, 다 끝났어?”

어시하던 연문빈은 더욱 놀라서 물었다. 그도 이런 응급 간 절제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5분도 안 됐잖아.”

하찮은 주치의가 고개를 떨궜다. 속도 자체는 대단히 놀랍지 않았고, 더 빠른 수술도 들은 적 있지만, 갑자기 발생한 응급 간 절제를 이런 수준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 절제는 여기까지. 이제 지혈이 문제입니다.”

능연 역시 한숨 돌리면서 대답했다. 간장에 적당한 압력을 주어 괴사 부분을 재빨리 제거하기 위해 동작은 거침없었지만. 담담한 표정과는 달리 현실적 스트레스와 리스크에 대한 부담은 시시각각 존재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간을 움켜쥐고 있는 손에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간장이 터질 수 있고, 힘을 너무 빼면 피투성이 간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밖에 드러나서 눈에 띄는 관상 구조는 다 묶어야 합니다.”

능연은 니들홀더를 쥐고 계속 말을 이었다.

“여 선생님, 검사 맡아 주세요.”

“응.”

여원은 지금 받침대 두 개를 밟고 있어서 시야가 확실했다. 그녀는 상처 면을 유심히 노려보며 모든 구조를 찬찬히 살폈다.

능연은 유명할 정도로 신중한 사람이지만, 수술실에서 어시스던트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도 필요했다. 특히 이런 수준의 수술은 신중한 사람이 하나 더 있을수록 좋다.

능연은 재빨리 바늘을 놀리기 시작했다.

“수술 가운 입혀주게.”

곽종군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치의가 깜짝 놀랐다.

“아, 예.”

주치의는 다급하게 수술 가운 커버를 찢어 곽종군 몸에 걸쳤다. 준비를 모두 마친 곽종군이 수술대 곁에 섰다.

“내가 도울 거 있겠나?”

주임 버전 어시스던트를 써본 능연은 눈을 반짝이며 냉큼 대답했다.

“패킹 지혈 준비. 대망막이요.”

“알았네.”

곽종군은 힘차게 대답하고는 거즈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패킹 지혈이라도 능연이 지금 하는 지혈은 현병원에서 하는 것과 수준이 달랐다.

물론 현병원 응급의학과에서도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그들에겐 최선인 트랜스를 선택한 것이다.

간 절제 능력이 있는 응급의학과는 더 높은 수준을 바라겠지만, 현병원의 일반외과는 간 절제 수술을 할 엄두를 못 낸다.

곽종군은 능연의 동작을 바라보며 뿌듯함이 넘쳐흘렀다.

그가 꿈꾸는 응급센터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환자가 오고, 환자를 살리고. 특히 외상성 문제는 응급센터가 주의해야 할 포인트 중의 포인트였다.

“다 채웠습니다.”

능연이 더할 나위 없이 빠른 동작으로 거즈를 다 밀어 넣었다. 간 수술은 이런 식으로 빨리하면 할수록 환자의 예후가 좋아진다. 특히 간 절반을 잘라내는 큰 수술의 예후는 생존율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곽종군은 능연을 도와 팩킹 지혈을 마치고 배출관을 집어넣었다.

“OK! OK!”

곽종군은 온몸에 힘이 다 풀리는 것 같은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다가 소가복을 향해 물었다.

“상태는?”

“안정······적?”

소가복은 왜 그걸 나한테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곽종군은 항상 자기가 모니터를 보고 판단했었다. 혹시라도 시험하려고 물은 걸까 봐 몇 번 더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 안정적이면 됐네. 이제, 기다리는 수밖에 없군.”

곽종군이 싱긋 웃으면서 하는 말에 능연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연문빈에게 배를 닫으라고 눈짓하고는 장갑을 벗었다.

“상처 면이 매우 큽니다. 최대한 지혈했으니, 나머지는 환자한테 달렸습니다.”

“버틸 거야.”

환자의 얼굴을 힐끔 본 곽종군이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외동아들이거든.”

의아한 듯 묻던 능연이 멍해졌다.

“내가 닫겠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니까.”

곽종군은 등 뒤에서 의자를 끌어당겨서 수술대 앞으로 걷어차고는 순회 간호사에게 수술대를 낮추라고 지시했다.

“니들홀더 주고.”

곽종군은 수술대 앞에 둥근 의자에 앉아서 니들홀더를 달라고 손을 뻗은 다음 수술대가 내려오자 관복 봉합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수처 직접 하는 것도 오랜만이군.”

몇 바늘 꿰매던 곽종군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곽종군 등 뒤에 선 소가복은 심각한 눈빛으로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손으로 자신의 둥근 의자를 쓰다듬었다. 작업 시간이 초초 긴 마취의가 앉아서 일할 수 없다는 건 매우, 몹시, 잔인한 일이었다. 의자 두 개를 챙겨서 정말 다행이었다.

“문빈아, 어시 해라.”

“네.”

곽종군의 말에 연문빈이 다급하게 달려 나가서 소가복 앞에서 씨익 웃었다.

“소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가지고 가, 가지고 가!”

소가복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의자를 연문빈에게 넘겼다. 연문빈은 신이 나서 의자를 타고 수술대 맞은편으로 가 주임을 도와 실 정리를 했다.

소가복은 대학 시험 600점 받은 논리력으로 이러다가 과로사하는 거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능 선생, 수술 잘했더군.”

간담췌외과 하찮은 주치의가 먼저 능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능연은 고개를 숙여 그의 손을 바라보았고, 능연이 미처 뭐라고 말하기 전에 좌자전이 허둥지둥 앞으로 나왔다.

“미안합니다. 우리 능 선생은 악수를 싫어해서.”

“아? 아······.”

속으로 언짢아하던 하찮은 주치의는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 좀 봐. 우리 과에 능연 같은 의사가 있다면, 부주임이 될 만한 실력자인데.’

“할 말 있으세요?”

“아? 아니······. 수술 잘한다는 말 하고 싶어서.”

“감사합니다.”

능연의 말에 하찮은 주치의가 그를 적극 찬양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회의 참석하러 갔었는데, 북경에서 온 주임 의사가 메스로 비활성 박리하는 거 봤거든? 노련하긴 노련했는데, 네가 한 것만큼 재미있진 않더라. 아까 네가 한 간 박리 부분은 정말, 응급의학과에 있긴 아까운 수준이었어.”

“거기!”

곽종군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 그, 자네 볼 일은 없으니 이만 돌아가게.”

“아, 예······.”

하찮은 주치의는 순순히 수술실에서 나갔다.

“능연, 자네는 이따 나랑 보호자 만나러 가세. 가서 수술 상황을 설명해 드리게.”

“제가요?”

능연이 손가락으로 제 코끝을 가리켰다.

“응. 구사부상(救死扶傷: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다친 자를 보살피다)은 우리 응급의학과가 할 일 아닌가. 구사부상을 마칠 때마다 가족한테 당연히 설명해야지. 안 그런가? 내가 배 닫을 때까지 좀 기다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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