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90화 (271/877)

응급센터에 있는 작은 식당은 원래 의료진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가끔 병원 식당에 질린 다른 진료과 의사들도 응급센터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물론 대부분 응급의학과와 자주 왕래하는 레지던트나 주치의였고, 그보다 나이 많은 의사는 집에서 보낸 도시락을 먹고, 직책이 더 높은 의사는 보통 밖에서 밥을 먹었다.

좌자전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소고기 콘지를 끓였다. 질 좋은 등심을 밖에서 사 왔고, 주방에 있는 조미료를 썼다.

좌자전은 즐거웠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즐거운 싱글이었고, 마을 위생병원 주방에서 콘지를 끓였다. 그리고 그때 쓴 재료인 소고기는 보호자가 준 것이고, 쌀은 보호자가 준 것이고, 조미료는 보호자가 준 것이었다.

“에휴, 그래도 우리 젊을 때가 좋았지.”

좌자전은 죽 끓는 냄새를 맡으며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의사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때는 가난하긴 했어도 복지가 좋았거든. 의사 생활하면서 5년 동안은 내 돈 주고 밥 먹은 기억이 없다.”

생김새가 평범한 의사가 유심히 좌자전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들었어요. 그땐 커다란 솥으로 다 같이 밥을 해먹었다면서요?”

“너, 내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냐?”

“58?”

“야······! 어딜 봐서?”

생김새가 평범한 의사가 겁먹은 듯이 하는 대답에 좌자전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눈가 주름, 눈밑 살, 팔자주름······. 이마 주름, 목주름, 입술 주름, 미간 주름, 입가 주름, 처진 턱······ 등?”

처음엔 눈치 보며 말하던 생김새가 평범한 레지던튼 뒤로 갈수록 말도 빨라지고 신이 나 보였고, 좌자전의 얼굴은 점점 굳었다.

“오늘 콘지는 우리 팀 사람 먹을 만큼만 끓였어. 미리 말해두는데 네 건 없어.”

좌자전은 솥에 생강 채를 넣고는 중간 불로 올리고 손질해놓았던 소고기를 집어넣었다. 새하얀 죽이 화력에 보글보글 끓었다.

등심은 매우 빠르게 어두운색으로 변해 죽과 함께 끓었다.

“저기······.”

생김새가 평범한 레지던트는 순간 후회하고 무슨 말로 분위기를 풀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제약회사 직원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들어왔다.

“능 팀 좌 선생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물건 배달 왔습니다. 운리 제약회사에서 왔어요.”

좌자전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레지던트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이제 우리 때 분위기 난다.”

그리고는 제약회사 직원을 향해 뭘 가지고 왔는지 물었다.

“저희 사장님이 교외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채소, 그리고 각종 음료랑 간단한 음식······.”

“콘지 먹는데 반찬이면 뭐 대단할 것도······ 헐 킹크랩?!”

“네, 게살 위주로 몇 가지······. 운리가 쏩니다!”

제약회사에서 초짜 의사들 식사 대접 하는 것도 일종의 전통이었다.

진료과의 권력 중심은 주임이고, 무슨 약을 쓸지, 어떤 소모품, 기구를 사용할지 진료과 주임을 제외하고 발언권이 있는 건 바로 수간호사였다.

치료팀 팀장들이 얻는 이득은 의외로 별로 없었고, 초짜 의사들은 일정한 수익분배금 –있다면 말이다- 외에 제약회사의 접대 정도가 최대 이득이었다.

그러나 킹크랩 수준의 접대라니, 응급의학과 의사에겐 드문 일이었다.

레지던트는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잘됐네. 콘지 먹을 생각도 없었는데.”

두 시간 후, 게를 배불리 먹은 응급의학과 의료진들이 다시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로 돌아갔다.

능연도 운리에 호감을 잔뜩 느낀 표정으로 게가 매우 신선했다고 칭찬했다.

“신선하긴 신선한데, 너무 많이 먹은 거 같아. 좀만 더 먹었다간 내과에 접수할 뻔했다. 흠, 너 좀 안 자도 되냐?”

“네.”

“난 좀 졸린다. 그럼 살짝 몸 좀 풀까?”

주 선생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안 졸리고 안 피곤하고 게살을 먹지 않았더라도 살짝만 몸을 풀 생각이었다. 능연은 당연히 반대하지 않았고, 배를 두드리며 주 선생을 따라 처치실로 향했다.

공사 현장 사고로 환자가 대량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지만, 개인적으로 응급실을 찾는 사람은 그 상황을 모르니 변함없이 운화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뒤로 밀리기 마련이라 대기 시간이 매우 길어졌다.

“둘이 한 팀 하자.”

주 선생은 능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환자를 불러오라고 간호사에게 손짓했다. 능연도 안 될 것 없다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어차피 조수가 필요했고, 주 선생이 조수를 해준다면 좋은 일이니까.

잠시 후, 가족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탄 환자가 능연과 주 선생 앞에 나타났다.

“선생님, 제 아내 손 좀 봐주세요.”

보호자가 긴장한 모습으로 말을 꺼내면서 조심스럽게 휠체어에 앉은 아내를 바라봤다.

“골절이네. 손이 부러졌습니까? 어쩌다 부러졌습니까?”

“당신이 얘기해요.”

주 선생이 힐끔 보고 묻는 말에 아내가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봤고, 남편은 머쓱한 듯 고개를 숙였다.

“어제 잘 때, 제가 이 사람 팔을 눌러서요.”

“예?”

“뚝 소리가 나더라고요.”

제대로 못 들은 주 선생이 묻자, 남편이 앞으로 휠체어를 밀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선생님, 잘 붙여주세요. 그런데 깁스해야 하나요?”

“해야겠죠? 혹시 석고 알레르기 있으세요?”

아내는 통증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고, 남편이 작게 속삭였다.

“알레르기는 없는데요, 깁스로 맞으면 아플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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