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센터 식당.
두 부주임이 준비한 아침 식사가 식당 정중앙에 세팅되었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다들 몇 젓가락 댄 후 재빨리 식당 구석으로 달려갔다. 따끈따끈한 광동식 아침은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다들 자주 접하는 것이지만, 셰프 세 명이 현장에서 직접 삶아주는 면, 뚝배기에 끓여주는 삼계탕 그리고 약한 불에 오래 끓인 해삼 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셰프 하나가 열심히 반죽해서 슥삭슥삭 면을 뽑는 장면은 퍼포먼스만으로도 그곳으로 간 보람을 느꼈다. 물론, 다른 곳으로 갈 데도 없었다.
따듯한 면과 삼계탕, 해삼 죽을 먹거나, 흔하디흔한 광동식 아침을 먹거나였다. 게다가 광동식 아침 가게는 말로는 홍콩에서 왔다는데, 사장은 운화 사람이고, 사장 와이프도 운화 사람이었고 첫 주방장은 사천 사람이고, 다음 주방장은 호남 사람에, ‘광동식 아침’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도 복건성에서 나는 나무로 조각한 것이었다.
“능 선생, 매운 닭발 좀 먹어봐. 이 집이 이거 정말 특별해.”
자기가 시킨 아침을 먹는 사람이 없자 두 주임은 아예 돌아다니며 술을 권하는 방식으로 메뉴를 사방에 추천하고 있었다.
능연 앞에 앉아 있던 전칠은 그의 체면을 챙겨주느라 한 조각 집어서 맛보고는 바로 물을 마셨다.
“특별하긴 하네요. 과감한 맛이에요.”
“그렇죠? 듣자 하니 호남 고추를 쓴다더라고요. 맵고 중독성이 강하지요.”
두 부주임은 기운이 좀 나는 듯 자리로 돌아가 막 삶은 면을 먹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알 드릴까요?”
두 부주임에게 면을 두 그릇째 담아 주던 셰프가 적극적으로 먼저 물었다.
“네. 프라이로 하죠.”
“어떤 걸로 드릴까요?”
“프라이요.”
“어떤 알로요?”
셰프가 웃으면서 카트를 하나 꺼와서 식탁보를 걷고는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했다.
“신선한 계란, 오리알, 그리고 비둘기알, 메추리알, 자라알, 그리고 에뮤알도 두 개 있는데, 이건 프라이하기엔 좀 아니네요.”
두 주임은 넋 나간 듯 카트를 바라보다가 놀란 나머지 다 달라고 말했다.
전칠은 수프를 좀 마시고는 능연이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4시에 일어나서 세 시간이나 회진을 돈 능연은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팠다.
그는 작은 그릇에 나오는 면을 다섯 그릇이나 먹고 그제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배불리 먹은 능연은 사람들이 싹 비운 그릇을 보고는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
“돈 많이 들었겠네요. 휴가 다녀오면 제가 밥 살게요.”
“좋아요. 소가 식당 가서 꼬치 먹어요.”
전칠은 좋은 기회를 거절하기는 싫고, 능연이 돈을 많이 쓸까 봐 걱정되어서 갈등하며 대답했다. 소가 식당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끼고기나 해산물을 먹는다면 어느 정도 비슷하게 나올 것 같았다. 도평 여사는 항상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고 교육해왔다.
마찬가지로 배불리 먹은 두 부주임은 배를 두드리며 잘 아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칠 씨, 타히티 가려면 도쿄 거쳐야 하죠? 몇 년 전에 저도 그렇게 갔습니다. 도쿄에서 한 12시간 걸리니 준비 잘하셔야 합니다. 도쿄에서는 얼마나 머물 예정인가요?”
“전용기를 타고 가는 거라, 상세한 여정은 모르겠네요.”
전칠이 웃으며 대답하자 멍해졌던 두 부주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처치실에 가보겠네.”
“저도요!”
좀비 상태에서 살아난 의사들도 두 부주임을 따라 처치실로 돌아갔다.
배를 채운 능연도 처치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여원이 냉큼 나섰다.
“전칠 씨, 우리 이제 일하러 가야 해요.”
“저도 같이 갈래요.”
돌아가기 싫은 전칠이 바로 따라 일어섰고, 음식을 얻어먹은 의사들은 거절하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같이 가자는 말은 하지 않고 그냥 따라오는 걸 모른 척하면서 아래층 처치실로 향했다.
펑!
펑펑!
그때 처치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서른 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왕팔권(王八拳: 본능적으로 맥락도 없이 휘두르는 동작을 가리키는 말)을 휘두르면서 병원 보안요원이 접근하지도 못하게 했다.
의료진들도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고함을 지르는 사람 없이 조용하기만 해서, 엘리베이터 도착 알람이 유난히 똑똑하게 들렸다.
능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시커먼 그림자와 함께 남자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젠장!!”
연문빈이 고함치면서 38cm 팔뚝을 휘둘렀지만, 빗맞고 말았다.
퍽!
전칠이 다리를 들었다가 거두면서 숨을 가볍게 들이쉴 때, 남자는 벌써 멀리 날아가 있었다. 능연을 비롯한 모두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전에 무에타이를 배웠거든요.”
전칠이 속삭이듯 말하면서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전칠이 치마를 걷고 하이힐을 벗은 다음에 다리를 뻗어 걷어찼다는 걸 알아챈 사람은 여원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전칠의 다른 한쪽 발에 신겨있는 하이힐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역학으로 보는 인체 골격의 강도, 뭐 이런 제목의 논문 생각 말이다.
여원은 바로 깊은 생각에 빠져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했어요?”
전칠은 여전히 침착한 모습이었다.
“네.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곧 올 겁니다.”
초짜 의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금세 다시 무리로 사라졌다. 바닥에 쓰러져서 웅얼거리는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묶어요! 의료용 로프 같은 거 있죠?”
전칠은 전체 분위기를 휘어잡고 명령을 계속 내렸다. 그러자 의사 몇 명이 무심결에 명령을 따랐고, 남자를 스트레처 카 위에 묶어 놓은 처치실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잠시 후 출동한 경찰이 병실 하나를 빌려 바로 심문에 들어갔다.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남자는 심문하는 경찰도, 구경하는 의사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장만 바라봤다.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서른 몇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시립 2 병원 의사는 다 돌팔이에, 개새끼들이야. 태도도 형편없고 입만 열면 검사, 돈!”
그러자 다 함께 몰려서 구경하던 의사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여기는 운화병원인데, 하고 중얼거렸다.
“운화병원이면 뭐? 운화병원도 똑같아! 난 몰라, 다들 한패라고!”
“그게 이런 짓을 할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후우, 폭행으로 연행될 수도 있다고요. 압니까?”
경찰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잡아가요! 잡아가라고!”
남자가 핏대를 세우며 고함치다가 갑자기 제복을 입은 경찰을 보더니, 통곡하기 시작했다.
“시립 2 병원 의사가 내 아들이 내 아들이 아니라잖아! 1 병원 의사도 내 아들이 아니래고. 다들 짠 거지? 순진한 나 같은 사람한테 왜 이래······.”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남자는 점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시립 2 병원 의사한테 이야기하지 말아요. 거기 이야기하면 내 마누라도 알게 될 거란 말입니다.”
잠에서 깬 좌자전은 대기하려고 처치실로 향했다가 구경꾼 무리로 끼어들었다.
병실까지 밀려온 좌자전은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파져서 사람들을 뚫고 남자 앞에 가서 섰다.
“됐어요. 그만 울어요. 어서 정리하고, 당당하게 파출소로 갑시다.”
“파출소 가기 싫습니다.”
남자가 갑자기 두려워진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창피하면 일을 벌이지 말고, 일을 벌였으면 창피해도 감당해야죠. 손바닥으로 어떻게 하늘을 가립니까. 안 그래요?”
좌자전은 경험자의 말투로 남자를 설득했다. 주변에 동료들이 넘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흔 넘어 레지던트도 하는데, 놀림거리가 되는 건 두렵지 않았다.
굳이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다고, 남자는 좌자전이 눈치를 주자 바로 알아듣고 조용해졌다.
출동한 경찰이 손가락을 까딱여 동료를 불러 남자를 데려가게 했다. 고분고분 끌려가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안타까운 듯 그를 바라봤다.
“다들 그만 흩어지세요. 뭐 볼 거 있다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경찰이 능연과 전칠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질문 몇 가지 드리고 싶은데, 협조 부탁드립니다.”
“잠시만요.”
전칠은 한쪽 발이 맨발인 채로 삐딱하게 서서 냉담한 표정으로 경찰을 바라봤다. 능연을 제외한 사람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경찰이 언짢은 듯 눈썹을 찌푸렸다. 사건이 터져서 처리하러 온 경찰을 그런 모습으로 대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전칠의 기세가 남다르고 옷차림도 고급이라 조금 너그럽게 굴었다. 게다가 전칠이 돌려차기로 남자를 제압했다는 이야기를 듣기고 했고.
그때 경찰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알겠습니다. 예, 이해했습니다. 예.”
전화를 끊은 경찰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됐습니다. 사태도 진정됐고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경찰은 능연과 전칠에게 기분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보아하니 진료를 받으러 오는 이런저런 환자 유형에 익숙한 의사와 마찬가지로 그런 처리 방식에 익숙한 것 같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전칠이 담담하게 인사했다. 그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처리 방식이 익숙한 것 같았다.
“좌 선생님 좀 보러 갈까요?”
경찰의 뒷모습을 보던 전칠이 능연에게 묻자 능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왜냐면······.”
전칠이 뭐라고 해야 좋을지 말을 정리하는 사이 좌자전이 어느새 돌아왔다.
“나도 불쌍한 사람이니까.”
좌자전은 허무한 얼굴이었고, 눈가 주름도 더 깊어진 것 같았다. 현장에 초짜 의사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됐습니다. 가서 대기나 하자고.”
좌자전이 손을 크게 휘두르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그 모습이 꼭 주임 같았다.
그날 오후, 전칠은 롤스로이스 팬텀으로 전용기가 있는 공항까지 가서 운화를 떠났다.
노하진에서 오는 환자도 이제 없었고, 운화 시 병원의 긴급상태가 해제되었다. 그러나 곽종군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적무재가 사람들을 데리고 도장 깨기를 하는 모양이야. 다들 신경 쓰라고. 괜히 트집 잡혀서 반면교사가 되지 말고.”
곽종군이 의국 중간에 서 고함치자 사람들이 모두 긴장했다. 곽종군이 남 패는 걸 제일 즐기고 남이 자길 패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걸 모르는 운화병원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그가 ‘도장 깨기’라는 강렬한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다들 그 깨지는 사람이 내가 아니길 바랐다.
“적무재라면 작년에 원사가 된 그분 말인가?”
“쇼를 되게 좋아한대. 그래서 회의도 자주 열고.”
“사람들이 추켜세우는 걸 엄청 즐긴다던데요. 그분이 개최하는 회의는 장난이 아니래요. 초대받으려고 2년 넘게 알랑거리는 사람도 있다던데요?”
의사들은 수군대긴 해도 정말로 마음에 담아두진 않았다. 바빠 죽겠는데, 아무리 진료과의 행정 사안이라고 해도, 남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능력 있는 의사일수록 관심 범위는 점점 좁아진다. 의사가 진료만 보고 수술만 하면 되는 위치가 되면 작은 성과를 이룬 셈이고, 진료만 보고 수술만 하면 되는 위치에서 돈까지 많이 번다면 큰 성과를 이룬 셈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완벽한 삶을 원한다면, 진료만 보고 수술만 하면 되는 의사가 명예도 가져야 하는데, 의사가 살아서 그 수준까지 가는 게 힘들었다.
물론, 진료 보고 수술도 하고 사회와 속세도 신경 쓰는 그런 의사가 가장 두려운 의사였다. 적무재가 바로 그런 의사였고.
그가 개최하는 회의의 명성이 높은 건 그저 표면에 불과하고, 각 위원회에 이름 올린 그의 직책이 가장 두려운 점이었다. 유럽, 미국의 각 위원회에 비해 중국의 위원회는 유명하지 않지만, 실제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특히, 반쯤 공기관인 의학회에서 내린 결정의 효력은 매우 컸다.
며칠 만에 적무재가 위가우를 이끌고 운화병원에 도착했다.
적무재는 도장 깨기를 하면서 작은 병원과 연구 기관에서는 모든 사람을 테스트하기까지 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축 원사보다 적무재가 훨씬 늦게 원사가 됐지만, 실력은 훨씬 강했다.
운화병원 계단에서 적무재는 습관적으로 실눈을 뜨고 속으로 의사들의 실력을 가늠했다.
“적 원사님, 우리 운화병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단 회의실로 가실까요?”
운화병원 원장은 축 원사 때와는 달리 신중한 모습으로 그를 맞았다. 그때는 축 원사의 플랫폼에 참여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길 바랄 때였고, 지금은 공격기인 원사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축 원사는 협력하는 관계라는 생각으로 맞이했다면, 도장을 깨러 온 적무재를 맞이할 때 다소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운화병원 심장외과······는 아직 좀 그렇지. 그럼 응급의학과로 할까?”
역시 적무재는 첫 마디에 운화병원 체면을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적무재가 심장외과가 그저 그렇다고 무시하려 드니 다들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적무재 본인이 심장외과 능력자라서 다른 심장외과 주임들도 입안에 혀처럼 고분고분한데, 밑에 의사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젠 응급센터로 승급했습니다.”
그러나 곽종군은 일관적으로 뻣뻣하게 굴었다.
“그거나, 그거나.”
곽종군의 나이를 가늠한 적무재가 입을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
“아직 젊으니 우선 실력이나 쌓고, 급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하게. 아 참, 심장 질환 환자, 지휘 센터에서 요청해 올 수 있는가? 제자들한테 다양한 케이스를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지.”
참으로 거만한 말이었지만, 상대는 전국구 능력자였고 운화병원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리고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가서 전화 걸어 보겠습니다.”
곽종군이 ‘이 몸은 시중들지 않겠소.’라는 듯 휙 몸을 돌려 사라졌지만, 적무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원래 위세를 떨치러 온 건데, 상대방이 언짢아하지 않으면 곤란하니 말이다.
적무재가 콕 찍어 부르자 앞으로 나선 위가우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는 별말 없이, 이제 운화병원에서 크게 한탕 하겠다는 듯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