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크고 마른 위가우는 걸을 때 항상 팔짱을 끼고 걸었고, 서 있을 땐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는 걸 좋아했다.
그는 사람과 교류하는 걸 싫어하고, 사람들도 그와 교류하길 싫어했다. 운화병원 의사와 간호사도 그와 이야기하길 꺼려 했고, 환자와 보호자마저도 그랬다.
심지어 병실에서도 위가우의 냉랭한 표정을 본 환자와 보호자는 질문도 하려 들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사만 만나면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법인데, 이건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집도의가 자리를 뜨지 않는 한 환자와 보호자는 보통 영원히, 평생, 환생해서도 질문을 던지는 존재인데 말이다.
위가우는 달랐다. 그는 걸을 땐 구석으로 걸어도 뭔가 할 땐 눈에 띄는 걸 좋아하고 태도도 거만했다. 세상이 그를 배척한다기보다 그가 온 세상을 배척한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아주 소수의 사람, 적무재처럼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의사만 그런 위가우를 용납했다. 그러나 적무재도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위가우와 함께 있을 땐 별로 잡담을 나누지 않았다.
능연과 함께 일하는 운화병원 마취의,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적어도 능연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답답함을 해소하지만, 위가우는······ 능연에 눈높이가 맞춰진 그들이 어떻게 예전으로 돌아가겠나.
“대동맥 해리가 아닙니다.”
영상의학과 주치의는 전화를 걸어 두어 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위가우는 컴퓨터로 다가가 직접 리포트를 프린트해서 읽기 시작했다.
“어떤가?”
위가우 뒤에 선 적무재는 리포트를 보기도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적무재는 곽종군도 어린애로 볼 만큼 나이가 많았다. 의사가 그 나이가 되면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드물었다. 적무재 생각엔 제자를 제대로 키우고 끌어 올리는 게 바른길이라고 여겼다.
위가우는 완전 반대였다. 그는 타인과 교류는 싫어하지만 새 기술, 새 방법은 좋아해서, 이미 심장외과 라이징스타가 됐음에도 몰래 각종 내시경을 배웠고, 그 때문에 심장외과 수술이 줄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운화병원에 도착한 날, 위가우는 운화병원 전자 시스템의 대부분 기능을 배웠다. 좌자전은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말이다.
위가우는 진지하게 검사 리스트를 한 번 훑어본 후에야 적 원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맞습니다. 대동맥 해리는 아닙니다.”
“그렇군. 운화 쪽 환자 상태가 영 별로구만. 여기 온 지 일주일인데 아직 대동맥 해리 환자가 없다니. 환자를 제대로 구하고 있는 거야 뭐야.”
적무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침이 뇌 주임의 얼굴에 다 튈 지경이었다. 의교과 주임인 뇌 주임은 꾹 견디며 겸연쩍은 듯 웃어 보였다.
“병이야, 안 생기면 환자도 좋고 병원도 좋지요.”
“어디 구석 병원에서 환자가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흥.”
적무재는 콧방귀를 뀌며 대동맥 해리 환자가 없는 게 아니라 진료를 받으러 나오지 않는 것임을 암시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뇌 주임도 분명 반박했겠지만, 적무재 님이 하는 말씀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적무재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대동맥 해리 발병률은 생각보다 높고 1만 분의 1 정도는 된다. 미국에서는 부검 발견율이 1%였다.
국내 삼갑병원에서는 발견율이 10만분의 1도 안 되고, 대부분 데이터가 없는 상태였다. 현병원 같은 곳은 십 년이 지나도 한 건 발견할까 말까지만, 심근경색 환자를 정말로 부검을 해보면 분명히 대동맥 해리로 인한 발병이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동맥 해리를 진단해내지 못한 병급 병원은 환자에게 염라대왕을 만나는 고속도로를 뚫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고, 현병원으로 간 대동맥 해리 환자는 기본적으로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이다.
운화병원 심장외과 분야가 실력이 약해서 대동맥 해리 진단율이 낮고 전제 응급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고 나아가 운화 시의 환자 생존율도 낮춘다고 볼 수 있었다.
적무재가 그런 쪽으로 야기를 하면, 뇌 주임은 조금도 반항할 수 없어진다. 적무재 같은 공격기 스타일 불벼락을 잘 아는 뇌 주임은 신속하게 동굴을 파서 숨어들고는 적무재 마음대로 실력을 발휘하게 내버려 뒀다.
곽종군과 달리 원사라는 자각이 있는 적무재는 적어도 죽은 자를 밟지는 않고, 그저 무시하는 듯 뇌 주임을 힐끔 보고는 위가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동맥 해리가 정 없으면, 있는 거나 하세.”
“음······. 이 케이스는 별 재미가 없습니다. 심장내과에서도 처리할 수 있어서요.”
위가우는 체면 차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고, 적무재도 찬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금 더 기다려 보세. 대동맥 해리는 없어도, 심장 질환은 있겠지.”
“다음 환자가 심장 질환입니다. 끝내고 저녁 먹으러 가면 되겠습니다.”
위가우가 시계를 보고 하는 말에 뇌 주임도 시계를 내려다봤다. 5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위가우의 자신감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제 목을 조이는구만.’
뇌 주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원사가 데리고 온 애제자였고, 실력은 이미 운화병원 심장외과 주임을 넘어섰고, 설사 넘어서지 못했다고 해도 응급실에서 환자를 기다릴 자격은 충분했다.
그가 진단에서 수술까지 다 하겠다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120 지휘 센터에서 금세 소식이 전해왔다.
“심근경색 의심 환자, 흉부 압박감, 땀을 많이 흘리고 요실금이 왔답니다.”
거리를 물은 위가우가 바로 데리고 오라고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구급차 한 대가 구급차 출입구에 멈춰 섰고, 위가우가 가장 먼저 달려가 상태를 물었다. 그의 담담한 표정과 정리된 말투에, 긴말하지 않았음에도 보호자는 마음을 조금 놓았다.
심장외과 전문의인 위가우는 심근경색에 정통했고, 그러니 몹시 태연하게 행동했다. 물론, 심장 수술실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이고, 심근경색 같은 증상은 모두 살아나지 못하는 때도 많다. 그러나 위가우는 여전히 평온했다.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보호자 한 분은 가서 수납하시고, 직계 가족은 동의서에 사인하세요.”
위가우는 보호자와 상의할 뜻이 없다는 듯 나직이 명령을 내렸다. 그가 보기엔 상의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
“무슨 수술입니까?”
구급차를 타고 온 중년 남자가 주저하며 물었다. 그러자 위가우는 의아한 듯 그를 힐끔 보고는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심근경색으로 판단됩니다. 일단 혈전 용해를 하고······.”
“관상동맥 우회술 말씀이시죠? 맞죠? 그거 비싸지요?”
남자는 더욱 머뭇거렸고, 그 모습에 위가우가 인상을 썼다.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압니다. 우린 다 친척이라, 이런 큰일은 아들이 결정해야 하니까요.”
“먼저 사인하시고 나중에 상의하세요.”
“잠시만요. 아들한테 전화해 볼게요.”
남자는 사망 확률 이야기에도 사인하려 들지 않았고, 같이 온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응급수술은 이런 거야.”
적무재가 위가우 곁에 다가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책임을 안 진다니 할 수 없지. CPR 준비하게.”
적무재가 모니터 기기를 바라보고는 지시를 내렸다. 수술동의서 없이 수술은 못 하지만, 응급 처치는 진행해야만 했다.
급성 심근경색은 유형이 매우 많다. 하지만 어느 유형이든 현대 의학에서는 개입(介入)을 진행하거나 개입성 수술을 한다.
개입 수술은 내시경 수술의 일종이고 심장외과에서 자주 쓰는 이 수술은 위가우가 가장 잘하는 수술이고 사실상 단시간에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위가우는 환자 현재 상태로 봐서 수술실에 들어간 다음 80%의 확률로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이 희박해졌다.
위가우는 화를 누르며 구석에 숨어 각종 방안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사인 안 하시면 이러다가 수술도 못 합니다.”
운화병원 심장내과 의사도 응급의학과로 와서 초조하고 짜증을 누르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위급통지서를 내렸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더러 사인하라고 해도 소용없다니까요.”
핸드폰을 들고 놓지 않는 아저씨가 처음보다 단호해진 말투로 힘껏 고개를 저었다.
“아들분은요? 아직인가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시계를 본 심장내과 의사는 안색까지 어두워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몰라요! 아들이란 놈은 만날 야근하고, 회사, 사는 집, 다 전화해 봤는데 안 받는 걸 어떻게 하라고!”
아저씨도 버럭 고함치자 심장내과 의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사인 안 하면 환자분 돌아가십니다.”
아저씨는 이제 설명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만 저었다. 그는 병원 의사들이 자신의 심정을 이해할 리 없다고 생각했고,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다.
모니터를 다시 본 위가우는 적무재를 바라보다가 결국 앞으로 나와서 차가온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만 기다리죠. 환자를 우선 수술실로 옮깁시다.”
적무재는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보호자들도 안도한 듯 숨을 내쉬고는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고 큰 소리로 ‘여보세요.’ 하고 외쳤다.
주변에 있던 구급요원들은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집도의 명령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지체하는 바람에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죽게 되는 걸 눈 뜨고 지켜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트레처 카의 고정 레버가 올라가고, 남자 간호사가 뒤에 서서 힘을 주어 밀기 시작했다.
띠띠띠띠띠.
스트레처 카가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 모니터에서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충격기.”
위가우가 가장 먼저 고함쳤다.
남자 간호사가 황급하게 걸음을 멈추고 고정 레버를 내린 다음 충격기를 충전했다.
위가우는 환자의 옷을 잡아 찢고는 겔을 바르고 기기를 붙였다. 비키라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흔들렸다.
“CPR.”
위가우는 바로 스트레처 카 위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교차해서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위가위는 흥얼거리며 자신의 압박 리듬을 체크했다. 응급의학과 간호사들은 최대한 그에게 협조했다.
잠시 후, 현장에 나타난 여원이 큰 소리로 자기가 교대할 수 있다고 외쳤다.
“필요 없습니다.”
위가위는 여원을 믿지 않았다. 낯선 병원에서 믿을 건 자신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폐소생을 하면서 눈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적무재는 당연히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위가우를 데리고 다니면서 지방 병원을 도는 건 위가우에게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부족한 식견을, 다른 병원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채워줄 생각이었다. 어떤 질병은 어느 지역에서는 드물지만, 다른 지역으로 가면 흔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다른 증상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사의 자질을 높일 수도 있다.
이번에 운화에 와서 기대한 대동맥 해리 수술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심폐소생을 연습할 기회를 얻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위가우는 헉헉대며 흉부 압박을 하고 전기 충격을 쓴 다음, 겨우 환자의 의식을 돌려놓았다.
“수술실로!”
위가우가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자 남자 간호사가 다시 고정 레버를 올리고 스트레처 카를 서서히 앞으로 밀었다. 환자 보호자도 자동으로 따라갔다.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수술동의서에 사인은 하지 않아도, 환자가 살아나길 바랐다.
스트레처 카는 일정 속도로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다가 모니터 알람이 다시 울렸다.
위가우는 이번에 조금 더 여유롭고 안정된 동작으로 전기 충격기를 쓰고 흉부 압박을 했다.
한 세트, 두 세트, 세 세트.
위가우의 이마에서 곧 땀이 흘렀다.
“150!”
위가우는 고함치면서 전기 충격을 주고는 다시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한 세트, 두 세트, 세 세트.
“200!”
위가우의 목소리는 더 커졌지만, 전기 충격 효과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엔 모니터도 보지 않고 바로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한 세트 30번, 분당 120회 흉부 압박을 하면서 위가우는 땀을 뻘뻘 흘렸다.
마르고 길쭉한 위가우는 길고 예쁜 손가락, 남보다 긴 팔과 다리를 가져서 환자 위에 있을 때 기괴한 느낌도 들었다.
팔뚝에 근육이 적어서 흉부 압박을 할 때 방망이로 환자의 흉부를 누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환자에 집중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런 부조화한 부분으로 옮겨갔다.
위가우의 자세와 형태 말고도 전기 충격기를 빈번하게 쓰는 바람에 나는 탄내도 사람들의 주의를 흐트러트렸다.
“에피네프린.”
위가우가 다시 명령을 내리자, 자주 쓰는 구급 약품을 근처에 진작에 준비해뒀던 간호사가 바로 에피네프린을 주입했다.
위가우는 바로 기관지 절개하고 호흡기계를 연결할 것을 지시했다. 엠부보다 호흡기계가 장시간 CPR에 유리하다는 연구 발표도 있었다.
이 타이밍에 호흡기계를 통해 인공호흡 한다는 건 심폐소생이 장시간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심폐소생은 지구전에 돌입할 것이다.
5분, 10분, 심폐소생은 어느새 15분 넘게 계속되었다.
미국이었다면 벌써 한계로 여길 시간이었고, 대다수 의사는 흉부 압박을 포기한다. 국내라도 해도 의사들이 0.5%의 확률을 포기하는 건 현명한 선택으로 봐도 좋았다.
기술에 자신이 없거나 병원, 혹은 진료과의 응급 처치 능력에 자신 없으면 장시간 심폐소생을 시도하지 않는다. 의사는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거나, 혹은 환자의 예후가 좋지 않다고 판단할 때, 심폐소생을 고집하지 않는다.
사실상 장시간 심폐소생 후, 심장이 다시 기능을 회복할 확률은 고작 5%인데, 그것도 결코 많이 잡은 것이다. 그리고 0.5%와 5%의 사이의 확률로 뇌사가 일어날 수 있다.
의사들은 모두 위가우의 추측을 추측한 듯 시선을 돌렸다. 같은 병원의 잘 아는 의사였다면, 누군가 그에게 심폐소생 경과 시간을 알려 주었으리라. 그런데 다들 위가우를 잘 모르는 데다가 좋아하지도 않아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
“교대하죠!”
위가우가 드디어 흉부에서 손을 뗐다. 포기가 아니라 교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심장외과 주임 하나가 머뭇거리면서 앞으로 나왔다.
“위 선생, 내가 하겠소.”
위가우는 아직 젊은 의사지만, 그의 스승인 적무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거물이었고, 운화병원 심장과 의사로서는 그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었다.
위가우는 1분 정도 더 버티다가 스트레처 카에서 내려왔다.
심장외과 의사가 스트레처 카 위로 올라 헥헥대며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헥헥헥.
후후후.
하악하악.
상대의 동작을 지켜보던 위가우는 잠시 후 바로 다시 교대하라고 고함쳤다. 심장외과 주임은 벌써 스트레처 카 위에서 내려왔고,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심장외과 주치의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 한 명.
젊은 심장외과 주치의, 그리고 위가우까지 몇 사람이 교대하면서 몇 바퀴 심폐소생을 했고, 지켜보던 구급요원들까지 번갈아 참여했다.
능연도 사람들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온 사람들의 기술에 대해 상당히 호기심을 느꼈다.
흉부 압박할 때 교대하는 빈도에서 약품 사용, 전기 충격기 사용까지, 구명 과정에 절대적 원칙은 없어서 의사들의 임상 판단이 더 중요했다.
40분 동안 심폐소생을 하며 버티던 위가우가 드디어 판단을 내렸다.
“안 되겠습니다.”
위가우는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사망 시각······.”
“계속하시죠.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능연이 위가우의 사망 선고를 가로막았다. 40분 동안 이어진 심폐소생은 이미 장시간 심폐소생에 속했지만, 능연이 보기에 아직 사망 선고할 정도는 아니었다.
환자의 심전도가 불안정하고 파형이 혼란스러운 건 많은 사람이 흉부 압박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편, 환자는 겨우 쉰 좀 넘은 나이라, 현대인의 수명과 신체 조건으로 고려하면, 목숨만 살리면 예후는 상당히 낙관적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환자에 개입하는 걸 싫어하는 위가우는 고개를 돌려 능연을 봤다. 잠시 얼굴을 지그시 보다가 더욱더 언짢아져서 손을 휘이 내저었다.
“이제 당신 환자입니다.”
“네.”
능연은 위가우가 자주 접하는 의사처럼 울며불며 환자의 소속권부터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한마디로 결론 내고 바로 스트레처 카 위로 올라가 심폐소생을 계속했다.
“하나, 둘, 셋.”
능연은 양손을 교차하고 균일한 힘으로 흉부 압박을 계속했다. 환자의 기도는 이미 열려 있었고, 호흡기계도 연결되어 있어서 호흡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능연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흉부 압박을 계속했다.
심폐소생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 바로 흉부 압박이었다. 그것도 수준 높은 흉부 압박.
흉부를 누르는 실력이 부족하면 그야말로 생명을 위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가우의 흉부 압박 실력 자체는 충분했고, 심지어 여유롭다고 해도 될 수준이었다. 급으로 따지자면, 능연은 그의 흉부 압박 실력을 전문가급의 정상, 마스터급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팀 조직 능력과 지휘 능력 때문에 마스터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단점만 아니었다면 오늘 환자는 살아났을 가능성이 컸다. 심폐소생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도 있다.
5, 6분이라면 한 사람이 흉부 압박을 해도 충분했겠지만, 10분 동안 한 사람이 계속하면 철로 만든 사람이라도 변형된다. 물론, 흉부 압박은 계속할 수 있지만, 퀄리티가 낮아진다. 능연 같은 녀석이 아니고서야, 동작이 변화하는 상태에서 일정한 효율을 유지할 수 없다.
위가우 본인의 실력은 충분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 팀 플레이할 때 실력이 약화된 것이다.
운화병원은 지금 심폐소생 항목을 시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젊은 주치의들이 혼자 진행하거나, 단시간 팀으로 진행하는 건 문제 없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불가피했다.
이제 능연이 나섰으니······.
능연이 나서도 사실 큰 차이는 없다. 흉부 압박은 환자에게 최소한의 도움이 될 뿐, 나머지는 약물 혹은 환자 본인에 달렸다.
“에피네프린.”
능연은 압박 리듬이 잡히자 그제야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에피네프린 투여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2분마다 에피네프린을 외쳤고, 아트로핀과 리도카인도 추가했다.
왜 아트로핀과 리도카인보다 에피네프린을 미친 듯이 더 많이 요구하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알 수 있었다. 능연은 그런 방식으로 환자를 깨우려는 것이다.
위가우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끌려 올라갔다.
‘에피네프린이 무슨 묘약이라고. 그것도 이렇게 빈번하게 사용한다고?’
그러나 사망 선고까지 내리려고 했던 위가우가 능연의 치료에 개입할 리 없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는 능연과 계속해서 에피네프린을 주입하는 간호사를 말없이 지켜봤다.
“능 선생.”
소식을 들은 연문빈이 드디어 달려와 바로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며칠 동안 업무 강도가 높았던 응급의학과는 의사들에게 휴가를 주었고, 겨우 반나절 주방에 틀어박혀 있던 연문빈은 단톡방에서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 나온 것이다.
족발은 어디 도망가지 않지만, 심폐소생 기회는······ 응급센터엔 자주 있지만,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니까.
병원 근처에 사는 연문빈은 뛰어서 수술 구역으로 들어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온 것이라 능 팀에서 가장 먼저 도착했다.
“우선 몸 좀 푸세요.”
능연은 연문빈을 쳐다보지 않고 흉부 압박에 집중했다. 연문빈도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것이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가서 능연의 동작을 주시했다.
전에 했던 심폐소생과 비교하면 능연은 이번엔 더욱 안정성을 중시했고, 에피네프린도 더 많이 썼다.
“에피네프린.”
능연은 에피네프린 사용 빈도를 2분에서 1분으로 올렸다.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연문빈은 앞뒤 재지 않고 그렇게 많이 쓰냐고 물었다.
“심전도 봐요.”
능연은 설명할 겨를이 없어서 바로 지도 방향을 내렸고, 연문빈은 어안이 벙벙해서 심전도를 바라봤다.
심전도는 심장의 신호를 반영하기 때문에 MRI에 버금가는 판독하기 어려운 영상 항목이다. 그 안에서 정보를 얻는 것만 해도 상당히 어려운 건 둘째치고 심전도로 원하는 순간을 잡아내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나 연문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환자는 죽어가고 있었고, 20년 전 기준으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 여기서 에피네프린을 더 많이 투여해도 두 번 죽는 건 아닌 셈이다.
좌자전은 10분 뒤에 아까 도움을 거절당하고 돌아갔던 여원과 함께 돌아왔다.
이미 심폐소생 지속 시간이 1시간도 넘은 시각이었다.
“교대 준비.”
능연도 사람을 반드시 살리리란 장담은 못 했지만, 기회는 있다고 생각했다.
능 팀 의사들이 몇 시간이나 투자해 연습한 것도 모두 팀 심폐소생 스킬을 위해서였다. 이제 상황도 파악했고, 능 팀은 순서대로 위치에 서서 고강도 심폐소생을 펼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난 능연은 계속 에피네프린 투여 명령을 내렸다. 대다수 사람 눈엔 위가우가 했던 팀 심폐소생과 비슷해 보였지만, 극히 일부분은 능연의 약 사용량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아버지, 아버지.”
스물 남짓한 청년이 비틀비틀 들어오자 수간호사가 재빨리 두 사람에게 손짓해 청년을 부축하게 했다.
“어서 수술동의서에 사인하셔야 해요.”
금방 교대해서 내려온 여원이 재빨리 청년에게 다가갔고, 청년은 순식간에 서명을 끝냈다. 주변 의사들이 슬며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을 다시 한번 겪었다가는 다들 멘탈이 붕괴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지금 어떤가요?”
청년은 묻지도 않고 대여섯 장이나 되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지금 응급 처치 중입니다.”
“도, 돈 내야 하나요?”
수간호사의 대답에 청년이 힘겹게 물었다.
“당연하죠. 절차 없이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해두었으니, 어서 가서 수납하세요.”
수간호사의 말은 빠르고 급했지만,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젊은이는 난처한 듯이 친척들을 바라봤다.
“여기, 3천 위안 있다. 일단 가져가렴.”
“나는 5천 위안 있어.”
“1만 위안 가져가거라. 모자라면 말하고.”
계속 전화만 하고 죽어라 사인은 하지 않고 버티던 친척들이 이제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돈을 통 크게 내놓았다.
감동한 청년은 눈물을 흘리며 한 바퀴 돌면서 꾸벅 인사하고는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능연이 다시 스트레처 카 위로 올라갔다.
“에피네프린, 리도카인.”
능연은 목소리에도 리듬이 생겼고, 이어서 숫자도 다섯, 여섯, 일곱하고 셌다.
그 역시 심폐소생이 성공할지 아닐지 모르고,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능연이 아는 건 환자에게 아직 희망이 있는 것, 0.5%일지라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매우 낮은 확률이고, 대다수 의사는 도전조차 하지 않을 확률이다. 어쩌면 환자 보호자조차도 원하지 않을지 모른다.
수많은 리스크를 감당하길 원하는 건 환자 본인, 그리고 주치의뿐일지도 모른다.
그랜드마스터급 심폐소생 스킬을 터득한 능연은 자신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문급이나 전문가급이었다면 지금 여기서 포기해도 어쩔 수 없다. 입문급이나 전문가급 심폐소생은 이런 상태에서 희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문 쪽에 서 있는 위가우처럼,
젊은 스타 의사인 위가우는 가장 자신 있는 영역에 이미 세계급 수준에 올랐다. 그러나 모든 방면에서 그럴 수 없듯이, 심폐소생 기술도 그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심폐소생을 높은 수준으로 해낼 수 있는 의사는 정말이지 드물었다.
위가우가 마스터급 근처에 간 것만 해도 대단한 재능이었다.
다만 그는 능연보다 강하지 않았다. 위가우 본인도 자신의 능력 한계를 깨닫고 40분 진행한 후, 환자의 심전도와 파형으로 판단하고 포기할 타이밍을 찾았던 것이다.
잠시 더 지켜보던 위가우는 인내심을 잃었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자 적 원사가 헛기침했다.
“뭐가 그리 급해.”
위가우가 눈썹을 치켜뜨며 의문을 품은 눈으로 적 원사를 바라봤다.
적 원사는 위가우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하고는 두 사람만 들리게 귓속말을 했다.
“팀 CPR, 대담한 약 처방,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세.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 일어날까요?”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팀원이 믿게 만드는 것. 네가 기적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는 걸 말이야. 지금 자네한테 부족한 걸세.”
위가우는 기적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라리 머피의 법칙이 이 세상의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위가위의 성격을 잘 아는 적 원사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위가우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능연과 그의 곁에 있는 의사들을 바라봤다.
젊은 남자 의사는 거칠어 보일 정도로 건장했고, 젊은 여자 의사는 잘 안 보일 정도로 키가 작았다. 그리고 나이 든 남자 의사는 피부가······.
솔직히 지금까지 위가우는 오로지 능연만 주의해서 봤다. 능연의 심폐소생 기술이 수준급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심폐소생은 심폐소생일 뿐, 초혼술도 아니고 강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런데 적 원사가 위가우에게 답을 내주었다.
팀 협력!
헬스남, 키작녀, 아재가 순서대로 교대했고, 능연이 지휘하면서 빈틈을 메꾸는 것으로 환자의 심폐소생 연속성을 지켰다. 위가우가 진행한 심폐소생과 비교해보면 이런 훈련된 팀 심폐소생은 확실히 임시로 교대하는 것보다 효과적이었다.
위가우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계속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 시간 넘었어.”
위가우뿐 아니라 현장에 다른 의사들도 속닥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가우는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능연을 지지하고 있는 것에 몹시 놀랐다.
“지난번에도 한 시간 넘었지? 능 선생, CPR에 경험 있는 편이야.”
“맞아, 지난번 환자 ICU에서도 다들 놀랐잖아. CPR하고도 그렇게 예후가 좋은 건 드물대. 일반 CPR도 그런데 장시간 CPR은 어떻겠냐고. 그런데도 그렇게 빨리 회복했잖아.”
“그러니까 능연이 자신만만한 거지. CPR은 자전거 타는 거 같아. 한 번 배우면 잘 할 수 있는 거지.”
“자전거 같은 소리하네. 네가 해봐 그럼.”
“아니, 능연 자전거는 외바퀴 자전거라 배우기 힘들어. 음, 힘들어.”
의사들이 반 농담으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환자 가족들도 모두 들었다. 환자 아들이 안경을 벗어서 눈물을 훔치고는 의사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럼 우리 아버지 살 수 있는 거네요?”
“아닌데. 오해한 거 같네. 난 잘 몰라.”
멀리서 구경하던 촌닭 의사는 환자 가족을 보자마자 우다다 말을 내뱉었다. 환자 아들이 그 자리에 멍하니 굳었다.
“좀 전에 선생님들이······.”
“내가 한 말 아니잖아요.”
“선생님들이······.”
“누가 얘기한지 정확히 알아요? 가서 직접 물어봐요.”
촌닭 의사가 목소리를 높이자 앞에 있던 의사들이 화들짝 놀라 흩어졌다.
요즘 같은 때 ‘반드시 살아난다’ 이런 말을 할 의사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의사에게 정확성을 요구한다.
환자 가족들은 의사 하나를 잡을 때까지 앞으로 갔다.
“우리 아버지 살 수 있어요?”
붙잡힌 의사는 함부로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 살 수 있냐고요.”
아들의 눈에서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곁에 있던 의료진들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대체 지금 환자 가족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대충 이야기하면 들은 척도 안 할 것이고, 진지하게 얘기했다가는 멘탈이 붕괴할 텐데.
“응급처치해야 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집도의더러 나와서 설명하라는 겁니까?”
뒤에서 다가온 좌자전이 엄숙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물었다. 어린 청년이 어디 좌자전과 같이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의 상대가 될까. 그는 순간 쫄아서 말도 다 더듬었다.
“저, 저는 그, 그냥······.”
“그냥 뭐요? 아버지 살리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지금 여기서 이러는 건, 집도의더러 멈추고 설명하라는 거밖에 더 됩니까? 심폐소생 10분 멈추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살아날 확률이 줄어듭니다. 그렇게 할까요?”
어린 청년은 고분고분 고개를 저었다.
“그건 또 싫습니까? 동의서 사인하라고 할 때는 죽어라 안 하더니, 이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니까 의사 붙들고 살릴 수 있냐고 묻다니. 아까는 뭐 했는데요?”
좌자전은 이런 보호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의 태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가족의 태도는 약해진다.
청년 뒤에 버티고 서 있던 친척들도 아까 바로 서명하지 않은 일로 의사가 심한 말을 할까 봐 더 따지지 못하고 청년을 설득하고 나섰다.
“그럼,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일단 응급 처치 상황 지켜봅시다. 심폐소생이 뭔지 알죠?”
청년이 불안한 듯이 묻는 말에 좌자전이 말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심장이 안 좋아서 다시 뛰게 하는 거 아니에요?”
“심장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심장이 정지해서 기능하지 않는 겁니다. 심폐소생 실패하면 아버지는 돌아가셔요. 알겠습니까?”
좌자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돌아가신다고요?”
“네.”
“돌아, 가신다고요?”
“지금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러나 심폐소생은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특히 지금, 벌써 한 시간 넘게 하고 있으니까요.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좌자전은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흔들고는 팀으로 돌아가서 흉부 압박할 준비를 했다.
아들은 거의 기절할 것 같은 모습이 되었고, 뭐라고 중얼중얼 댔지만 아무도 그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친척들은 어쩐지 두려워져서 다가가 그의 어깨를 살짝 쳤다.
“멍하니 있지 말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전화해.”
“싫어요.”
청년은 갑자기 정신 차린 듯 목소리까지 아무 일 없다는 듯 또렷해졌다.
“지금 안 걸면······.”
“늦게 알면 알수록 할아버지 할머니는 편하잖아요.”
청년은 제 할 말을 하고는 계속 앞쪽을 주시했다.
흉부 압박 중이던 능연이 갑자기 멈추더니 전기 충격기를 쓰라고 고함쳤다.
“에피네프린! 아 잠시만! 전극 다시 붙여요.”
능연은 스트레처 카에서 뛰어내린 다음 양손을 가볍게 주물렀다.
냉큼 달려간 간호사가 흉부 압박하는 과정에 전극 위치를 바꿨다.
띠띠.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리더니 균일하게 오르고 내리는 심전도 파형이 나타났다.
둘러싸여 지켜보던 의료진은 모니터에서 정상적인, 그러나 그 순간엔 그보다 더 이상하게 들릴 수 없는 알람이 들리는 순간 모두 기운이 돌아온 듯했다.
그건 의사들의 다년간 형성된 조건 반사였고, 보호자들은 당연히 그보다 반응이 조금 느렸다.
대다수 환자 가족은 의사가 환자 응급처치하는 걸 처음 보기 마련이고, 심폐소생 하는 것, 모니터 기기조차 처음 보는 사람이 있을 테니 어떤 소리가 정상이고 어떤 소리가 비정상인지 알 턱이 없었다.
간호사 하나가 사이너스 리듬(sinus rhythm: 동박동, 정상 심장 박동)이라고 외쳤을 때도 환자 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만 가득했다.
“사이······ 뭐?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사자 들어가면 안 좋은 거 아니야? 사 뭐랬지?”
“저 봐 다들 얼굴이 시퍼런데?”
“쉿!”
친척들은 목을 빼고 수군대면서 자기들끼리 추측했고, 아들만 눈을 크게 뜨고 있었는데 초점은 없었다.
“수술실로 보내요. 이산화탄소량 주의하고, 뇌 저온 유지도 유의하시고요.”
능연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지시를 내린 후 장갑을 벗었다.
미친 듯이 흉부 압박한 결과 온몸에 땀이 흥건하고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능연은 주머니에서 알콜겔을 꺼내 천천히 손을 닦으면서 오더 내렸다. 그는 그저 큰 틀로 오더를 내렸고 구체적으로 약물 용량까지는 지시하지 않았다. 여원이 약물 용량을 직접 조절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약물 반응은 다르니, 표준 약물 용량을 내리는 건 적당하지 않았다.
적당한 용량이란 환자 반응을 계속 관찰해서 끊임없이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여원은 수술 조작능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지식이론은 매우 강했다. 물론, 능연이 약 처방 방향을 모두 설명하긴 했지만.
어쨌든 구체적으로 약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레지던트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원은 우선 재빨리 대답부터 하고 고민하면서 오더 내렸다. 곁에서 듣던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폐소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심장이 스스로 뛰는 것이고, 환자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동안은 단시간에 약을 많이 쓴다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긴 시간을 거쳐 신중하게 약을 써야 하고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운이었다.
적어도 현재까지, 심원성 급사는 인간의 죽음 중 큰 요인이다. 100% 살리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10% 확률만 있어도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환자 가족들은 한참 바라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산 거야?”
“정말로 살아난 거야?”
“내가 그랬잖아, 병원 오면 문제없다고.”
아들은 멍하니 있다가 ‘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까딱하면 병상까지 덮칠 것 같은 모습에 연문빈이 휙 잡아챘다.
“뭐 하는 겁니까? 환자를 건들기만 해도 돌아가실 수 있어요!”
아들은 그 말에 더 심하게 버둥거렸다. 좌자전이 헛기침하며 나타났다.
“연 선생,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러고는 환자 아들의 어깨를 잡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손가락 하나만 건드려도 아버지는 돌아가십니다. 알겠어요?”
환자 아들은 깜짝 놀라 부르르 떨더니 더는 버둥거리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큰일에 닥치면 이성을 잃게 돼. 연 선생 같은 큰 병원 의사들은 그래도 그런 걸 많이 못 보겠지만, 나처럼 마을 위생병원에 있으면 별별 사람을 다 본다고. 환자보다 먼저 정신을 놓는 보호자도 있고,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 줄담배만 뻑뻑 피우는 남자도 있고.”
“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좌자전이 경험 많은 말투로 하는 말에 환자 아들은 심호흡한 다음 환자가 실려 간 방향을 까치발을 하고 바라봤다.
“아직 아버지 얼굴도 못 봤다고요. 적어도 무슨 일인지 얼굴은 봐야 할 거 아니에요.”
“심근경색이고, 아직도 위급상태입니다. 지금은 못 봅니다.”
좌자전은 봐도 모른다는 말은 삼켰다.
“그렇지만······. 그래서 지금, 지금은 어떤 상태죠?”
그때 능연이 환자 아들에게 다가갔다.
“환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수술해서 혈관을 뚫어 줄 거예요. 그리고 환자가 깨어나면 회복 치료를 진행할 겁니다.”
“못 깨어나면요?”
“식물인간이 될 위험이 있죠. 뇌사 말입니다.”
좌자전이 다시 이어서 설명했다.
“전에 말했듯이 환자분 심장이 안 뛰어서 심폐소생을 한 겁니다. 의사들이 다 달라붙어서 드디어 아버지를 구했지만, 후유증이 있을지 없을지,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 지금은 모릅니다. 알겠어요?”
환자 아들이 또 한 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이라도 전문적인 이야기만 하면 그 녀석이 정신을 놓는다는 걸 좌자전은 그때 알아차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찌 됐든, 좋은 결과를 위해서 노력 중이니 가족들도 협조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네.”
“가족분들도 숨 좀 돌리시고요. 물어볼 게 있으면 수술 끝난 다음 이야기하시죠.”
“네!”
그제야 알아들은 것 같은 환자 아들의 모습에 좌자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심폐소생을 한 시간 넘게 하고 살아난 사람은 한 병원에서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입니다. 아버지 운이 나쁘지 않은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서서히 이성적으로 돌아온 환자 아들의 모습에 좌자전은 그제야 살며시 웃어 보이며 가족들에게 돌아가라고 눈짓했다.
위가우는 곁에서 말없이 듣고 있었다.
일반 심폐소생은 그도 엄청나게 많이 했고, 환자가 깨어난 비율도 높았다. 그러나 유독 장시간 심폐소생은 그의 성공 비율도 평균보다 조금 높을 뿐이었다. 그래서 장시간 심폐소생 다음 절차를 잘 알지 못했다.
“이런 곳에 인재가 있었구만.”
위가우 뒤에 나타난 적 원사가 혀를 내두르며 칭찬했다. 그는 수많은 장시간 심폐소생을 봐 왔고, 직접 한 것도 꽤 많았다. 그러니 능연의 심폐소생을 전부 지켜보면서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우리 병원이었다면 성공했을 겁니다.”
위가우가 해명하듯이 하는 말에 적 원사가 싱긋 웃어 보였다.
“지난 일이니 털어버리게. 지금 자네한테 가장 필요한 건 사실 서무라네.”
“예?”
“비서 말일세. 의학도 좀 알아야 할 테고.”
적 원사의 시선이 좌자전에게 향했다.
“저한테 비서가 무슨 소용 있다고요.”
“적어도 남한테 맞는 건 막아주겠지.”
적 원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좌자전에게 다가갔다.
“아까 들어보니, 마을 위생병원에서 일했다고?”
“예.”
좌자전은 심장이 덜컹해서 적 원사를 바라봤다. 일개 레지던트가 대 원사 앞에 있자니 지은 죄도 없이 괜히 떨렸다.
적 원사는 최대한 살갑게 굴었다.
“운화병원 의사인가? 마을 위생병원에서 운화병원으로 오다니. 거참 대단하군.”
“저는······ 특별 전형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들어왔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하기 쉽지 않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그럼, 뭐가 제일 힘든가?”
좌자전은 위풍당당한 원사가 그런 자질구레한 걸 묻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일 힘든 건, 아무래도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겁니다.”
잠시 생각하던 적 원사는 자기 병원도 근무 시간은 길다는 생각에 다음 질문을 던졌다.
“또?”
“휴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휴일이 뭐더라?’
적 원사는 먼저 그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다음 짐짓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또?”
“월급이 낮다는 것.”
이제 좌자전도 편해졌다.
“운화에 집도 구해놔서, 조금 빡빡합니다.”
상해는 집값이 더 비싸고, 월급이라고 운화병원보다 더 높지 않다는 생각에 적 원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적 원사는 내심 요즘은 말단 의사 하나 스카우트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가 싶었다.
‘레지던트들의 고전적인 불만인 기술을 못 배운다, 앞날이 캄캄하다, 나설 기회가 없다, 이런 건 없나? 이렇게 늙은 레지던트라면 불만이 더 다양하고 많아야 할 거 아니냔 말이야.’
“임상 기술 쪽 말일세.”
적 원사가 새로 방향을 제시하자 좌자전이 고개를 흔들었다.
“임상 쪽은 힘든 게 없습니다. 마을 위생병원보다 훨씬 낫지요.”
“기술도 잘 배우고?”
“잘 배우고요.”
적 원사의 말문이 막혔다. 이건 아닌데?
다행히 좌자전은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능력이 아직 죽지 않았고, 적 원사가 말문이 막혔음을 알게 되자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말을 이었다.
“적응 안 되는 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좌 선생이라고 부르는 거? 전엔 ‘어이’ ‘거기’ 이렇게 불렀거든요. 뭐 익숙해지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좌 선생, 좌 선생 이러니까······. 전에 상사는 화낼 준비할 때나 ‘좌 선생’ 하고 부르면서 무게 잡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