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적 원사는 형식적 미팅에 참석했다가 다시 의국으로 돌아갔고, 위가우는 의국 책상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모니터로 간행물을 읽고 있었다.
햇살 아래 있으니 위가우의 얼굴도 그렇게 우울해 보이지 않았고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처럼 진지하고 단정해 보였다.
사실, 적 원사가 위가우를 제자로 삼은 것도 위가우의 외형 특성을 고려해서였다.
정이 없어서 교류하기에 좋은 상대는 아니었지만, 카메라를 잘 받는 유형이었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든, 사진을 찍어 SNS에 돌리든 제법 핏이 좋았다.
의사가 핏이 좋든 말든 사실 중요하지 않다. 적 원사 본인도 생김새로 득 본 적 없는 외모였다. 그러나 적 원사는 잘생긴 의사가 능력까지 있으면 훨씬 유리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스타 의사 혹은 의사 스타는 20년 전부터 새삼스러울 필요가 없지만, 요즘은 점점 치열해지는 추세였다.
적 원사 본인이 스타 의사가 될 수 없으니 제자라도 그렇게 되길 바랐고 위가우의 지금 모습도 지극히 흡족해했다.
“뭘 보고 있나?”
적 원사가 다정한 말투로 다가가서 묻자 위가우가 흠칫 놀라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을 삐끗했다.
“회의 끝나셨습니까?”
“그냥 얼굴이나 보는 건데 끝나고 말고 할 거 없지.”
적 원사는 대답하면서 허리를 숙여 위가위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수술 시야 미확보 시 맨손 압박 지혈 간 봉합이라······.”
적 원사는 눈으로 훑으면서 제목을 소리 내서 읽었고, 들킨 위가우는 아예 자리를 비켜주었다.
“능연이 쓴 논문인가?”
“잘 썼더라고요.”
그렇게 확신하지는 않는 목소리라는 걸 가까운 사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럭저럭이야? 듣자 하니 능연, 본과 졸업생이라고 하더군. 논문을 잘 못 쓰는 것도, 논문이 몇 편 없는 것도 당연하지.”
적 원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에 위가우가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논문입니다.”
“응?”
“맨손 지혈로 간 손상 환자를 처리한 적 있더라고요.”
논문을 몇 번이고 살펴봤는데, 위가우는 기술을 터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능연 역시 사무실에서 눈앞에 쌓아둔 서류를 묵묵히 읽고 있었다.
바로 위가우의 논문이었다.
위가우의 논문은 주로 심장외과와 내시경에 집중되어 있었다. 전자는 능연이 터득한 범위가 아니지만, 후자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분야였다.
능연은 위가우의 논문 행간에서 그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논문 두 편을 읽는 동안, 어제 몇 번 마주친 것보다 더 위가우를 이해하게 됐다고 할 수 있었다.
논문 한 편을 더 읽은 다음, 능연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 찍어 좌자전에게 보냈다.
그리고 본인은 노트북을 펼쳐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여 선생, 잠시 시간 돼?”
좌자전이 문을 두드리고 다정하게 여원에게 인사하자, 뷰라이트 앞에서 사진을 보던 여원이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려 좌자전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잠시 마주 보다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예요. ‘잠시 시간 돼?’냐니.”
여원은 구멍 난 장갑처럼 깔깔 웃었고 좌자전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사용했던 거즈처럼 웃었다.
“아니 능 선생이 물어보래서.”
“말씀하시지!”
여원은 바로 웃음을 멈추고 좌자전의 등 뒤를 바라보다가 능연이 보이지 않자 한숨 돌렸다.
“다음엔 그냥 용건 얘기하세요. 시간 되냐 마냐 묻지 말고.”
“알았어, 알았어. 다 습관 되어서 그렇지 뭐. 아무튼, 이거 좀 봐봐.”
좌자전은 능연이 보낸 사진을 여원에게 보냈다.
“이걸 왜 보냈대요?”
여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위가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두려는 거 아닐까?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잖아. 위가우가 한 수술들 좀 봐봐, 그리고 발표한 논문도. 우리 능 선생이랑 겹칠 거 같지 않아?”
“위가우는 심장외과 수술 쪽인데요?”
힐끔 보고 대답하던 여원이 금세 멈칫했다.
“제 말은 심장외과가 더 잘났다는 게 아니라, 방향이 다르다는 거예요. 위가우가 내시경 관련 논문 몇 개 썼다고 겹친다고 보긴 어려운 거 아니에요?”
“나도 그런 뜻은 아니지.”
여원이 고개를 들어 좌자전을 바라봤다.
“심장외과 수술이랑 내시경 수술은 사실, 관계가 꽤 밀접하잖아. 능 선생은 지금 슬관절경을 시작했고, 앞으로 복강경, 흉강경 하게 될 거 아냐. 다른 건 둘째치고, 나중에 내시경 정상 회의 같은 거 할 때, 능 선생이 위가우 뒤에 서야겠냐고.”
좌자전은 실력 없는 의사의 수준으로 열심히 분석했다. 어떨 때 실력 없는 의사의 사고방식은 능력 있는 의사 마음을 묘하게 잘 읽는다.
여원 생각으로는 슬관절경과 흉강경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해부 구조도 달라서, ‘경’자 하나 붙었다고 억지로 같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슬관절경을 배우고 흉강경을 하면 분명 좀 더 능숙하게 조작할 것이고, 시간도 그만큼 절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원은 만약 자신이라면 10년 안엔 흉강경을 건드리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다. 완전히 다른 영역 아닌가. 정형외과 의사가 갑자기 늑골 아래쪽을 건들기 시작하면, 흉부외과는 집에 가서 손가락이나 빨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본인이라면 다른 사람 뒤에 서는 것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다. 물론, 어떤 회의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국제급 회의거나 혹은 조금 낮춰서 국내라고 해도 진짜로 정상급 회의라면 무대에 올라가는 것만 해도 좋아 죽을 텐데 누구 뒤에 서든 말든 무슨 상관일까.
하지만 여원은 좌자전의 말을 듣고는 능연의 각도에서 생각해 봤고, 갑자기 좌자전의 생각이 영 엉뚱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여겼다.
“그럼 제가 한 번 분석해볼게요.”
여원이 자세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위가우가 우리 병원에 온 이상 우리 병원 환자를 뺏어 갈 텐데, 대체 위가우라는 놈이 뭐 어떤 대단한 걸 해냈는지 한 번 살펴보자고요.”
“우리 병원에 안 와도 환자는 뺏어가겠지. 위가우 같은 젊은 의사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너는 모르겠지만, 그런 수준 의사는 엄청 욕심이 많아. 다 가져가겠다고 하면 어쩔래? 몽땅 혼자 하겠다고 말이야.”
“설마요. 그렇게 욕심낼까요.”
“아닐 거 같아? 뒤에 원사가 있다고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걸?”
여원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술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25시간 병원에 있겠다고 해도 치프 레지던트 자리를 얻을 수 없던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축 원사님도 원사잖아요.”
여원의 뇌리에 갑자기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이 스쳤다.
“집주인이 집까지 나눠주길 바라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이 정상이냐?”
좌자전이 씨익 웃으며 하는 말에 여원은 넋이 나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좌자전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능연은 운화병원 의사인데, 능연이 그쪽으로 가면 모를까, 운화병원에서 환자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제공하겠냐는 말이다.
더 깊게 생각해 보자면, 능연이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로 가게 되면 수술 범위가 관절경에 국한되고, 위가우가 하는 심장 수술이니 흉강경이니, 이런 것보다 떨어지는 레벨의 수술을 하게 된다.
여원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혼자 웃었다. 좌자전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왜 꼭 위가우하고 비교해야 하지. 존스 홉킨스를 졸업한 대단한 의사는 출발점부터 완전히 달랐다.
“논문 분석해볼게요.”
“그뿐 아니라 능 선생 재촉해서 논문 몇 개 더 쓰게 만들어야 해. 의사는 수술만 많이 해봐야 소용이 없어. 눈에 안 띄잖아. 논문이 중요해. 넌 그걸 잘하니까, 네가 맡고 자질구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할게.”
“윗사람 논문 자료 찾는 건 당연히 할 일이죠. 그런데 위가우 논문 수준이 너무 높은 게 문제네요.”
졸업 논문이 깐깐한 존스 홉킨스를 졸업할 능력이라면 논문을 읽기 전에라도 쉽게 그 능력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논문이야 위가우가 잘 쓰겠지.”
“그런데요?”
“사람은 능 선생이 더 잘 살려. 어제 CPR 환자로 증명됐잖아.”
“논문으로 쓰는 건 다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남은 건 네 능력에 달렸지. 하지만 논문이란 게 내용도 없이 글만 잘 쓴다고 되냐? 그러면 의사가 아니라 행정과 직원이 논문 쓰게? 안 그래? 어차피 논문도 의사가 쓰는 거라면, 역시 실전에 강한 의사가 논문도 잘 쓰겠지?”
“아우! 말씀은 잘하시네요!”
여원은 말로는 그렇게 해도 돌아서서 묵묵히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수술대 앞 여원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여원의 실력이 칠만 몇 배는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