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정이 끝난 후, 위가우는 혼자 어슬렁어슬렁 운화병원 중환자실로 향했다. 여전히 아침부터 있던 주치의가 당직 중이었고, 낮보다 훨씬 고분고분하게 굴어서 고급 호텔 컨시어지처럼 느껴졌다.
“위 선생.”
“능연 환자 차트는 다 어디 있나요?”
위가우의 물음에 달콤하게 웃던 주치의가 멈칫했다.
“아침에 보셨잖아요.”
“다요.”
“그, 그건 제가 다 보여드리기가······.”
위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강요하지는 않고 말을 돌렸다.
“그럼 능연 환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ICU에 있는 환자는 이제 다 ICU 환자입니······.”
주치의는 위가우의 표정을 보고 현명하게 입을 다물었다.
“7번, 12번이 능 선생이 보낸 환자고요. 14, 3번도 그렇습니다.”
“차트 주세요.”
위가우의 말에 주치의가 나지막이 종이 차트냐고 물었다.
“당연히 전자 차트죠!”
위가우는 멍청이 보듯 주치의를 바라봤고, 주치의는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에 내가 똑똑히 들었는데, 적 원사님이 종이 차트 많이 봐야 한다고 했잖냐. 말도 안 듣고 왜 나한테 화내는데?’
주치의는 적 원사가 익명 게시판을 오픈하면 반드시 위가우를 고발하겠다고 다짐했다.
“잠시만요. 찾아서 보내드릴게요.”
위가우는 ICU 밖에서 대략 안을 훑어보고는 번호를 기억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환자분도 장시간 심폐소생 하신 겁니까?”
7번 침대로 간 위가우는 환자가 파이프도 꽂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걸 보고 곧바로 그를 깨웠다. 비몽사몽 잠들었던 호 씨 성을 가진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능연의 첫 심폐소생 환자였다.
“한 시간······ 가까이?”
“그런 거 같습니다.”
태블릿을 보며 묻는 위가우의 말에 환자는 힘겹게 대답하고는 기침을 했다. 위가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상 반응을 보이는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7 더하기 8은 얼마인가요.”
환자는 위가우가 기다리다가 짜증 나서 포기할 때까지 멍하니 있다가 겨우 대답했다.
“선생님은 제 산수 실력이 궁금한 건가요? 아니면 제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가 궁금한 건가요?”
“말씀을 들어보니 머리에 문제는 없군요.”
위가우는 멈칫하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산수를 싫어합니다. 7 더하기 3은 몰라도, 7 더하기 8은 좀 귀찮네요.”
“일단 7을 채워서 10을 만들고, 그 채운 수를 8에서 빼면 쉽습니다.”
위가우의 말에 환자는 또 한참을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바로 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능 선생님이랑 닮았네요. 둘 다 이상해.”
“능 선생이랑 제가 어디가 닮았습니까.”
위가우는 인정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능 선생님보다 좀 떨어지는데, 닮긴 했어요. 능 선생은 차(車) 같아요. 장기판에 차. 전후좌우, 거침없이 가죠.”
환자는 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포(包) 같네요. 보기엔 직설적인 거 같아도 사실은 한층 방어막이 있어요. 조금 이, 이포 같······. 콜록콜록.”
(이포: 멍청이처럼 여기저기 돌진하는 식견 없는 사람. 뭘 잘 모르는 사람, 맹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
멀리서 듣던 ICU 주치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ICU 입원 환자가 이런 식으로 의사를 도발해도 됩니까?
환자가 위가우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본인이 다 소름 돋은 주치의가 허둥지둥 그쪽으로 달려갔다.
“환자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그냥 두세요.”
“예?”
“이야기를 많이 하면 뇌에 좋습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심폐소생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그야 당연하죠, 원래 성공했으니까요.”
“연속으로 장시간 심폐소생을 두 건 성공한 겁니다.”
“그죠. 대단하죠?”
주치의는 조금 뿌듯한 모습이었다.
위가우는 환자가 버티지 못하고 잠들 때까지 한참 대화하면서 병력을 물었다.
ICU 주치의는 어떤 건 알아듣고, 어떤 건 못 알아들으면서 대충 기억해 뒀다가 돌아가서 내용을 정리했다.
아침에 적 원사를 만났을 때만 해도 답답하기만 했는데, ‘충격’을 받은 후 태도가 180도 변했다.
위가우 같은 급의 의사를 만난다는 건 큰 행운이었고, 그런 상대가 한 말은 지금은 못 알아듣더라도 정리해두면 몇 년 뒤엔 자신의 비급(祕笈)이 될지 모른다고 여겼다.
사실상 지방 병원 의사는 능력 있는 유명한 의사의 비급을 많이 의지한다. 그리고 보통 그런 고급 상식은 특정 지방에 발생하는 병이나 유행성 질환을 치료하거나, 각종 학술회의 혹은 대규모 협진에 참석할 때 배(훔)워(쳐)온다.
위가우같이 존스 홉킨스 대학 졸업한 박사는 졸업하는 그날부터 높은 직위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 국내에서든 미국에서든 말이다.
지금 ICU 주치의 같은 레벨은 메이저 국가, 그러니까 의사 수입이 높은 나라였다면 아직 단독으로 의료 행위를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저 환자도 좀 보죠.”
위가우는 아침에 장시간 심폐소생을 받은 환자를 가리켰다. 주치의는 알겠다는 듯 허둥지둥 앞장섰다.
“이쪽으로 가시죠.”
위가우는 다른 환자들도 슬쩍 살펴보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뒤를 따랐다.
“동공 직경 수축했군요.”
위가우는 환자의 눈을 라이트로 비춰보고는 모니터에 비친 심전도도 살폈다. 정상인에 비교할 수 없지만, 위중 환자에 비하면 정상인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니톨(mannitol) 썼나요?”
“네. 이뇨제와 칼륨 마그네슘 합제도요. 주임님 지시로요.”
주치의는 위가우의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음.”
위가우는 태블릿을 조작해서 내용을 적어 넣었다. 주치의는 켕기는 마음으로 뒤를 따랐다. 주치의 정도 되면 보통 차트를 잘 살피지 않았다.
주치의들이 쓰는 차트는 성적이 보통인 학생의 방학 숙제 같아서, 얼핏 보기엔 내용이 꽉 찬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실수가 있다.
위가우처럼 외부에서 온 능력자가 차트의 문제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지 없을지······. 주치의 생각엔 당연히 알아차리리라 여겼다.
“능연 다른 환자도 좀 보죠.”
위가우가 다른 질문을 하지 않자 주치의는 한시름 놓았다.
“육 선생님.”
ICU 문이 열리고 여원이 목소리를 높이며 걸어들어왔다.
“어, 여 선생. 이쪽.”
주치의가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위가우 곁에 서 있는 게 영 뜨끔했다. 그쪽으로 다가간 여원은 의심스러운 듯 위가우를 바라봤다.
“왜 또 우리 환자 살피시는 거죠?”
“좀 자세히 살펴보려고요.”
“우리 환자를 선생님이 왜요.”
여원이 입을 내밀며 묻는 말에 위가우는 해명할 생각 없다는 듯 그저 웃어넘겼다. 그러자 여원은 어쩔 도리 없어져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주치의만 환자에 관한 임상 연구를 할 수 있다는 법은 없다. 사실상 공공 위생, 전염병, 유행성 질환, 지방성 질환에 관한 연구는 주치의가 누군지는 상관없다. 외과 임상은 조금 더 까다롭지만, 그렇다고 꼭 지켜야만 하는 대단한 규칙이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위가우가 관련 연구를 한다면, 능연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되지, 해가 될 일은 없었다.
위가우와 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는 여원은 위가우의 곁에 달라붙어 환자를 살폈다. 여원은 ICU 가련한 주치의처럼 혹시 누구에게 밉보일까, 찍힐까 걱정하지 않았다. 곽종군 님만 봐도 항상 남에게 불벼락을 뿜어도 바닥으로 밀려나지 않았을 뿐더러 응급센터로 승격하는 쾌거를 이뤄냈으니까.
“아미오다론(Amiodarone: 항부정맥제) 아직 투여해요? 용량 적당한가요?”
여원이 날카롭게 물었다.
ICU는 단독 진료과라서 응급의학과에서 간섭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대빵이 가서 흔들수록 ICU 높은 의사들은 예민하게 굴었다. 그러나 레지던트나 여원 같은 치프 레지던트는 ICU 쪽에서도 모르는 척했다.
병원에 협진할 일이 있으면 대부분 레지던트와 함께 진행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바쁜 부주임급 의사들이 출동하면 오히려 더 어색하고, 레지던트가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면서 나타나는 게 자연스러웠다.
“응, 펌프로 투여했지.”
“됐네요, 그럼. 응? 혹시 인삼 썼어요?”
“뭐?”
여원이 눈을 찡그리며 묻는 말에 주치의도 얼굴을 찡그렸다. 여원이 코를 킁킁거리며 말을 이었다.
“냄새가 좋네. 단순한 인삼은 아닌 것 같고······. 요즘 한의학하고 콜라보해요?”
“무슨 소리야.”
주치의가 황당한 듯 아니라고 했다. 약 처방이 장난도 아니고.
여원은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음, 되게 좋은 인삼 냄샌데. 닭 한 마리 있으면 삼계탕 하면 딱이겠어.’
여원은 냄새를 따라 좌측으로 킁킁대며 걸어갔다.
“뭐 하는 겁니까?”
위가우는 변태라도 본 듯 여원을 바라봤고, 여원은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그의 눈빛 공격에 뜨끔한 듯 입을 열었다.
“이상한 냄새를 맡아서요. 인삼 쓰세요?”
위가우는 여전히 변태를 보는 눈빛으로 여원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여원이 어딘가 어색해져 살짝 숨을 들이쉬면서 코를 킁킁댔다.
“향수 좀 뿌렸습니다.”
“헐······.”
위가우가 못 견디겠다는 듯 입술을 잘근대며 대답했다.
“향수요?”
“코롱 같은 겁니다. 땀 흡수되는. 냄새도 잘 안 나요.”
주치의가 귀를 의심하는 듯 되묻는 말에 위가우가 변함없이 변태를 보는 눈빛으로 여원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이걸 맡아 낸 건 처음입니다.”
여원은 그런 위가우의 눈빛을 견디지 못했다.
‘인삼 냄새 풍기면서 누굴 변태 보듯이 보는 거야. 아니, 변태가 누군데.’
“향수 이름이 인삼 베이비는 아니겠죠?”
“에르메스 오 드 젠시앙 블랑쉬입니다.”
위가우는 욱했지만 화를 누르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원은 위가우의 길쭉한 팔, 길쭉한 다리 그리고 길쭉한 손가락을 보며 가슴이, 하나도 안 뛰었다.
“육 선생님, 나머지는 제 메일로 보내주세요.”
여원은 휙 몸을 돌려 위가우를 지나치면서 저도 모르게 킁킁대며 인삼 냄새를 더 맡았다.
‘차라리 이따 삼계탕을 먹고 말지.’
여원의 머릿속에 인삼 베이비를 품은 암탉이 뽀글뽀글 끓는 장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