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선생, 위가우가 장시간 CPR에 관한 논문을 쓰려는 거 같아.”
능연을 찾아낸 여원은 그가 책상 앞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인삼 부분을 건너뛰고 본론부터 전했다.
키보드 위에서 춤추던 능연의 하얗고 긴, 관절이 명확한, 티 없는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췄다.
“일부러 이야기해주는 이유가?”
“우리 케이스 참고해서 논문을 쓸 게 뻔하니까!”
능연은 짐작 간다는 듯 여원을 바라보며 물었고, 여원은 역시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음, 장시간 CPR 케이스가 드무니까, 우리 케이스를 참고할 가능성이 크긴 하죠.”
“그래도 된다고? 아무렇지 않냔 말이야.”
“당연히 안 되죠.”
능연은 멍청이 보듯 여원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바로 행정과 가서 위가우 출입 등록 취소하라고 해주세요. ICU도 출입 금지하고요. 저도 곽 주임님한테 전화할게요. 그리고, 저 논문 다 써가요.”
능연은 읽어도 된다는 듯 모니터를 밀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원은 한시름 놓았지만, 능연의 표정은 다소 불만이었다. 그의 멍청이 보는 눈빛과 인삼 베이비의 변태 보는 눈빛은 아무래도 화가 났다.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며, 여원은 의자 높이를 조절하고 모니터를 낮춘 다음 집중해서 능연의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응? 관절경 논문 쓰는 줄 알았더니?”
<맨손 심폐소생 연속 성공 케이스 분석>이라는 제목을 보고 여원은 기뻐했다.
“관절경 논문도 썼습니다. 그런데 이걸 수정해서 먼저 발표하려고요.”
“내 말이. 우리 환자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던 여원은 내용을 보기 시작하면서 말을 멈췄다.
수술 능력치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논문 능력치는 7만 분의 70만 프로 자신 있었다.
그런 여원의 눈에 능연의 논문은 일단 조잡하다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학생이 쓴 논문이 대부분 그랬고, 레지던트 혹은 일반 주치의가 쓴 논문도 거기서 거기였다. 심지어 부주임이나 주임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더 똑똑해질 리 없고 문장력은 오히려 더 조잡해진다.
간단히 말해서, 논문을 직업으로 삼고 훈련해서 10년 20년 쓰지 않는 이상, 논문 문장 수준은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다.
3년 석사, 4, 5, 6, 7, 8년 박사 생활을 마친 후 졸업한 의사가 논문을 가장 잘 쓰고, 또 한 종류, 여원처럼 재능 있는 의사도 있다.
나머지는, 능연을 포함해서, 논문 쓸 때 내용을 잘 설명하기만 해도 괜찮은 편이다.
다행히 논문은 그저 내용을 알아볼 수 있으면 되지, 문장력이 필요 없었다. 사이언스 같은 짜증 나는 간행물이나 깊이를 요구하고, 기술을 설명하는 데 문장력까지 바란다.
그러나 문장력까지 좋은 논문이 확실히 더 잘 통과되는 건 사실이다.
여원은 논문을 읽어가면서, 처음에 느꼈던 조잡함을 넘어서 문장 안에 가득한 내용을 발견했다.
장시간 CPR의 요점, 약 사용 이유, 피드백 등등.
이제 막 시작된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원은 능연의 논문이 큰 관심을 얻으리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응급의학에서만 봐도 심폐소생은 커다란 숙제였다.
“그러니까, 너는 진작 준비하고 있었다는 거네? 이런 논문 쓸 준비 말이야. 그럼 빨리 발표하자.”
“음. 일단 수정 좀 하고 참고 자료 보충해야 해요.”
여원은 조금 마음을 놓았지만, 능연은 크게 마음 놓은 것 같지 않았다.
여원도 그 점은 동의했다. 임상 의학 논문은 대부분 주치의 본인이 발표하는 이유가 제1인자의 데이터라는 특별성이 있고, 어떤 건 수치나 문자 형식으로 차트에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간행물은 직접 컨트롤하지 않은 사람의 데이터는 의심한다. 아무나 아무렇게 쓴다고 해서 믿어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참고 자료 찾아 줄게.”
여원이 먼저 나서서 제안했다. 논문에 쓰이는 자료는 출처를 대조해야 하고 일일이 표기해야 한다. 게다가 자료는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자료가 제일 문제였다.
“그럼 이 정도만 쓸까요?”
능연의 요점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 말에 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읽었다.
“내용 충분한 거 같은데? 쓸 건 다 쓴 거 같아.”
“다 쓰지는 못하죠. 음, 그럼 일단 여기까지 쓰죠.”
능연은 지금까지 심폐소생을 몇 건 안 하긴 했어도 다 썼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논문 하나에 다 쓸 필요도 확실히 없었다. 능연의 생각을 이해한 여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논문을 자신의 메일로 보내고는 돌아가 자료 검색, 대조하기 시작했다.
쉬운 작업이 아니어서, 여원은 온종일 정신없이 매달렸고 몇 시간이나 걸려서야 겨우 논문에 쓰인 참고 자료를 표기하고는 능연에게 다시 보냈다.
다음 날, 여원은 회진을 마치고 자신이 고친 논문이 어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능연을 찾아갔다.
“능 선생.”
“잘하셨더라고요.”
능연을 보자마자 달려가 앞에 선 여원의 모습에, 능연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서야 그를 발견했다. 여원의 기대하는 표정을 본 능연은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했다.
여원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능연의 말에 여원이 덜컥했다.
“실수 있어?”
여원은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지난밤을 회상했다. 너무 늦게까지 해서 그런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실수는 없습니다. 메일 하나를 더 보내셨더라고요.”“메일?”
깜짝 놀랐던 여원이 바로 긴장이 풀린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맞아. 그때 에르메스 향수병 보고 있었어. 사진 너한테 잘못 보냈어?”
“주문서 같던데요.”
“아, 그거 가짜야. 진짜는 살 능력 안 돼.”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 없는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넘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