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위가우도 논문을 거의 완성해 갔다.
그의 논문은 간단했고 내용은 제목인 <맨손 심폐소생 관찰 리포트> 그대로, 자신이 본 장시간 심폐소생 상황을 쓴 것이었다.
직접 한 수술이나 관련 연구가 아니라서, 이런 논문은 각종 회의 또는 강연회에서 사용하기 좋았다.
자주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위가우는 식은 죽 먹기로 그런 논문을 써냈다.
점심때, 본인의 태블릿을 꺼내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던 위가우는 접속이 안 되자 잠시 멈칫하다가 곧 웃음 지었다.
‘이런다고 소용 있겠냐?’
위가우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특히 오 드 젠시앙 블랑쉬를 뿌렸을 때, 위가우는 자기가 바로 인간의 마지막 숨을 지키게 해준다는 인삼이 된 것만 같았다. 환자의 숨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의사의 숨도 유지하는 말이다.
위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향수를 한 번 더 뿌리고, 거의 다 써가는 논문을 프린트해서 능연의 사무실로 향했다.
“능 선생, 내 ID 막았어요?”
따지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가우의 얼굴엔 미소가 넘쳤고, 자신감과 비웃는 느낌도 있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위가우를 바라봤다.
“네.”
해명도, 설명도, 진지함도 엄숙함도 없고, 대리비를 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당신이 한 심폐소생에 관해 논문을 쓴다는 걸 알았다는 거네요?”
위가위가 미소 지으며 묻는 말에 능연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논문 쓰고 수정은 능 선생한테 맡길 생각이었는데······.”
위가우는 코를 긁적이며 손목에 인삼 냄새를 맡고는 흡족한 듯 웃었다.
“논문 읽어 보면 안심할 거예요. 능 선생한테 득이지 해는 안 갈 겁니다.”
위가우의 태도가 약간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로서는 정말로 능연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위가우는 아예 논문을 능연에게 건넸다.
“읽어봐요. 난 그냥 능 선생 대신 홍보해준 거니까.”
논문을 건네받은 능연은 거리낌 없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맨손 장시간 심폐소생 관찰 리포트>는 시작부터 운화병원 응급센터 의사 능연이라고 쓰여 있었고, 이어지는 내용도 찬양 일색이었다.
그러나······.
“제 의견을 물으시는 거라면,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능연은 논문을 테이블 위에 돌려놓았다.
“명성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요. 생각해 봐요. 국제급 회의 하나 골라서 내가 이 논문을 읽는 겁니다. 사람들이 주목할 때 능 선생을 소개하고 능 선생이 나오면 분명 난리가 날 겁니다.”
위가우는 환호하듯 양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상해에서 유명한 의학계 신성 위가우는 귀국 후 그런 자리가 넘쳤다. 그가 존스 홉킨스 대학 의학 박사라서 그렇고, 지도 교수 적 원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위가우가 그런 자리를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능연은 의아한 듯 위가우를 바라봤다. 명성과 환호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심폐소생 자체가 명성과 환호 때문이라면 능연은 그런 논문에 더욱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위가우는 능연 표정의 의미를 깨닫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주 거울에서 그와 비슷한 표정을 본다.
노 관심.
위가우는 많은 일에 관심이 없다. 그는 대부분 사람, 일에 관심 없다는 표정을 자주 짓는다. 그런데 자신에게 관심 없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능 선생도 논문 쓰려고 했다고 해도 상관없잖습니까. 둘은 별개라고요. 게다가 나는 이 논문이 참신한 관점을 제공하리라 믿습니다.”
“아닐걸요.”
여원이 공기 중에 인삼 냄새가 싫은 듯 코에 주름을 만든 채 들어왔다. 위가우는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다른 각도로 같은 일을 보는 거죠.”
“능 선생 논문은 이미 완성됐습니다.”
“응? 완성했다고요?”
“완성했습니다.”
완성이라는 단어에 위가우가 눈을 치켜뜨자, 여원이 확인하듯 다시 못 박았다. 위가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일단 내 논문 읽어봐요, 그러고 나서······ 결정합시다.”
한마디 남기고 위가우가 사무실에서 나갔다.
백두산 깊은 숲속에서 파낸 천년 인삼이 온몸에 인삼 냄새를 풍기면서 즐겁게, 집착하며,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게 걷는 것 같다······고 생각한 여원은 위가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게 위가우 논문이야?”
여원이 테이블 위에 프린트 문서를 보고 묻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썼어?”
“제법요.”
“우리 거보다?”
능연이 싱긋 웃었다.
그랜드마스터급 심폐소생 스킬을 가진 의사가 보기에, 인삼 베이비의 자신감이 논문 수준을 올려 줄 것 같지 않았다.
여원은 위가우의 논문을 집어 들어 신중하게 읽기 시작했다. 위가우가 국내 의학계에서 갖고 있는 명성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논문 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여원은 누군가는 삼류 케이스도 이류로 만들 능력이 있다는 걸 잘 안다.
자신만만하던 위가우를 생각하면 더욱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전 처치실에 갑니다.”
차트를 한 번 훑은 능연은 바로 아래층으로 향했다.
“나도 갈래.”
여원은 논문을 들고 능연의 뒤를 따랐다. 걸어가면서 논문을 읽었는데, 다행히 덩치가 작고 능연이 앞장서서 걸어서 어디에도 부딪히지는 않았다.
“잘 쓰긴 했다.”
“네, 얼마 없는 정보로 쓴 거 치고, 잘 썼죠.”
여원이 뒤따르며 하는 말에 능연이 동의했다.
“그러니까, 쩌네. 아깝다. 쩔긴 쩌는데, 직접 참여한 게 아니라 우리 CPR이 어떤 건지는 몰라.”
“환자마다 CPR도 달라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잠시 멈췄다가 계속 읽던 여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관점이 정확한 곳도 많아. 여기 말이야. 호흡기계로 일찍 기도 개방하면서 산소 공급량을 늘린다. 아깝네, 우리 논문에도 다 있는 내용이거든.”
거기까지 말한 여원은 잠시 망설이면서 말을 이었다.
“나중에 우리 논문 보고 나서 오해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자기 논문 보고 썼다고.”
“논문엔 실제 조작한 내용이 드러나기 마련이잖아요.”
능연이 뒤를 돌아 여원을 바라봤고, 고개를 숙이고 논문을 보던 여원은 하마터면 능연과 부딪힐 뻔했다. 능연이 바로 손을 뻗어 잡아주자 여원이 놀란 듯 고개를 들고 씨익 웃었다.
“맞는 말이네. 위가우 논문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논문만큼 상세하진 않을 테니까.”
“아무튼, 그런 건 신경 쓰지 말아요.”
능연이 손을 휘휘 흔들면서 시선을 처치실로 돌려서 무슨 새로운 재미있는 환자가 없는지 살폈다.
위가우의 논문을 다 읽은 여원은 위가우 님의 자신감의 근거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확실히 상당히 괜찮은 논문이었다.
그러나 능연의 논문을 봤다면, 그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으리라.
“그럼 우린 뭐라고 위가우한테 대답하지?”
“우리 논문 내보내면 알아서 보겠죠.”
능연은 한마디 남기고는 다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펑펑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거의 모든 진료과 항목을 알아야 해서 업무도 복잡하고, 상대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상황 설명도 잘못하는 아이라 증상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소아과 일을, 대다수 의사는 싫어한다.
게다가 소아과 보호자는 요즘 점점 아는 것도 많아지고 빠삭해져서 까다롭기까지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소아과는 수입도 적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업무량은 많고 말이다. 약 처방도 적고 수술도 별로 없는 소아과 세계에서 대부분 병원의 소아과 의사의 수입은 내과의의 절반 이하였다. 제약법이 바뀐 요즘 병원에서 소아과는 외과 절반밖에 안 된다.
그러나 능연에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할 수만 있다면, 말을 못 하는 환자가 더 좋다. 환자가 친해지려고 하지도 않고, 쪽지도 건네지 않을 것이고, 전화번호를 남기거나 하지도 않을 테니. 수입 적은 건 능연에게 문제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 누군가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금수저, 나아가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법이다.
“무슨 증상이야?”
능연이 실습생 뒤에 서서 내다보며 묻자, 아이에게 드레싱 해주던 실습생이 뒤를 돌아보다가 능연인 걸 알고 깜짝 놀라며 긴장했다.
실습생은 병원의 반려동물 같은 존재로 귀여운 실습생도 있고, 착한 실습생도 있고, 멍청하고 미움받는 실습생도 있다. 하지만 모든 실습생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매우 민감하게 서열을 구분한다는 점이었다.
지금 응급센터에 능연의 환자가 반 이상이고, 능연이 상대하기 쉬운 성격도 아니라서 새로 온 실습생은 능연을 마주치면 다들 어딘가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말 잘 통하는 두 주임 같은 나이 든 주임보다 훨씬 능연을 무서워했다.
“세 살인데 놀다가 다리 까졌어······ㅂ미다. 큰 상처가 아니라서 소독하고 드레싱 하려고······.”
실습생은 손을 살짝 떨다가 겨우 입을 뗐다.
“아, 피가 많이 흐르던데.”
능연이 장갑을 끼면서 아이의 다리를 봤더니 확실히 봉합까진 필요 없는 상처였다. 봉합할 필요 없으면 볼 일 없다고 생각한 능연은 일어나려다가 슬쩍 아이의 다리에 상처를 닦고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상처가 이렇게 작은데 피가 너무 많이 나는데. 피검사 해 봤어?”
“그냥 좀 까져서 난 상처인데 피는 안 뽑아도 되잖습니까?”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온 게 처음도 아닌 아이 아빠는 피 뽑는 게 얼마나 귀찮은지 잘 안다는 말투였다.
“지금은 피가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거의 굳어가는데 여전히 많이 흘리는 게 이상합니다.”
능연은 다소 갈등했다.
“선생님, 아이 없죠? 아이는 다 그래요. 다치면 아프고, 아프면 울고, 상처 막 나을 땐 또 까지고 그래요. 정상적인 겁니다.”
“흠······. 언제 까졌나요?”
“두세 시간 전이던가? 울고불고 난리라서 병원에 데리고 온 거랍니다. 드레싱 해주면 집에 가서 쉬면 돼요. 저도 병원 바쁜 거 알거든요, 시간 잡아먹을 생각 없습니다.”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닙니다.”
아이 아빠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능연은 앉으라는 듯 눈짓하고는 자기도 맞은편에 앉았다. 아이 아빠는 내키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이를 안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잘 있던 아이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아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 울지 마.”
아버지는 허둥지둥하면서 아이를 어르고 달래면서 흔들었다.
“제가 또 어딜 건드렸나 봅니다. 아빠가 미안해. 응응, 울지 마, 착하지.”
“성함이?”
능연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곽종군에게 배운 사회가 기대하는 매너를 떠올리며 공손하게 물었다. 갑자기 의사가 정색하자 아이 아빠가 당황한 듯 입을 뻥끗했다.
“아, 저, 저는 우가입니다.”
“우 선생님, 전에 다치셨을 때, 그러니까 이렇게 작은 상처로 두세 시간이나 아프셨던 적 있나요?”
고개를 끄덕인 능연이 공손하게 묻는 말에 아이 아빠는 멍한 얼굴로 한참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하지만 우리 때는 다들 개구쟁이고, 게다가 어릴 때 시골에 살아서 여기저기 뛰어놀아서요. 요즘 애들처럼 오냐오냐 자란 세대가 아닙니다.”
“통증이라는 기제는 인간에 속한 감정이죠.”
“하아?”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가장의 모습에 능연은 다시 헛기침하며 말을 정리했다.
“제 말은 아무리 오냐오냐 컸다고 두세 시간 동안 울지는 않을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검사 몇 가지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 아빠는 의심스러운 듯 능연을 보다가 고개를 숙여 그의 이름표를 확인하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기, 능 선생님. 제가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아이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피검사도 그래요. 한 번에 뽑으면 모르겠는데 지난번에 뽑을 때 네 번이나 뽑았거든요.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얘가 지금까지도 바늘만 보면 웁니다. 선생님, 혹시 뭐 때문에 그러시는지?”
“그럼 일단 신체 진찰부터 해보겠습니다.”
능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이를 침대에 눕히라고 지시했다. 능연은 외래 진료를 하지 않고, 협진도 많이 참여하지 않아서 진단에 대한 경험이 없는 편이었다.
그러나 진단학에 대한 기초는 튼실했다.
학교에서 진단학 성적은 항상 1등이었고, 전문가급 신체 진찰 스킬도 얻었기 때문에 이 정도 진료는 이론적으로 문제없을 것이었다.
사실 정식 외래 진료가 아니라서 그렇지 능연이 그동안 응급의학과 처치실과 응급처치실을 오가며 내린 진단만 해도 적지 않았다.
정말로 진단을 내려야 한다면 그가 터득한 마스터급 MRI (사지) 판독능력, 전문가급 B 초음파 판독능력, 그랜드마스터급 X-ray 판독능력 등이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상 검사보다 신체 진찰 쪽이 아이 보호자가 받아들이기가 쉬우리라 생각했다.
능연은 침대에 바로 누운 아이를 바라보면서, 일반적인 신체 진찰 순서대로 하지 않고 제일 먼저 주머니 안에서 미리 데워놓은 손바닥으로 아이의 배를 살짝 눌렀다.
“우앙~~.”
아이가 곧바로 거침없이, 조짐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게······. 지금 무슨······.”
아이 아빠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번 만져 보겠습니다.”
능연은 다른 손으로 가필드 얼굴을 가지고 놀 듯이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울음소리가 조금 사그라졌다. 능연은 그 틈을 타 손을 다시 아이의 배에 올리고 눌렀다.
얼굴을 만지는 손에 시선을 빼앗겼던 아이는 이번에 잠시 머뭇거리긴 했어도 변함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많이 아프구나. 조금만 참아라, 금방 끝나요.”
능연은 바로 손을 떼지 않고 계속 몇 군데 눌렀다. 신체 진찰은 겨우 전문가급 수준이었지만, 충분했다. 그리고 ‘복부 해부 경험 100회’로도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가 으앙으앙 울자 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고 발을 구르면서 능연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선생님. 아이가 이렇게 울잖습니까. 지금 뭐 하시는······.”
“다리가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고개를 돌려 대답한 능연이 다시 배를 눌렀다. 그 말에 아이 아빠는 간단한 논리 문제에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듯 눈을 껌뻑였다.
“다리 아파서 우는 게 아니면요?”
“장중첩증일 가능성 있습니다. 초음파 처방 내려드릴 테니 바로 검사받으세요. 늦으면 큰일이 납니다.”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순간 당황해서 말도 두서없이 하던 아이 아빠가 다시 물었다.
“그, 장중첩증이 뭡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의 장이 겹쳤다는 겁니다. 장이 다른 장을 찌르고 있는 거요. 영아기에 자주 볼 수 있는 병이고, 위험한 병입니다.”
아이 아빠가 못 알아들을까 봐 능연은 매우 간단하게 설명했다.
“위, 위험하다고요? 그런데 갑자기요?”
“아이라도 장이 6, 7m나 되는데 복부 공간은 좁죠. 그래서 장이 틀어지기 쉽습니다.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 이런 현상이 잘 일어납니다. 보통 두 살 전에 자주 일어나고 세 살은 확률이 드물거든요. 그러니까, 어서 검사부터 하시는 게······.”
“네, 네.”
아이 아빠는 다급하게 아이를 안고 몇 발짝 떼다가 걸음을 멈춰서 뒤를 돌아보더니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혹시 제가 아이 던지기 놀이하는 거랑 관계있을까요?”
“던지기 놀이가 뭔가요?”
“그러니까, 제가 아이 다리를 잡고 허공에서 던지는 걸 우리 아들이 좋아해서요.”
아이 아빠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아이를 들고 던질 때마다 아이가 꺄르르르륵 웃거든요.”
말을 마친 남자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그거 때문은 아니겠죠?”
능연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버지도 나 어릴 때 그렇게 해주셨는데?’
“가서 여 선생님 불러와. 그리고 소아과에 얘기해서 공기 관장기 준비하라고 하고, 장중첩증이니까 네 시간 정도 걸린다고, 시간 있는 의사 하나만 보내 달라고도.”
장중첩증은 표준적인 응급 질환이고 빠르게 진전되면 24시간 이내에 죽는다. 네 시간 정도 걸린다는 건 아직 초기라는 말이고, 아이가 울고 난리 치지만 아직 충분히 처리할 여유는 있다.
바쁜 소아과는 이런 응급 아닌 응급 질환을 미룰 가능성이 크니 기다리지 말고 응급의학과에서 알아서 하는 게 낫다. 그런 면에서 곽종군과 능연의 사고방식이 같았다. 뻔히 응급의학과에서 처리할 수 있는 증상을 왜 꼭 해당 진료과로 보내야 한단 말인가? 전문 진료과는 바쁘답시고 미루기까지 하고, 어떤 때는 응급으로 들어온 환자의 상태가 가볍다고 상대조차 하지 않아서 응급의학과에서 빌다시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응급의학과에서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이유는 병원 정책 때문이었다.
병원 정책만 통과되고 응급의학과 규모를 조금 늘려 의사를 좀 더 고용해서 가벼운 증상을 독자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중국 병원 응급의학과는 외국 병원과 다르다. 무연고 환자도 책임져야 하는 외국 병원은 응급의학과가 수지가 안 맞아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응급의학과를 없애는 병원도 많다.
서양 드라마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응급실 대기 시간이 긴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중국 병원 응급의학과는 그런 골칫거리가 없다. 먹튀 환자와 보호자도 물론 있고,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에 눌러앉는 환자도 적진 않지만, 어쨌든 병원은 손익을 감당할 만큼 굴러갔다.
그러니 응급의학과로서는 병원 정책 제한만 아니라면 당연히 확장할 수 있는 만큼 확장하고 싶어 한다.
능연은 지금 응급 소아과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관장기를 빌리는 수고도 덜 수 있고.
그러나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실습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B 초음파 결과 안 보고 해도 돼?”
하루 이틀 일하는 것도 아니고, 진료과 협진의 복잡한 사정 정도는 알고 있었다. 특히 타과의 인력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것은 더욱더.
환자가 정말 장중첩증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어떻게든 기기를 내놓아야겠지만, 기기도 다 준비했는데 ‘아이고 실수네요’ 했다가는 쓴웃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고 한소리들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필요 없어. 어서 준비해.”
능연이 단호하게 말하자 실습생도 바로 전화하러 달려갔다.
“능 선생, 일 참 깔끔하게 하네.”
상황 정리하고 전화를 내려놓은 실습생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능 선생님이죠.”
능 선생이란 이름을 들은 너스 스테이션 간호사가 그제야 실습생에게 관심을 조금 주었다. 실습생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런 그의 모습을 힐끔 본 간호사는 바로 실습생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간호사는 실습생이 그동안 만난 환자보다 더 많은 실습생을 봐 왔는데, 실습생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였다.
“능 선생님이 B 초음파 결과 안 기다려도 된다죠?”
“네. 그럼 환자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처리할 수 있겠죠.”
“능 선생님이 그럴 수 있는 이유, 알아요?”
선심 쓰기로 한 간호사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다른 뜻이 있음을 알아차린 실습생이 고개를 저었다.
“능 선생님은 치료팀 팀장이잖아요. 게다가 사람 좋고, 실력도 있으니 다들 좋아하고요. 나중에 선생님도 확진 결과 안 기다리고 싶을 때 잘 생각하세요.”
다 같은 사람이라도 팔자는 다르다는 걸 많이 경험한 실습생은 바로 말뜻을 알아들었다.
“언제쯤 내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몇 년 고생해보면 그런 소리도 안 하시겠죠.”
실습생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하는 말에 간호사가 아무렇지 않게 한방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