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01화 (282/877)

능연은 발걸음도 가볍게 접수로 가서 밖을 바라보며 구급차가 오길 기다렸다.

시내 교통 체증이 점점 심해져서 구급차가 30분도 더 걸리는 일이 허다해도 병원 응급의학과는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았다.

주 선생은 아래 의사들에게 각종 응급처치 준비를 당부하고 진료과 협진도 부탁하고는 접수에 들러붙어 웃는 얼굴로 능연에게 말을 걸었다.

“능 선생, 아까 영국식 애프터눈 티 마시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의국 가서 내려줄까?”

“그런 말 안 했습니다.”

능연은 주 선생 잔머리에 가차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주 선생은 태연하게 싱긋 웃었다.

“귀찮을까 봐 그러지? 알아, 알아.”

“아닙니다.”

능연이 고개도 돌리지 않자 접수 간호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주 선생님이 마시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죠?”

“아냐, 능연이 아까 그랬어.”

“능 선생님은 그렇게 빙빙 돌리지 않아요. 게다가 능 선생님은 차 달라고 하지 애프터눈 티 어쩌고 그런 식으로 말 안 하고요.”

간호사는 ‘난 널 잘 알지롱’이란 표정으로 깔깔 웃었고, 주 선생도 마찬가지로 따라 웃었다. 간호사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다른 간호사들이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3초, 5초, 30초.

시간이 흐르자 컴퓨터 앞에 있던 간호사가 갑자기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할 일도 없는데, 차 내려와야겠다.”

“능 선생님은 애프터눈 티 같은 거 안 마셔.”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럼 톡방에 포트 있는 사람 있는지 물어볼게.”

“홍차도! 우유는 있으니까.”

“찻잔! 찻잔이 중요하지.”

간호사 셋이 종알대더니 10분 만에 영국식 애프터눈 티를 준비해왔다.

포트와 찻잔은 행정과 모 여사님이 제공한 것으로, 모 제약회사가 선물했던 티 세트인데 한참 사용하지 않았어도 이번에 꺼내 고온 소독한 후 깨끗하게 씻어 놓으니 무늬가 아름답기만 했다.

영롱하게 빛나며 새하얀 주먹만 한 도자기 찻잔에 홍차를 따라놓으니 시각 효과도 만점이었다.

“능 선생님, 차 좀 드세요. 구급차, 신호대기에 걸려서 아직 10분은 걸린대요.”

접수 간호사가 우유를 곁들인 풀 세트 애프터눈 티를 수제 와플과 함께 능연에게 내놓았다. 능연은 아주 잠깐 머뭇거리다가 곧바로 받아들었다. 차의 품질이야 어떻든, 영국식 애프터눈 티는 분위기가 그럴싸했고, 뜨겁게 끊은 차 향기를 맡으니 느긋한 기분마저 들었다.

“헤헤, 내 거는?”

“텀블러 가지고 계시죠?”

주 선생이 웃으며 묻자 간호사가 허리춤에 양팔을 대고 그를 바라봤다.

“안에 구기자차 있어.”

“드실 거예요?”

“응.”

간호사는 주 선생이 고분고분 내민 텀블러를 받아서 안에 든 구기자차를 따로 담아두고 홍차를 부었다.

“우유도. 애프터눈 티잖아. 에너지가 필요해.”

간호사는 주 선생 말대로 우유를 조금 붓고 마트에서 산 파이를 하나 같이 건네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주 선생은 그것도 흡족한 듯 텀블러를 들고 홍차를 홀짝였고 능연은 하얀 도자기 찻잔을 들고 조용히 음미했다.

높은 곳에서 1층 접수처를 비추는 햇살이 도자기 같은 능연의 얼굴에 반사되자 분위기가 다 우아해졌다.

접수대 위에 에피프레넘 두 그루가 서로 얽혀있고, 창틀에는 접난이 에피프레넘을 고요히 지켜보는 듯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교차로 지났대요. 30초 후 도착.”

접수 간호사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나직이 통보했다.

평범한 교통사고라 운화병원 응급의학과로서는 평범한 케이스일 뿐이었다. 능연은 다 마신 빈 찻잔을 내려놓고 하얀 가운 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장갑을 끼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간 절제술을 이제 막 터득한 능연은 매번 실천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45세 환자, 의식 또렷하고, 다리, 복부에 외상. 출혈이 심하고 혈압 106, 75. 맥박 77, 호흡은 분당 24회.”

스트레처 카를 밀고 들어온 구급요원이 큰 소리로 보고하자 능연과 주 선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트레처 카 앞으로 왔다.

“의사세요? 아이고, 요즘 의사들 참 젊네.”

“좀 살펴보겠습니다.”

아직 눈도 뜨고 있는 환자가 먼저 인사했고, 환자의 복부를 살피던 능연은 간 손상 가능성 있는 외상을 발견했다.

“차에서 제가 봤습니다. 간 파열 의심됩니다. 서둘러 수술해야 해요.”

같이 온 보호자가 종종걸음으로 따르면서 그렇게 말하자 능연의 의아한 듯 상대를 바라봤다.

“한의대에서 공공위생학을 가르치는 부교수입니다. 제 남편이고요.”

“아, 네. 바로 수술실로.”

능연은 교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시를 내렸고 간호사가 곧바로 전화를 걸어 수술실을 준비했다.

“다시 좀 보겠습니다. 주 선생님, 도와주세요.”

능연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 내리며 환자의 몸을 살짝 틀었다.

“간, 조심하세요.”

“자기야, 밖에서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나이가 몇인데, 부끄럽게.”

(*간 조심, 이라는 발음과 ‘보물’, ‘스위트허니’ 이런 식의 애칭 발음이 같음.)

“누가 당신 불렀어요? 선생님한테 한 얘기잖아요.”

“그럼 더 안 되지! 쿨럭.”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툴툴 대자 환자가 대답하다가 갑자기 기침하더니 선홍빛 피를 토했다.

“아이쿠, 큰일이네. 피 토했어.”

“입안이 터졌네요.”

주 선생이 냉큼 핸드라이트를 꺼내 보고는 긴장했던 몸을 풀었다. 그러는 사이 능연도 자리를 잡고 상처 주변의 근육을 가볍게 눌러 환자의 출혈을 멎게 했다.

“지혈하신 거예요?”

“임시 처치일 뿐입니다.”

아내가 깜짝 놀라 묻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외부 지압으로요. 잠시나마 지혈 작용을 할 때도 있습니다.”

능연의 대답에 환자 아내가 멍하니 능연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떴다.

“능 선생! 운화병원 능 선생 맞죠?”

“네.”

운화병원에 능 씨는 또 없으니 능연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유위신 아킬레스건 수술했다면요?”

같은 업계 사람이니, 수많은 전설을 들은 환자 아내가 들었던 케이스 중에 하나를 꺼냈다. 능연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말했다.

수술동의서를 받은 환자 아내는 가볍게 훑어보고는 망설임 없이 대여섯 군데에 모두 슥슥 사인했다. 이럴 때 빨리 사인할수록 환자에게 좋은 걸 잘 알고 있었다.

“수술실 들어가죠.”

능연과 주 선생도 그런 교수의 모습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각자 옷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향했다.

“누가 집도하시죠?”

“능연이 합니다.”

수술실 문밖에 가로막힌 교수가 머뭇거리며 하는 말에 주 선생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능 선생님은 정형외과 의사 아닌가요?”

“간 절제도 잘합니다.”

문밖에서 묻는 교수의 말에 능연이 감출 것도 없다는 듯 직접 대답했다.

“지혈, 비장절제, 고환절제. 다 잘합니다.”

“그, 그럼······. 부탁드릴게요.”

마지막 단어를 들은 교수가 저도 모르게 눈가를 실룩거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넵.”

능연은 고개를 돌리고 바로 탈의실로 들어갔다.

환자 아내는 파란 벽에 잠시 기대있다가 뭔가 떠오르는 듯 핸드폰을 꺼내 손을 떨면서 최근 통화를 눌렀다.

“황 교수님, 남편 이제 수술하러 들어갔어요. 네, 운화병원 능연 선생이요. 유위신 수술했다던······. 그렇겠죠. 네, 급하게 오시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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