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우리 자기······.”
환자가 수술대에서 의식이 흐릿한 채 중얼중얼했다.
“정맥 통로 열었는데, 혈액팩 온도 올릴까요? 주 선생님?”
오늘은 응급센터 수술실 당직인 마취의 소가복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를 한 번 살피고는 묻자, 주 선생이 모니터 수치를 우선 확인했다.
“수치 안정적이니까, 집도의 오면 결정하라고 하지 뭐.”
“응. 근데 같이 온 거 아니세요? 능 선생은 왜 안 와요?”
“능 선생은 수술 전에 목욕하잖아요. 누구처럼 옷만 갈아입고 나오는 게 아니라.”
소가복이 이상하다는 듯 묻는 말에 환자 정보를 대조하며 기다리던 순회 간호사가 힐끔 주 선생을 보며 말했다.
“하하, 나는 혹시나 해서 빨리 오려고 그런 거지.”
“소 선생님 계시는데 뭐 하러요.”
간호사가 못 믿는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저 그런 의사보다 소가복 같은 마취의가 환자 생리 기능 유지하는 데 더 경험이 많다.
주 선생은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온종일 병원에 있는 마취의는 치프 레지던트처럼 성장이 빠르다.
“능 선생님은 매번 수술 전에 목욕해요?”
오늘 스크럽 간호사 소몽설이 순회 간호사의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속옷도 갈아입으시고.”
소몽설이 놀라 입을 o 모양으로 벌리자, 순회 간호사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디클렌저도 두 번 쓰고. 틀림없어.”
소몽설이 아까보다 더 놀라서 O 모양으로 입을 벌렸다. 주 선생은 더욱 놀라 ◎ 표정이 되어 의아한 듯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추측이죠.”
순회 간호사가 무시하는 듯 주 선생을 바라봤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추측을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해?”
“능 선생님같이 세심한 의사는 분명 두 번 써요.”
순회 간호사는 확신에 차서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다.
그때 수술대 위에 환자가 비몽사몽 눈을 뜨고는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천당은 아닐 겁니다. 천사가 이렇게 불공평하게 편애할 리 없어요.”
귀여운 소몽설이 눈을 하트 모양으로 뜨고 수술실 문 쪽을 바라보는 걸 본 주 선생이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치익.
수술실 에어타이트 문이 열리고 옷을 깔끔하게 입은 능연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게 생긴 새로운 레지던트 한 명이 같이 들어왔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오랜만에 선생님 수술방에 들어오네요.”
간호사들은 기쁜 듯 능연에게 인사했고, 소몽설은 애교스러운 모습으로 말을 건넸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그죠, 그죠? 이번 수술 열심히 하세요.”
소몽설은 응원하는 표정을 짓더니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쳤다. 예쁘장하게 생긴 19살짜리 소녀는 아무리 중2병스러운 구호를 입에 올려도 민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스러워 보였다.
오로지 수술대 위 환자만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눈알을 굴리며 웅얼대며 물었다.
“무슨 얘기 중인가요?”
“숫자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3, 2, 1.”
소를 탄 노인네처럼 흔들흔들, 둥근 의자를 타고 환자 쪽으로 다가간 소가복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약을 놓고 모니터를 지켜보며 잠시 기다렸다.
“됐어.”
“그럼 시작할까?”
주 선생은 농땡이 지수가 줄어든 모습으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집도의 자리를 노리진 않고 능연의 맞은편 어시 위치에 서서 언제든 힘쓰는 일을 뺀 작업을 할 준비를 했다.
힘쓰는 일은 세컨드 어시인 레지던트가 있으니, 주 선생이 한다고 하면 오히려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
“출혈량 2000cc 넘었습니다. 압박 지혈은 더 못하고요. 그러니 첫 목표는 지혈입니다. 그러고 나서 장기를 치료합니다. 자체 수혈, 괜찮을까요?”
능연은 수술 방향을 설명한 후 소가복을 향해 물었고, 소가복은 대입 고사 600점짜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문제없어.”
“그럼 자체 수혈로 갑니다.”
자체 수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능연은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운화병원 응급의학과에서 계속해서 추진하기 때문에 소가복 같은 마취의는 진작에 터득한 상태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능연이 환자의 배를 열자 선혈이 한순간 솟구쳤다.
“먼저 결찰합니다.”
능연이 순식간에 손을 환자의 복강에 집어넣자, 새하얀 장갑이 눈 깜빡할 사이에 시뻘겋게 변했다. 주 선생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석션기를 잡아 한마디도 없이 서둘러 피를 빨아들였다. 하지만 복강 안의 액체는 도무지 줄어들지 않았다.
순간 주 선생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의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이었다. 배를 열기 전에 신나게 토론하고 이야기 나눴는데 막상 열어 보면 전혀 다른 상태인 경우도 있다.
아무리 첨단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모든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인체는 신비로웠다.
능연도 예기치 못한 부분이었지만, 주 선생처럼 긴장하진 않았다.
수술 시야가 안 보인다고? 괜찮다, 수술 시야가 없는 상태에서 결찰하면 되니까.
출혈이 심한 혈관만 묶고 재빨리 빨아들이면 출혈을 줄일 수 있고, 그러면 수술 시야도 차차 또렷해진다.
그러니 관건은 출혈이 심한 혈관 몇 개를 우선 묶는 것이다. 물론 출혈 포인트는 외과 수술 중 중요하고 어려운 점이지만,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을 터득한 능연에게 출혈 포인트 찾는 건 좀 까다롭고 시간이 걸릴 뿐 큰 문제는 아니었다.
환자 복강 혈액 안으로 들어간 능연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에 주 선생과 이름 모를 레지던트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주 선생은 능연이 뭘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는 건 아는 거고,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곧 끝납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응, 당황 안 해.”
능연은 심지어 사람들을 안심시킬 여유까지 있었고, 주 선생도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빨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체 석션기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