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밖, 한의대 황 교수가 다급하게 나타났다. 소식을 듣자마자 집에서 나온 황 교수가 온 길은 교통 체증의 반대 방향이라 구급차가 도착한 지 2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이효녕 교수.”
“황 교수님, 안 오셔도 된다니까.”
멀리서 부르며 다가오는 황 교수의 모습에 이 교수는 팔에 힘을 주고 짚고 일어나 억지로 웃어 보였다.
“당연히 와야지 무슨 소린가. 부군 수술은 시작했나?”
“그럴 거예요.”
“보자, 아는 사람 좀 찾아봐야겠네.”
황 교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냈고 잠시 후 웃음 지으며 인사했다.
“도 주임! 나일세. 부탁 하나 하세. 우리 학교 교수 남편이 오늘 사고로 자네 병원에 왔네.”
예의 갖춰 통화를 마친 황 교수는 한숨 돌린 듯 이 교수를 바라봤다.
“도 주임이라고, 운화병원 주임 의사야. 이따 우리랑 같이 수술실에 들어가 줄 거야.”
“감사합니다, 황 교수님.”
환자 가족인 이 교수는 이미 정신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이런 일에 인사는 뭘. 이따 수술실 들어가 보고, 정 안 되면 내가 나서면 되지 않겠나.”
이효녕과 황 교수는 도 주임과 수술 구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잠시 기다리던 이호녕은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그러나 본인도 의사라서 의사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아는 이효녕은 수술실 쪽을 바라보며 참고 기다렸다.
능연이 지금 어느 정도 수술을 진행했는지 모르겠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닌지,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되고 생각하면 할수록 뜨끔했다.
능연이 보여준 환자 자가 체중을 이용한 압박 지혈 기술은 이호녕이 보기에 매우 신통방통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데 필요한 게 맨손지혈이나 체외지혈뿐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이제 슬슬 배 열었을 시간이네요. 복강 지혈부터 하고 간 부분 처리하겠죠? 먼저 사지 외상 처리할 리가 없겠죠? 그렇죠?”
“정상적이면 그렇지. 운화병원 응급센터 정도면 수준은 괜찮을 걸세. 의사도 만났다면서.”
“알아요, 저도 알죠. 다만······. 능 선생이 너무 젊어서, 별 희한한 생각을 할까 봐······.”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도 만든 사람이니 대단한 건 증명됐지.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이따 도 주임 내려오면 바로 들어가 보자고. 금방 올 걸세.”
황 교수가 최선을 다해 이효녕을 위로했다.
명문대학 축에 드는 운화 한의대엔 유명 전문가와 교수가 많았다. 일부는 단순한 학술형 교수였지만, 대다수는 임상과 학술을 동시에 중시하는 전문가들이었다. 사실상 병원 같은 실천성이 강한 직종에서 임상 관련 전문가가 단순히 학자로만 남는 건 어찌 보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효녕이 불러온 황 교수가 바로 외상 컨트롤에 정통한 전문가였다. 그는 한의대 부속 운화한의원의 겸직 의사였다. 지금 한의원의 주요 업무는 수술과 동서양 의학의 결합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이효녕과 달리 황교수는 침착했다. 그가 알기론 운화병원 응급센터 수준이면 환자를 살릴 확률이 못해도 80%는 된다고 생각해서, 그들이 수술실에 일찍 들어가든 조금 늦게 들어가든 아무런 상관없으리라 여겼다.
“황 교수.”
도 주임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달려가 허공에서 손을 흔들었다.
“좀 전에 환자 몸에서 이물질을 제거해서 말이야, 악수는 다음에 하세.”
본인이 늦은 이유도 설명할 겸, 도 주임이 말했다.
“악수 안 하면 어떤가. 의사는 사실 악수 안 하는 게 좋지.”
황 교수가 호응하며 하는 말에 도 주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선 이효녕을 바라봤다.
“이 교수죠? 소식을 막 들었습니다. 보호자도 힘드니까, 잘 버티셔야 합니다.”
“네. 도 주임님. 감사합니다. 나중에 우리 남편 퇴원하면 같이 인사드리러 올게요.”
“무사히 퇴원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 참, 수술실에 들어가려고? 사실 보호자는 안 들어가는 게 나은데.”
“전 괜찮습니다! 도 주임님, 무슨 말씀인지는 알아요. 가족이 수술받는 모습을 보는 건 분명 괴로운 일이죠. 하지만 저도 의사 아닙니까. 남동생 수술도 제가 직접 했었어요. 물론 작은 수술이지만.”
도 주임이 황 교수를 돌아보며 하는 말에 이효녕이 나서서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응급 수술은 아무래도 다르지요.”
“다 생각했습니다. 도 주임님, 저 사고 현장에서부터 남편이랑 함께였습니다. 상황도 잘 알고요. 수술실 들어가서 절대로 수술 방해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능 선생이 들을 사람도 아닙니다만.”
도 주임은 병원 일에 관여하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응급센터에서 벌어지는 일, 사람에 대해서는 그래도 잘 알고 있었다.
“네, 저도 능 선생 직접 봤고요, 그래서 황 교수님께 오실 거 없다는 전화까지 드렸어요. 능 선생 기술이야 저도 믿죠.”
이효녕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도 주임님, 아무래도 직접 보고 싶어요.”
“그럽시다. 우선 옷 갈아입고 수술실에 들어갑시다.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들어가서 제 말과 집도의 말에 따라야 합니다. 집도의 말이 우선이고요. 동의하면 들어가고. 아니면 맙시다.”
“그럴게요!”
“알겠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이효녕의 말에 도 주임도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을 데리고 움직였다.
“자자, 다들 힘 좀 빼자고. 능 선생은 지금 여기 운화병원 스타 의사 아닌가. 아까 이 교수도 말했잖아. 능연의 체외지혈이 아주 신통방통하다면서.”
분위기가 다소 긴장되자 황 교수가 도 주임의 어깨를 치며 분위기를 풀었다. 황 교수가 과장된 어투로 그렇게 말하자 이 교수가 조금 긴장을 풀었다.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황 교수는 의사 모드로 돌입해서 도 주임에게 물었다.
“아까 이물질 제거했다고? 뭘 꺼냈나?”
“가지일세. 올해 다섯 개째인가, 여섯 개째인가?”
“한 해에 가지 여섯 개를 꺼냈다고?”
도 주임이 태연하게 하는 말에 황 교수가 감탄한 듯 되물었다.
“말도 말게. 가지, 은근히 꺼내기 어렵다네. 어린 의사들은 잘 못 해서 꼭 우리가 나서야 한다니까.”
“맞는 말일세. 허허허······. 여섯 개라고?”
앞으로 걸어가던 황 교수가 혀를 끌끌 차며 다시 물었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닐세. 크기가 포인트지. 올해 꺼낸 가장 큰 가지가 25cm였다네. 30cm까지는 안 되고. 35cm짜리 꺼낸 사람도 있다던데? 그게 진짜 대단한 거지.”
도 주임이 점점 말이 길어지며 설명하자 황 교수는 직접 25cm에서 35cm를 가늠해보고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이고, 배움엔 끝이 없다더니. 의사 생활 30년 해도 놀랄 일이 생기네. 인체의 신비는 30년으로 깨우치기 부족하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수술실 앞에 도착했고 이효녕과 다시 만났다.
“들어가세.”
도 주임은 더는 다른 말 없이 에어타이트 도어를 밟고 그들을 안내했다.
수술실 안은······ 엄청나게 조용했다.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는 능연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했고, 주 선생과 세컨드 어시 역시 한마디도 없었다.
그 모습에 이효녕은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수술실에서 의사가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이효녕의 눈가를 타고 흘렀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의사의 작업을 방해할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눈물은 막을 수 없었다.
황 교수 역시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환자의 상태를 살필 생각으로 조용히 앞으로 걸아나갔다.
외상 컨트롤 전문가라고 해도 죽은 목숨을 살릴 길은 없었다. 제어 가능한 외상도 아예 불가능한 외상도 있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기회는 더는 없다.
환자의 복강 안은 난리였다. 노출된 간은 벌써 1/3 정도 잘려있었고, 거기까지 본 황 교수는 벌써 가슴이 철렁했다.
간 절제로 죽은 사람을 너무 많이 봤다. 특히 응급 간 절제 사망률은 60% 이상에 달했다.
“간이 좀 약하네.”
“잘 꿰매져?”
능연이 평온한 말투로 갑자기 목소리를 내자 주 선생이 물었다.
“후우, 아니요. 약하기만 한 게 아니라 크기도 해서요.”
“그러게 푸아그라 같네. 대형 지방간 업그레이드 버전이야. 나중에 환자한테 한마디 해야겠는데?”
“네. 검사 한 번만 다시 하고, 문제없으면 닫죠.”
스스로 검사를 마친 능연은 뒤로 물러나면서 장갑을 벗었다.
이제 막 수술실로 들어선 세 사람이 일제히 능연을 바라봤다.
“도 주임님?”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에 수술 참관하러 온 실습생인 줄 알았던 능연은 주임 의사가 나타난 모습에 놀랐다.
“지금 이게······.”
이효녕이 떨리는 손으로 수술대를 가리켰다. 마스크를 낀 이 교수를 한참 만에 알아본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병실에서 기다리시죠. 환자는 일단 회복실로 갈 겁니다.”
“끝났다고요? 잘?”
“네. 오른쪽 간을 1/3 절제했습니다. 그리고 복강 안에 상처가 여러 군데라서 그것도 다 지혈했고요.”
설명을 마친 능연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이효녕은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이번에 눈물은 더 많아졌지만, 다리에 힘을 꼿꼿이 주고 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