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05화 (286/877)

수술실에서 나온 환자를 회복실로 보내고 의자에 주저앉은 이효녕은 일어날 기운도 없었다.

회복실은 마취의의 구역이었고, 환자 보호자를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따라 나온 황 교수가 이효녕을 향해 웃어 보였다.

“어찌 됐든, 살았으면 됐지. 이제 한약 먹으면서 회복만 잘하면 문제없을 걸세.”

황 교수의 말에 이효녕이 억지로 웃어 보였다.

“큰일을 겪은 만큼 나중에 좋은 일도 있을 테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게. 자, 그럼 나는 이만 응급실로 돌아가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찾아오게.”

“도 주임님! 그······ 수술 몇 개만 더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이효녕이 다급하게 도 주임을 불러세웠다.

“능연 수술 말인가요?”

“네.”

“흠, 그럽시다. 어차피 다 업계 사람이고. 그래도 능 선생한테 이야기는 해야 합니다.”

“도 주임님께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려운 부탁인 건 압니다만.”

“그럽시다.”

말 꺼내기 어려운 듯이 하는 이효녕의 말에 도 주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기로 능연은 참관 수술을 싫어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능연의 수술이 궁금했던 황 교수도 ‘온 김에’ 정신을 발휘하여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도 주임과 이효녕을 따라갔다.

이미 새 환자를 맞이한 능연 팀이 처치실에 빙 둘러앉아 있었다.

“굵다.”

“부러진 거야? 이을 수 있어?”

“어쩌다 부러졌대?”

의사들은 눈 뜨고 못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어린 간호사들은 호기심에 눈빛을 반짝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마누라가 춤을 배우는데······. 마누라가 춤을 배워서······.”

환자는 죽고 싶은 것 같은 얼굴로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당신 부인이 춤 배우는 거랑 음경이 부러진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어린 장중첩 환자의 처리를 전부 마치고 다시 능 팀에 합류한 여원이 물었다. 환자의 감정에 심하게 이입한 연문빈에 비해서 여원은 순수한 임상학자의 표정을 지었다.

눈을 감고 있던 환자는 눈을 떠서 여원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폴댄스 보여주겠다고 밑에 누우라고 해서······.”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 다음 장면을 상상했다.

“최대한 고환 하나는 남겨 드릴게요.”

환자의 상태를 상세히 검사한 능연이 사진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환자가 정신이 번뜩 든 듯 눈을 떴다.

“하나를 남긴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오른쪽은 이미 괴사해서 남길 가치가 없고요, 왼쪽은 이제 봐야 압니다.”

대놓고 말하는 능연의 모습에 황 교수, 주 선생을 비롯한 남자들이 다리를 바짝 오므렸다.

환자는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결국 현실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수술실로 향해 능연의 고환 절제술을 참관했다.

능연의 노련한 동작을 보며, 이효녕은 그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흠, 능 선생 본인이 한 말대로 기술이 괜찮네.”

“무슨 말인가?”

“아까 그러더라고요. 간 절제와 고환절제를 잘한다고요.”

말을 잠시 멈춘 이효녕이 트레이에 작은 알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잘하는 거 같네요.”

“음, 확실히 수법이 깔끔하긴 해.”

황 교수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자네 고환암 수술한 적 있나?”

“아니요! 교수님, 고환암 환자 있으십니까?”

능연은 눈이 번쩍 뜨여서, 잘생긴 얼굴로 황 교수를 바라봤다.

“고환도······ 암에 걸립니까?”

능 팀 실습생 정군상이 어리둥절한 듯 중얼댔다.

“확률이 낮지만, 없진 않지.”

황 교수는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내용은 사람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능연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황 교수를 바라봤다.

그는 지금 맹장 절제술(그랜드마스터), 간 절제술(마스터), 비장 절제술(마스터), 그리고 고환 절제술(마스터) 이렇게 총 네 가지 절제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그 4가지 장기의 원발성 암 외과 절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암 제거 수술은 보통 자격으로 할 수 없었고 응급의학과는 암 제거 수술 자격이 없었다.

특히 간암은 상황이 지극히 복잡해서, 간담췌외과조차도 몇 년을 익혀야 집도할 수 있어서 능연이 나설 공간이 없었다.

비장, 맹장, 고환암은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흔하지도 않았고, 그런 환자가 있다고 해도 수술할 자격이 없었다.

“우리 병원에 고환암 환자가 하나 있지. 그런데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그냥 한약 치료를 하고 있다네.”

“아, 그렇군요.”

황 교수가 껄껄 웃으며 하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가 수술을 원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생각엔 능 선생이 환자와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 싶네. 같은 젊은 사람이니, 이야기가 통하지 않겠나? 서로 대화하면서 자네가 좀 설득해보게.”

황 교수의 말에 주 선생은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이를 악물었다.

주변 사람들도 웃음을 참으려고 하나 같이 이를 악물었다.

고환 절제술을 막 끝낸 수술실에 모든 이가 나무 가득 달라붙은 다람쥐처럼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새벽 4시 40분, 간호사 왕가, 레지던트 여원 그리고 신혼 휴가에서 돌아온 훈련의 마연린이 당직실에서 둥글게 둘러앉아 부글부글 끓는 주산 생선포 탕위엔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마연린은 몹시 지쳐있었다.

결혼은 힘든 일이고, 신혼 생활은······더욱더 힘들었다.

마연린은 머리가 텅 빈 것 같이 넋 나간 듯 탕위엔을 바라보면서 무의식적으로 국자로 저었고, 여원과 왕가는 허기져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특히 저녁 내내 쫄쫄 굴은 여원은 신경이 날카로워서 툴툴거렸다.

“탕위엔에 생선포를 넣는 이유가 뭐야? 국물이 너무 맛있을까 봐?”

“그러니까요, 단 음식에 짠 생선포를 넣는 이유가 뭐죠?”

왕가는 동동 뜬 탕위엔을 바라보면 식욕이 솟구쳤다가 생선 비린내를 맡으면 식욕이 무한 감소했다.

“먹어도 돼.”

마연린이 온몸에 빛이라도 날 듯 환한 표정으로 큰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말린 생선을 먼저 하나 건져 한입 덥석 베어 물었다.

“천천히 먹어, 천천히. 불쌍한 것. 결혼하더니 이제 집에서 밥을 안 하니 아님 무슨 일이니?”

여원은 마연린이 밥 먹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은 것 같아졌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식은 만두 먹거나, 아니면 불어 터진 면 먹거나.”

“왜 그렇게 불쌍해. 대체 뭘 하길래.”

우물거리며 대답하던 마연린은 여원이 깜짝 놀라 되묻자 입안에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여원을 지그시 바라봤다.

“뭐할 거 같은데요?”

여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크게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그러니까요.”

“참, 어제 우리 고환 절제했다? 근데 이유가······. 이유가 뭐게?”

화제를 전환한다고 여원이 꺼낸 말에 마연린은 흠칫다가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마누라가 춤출 줄 아는 바람에 생긴 일이야. 하하하하.”

여원이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그러자 복도 끝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전해지는 소리라 아련하고 기이했다.

“메아리겠지? 메아리가 그렇게 멀리 가나?”

왕가가 목을 움츠러뜨리고 중얼거렸다.

“메아리가 이렇게 느리겠어?”

여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 숙여 시간을 보더니 ‘새벽 4시 44분’이라고 중얼거렸다.

“44분? 하필······. 40······.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나머지 4명은? 죽었어? 내가 가서 볼게요. 병실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설마······.”

“하하하하.”

여자 목소리가 멀리서 다시 전해졌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마연린이 안색이 변해서 걸음을 멈추자 여원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 같은 바닷가 사람은 따지는 게 많아요. 이런 일 생기잖아요? 특히 나처럼 갓 결혼한 남자는 나서는 게 아니에요.”

“왜요? 양기가 없어서?”

허허 웃으며 자리로 돌아와 국물을 퍼서 홀짝이는 마연린의 모습에 왕가가 물었다.

“결혼하자마자 죽으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마연린은 고개를 들어 대답하고는 다시 국물을 홀짝였다.

“이럴 때 닭 피 있으면 좋은데.”

“닭 피요? 헐. 선생님은 이런 거 잘 알아요?”

“응.”

“그럼 이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뭔데요?”

“음······. 숨는 거? 공포 영화 보면 호기심 많은 사람이 제일 먼저 죽잖아.”

여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큰 소리로 문을 두드렸다.

“환자 깼어요.”

다들 놀라 바라보는 사이, 어린 간호사 하나가 흥분한 듯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

“능 선생님이 어제 수술한 환자요. 한의대 부부. 남편 지금 깼어요. 아, 능 선생님은요?”

창백한 얼굴로 묻는 마연린의 말에 간호사는 왜 이러냐는 얼굴로 힐끔 보더니 아랑곳도 하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곧 올 거야. 환자가 깨면 깬 거지, 왜 이렇게 시끄러운데?”

“환자 가족이 다 의사라서 놀라서 그런가 봐요.”

여원의 말에 간호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그렇게 대답하고는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다들 난리더라고요. 다들 환자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죽는 거 아니냐는 둥, 못 깰 것 같다는 둥, 후유증이 심각하면 어쩌냐는 둥. 그런데 24시간도 되기 전에 깼고, 바이털 사인도 좋으니까······. ICU 선생님이 이삼일 뒤엔 일반 병실로 가도 된다고 했거든요.”

“휴우, 난 또 뭐라고. 보호자들이 어디 있는데?”

“면담실이요. 도 주임님이 열어 주셨어요.”

“도 주임님? 아직 집에 안 가셨어?”

간호사가 속삭이는 말에 여원이 깜짝 놀라 물었다.

“다시 오셨어요. 도 주임님 만날 소파에서 주무신다잖아요. 날이 밝기도 전에 사모님 아침 사다 드리고. 가끔 침대에서 자려면 저녁 뉴스 끝나면 바로 차지해야 한다면서요. 그러니까 다음 날 새벽 서너 시면 깨서 병원 오시는 거죠.”

“도 주임님한테 그런 흑역사가 있어?”

간호사가 신나서 전하는 스캔들에 여원의 눈이 번뜩였다.

“흑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던데요. 그러니까 도 주임님이 아침 일찍 병원에 오는 건 하나도 새삼스러울 게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도 주임님 기상 시간이 우리랑 비슷하겠네.”

마연린은 생각해보니 기분 좋은 듯 중얼거렸고, 병원에서 제일 오래 일한 여원이 깔깔 웃기 시작했다.

“에이, 헛소문이겠지. 도 주임님 밤에 자전거로 퇴근하시는데, 저녁 뉴스할 땐 아직 집에 들어가시지도 않으셨어.”

“그럼, 사모님한테 아침 해드린다는 말도요?”

“당연하지. 도 주임님 일어나셨을 때는 아침 가게가 안 열거든. 보통 새벽에 일어나서 직접 준비해서 드려. 만두 찌고, 또우장나오(*豆醬腦: 순두부로 만든 중국식 아침 식사. 보통 요우타오랑 같이 먹음.) 만들고.”

“직접이요?”

“응. 손을 얼마나 잘 쓰시는데. 젊을 때 충수염 수술할 때, 그 시절엔 우리 병원에도 급성 충수염 환자가 많았대. 아무튼, 그때 도 주임님은 15분에 한 건씩 하셨다더라.”

“하아, 언제 도 주임님처럼 될 수 있을지.”

마연린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여원이 미소 지으면서 의미심장하게 그를 바라봤다.

“곧 그렇게 되겠지. 아, 능 선생.”

“능 선생님?”

여원의 말에 문을 등지고 앉아 있던 간호사가 거의 튀어 오를 듯 화들짝 놀랐다. 왕가는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정리하고는 그제야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문 쪽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어요?”

“환자 깼어요!”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묻는 말에 간호사가 제일 먼저 대답하겠다는 듯 소식을 전했다.

“그럼 됐네요. 자, 그럼 회진 갈까요?”

“능 선생, 우리도 면담실에 가보자.”

능연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여원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지금 여원은 책임감에 가득했다. 의사인 환자, 의사인 보호자는 선생인 환자, 보호자의 다음 가는 존재였다. 한의대학 교수 집안은 당연히 정상급 중의 정상급이고. 그러니 새벽 4시라고 할지라도 소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되고요.”

능연은 이러나저러나 별 상관없었고, 새 가운 옷깃을 가다듬고는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복도에 긴 웃음소리가 더욱 공포스러웠다. 웃음소리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들렸다가 멈췄다가, 잠시 있다가 또 들려서 더욱더 무서웠다.

작은 면담실에 스무 명 넘는 사람이 몰려 있었다.

“도 주임님.”

여원이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능연에게 비켜주었다.

“능연? 여러분, 여기 우리 집도의가 왔네요. 능연, 능 선생입니다. 우리 능 선생은 매일 새벽에 회진을 돌죠. 아주 부지런하답니다.”

“모두 환자 보호자십니까?”

능연은 도 주임의 호들갑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른 새벽의 이산화탄소의 무게만큼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환자 누나예요.”

에르메스 원피스를 입은 중년 여자가 능연을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살폈다.

“이제 회진 막 시작이라, 제가 환자를 아직 못 봤네요. 다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능 선생, 고마워요.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환자 치료만 잘할 수 있다면 우리 가족 모두 협조할게요.”

환자 아내인 이효녕이 제일 먼저 나서서 대답했고, 같은 의사라 의사를 화나게 하는 799가지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하나 더, 사망도 있다는 것도.

그냥 별생각 없이 몰려 있는 친척들과 달리, 사고 현장에 있었고, 직접 응급처치도 했던 이효녕은 남편이 지금 그렇게 안정적일 수 있는 것이 모두 능연의 응급치료 덕임을 잘 알았다.

그래서 친척들이 아무리 잘난 전문가, 교수를 소개해도 다른 병원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ICU에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황 교수도 능연보다 잘하리란 보장이 없는 때,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병원을 옮길 필요가 없었다.

사실 대다수 병원의 주력 의사는 쉰 넘은 주임 의사들이 아니었다. 체력, 에너지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새로운 지식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상황에 주임 의사들은 예전 실력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선임 주치의나 부주임 의사들이 환자를 더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것도 당연했다.

운화병원에 있기로 했으니, 이효녕은 당연히 능연에게 잘 보이려고 들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의 친척과 친구를 둘러보고는 직접 물 한잔 따라 능연에게 건넸다.

“능 선생, 아침 일찍 나오느라 식사 안 했겠네요. 여기 간식 좀 있는데, 드실래요?”

납작 엎드린 이효녕의 태도에 주변 사람들도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다들 아침을 내밀었다.

계란만두, 죽, 또오장나오, 요우타오, 또우장, 잡곡 전병······.

능연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여원이 벌써 작은 몸을 흔들대기 시작했다. 아까 탕위엔을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정말로 배가 고픈 때였다.

아주, 많이.

“자자자, 이리 오세요.”

이효녕은 음식을 주륵 늘어놓고 의사들에게 먼저 고르라는 듯 손짓했다.

“흠흠, 능 선생. 이 교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사양하지 말게나.”

“네.”

도 주임이 하는 말에 능연이 자리에 앉아 우유를 집은 다음, 포장된 빵을 골라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

“능 선생, 체면 너무 차리시네. 능 선생은 어느 학교 졸업하셨나? 부모님은 뭐하시고? 정식 계약은 하셨고?”

에르메스 중년 여자가 다시 일어나 감탄하는 눈으로 능연을 바라보며 질문 공세를 펼치자, 이효녕이 못 견디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봤다.

“형님, 오늘은 그런 얘기 꺼내지 말아요.”

“이렇게 좋은 상대를 만났는데? 요즘 애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부모까지 넋 놓고 있을 수 있어야지.”

“제 말은······.”

“가원이 정신 돌아온 게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소식이잖아. 내 딸이랑 능 선생이랑 선보면, 가원이한테도 좋지. 안 그래?”

이효녕은 말문이 막혔고, 에르메스 중년 여자는 바로 단호한 의지를 내보이며 능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능 선생.”

“회진 가야겠습니다.”

능연이 상대의 의지가 단호하든 말든 상관할 리가 없었다. 그러자 아무리 자기에게는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웃으면서 길을 비켜줄 수밖에 없었던 에르메스 중년 여자는 능연이 막 방을 나서려고 할 때 다급하게 한마디 했다.

“능 선생, 우리 딸 참 괜찮아.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영국에서 석사도 땄어. 영국 석사는 우리나라랑 기간이 다른데 어쨌든 수준은 우리보다 높아.”

다른 병실로 들어간 능연은 그제야 귓가가 조용해졌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나도 석사 졸업했거든? 석사 졸업이랑 결혼이랑 무슨 상관있다고. 안녕하세요, 회진 시작합니다.”

한숨을 내쉬며 툴툴거리던 여원이 인사하자 비몽사몽 잠에서 깬 환자가 시계를 보고는 능연 한번, 여원 한번 보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걸리버 여행기야?”

여원은 등 뒤에서 태블릿을 꺼내서 잠시 누르다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문학 선생님은 역시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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