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새벽 7시까지 회진을 돌고 수술을 시작했다. 그가 수술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참관할 의사들이 벌써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이효녕 부부는 기본적으로 의사 모임에서 활동했고, 사고 났다는 소식에 병문안 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ICU에 다 들어가지 못하자 면담실에 모여 수다를 떨면서 이효녕 씨를 위로했고, 심심하면 옛 친구, 옛 동창, 옛 동료와 옛 친구, 옛 동창, 옛 동료의 옛 친구, 옛 동창, 옛 동료를 불렀다.
그러고도 호기심과 무료함을 풀지 못한 사람들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사들에게 다른 의사의 수술을 본다는 건 꼭 필요하지만, 기회가 닿아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능연이나 여원처럼 바쁜 의사는 각종 회의에 참석했을 때 다른 의사의 시범 수술을 보거나 아니면 마침 다른 사람의 수술 장면을 마주칠 때나 가능했다.
상황을 보려고 아침에 다시 돌아온 황 교수가 한마디로 의사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왕 온 거, 수술하는 거 보고 가자고.”
그렇게 되어서, 마연린과 여원이 에어타이트 도어를 밟고 들어갔을 때 눈앞에 열 몇 쌍의 눈과 수술복을 입은 몸이 보였다.
마연린은 멈칫해서는 수술 리스트를 체크하기까지 했다. 수술실을 헷갈린 거라면 얼마나 웃기는 일이란 말인가.
“애송이, 볼 것 없네. 우리는 능 선생 수술 참관하러 온 거야.”
“능 선생 수술이요?”
“그렇지.”
“하지만······ 충수염 수술인데요?”
마연린은 여원을 힐끔 보고 나지막이 말을 꺼냈고, 황 교수 역시 멍해졌다.
“아, 그걸 제대로 안 봤군.”
영화 보러 갔다가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어린이 영화를 고른 기분이 들었다.
능 선생의 수술이라니 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충수염이라니······.
황 교수는 고개를 돌려 제일 어려도 사십 줄 넘은 의사 무리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충수염 수술도 괜찮지 뭐. 지금 복강경 수술은 빠르기도 하고.”
“하하하, 돈 내고 들어온 것도 아닌데요, 뭐.”
곁에 있던 의사가 난처해하지 말라는 듯 호응했다.
잠시 후, 수술실에 들어온 능연도 가득 찬 사람들을 의아한 듯 바라봤다. 그때 황 교수도 수술대에 서 있는 의사가 세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이쿠, 요즘 운화병원 잘나가네. 충수염 수술을 셋이나 해?”
“원래는 마 선생에게 하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에?”
“원래는.”
마연린이 순간 흥분해서 고개를 들자, 그 표정을 본 능연이 다시 한번 반복했다. 여원도 곁에서 헛기침하며 작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실수하는 거 보여주고 싶냐?”
“그것도 그러네요.”
마연린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2년 동안 훈련의 생활 하면서 능연한테 얻은 것 말고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복강경 하 충수염 수술은 마연린도 해본 수술이지만, 한두 번 해본 것과 여러 번 한 건 확연히 달랐다. 이번에 기회를 잃은 것처럼 앞으로 또 얼마나 기회를 잃을지 모른다.
현장에 있는 의사들도 조금 겸연쩍어졌다. 다들 의사라, 초짜 의사가 기회 한 번 얻기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수술 한 번 하려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아서 꼬박 새우고, 자료만 일주일 넘게 찾으면서 환자의 오줌 냄새도 몇 번이나 맡는 의사도 있다.
그러나 기회는 너무 쉽게 사라진다. 지금만 해도 여기 모인 의사들은 젊은 의사가 하는 수술을 보고 싶지는 않아 하니까.
젊은 의사들은 초기에 실수하려고 수술을 하는 데다가, 모든 젊은 의사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 받을수록 용감해지는 것도 아니다.
실력이 늘어나고 자유자재로 메스를 놀릴 수 있을 때가 되면, 외과 의사란 존재는 자신의 성공을 지켜봐 줄 사람들을 갈망하지만, 실패하게 되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몇 안 된다.
“소독했나요?”
“내가 할게.”
집도 위치에 선 능연이 묻는 말에 여원이 어시 자리에 서서 소독을 시작했다. 마연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옆으로 빠졌다. 복강경은 세컨드 어시까지 필요 없고, 사실 퍼스트 어시도 별로 할 일이 없다.
“저 사람들 가고 나면 나중에 다시 기회 드릴게요.”
능연이 마연린을 향해 긍정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학교 다닐 때도 능연은 사회에서 받아 주지 않는 사회 구성원을 자주 그런 미소로 위로하곤 했다. 예를 들어 반에서 3등 이하 친구라던가.
능연이 그렇게 말한 이상, 수술은 꼭 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마연린은 순간 진정되었다.
그리고 황 교수를 비롯한 사람들은 좀 어색해졌고, 누군가는 언짢은 듯 툴툴거렸다.
“그냥 가볍게 좀 보겠다는 건데, 그냥 나가라고 하지 왜?”
“흐음. 능 선생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들 진정하세요.”
“네, 금방 끝날 겁니다.”
황 교수가 헛기침하며 하는 말에 능연이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의 충수염 절제술은 그랜드마스터급이었고, 전국 범위로 봐도 탑 100명 이내에 들 수준이라 이론적으로는 충수암 절제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충수암 발생 확률은 지극히 낮다. 충수암으로 세상을 떠난 오드리 헵번은 그 낮은 확률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기술인 이유는 상당한 안정성과 중복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랜드마스터급 충수염 절제술을 순조롭게 조작하는 것만으로도 따라잡지 못해 급급해하는 의사가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복부 해부 경험 100회, 그랜드마스터급 열 지혈 능력까지 있으니, 수술실 모니터에 교과서에 나올 완벽한 충수염 절제술이 펼쳐졌다.
사실 굳이 비교하자면 교과서에도 이런 수준의 충수염 절제술은 나오지 않는다.
“복강내 무혈이야.”
“무혈 시야?”
의사 하나가 하는 말에 다른 의사가 놀란 표정으로 호응했다. 슬슬 따분해하던 의사들이 순간 모두 정신을 번뜩 차렸다.
복강경은 수술 참관자에게 커다란 장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참관자와 시술자의 수술 시야가 같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건 매우 중요하다.
정규적인 수술은 설사 최첨단 고해상도 렌즈를 사용해도 시술자가 보는 모든 장면을 참관자가 볼 수는 없다.
렌즈의 범위가 어쨌든 제한적이니 말이다.
일반적인 수술의 경우 집도의의 시야가 더 넓은데, 반드시 시야의 차이로만 수술 성공이 결정되는 건 아니다. 보이지는 않더라도 집도의의 촉각 등 여러 감각 또한 영향을 미친다.
그에 비해 복강경이나 관절경 내시경 수술은 수술 시야 외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별로 없다.
복강경 모니터에서 나오는 장면이 바로 집도의가 보는 장면이며, 참관자는 집도의보다 더 많이 볼 리도 더 적게 볼 리도 없다.
수술을 그냥 대충 보는 것이라면 그 차이가 별 상관없겠지만, 정말로 어떤 수술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보는 것이라면 복강경 같은 내시경의 특성이 매우 유용하다.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라 무수한 의문과 추측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운화병원 응급센터 3번 수술실에는 무수한 의문을 품은 의사가 가득했다.
“정말로 무혈 수술 시야라고?”
“완전한 무혈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피가 어디 있습니까?”
“아까 석션했으니까요.”
“그건 제외해야지! 이게 바로 무혈 수술이라고.”
능연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사들은 좌, 중, 우 3파로 나뉘어 격렬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무혈 수술 시야’라는 말은 외과 의사의 최고 경지로,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成佛)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소수의 몇 가지 수술 외에 완전 무혈 수술 시야를 정말로 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외과 의사는 갖가지 방법으로 그 목표를 향해 나아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에 발전을 추구한다.
‘무혈 수술 시야’의 장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무혈 수술을 처음 주장한 홀 스테드의 말을 빌려 보면, 충분한 노출, 섬세한 지혈만이 외과의가 침착해지고, 수술대에서 제대로 생각하고 착착 수술을 진행하는 길이다.
그러나 홀 스테드는 19세기 후반의 수술 대가이며, 그가 주장한 이 목표를 실행하기까지 길고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지금도 체외 순환 기술에서나 무혈 수술을 비교적 완벽하게 실행할 수 있다.
최소 절개 수술은 부분적으로 무혈 수술을 실현할 수 있지만 100%는 아니다. 사실, 100%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정말로 무혈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건 1%도 안 될 것이다.
체외 순환 기술 이외에 무혈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최소 절개로 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해부 지식에 운 한 스푼도 빠질 수 없다.
전자 메스 같은 신기한 도구가 생겼지만, 작은 혈관이라고 무조건 사용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환자의 근육만 상하게 할 뿐이니 말이다. 정말 쩌는 방법은 갖가지 혈관을 다 피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불가사의한 부분이다. 인체는 서로 다 달라서, 사람마다 혈관 위치, 길이, 굵기, 밀집 정도 등 모두 달라서 맨눈만으로는 판단해서 모든 혈관을 피할 수는 없다.
다행히 복강경은 구멍이 작고 피가 조금 흐른다고 해도 빨아내면 그만이었다.
물론, 지혈은 빠르고 정확해야 하는데 그건 능연이 가장 잘하는 부분이었다.
“장간막(mesenterium) 열었습니다.”
“절개.”
“맹장 제거 준비.”
능연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황 교수는 저도 모르게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이 자기 제자였다면, 이런 식으로 빠른 속도만 봐도 일단 혼내고 시작할 것이다.
대부분 외과 의사들은 수술을 매우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잘하면서 빠르게 하는 건 쉽지 않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가장 전형적인 케이스가 바로 운전이다. 시속 20km, 40km, 80km, 120km로 속도를 올릴수록 안전까지 고려하면서 하려면 당연히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운전할 때 고려해야 하는 갖가지 사안은 분명 의사가 수술하면서 고려해야 하는 사안에 못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황 교수는 자신의 제자가 일부러 속도를 내면 욕을 한 뭉탱이 준비했다가 낼름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 능연은 ‘일부러’ 속도를 내는 것 같지 않았다. 능연의 손놀림을 보는 황 교수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난 왜 이런 제자가 없지?’
그러나 황 교수는 곧 생각을 바꿨다. ‘내가 이런 제자가 있을 리가!’
“이 교수 남편, 바로 능 선생이 수술했다고 그랬죠? 어쩐지 살아났더라.”
“뭘 그렇게까지. 황 교수님, 능연이 응급 간 절제술을 했다면서요? 교수님도 보셨나요?”
어느 의사가 갑자기 하는 말에 사람들이 모두 경악했고, 그와 같이 온 의사가 눈썹을 찡그리면서 한마디 하고는 황 교수에게 물었다.
“내가 갔을 땐 끝났더라고.”
“얼마나 걸렸습니까?”
“간 부분? 글쎄, 나중에 물어보니 몇 분이라더라고.”
황 교수는 상대를 힐끔 바라보고는 의미심장하게 ‘얼렁뚱땅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분명 10분이 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 그게······. 네, 믿겠습니다.”
이야기하던 의사가 잇새로 숨을 쓰읍 들이쉬며 말했다. 수준 높은 응급 간 절제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많지 않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드무냐면, 아무리 그래도 무혈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보다 드물진 않았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각자 다른 병원에서 온 의사들은 무거워진 마음으로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면서 능연의 수술을 지켜봤다.
능연은 평온한 상태로 충수염 수술을 진행했다. 교육 수술도 아니라서 굳이 속도를 낼 필요도 없고 아무 일 없이 수술이 끝나는 것만 고려했다.
충수염 수술은 그야말로 작은 수술이고, 바로 그런 이유로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마연린은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로 수술을 지켜봤다. 2년 훈련의 생활을 한 마연린은 충수염 수술을 질리도록 봐왔고 언제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입 앞까지 온 오리가 날아갈 줄이야!
“끝났습니다. 마 선생님, 나머지 맡아 주세요.”
능연은 늘 하던 대로 수술 종료를 알리고 마연린에게 나머지를 넘겼다.
“예압!”
마연린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오리는 날아갔지만, 날개 하나라도 얻은 것만 해도 어디냐 싶었다.
능연은 마스크와 장갑을 벗고 수술실 문을 열었고, 황 교수 일행은 서로 바라보다가 우르르 쫓아 나갔다.
“능 선생, 수술 끝?”
“끝났습니다.”
수술복을 입은 연문빈이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묻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선 사람들은 어제 수술한 교통사고 환자의 가족이라고 설명해줬다.
“아. 참, 나 미래의 가족 만나고 왔어.”
연문빈은 능연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별 관심 없는 듯이 화제를 돌렸다.
“잉?”
“응.”
“미래의 가족? 선봤어?”
여원이 큰 소리로 묻자 연문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차 자리 두 개 있는 집에 차 두 대를 바란대. 난 그럴 능력이 없으니 끝난 거지.”
“지금 너 집이랑 차로 안 된대?”
제대로 된 자전거도 없는 여원이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응. 그래서 주차 자리 보러 갔더니, 운화 주차장 더럽게 비싸더라고.”
그때 에르메스 중년 여자가 하얀 가운 의사 무리에서 뚫고 나와 경험자의 시선으로 연문빈을 스캔하고는 입을 열었다.
“비싸도 사야지. 요즘 소가족이라고 해도 차 두 대는 기본적인 생필품이잖아요?”
“두 개나 필요할 거까지 있나요······.”
“선생은 차 끌고 출근하면서 와이프는요? 와이프는 차 없어도 돼요? 선생이 퇴근하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으면, 와이프도 그러고 싶지 않겠어요?”
“저는······. 그래도 주차 자리 두 개나 되는 집이 얼마나 있겠어요.”
연문빈이 할 말 없다는 듯 투덜대도 중년 여자는 코웃음 쳤다.
“그것도 없으면서 선보러 가다니. 다른 사람 시간 낭비한 거죠. 내 딸이 그런 상황이 됐다면, 주선자를 혼쭐냈을 거예요.”
연문빈은 멍해졌다가 핸드폰을 꺼내 ‘우제류(偶蹄類: 발굽을 가진 포유동물. 여기서는 연문빈의 족발을 즐기는 모임 이름) 단톡방을 열어 메시지를 입력했다.
-내일 치 예약 시작. 회원 카드 2,000위안 충전하면 400위안 플러스!
메시지를 보낸 연문빈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고, 연문빈과 중년 여자의 대화를 듣던 여원은 저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졌다.
“그럼 능 선생도 일찍 주차 자리 준비해야겠다.”
“능 선생은 필요 없지. 우리 집에 여섯 자리나 있으니까.”
중년 여자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