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병원 응급센터 대문 앞에 소나무 두 그루가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그 자리에 멍청하게, 말하자면 존재감 하나 없이 서 있었다.
그러나 흡연자들은 그 나무들을 꽤 좋아했다.
응급센터 의사, 간호사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 누구든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은 가장 편한 곳으로 문 앞 소나무 밑을 꼽았다.
소나무 밑은 시야도 좋고 바람도, 남의 시선도 가릴 수 있고, 제일 중요한 건 응급센터 외래 진료동 내부 구체적 상황이 잘 보이고, 구급차가 들어오는 모습도 즉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문빈은 담배를 하나 물고 답답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오늘은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한 갑 사서 오래된 나무 기둥에 기댄 채 겉 담배를 피우고 신나게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왜 그래? 그저께 추가 근무했다고 오늘은 일 안 하는겨?”
파란 부용왕 담배를 든 주치의 조낙의가 물었다. 부용왕 울남천공(蔚藍天空: 파란하늘, 담배 메이커)은 하드케이스 중화 담배보다 비싸지만, 중화 담배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역주: 중국은 담배 가격이 천차만별. 같은 중화 담배라고 해도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며, 하드케이스 중화 담배(1951년 출시)는 한 보루에 420위안, 부용왕 울남천공은 500위안. 등소평이 좋아한 담배는 한 갑에 2,500위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 담배 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외국인에게도 알려진 중화 담배는 포장지가 새빨개서 상징성이 있다. 중국은 담배 가격이 차이 나는 만큼 담배를 내보임으로 나 이런 담배 피우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도 있어서 담배도 권하는 문화가 있고 본인이 담배 피우면 상대방의 흡연 여부를 따지지 않고 담배를 건네는 사람도 있고, 서로의 담배를 바꿔 피우기도 한다. 비즈니스의 경우 피우지 않더라도 받아 두는 게 예의.)
조낙의는 용돈을 얼마 받지 못하는 남자지만, 담배 살 돈을 아끼지 않고 동료들에게 자랑하는 재미를 즐긴다. 어쩌면 너무 자랑해서인지, 동료들은 담배 피울 때 조낙의를 그다지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걸 잘 모르는 연문빈은 그저 웃어 보였다.
“요즘 잘 안 풀려서요.”
“왜? 뭐 때문에?”
조낙의가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맞선 보러 갔는데, 두 번이나 주차 자리부터 묻더라고요. 자리 몇 개냐고. 제가 주차 자리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죠. 그래서 파토 났어요. 그런데 어느 환자 보호자도 그러더라고요. 맞선 보려면 있어야 한다고. 그것도 두 개나.”
“아, 걱정거리긴 하지. 사실 그다지 비싸지도 않아. 대출이 잘 안 돼서 문제지. 집에서 도와줄 형편이 안 되면 너는 몇 년은 있어야······.”
“자리는 있어요.”
“바로 샀다고?”
하하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던 조낙의는 연문빈의 말에 담배가 목에 걸려 켁켁대며 다시 물었다.
“그냥 바로? 집에 돈 달라고 했어? 아, 이 담배 맛이 이상하네. 쯧.”
놀란 게 너무 티 난 것이 민망해진 조낙의는 괜히 담배 탓을 하며 두 개비나 남은 파란 부용왕을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새 담배를 꺼내 보란 듯이 뜯었다.
“자, 한 대 피워. 피우면서 이야기하자고.”
조낙의는 진심으로 위로하며 한 개비에 평균 2위안 하는 푸르른 부용왕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파란 부용왕을 받아 든 연문빈은 주머니에서 노란 소연(蘇煙: 중국 고급 담배)를 꺼내 조낙의에게 내밀었다.
“제 것도 피워보세요.”
소연 중에도 박정(鉑晶)임을 본 조낙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본인 담배보다 두 배는 비싼 담배였다. 역시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 비싼 담배를 사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연문빈은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조낙의가 건넨 부용왕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 당기고는 바로 뱉었다.
“조 선생님, 요즘은 맞선 성공하는 게 주자 차리 사는 거보다 어렵더라고요.”
“응?”
조낙의는 한 개비 5위안짜리 소연의 돈 썩는 냄새를 즐기다가, 연문빈의 말에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되물었다.
“어제 주차 자리 사고 돈 내고 계약하고 나서 사진도 찍고 맞선 보러 갔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됐게요?”
“주차 자리 2개를 일시불로 샀다고?”
조낙의가 서늘하게 물었다.
“5% 할인해 줘서 많이 싸게 샀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주차 자리 이런 거 아무 소용도 없더라니까요?”
“소용없다고?”
“아가씨한테 보여줬더니 보자마자 깔깔 웃으면서 절 보더라고요. 정말로 깔깔깔.”
연문빈이 힘껏 머리를 흔드는 모습에 드디어 정신 차린 조낙의가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학군 좋은 집 얘기하더라고요. 어릴 때 공부 때문에 손해 본 게 많아서, 자기는 커서 아이한테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대요. 절대로 출발선에서 밀리게 할 수 없다고. 그래서 반드시 학군 좋은 곳에 집이 있어야 하고 게다가 집도 커야 한 대요. 아이 침실 따로 있어야 하고, 과외 수업해야 하니까 서재도 따로 있어야 하고.”
“허허.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아니, 과외는 아이 방에서 하면 되잖아.”
“그래서 저도 그렇게 말했죠. 그랬더니 둘째 생기면 같이 쓰는 방인데 한 아이 과외 하느라고 다른 아이 방해하면 어쩌냐는 거예요.”
“같이 들으면 되지?”
“학년이 다르잖아요.”
조낙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여자랑 맞선을 다 봤어? 그냥 독신으로 살아! 맞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조낙의의 말에 연문빈은 입술을 핥아 대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설마 약한 소리 했냐?”
“아니요! 몇 달만 기다리면 살 수 있다고 했죠.”
“너······. 너 진짜로 몇 달 뒤에 학군 좋은 지역에 방 세 개짜리 집을 살 수 있어?”
조낙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네 개짜리요.”
“살 수 있다고?”
“고생이야 하겠죠. 대출도 받아야 하고······.”
“아, 나 들어가야겠다. 시간이 이렇게 됐네.”
연문빈이 중얼거리듯 계산하기 시작하자 조낙의는 손에 있던 담배를 쥐어짜 끄고는 바로 돌아서서 가버렸다.
휘잉 하고 바람이 불어와도 2층 높이의 소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화 상대가 없어진 연문빈도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끄고 느릿느릿 응급실로 돌아갔다.
처치실 안엔 능연이 남자아이 이마를 꿰매고 있었다. 피하 봉합에 감장 봉합을 함께 쓰는 건 몇십 년 전에 확정한 방안인데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의사는 지금까지도 얼마 없었다.
연문빈은 그 옆에 주저앉아 능연의 손놀림을 지켜봤다. 그의 봉합 재능은 평범해서 탕 봉합법을 1년 넘게 배웠는데도 아직 정통하지 못했다. 피하 봉합 플러스 감장 봉합, 이 방법도 잘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특히 능연이 봉합하는 걸 보고 나니 자신감이 더 없어졌다.
“여 선생은?”
“생선 가시 꺼내고 있어요.”
허리를 구부리고 침대 아래쪽을 살핀 연문빈이 의아한 듯 묻자, 능연은 남자아이의 상처 부위를 주시하면서 마스크를 낀 채 대답했다.
“아, 요즘 왜 이렇게 가시 걸린 환자가 많지.”
“일부러 여 선생님 찾아온 손님들이에요.”
실습생 관비비가 옆에서 트레이를 들고 어시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어떻게 예쁘게 봉합하느냐, 그게 관비비 학생이 신경 쓰는 점이었다. 연문빈은 ‘일부러’라는 세 글자가 신경 쓰였다.
“생선 가시도 다시 오는 환자가 있다고?”
“연 선생님, 요즘 히아신스 잘 안 들어가죠?”
“시간이 어디 있냐······.”
관비비가 실눈이 되어 웃으며 묻는 말에 연문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 선생님이 글을 올렸거든요. 난리가 났어요. 이물질 꺼내는 것에 관한 주제였거든요.”
관비비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어쨌든, 지금 이물질 꺼내야 하는데 수술하기 싫은 사람은 다른 의사들도 우리 병원으로 보내고 있어요.”
“그게······. 여원이 논문을 쓸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도 글을 쓴단 말이야?”
“네. 여 선생님이 올린 글, 꽤 유용해요.”
“가시 꺼내는 거?”
“이물질 꺼내는 거요.”
연문빈의 말을 고쳐준 관비비는 붉어진 얼굴로 말을 멈췄다.
“됐어. 드레싱 해.”
자리에서 일어난 능연이 가위를 트레이에 내려놓았고, 곁에서 기다리던 아이 부모가 굽실굽실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정말 세심하시네요. 우리 애 원래 주사 맞는 거 무서워하는데 선생님은 이마를 꿰매도 안 우네요.”
“아이가 착해서 그래요.”
능연의 말을 들은 아이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어깨를 활짝 폈다.
“저는 다른 수술이 있어서, 약 바르고 드레싱하는 건 여기 관 선생한테 맡기겠습니다.”
능연은 한마디 설명을 남기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관비비가 한숨을 내쉬면서 아이 앞에 앉아 웃으며 말을 걸었다.
“꼬마야······.”
“우아아아아앙.”
다섯 바늘 꿰맨 아이가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고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연문빈도 바로 몸을 틀어 능연을 따라갔다.
수술실 안에 간 내 담관 결석 환자가 벌써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고, 알아서 퍼스트 어시 자리에 서 있던 황 교수는 능연이 들어오자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환자 상태가 안정적일세. 수술 진행해도 돼.”
그가 한의대 부속 병원에서 데리고 온 환자였다. 한의대학 자체 수술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 대다수 확진 환자, 혹은 미 확진 환자는 보통 다른 병원으로 보내진다.
운화병원도 한의대 부속 병원에서 자주 선택하는 병원 중 하나인데, 곽종군이 그쪽과 별 연줄이 없어서 그동안 그쪽 환자를 받지 않았었다.
황 교수가 이번에 환자를 보내오면서 이제 처음으로 협력하게 된 것이다.
능연은 고개를 숙여 환자를 살폈다. 환자의 MRI도 체크했고, 필요한 검사도 해서 간 좌엽 절제 방안을 확정했지만, 수술하기 전에 전체적으로 다시 살피는 건 기본이었다.
“능 선생, 이제 자네한테 달렸다네.”
황 교수가 홀가분한 듯이 그리고 지켜보겠다는 듯이 말했다.
“전형적인 간담관 협착 환자라네. 간 내 담관 결석 발견 후, 간헐적으로 한약을 복용했고, 나중엔 일을 해야 하니까 아예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버텼나 봐.”
마취 효과가 나타나자, 황 교수가 능연에게 환자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외상 제어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그건 황 교수가 직책을 얻은 밑천일 뿐 기본적으로 한의학에 관련된 일을 해왔다. 이 환자도 그가 젊을 때 치료했던 환자인데, 증상이 반복되다 보니 절제하지 않고는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
“직전 검사에서 환자가 이미 좌엽 절반이 위축된 걸 확인했다네. 끝단까지 퍼졌는지 아닌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고.”
황 교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그 말투를 들은 능연은 평소처럼 바로 수술을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곁에 있던 스크럽 간호사 왕가에게 손짓하고는 황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환자가 치료를 중지한 건 교수님 잘못이 아닙니다.”
“알지, 알아. 그래도 마음이 안 좋다네. 이 환자랑 나랑 인연이 깊거든.”
“아, 네.”
능연이 호응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사람을 위로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수술대에서는 자신의 수술 구성원 모두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길 바랐다.
황 교수처럼 잘 모르는 의사는 더욱 조심히 대했다.
참여하는 수술이 늘어나고, 특히 출장 수술을 여러 번 해오면서 그런 쪽으로 점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능연은 수술 중에 발생하는 사고는 대부분 의사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환자는 조용히 수술대에 누워있기만 할 뿐이라서, 사전에 충분히 검사만 한다면 빈번하게 의외의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술대 앞의 의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별일이 다 일어난다. 손이 미끄러지거나, 지쳤거나, 배고프거나, 어제 마신 술이 덜 깼거나, 그저께 이혼했거나, 아들이 사고 쳤거나, 집에 고양이 모래가 떨어졌거나, 좋아하는 제약회사 직원이 다른 사람이랑 잤거나 등등등등.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별것 아닌 일이라고 해도 사람은 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다.
능연은 황 교수의 상태가 어떤지는 몰라도 수술 전에 몇 분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의 스트레스를 줄여 주고자 했다.
바로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황 교수도 집도의가 이야기를 나누려는 태도를 보이자, 앞쪽을 바라보며 회상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처음 환자 만났을 때 난 아직 주치의였지. 그때 환자가 했던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네.”
“네네.”
능연은 대충 호응하는 말투로 대답했고, 황 교수는 능연이 잘생겼으니 넘어가 주지 싶어 말을 이었다.
“환자가 처음에 날 믿지 않았거든. 수술 치료하자고 하는데 싫다고 하면서 주임한테 진료받겠다는 거야.”
“아?”
“주임님은 당연히 다시 나한테 돌려보냈지. 그때도 수술하자고 했는데 말을 안 듣고 주임한테 치료받겠대. 그렇게 병원에 올 때마다 소란피우고, 또 진료받으러 오고, 소란피우고. 그러다가 일하러 떠나서 십 년인가 안 보이더라고. 그러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한눈에 알아보겠더라고.”
황 교수는 뿌듯함이 조금 섞인 그리움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능연은 이번엔 좀 흥미가 생긴 말투로 물었다.
“이번엔 왜 교수님을 찾아왔대요?”
“내가 주임이 됐으니까.”
“아아. 한결같은 환자네요. 왕간, 첫 칼은 황 교수님이 대게, 메스 황 교수님께 드려요.”
그러자 멈칫하던 황 교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고맙네.”
메스를 건네받은 황 교수가 선을 그려놓은 위치에 메스를 대고 그었다. 그러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진 황 교수가 메스를 내려놓고 묵묵히 수술대의 주도권을 능연에게 돌려주었다.
능연도 아무런 말 없이 자리에 서서 배를 열어 간 내 담관 위치를 착착 확인했다. 별 화려함 없이, 별문제도 없이.
황 교수 역시 조용히 어시스던트 역할을 했다.
황 교수는 외과 쪽으로 외상 제어를 전공했지만, 나이가 늘어가고 개인 관심도 바뀌면서 진단의학 쪽으로 시간을 더 많이 투자했다.
다만 국내에 진단의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가 별로 없고, 한의대에서도 황 교수와 어울릴만한 실력을 갖춘 외과, 내과 의사가 없었다.
외상을 긴급하게 처리하고, 합리적인 진단을 내리고 다른 전문의에게 트랜스하는 것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에서 황 교수는 외국 고급 홈닥터와 비슷했다. 다른 점은 황 교수는 개인적으로 개인 연줄을 가동한다는 점이다.
이효녕 부부와 친척 의사들도 모두 황 교수의 개인 연줄이고, 이제 능연도 그 연줄에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황 교수가 능연처럼 수술 실력이 충분하고 안정적인 외과 의사를 높이 사는 건 당연했다. 협력할 외과 의사 리스트를 자주 갱신해야 하니까 말이다.
전에 비교적 자주 협력하던 간담췌외과 의사가 지금은 한 명은 56세, 또 한 명은 54세라 수술량이 해마다 줄어들었다. 매달 평균적으로 10건도 많은 편이고, 이제 대외 활동도 점점 참여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곧 같이 일하기 어려울 때가 오지 않을까 싶었다.
후보 명단에 있는 젊은 의사 서너 명의 수준은 능연과 비교······ 아니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능연이 한순간에 간을 손에 받치는 걸 본 황 교수의 간도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능연은 가볍고 부드럽게, 그러나 메스를 잡을 때는 단호하게 손을 놀렸다.
황 교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심 긴장했다. 1m 넓이의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평지라면 모르겠지만, 1, 2m 높이에서 그런 폭의 길을 걷는다면 아무래도 다리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능연의 동작이 빨라서 몇 번 만에 조작을 끝냈고, 황 교수를 긴장 상태에서 놓아주었다.
“석션할 때 조심하세요.”
“아. 음. 능 선생 수술실은 정말 조용하군.”
능연이 코치하는 말에 황 교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대화하셔도 됩니다. 너무 호들갑만 떨지 않으면요.”
능연이 목을 빼고 복강을 들여다보면서 제 할 일 하며 말하자 황 교수가 그럼 자기가 화제를 꺼내 보겠다고 말하고는 묘하게 긴장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음, 그럼 이 환자 이야기나 하세. 이 환자도 참 전설적인 인물이지. 그 당시에 초기 ‘만원호’에 속했으니까.” (만원호: 만 위안을 버는 부자를 가리키는 말.)
“그럼 집에 만 위안이 있다는 거예요?”
왕가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그뿐이 아니지. 진정한 만원호는 1년에 1만 위안을 버는 사람이야. 그때 우리는 겨우 백 위안 벌었으니까, 우리가 10년 일해야 벌 돈이었던 거지. 대단하지?”
“어우, 집 샀으면 돈 엄청나게 벌었겠네요.”
힘껏 훅을 잡고 있던 마연린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에 한 번 물었는데, 지금도 똑같이 1년에 1만 위안 번다더라고.”
“정말요?”
“해마다 그렇게 번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참 대단하지. 상황이 괜찮았으면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외지에 가서 일하는데도 겨우 1만 위안 번대요?”
“월급을 못 받고, 사기당하고, 뺏기고······. 자네 지금 재수 옴 붙은 사람 껍질 당기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무섭잖습니까······.”
“괜찮네. 수술 성공하면 그만이지. 수술 성공 못 하면······ 이제 재수고 뭐고 없는 거고.”
황 교수가 능연을 힐끔 보며 한마디 했다.
“가족은요? 가족들도 상황이 안 좋습니까?”
그러자 능연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다 거기서 거기지. 가족들도 수술 후에 약을 어떻게든 덜 쓰고, 의료 보험 되는 거로 해달라고 찾아왔더라고. 요즘은 참, 사는 게 쉽지 않아.”
황 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다면, ICU에 오래 있으면 안 되겠네요.”
능연은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수술에 집중했다. 그 말에 황 교수는 슬며시 웃었다. 수술이 아주 잘 되면 ICU에 머무를 시간이 당연히 줄어 들것이고, 줄어든 만큼 환자의 부담도 덜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의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일이냔 말이다.
능연의 말을 들은 세컨드 어시스던트 마연린, 스크럽 간호사 왕가와 마취의 소가복은 모두 무의식중에 자세를 바로 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황 교수가 고개를 들고 목을 풀어주며 잠시 쉬다가 마연린과 눈이 마주쳤을 때 본 마연린의 눈빛은 눈이 쌓인 산에서 변방을 지키는 군인 같았다.
사람에게는 기세라는 게 있다.
기세가 있는 사람은 메스처럼 날카롭고 철심처럼 강인하고 철판처럼 지구력이 좋고,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자신감과 분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완성한다.
외상 제어에 정통한 황 교수는 본인이 국경에서 친히 보고 친히 접속했던 눈 쌓인 산에서 변방을 지키는 군인 같은 그런 기세 있는 사람을 자주 본다. 그는 고원병이 발생한 자신을 들것으로 나르던 부드러운 미소, 새하얀 치아, 맑은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술실에는 웃는 사람도 없고 수술 모드 역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지만 남다를 정도로 빨랐다.
그러나 황 교수는 어떤 변화를 눈치챘다.
“지금 우리······.”
황 교수는 조금 불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는 눈빛으로 능연을 봤다.
“좌엽 절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병소(病巢)를 제거하고, 최대한 결석을 제거합니다.”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겠나?”
황 교수도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결석이 혈관을 막을 정도로 많고 염증과 감염을 유발해서 환자의 간 좌엽을 절제해야 했다. 남은 결석을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으면 감염과 재발을 막을 수 있는 확률이 크게 늘고 회복 시간을 줄이고 유합 효과를 올리는 등 좋은 예후로 나타난다.
“이따 담도 검사하고 아직 결석이 남았다면 꺼낼 수 있을지 보겠습니다.”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 능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담도경도 내시경의 일종으로 능연이 터득한 스킬 범위는 아니다. 그러나 원리와 조작, 사용 방법 측면에서 일반 담관경은 능연이 자주 쓰는 슬관절경과 큰 차이가 없다.
능연은 제약회사 직원에게 연락해 담관경 한 세트를 받아 연구하면서 입문급을 거쳐 전문가급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렀다.
삼단뛰기를 배운 학생이 제자리멀리뛰기를 배울 때 단번에 삼단뛰기와 같은 수준이 될 순 없지만 배우고 연습하다 보면 일정 수준에 이르는 게 어렵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고난도 담도 수술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돌집게(lithotomy forceps)로 돌을 꺼내면 그만이었다.
황 교수는 능연이 일사불란하게 각 스텝을 완성하는 걸 보며 놀랍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했다. 편안한 건 능연의 수술 능력을 이미 봤기 때문이고, 놀란 건······ 놀란 포인트는 너무나 많았다.
항상 밖을 돌아다니며 각지 각 병원의 외과 의사들이 수술하는 모습을 봐 온 황 교수는 능연의 외과 기술을 보면서 끊임없이 자신이 아는 상식을 갱신했다.
수술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황 교수는 능연을 간 수술 차선 후보에서 수석 후보로 올렸다.
“중환자실에 보내고, 수시로 상태 보고해 주세요.”
능연은 허리를 펴며 수술 종료를 선포했다.
“응, 내가 따라갈게.”
훈련의 생활을 한동안 했던 마연린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간 절제 수술은 그가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은 큰 수술 중 하나다. 내내 훅만 당기긴 했어도, 마연린으로서는 충수염 수술을 집도한 것만큼 기쁜 일이었다.
ICU에 던져넣고 간호사더러 특별 간호하라는 것보다 초짜 레지던트가 붙어 있는 것이 당연히 적절하고 환자에게 득이 되는 결정이었다. 다만 레지던트 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누구나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황 교수는 당연히 더욱 흡족했고, 자기가 존중받는 느낌까지 들었다. 어쨌든 자기가 데리고 온 환자이니 말이다.
“능 선생, 저녁에 시간 되면 같이 간단하게 밥이라도 먹자고. 이 교수 부군 수술 때부터 그러려고 했는데 그땐 다들 바쁘기도 하고 어수선해서 그럴 정신이 없었잖나. 내가 살 테니 자네도 의사 두어 명 데리고 오게나.”
“저는 그런 술자리 싫습니다.”
“이게 무슨 술자리인가······.”
“안 갑니다.”
이상하다는 듯 황 교수를 힐끔 보던 능연은 황 교수의 해명을 들을 생각 없다는 듯 거절했다. 술자리는 술자리일 뿐, 이름을 바꾸고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도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거절당하리라 생각도 못 한 황 교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해될 것도 같았다.
“아니면······ 아니면, 자네가 누굴 데리고 가고 싶은지 얘기만 하게, 초대는 내가 할 테니.”
황 교수의 다른 제안에 능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장면에 너무나 익숙했다. 여자가 골목을 한참 따라오다가 갖가지 합리적 혹은 비합리적인 요구를 하다가 거절당하고 ‘아니면, 아니면’ 수법을 꺼내 들 때 다시 단호하게 거절하면 사태가 악화하곤 했다.
“자리를 만들고 싶으시면 차라리 협진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능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협진 자리?”
“원내, 원외 다 좋습니다. 환자는 하나든 여럿이든 상관없고요.”
“알아, 무슨 뜻인지는 아네. 그런데 협진 목적을 몰라서 그래.”
황 교수가 이해되지 않는 듯 묻는데 능연은 벌써 장갑, 모자를 벗어 버리고 팔다리를 활개 치며 사라졌다.
“황 교수님, 술자리를 만들려던 목적이 능 선생에게 감사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능 선생이 협진이 좋다고 하니, 그냥 협진 자리 마련해 주는 게 좋은 거 아닐까요?”
뒤에서 둥근 의자에 앉아 있던 소가복이 헛기침하며 말을 꺼내자, 황 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그런 걸 선물로 준단 말인가.”
“제가 보기에 그게 능 선생한테 더 어울려요. 능 선생 기쁘게 하려고 술자리 하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정말 능연이 그런 자리를 좋아할까요?”
“안 좋아할까?”
“능 선생이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얼굴로 하루라도 술자리 없는 날이 있었겠습니까.”
황 교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정말로 협진을 마련해야 한단 말인가.”
“뭐 어찌 됐든, 정말로 그렇게 하시면 능 선생이 기뻐할 거라는 건 확실합니다.”
소 가복은 거기까지 말하고 둥근 의자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능연은 복도에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디 가서 밥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중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능연의 핸드폰이 울렸고 액정을 본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아드을~ 나랑 아빠 집에 왔단다. 집에 와서 밥 먹으렴. 외국에서 사 온 것도 있어.”
높고 맑은 도평 여사의 목소리엔 장거리 여행의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벌써 집에 왔다고요? 비행기 표 못 구한다고 하지 않았어?”
“호텔에서 프리미엄 이벤트에 당첨되었어! 얼마나 이득인지, 우리 퍼스트 타고 왔단다. 네 아빠는 코까지 골고 잤어.”
“아이고, 그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잖소. 그걸 못 참고. 그리고 나 코 안 골았어요. 그냥 숨 쉬는 소리가 커서 그래요.”
핸드폰 너머에서 능결죽 씨의 고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흥, 내가 녹음도 했는데요?”
“지워요, 지워!”
“내 핸드폰 만지지 말아요! 안 지울 거예요!”
그러고는 도평 여사가 목소리를 한층 높여 말을 이었다.
“아들아, 어서 집에 오렴. 맛있는 거 준비했단다. 맞다, 이번에 재미있는 아가씨를 하나 만났어. 기회 되면 만나보렴.”
#C: 452 휴양
“능 선생, 집에서 판율병(板栗餠: 산동성 전통 간식. 밤을 넣고 땅콩기름으로 지짐.) 좀 가지고 왔어요. 드셔 봐요.”
이효녕이 병원 구역에서 다급하게 달려와 작은 종이 상자를 내밀었다. 포장은 따로 하지 않았고 평범한 골판지 상자에 크게 ‘동심 판율병’이라고 쓰여 있었다.
“의사는 선물 받으면 안 되는 거 알아요. 근데 이건 그냥 집에서 가져온 특산물일 뿐이잖아요. 한 상자에 20개고, 얼마 하지도 않아요. 아, 그래도 맛은 좋답니다.”
“네, 그럼 열어보겠습니다.”
능연은 별생각 없이 받아들여 바로 뚜껑을 열었다. 그는 그것이 선물 받은 후에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무언가 따라올 가능성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게 해야 했다.
선물 상자 안에서 희한한 것들을 많이 발견해온 능연이 터득한 방법이었다.
“아, 그래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능 선생은 세심한 사람이잖아. 음, 그렇지, 세심하지 않으면 외과 의사하기도 힘들잖아요.”
잠시 멍해졌던 이효녕이 바로 아무렇지 않게 능연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상자 안의 판율병은 모두 옅은 금황색이고 바삭바삭, 촉촉하게 구워져 있었다. 모두 20개짜리 판율병은 기름종이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하나만 비닐로 싸여있었다.
“옛날엔 다들 속이 보이는 걸 좋아서 비닐로 했는데, 요즘은 환경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기름종이로 바꿨대요.”
이효녕이 살짝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름종이 포장을 천천히 뜯어 금황색 판율병을 꺼내 들고 바라봤다.
“남편분은 어떠세요?”
“좋아요. 중환자실에서 나와서 이제 일반 병실에 있잖아요. 그것만 해도 편하죠. 상황도 안정됐고. 능 선생, 정말 감사해요. 간 손상이 심했는데······. 정말 염라 앞에서 그 사람을 구해 주셨네요.”
이효녕의 말투는 진실했다. 사고를 겪은 후, 계속해서 이런저런 일과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능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장 깊었다. 당시에 능연이 바로 긴급 간 절제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황 교수가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웠다.
설사 도착했더라도 황 교수가 남편을 살렸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건 황 교수가 직접 한 말이었고, 이효녕도 점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위험을 벗어난 건 아니니까, 시간 날 때마다 곁에 계시면서 환자 상태 모니터링 해주세요. 가족이 모두 의사니까, 회복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이 판율병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어떤 선물은 받아야 한다는 걸 능연도 알고 있었다. 그는 품에서 잣 한 병을 꺼내 이효녕에게 건넸다.
“자양 강장에 좋은 잣입니다. 다 같이 간식으로 드세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능연의 이야기를 듣던 이효녕은 그가 잣을 건네자 거절하려다가 ‘자양강장’에 좋다는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받아들었다.
능연은 살짝 웃어주고 손에 판율병을 들고 제 갈 길을 갔다.
건물 아래 주창에 제타는 누가 닦아 놓은 듯 먼지 하나 없이 모터쇼에라도 나갈 것처럼 반짝거렸다.
문을 열고, 차에 올라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하구 진료소에 도착했다. 능연은 조심스럽게 차고 쪽으로 차를 몰아 차를 세운 후 안으로 들어갔고, 다 들어가기도 전에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타히티 바다거북이 얼마나 크던지.”
“맞아요. 정말 예뻤죠.”
“우리 같이 사진도 찍었잖아요.”
능결죽과 도평이 한마디씩 하는 목소리가 온 진료소에 쩌렁쩌렁 울렸다.
“바다거북 맛있수? 게살하고 비교해서 어떻던가?”
골목 사람들 역시 부부의 체면을 살려주며 사진을 돌려보는 동시에 질문도 했다.
“그건 먹는 게 아닙니다. 정말 파는 거였다면 아이고, 출혈이 컸겠죠. 바다거북이 이제 세상에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능결죽이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는 듯 대답했다.
“바다거북은 알 많이 낳는 거 아닌감?”
“깨어나는 놈이 얼마 없대.”
“알 맛있으려나?”
화제가 예상한 내용으로 돌아갔고, 사람들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사진을 봐주자 도평과 능결죽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주제가 자꾸 샜지만, 인터넷 댓글에서 새는 거보다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고여덟 이웃, 열 몇 사람, 일고여덟 아가씨가 인사했을 뿐, 능연이 안으로 들어가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짓는 능연의 머리를 도평이 쓰다듬으며 헝클어뜨렸다.
“우리가 집에 없을 때, 맛있는 거 먹었니? 옷은 따듯하게 입었고? 돈은 안 모자랐고?”
질문을 연달아 던진 도평은 능연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그를 풀어주었다. 능연은 햇볕이 가장 약한 곳을 찾아서 섰다. 그래도 그가 선 곳이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포커스인 것은 변함없었지만, 적어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능연이 침실로 올라가면 많은 방문객이 퇴장할 것을 고려한 도평 여사는 능연이 그곳에 서 있을 자격을 주기로 결정 내리고는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이번에 비행기 얼마나 편하게 타고 왔는지 알아요?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였어요. 보잉 787, 그런데 탄 사람도 얼마 없더라고요. 일등석이었는데, 힘드니까 기내에서 움직이게도 해주더라고요. 그러니까 얼마나 편안하던지.”
도평이 하구 및 주변 지역의 패션리더가 된 것엔 수다 떨 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되었다.
골목 이웃들은 가장 큰 비행기와 일등석이라는 말에 이런저런 걸 연상했고, 순간 대화가 몇 배나 즐거워지자 노인들은 어차피 수다나 떨고 할 일도 없는데 수액이나 맞자고 생각했다.
그때 능연의 핸드폰에 진동이 느껴졌다. 확인해 보니 전칠이 보낸 메시지가 와있었다.
-두 분 잘 도착하셨어요? 타히티에서 우연히 만나서 같이 비행기 타고 돌아왔어요.
메시지 끝엔 귀여운 이모티콘도 있었다.
-일등석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계세요.
-이미 표를 산 사람들이 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귀국하는 항공편이 너무 드물어서 그래서 취소하라고 말하기 그렇더라고요. 우리 가족이 대주주긴 해도, 다른 주주나 이사들도 있고요. 우리 가족 사유 항공사 세우라고 건의하려고 해요. 앞으로 필요할 거 같아서.
능연이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자 고무된 전칠이 다시 흥분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시시각각 생사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능 선생님하고 비교할 수 없지만, 저도 노력할 겁니다.
눈을 꼭 감고 전송 버튼을 누른 다음 다시 눈을 떴을 때, 능연의 답변이 보였다.
-노력!
그리고 뒤에 이모티콘까지 있었다. 전칠은 기뻐서 웃음을 터트리며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렀고, 거치적거리는 베개를 저 멀리 던지고는 손뼉을 쳤다.
“샤오웨이, 나 별 볼래.”
“네, 알겠습니다.”
스마트 집사 샤오웨이가 대답하는 동시에 천장이 서서히 열리면서 방에 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고 몽환 같은 별빛이 쏟아졌다.
전칠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꿈나라로 향했다.